‘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 강우의 부모님일까? 화란이 그 여자가 벌인 일 일까?
강우? 아님 강우 동생 신애?
아냐, 강우와 신애는 이런 일을 벌일 정도로 대담하지도 계획을 세우지도 못해.
강우의 부모님이 아니면 화란이 그 여자가 한 걸 거야. ‘
동빈 옆에 신애가 잠들도록 만든 사람
동빈의 의식을 잃게 만든 사람은 강우나 그 주변의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 어젯밤 헤어진 여자 친구 얘기를 하며 내게 접근했던 사람도 하수인일 거야.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있다는 강우의 말은 사실이었어.
그런 사람들에게 더더욱 연우를 보낼 수는 없지
순진하고 여린 연우를 이런 짓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보낼 수는 없어.
연우는 이 사람들을 절대 감당하지 못해.
돈이 얼마나 중요하고 좋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을까? ‘
동빈은 누워있는 신애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
화장실로 가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흘러내리는 비눗물에 눈이 따가워서인지 동빈은 눈물을 흘렸다.
‘ 내 인생은 끝났지만 연우를 나처럼 만들 수는 없어.
연우를 절대 이 사람들과 엮이게 해서는 안 돼. ‘
동빈은 신애를 한 참 동안 바라보다 그대로 두고 호텔을 나오면서
동빈은 이상한 죄책감을 느꼈다.
신애를 한 번도 여자로 느껴본 적도, 호의도 느껴보지 못했으나
잠든 그녀를 호텔방에 혼자 두고 나온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애를 깨워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 한 들
신애가 사실대로 말할까?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이미 답은 주어졌고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동빈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결심했다.
‘ 아무 의심도 하지 않은 내 책임도 있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닌데.
연우만 생각하자. 연우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강우와의 결혼을 말려야겠어. ‘
동빈은 하숙집으로 가 침대에 누웠다.
참으려 해도,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오늘 아침 동빈의 옆에 누워 있었어야 할 사람은 신애가 아닌 연우였다.
만약 연우 었다면 동빈은 기쁜 마음으로 연우를 안아주었을 것이다.
“ 아주머니 저 고향에 좀 다녀올게요.
혹시 친구들이나 선배들한테 전화가 오면 저 경주 집에 내려갔다고 전해주세요. “
“ 기말고사 기간인데 시험은 다 본거야? 학생들 다 도서관 가고 없는데.
시험은 보고, 1학기는 마무리 지고 가야지? “
“ 아무래도 휴학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집에 다녀와서 짐을 챙기러 다시 올게요. ”
“ 갑자기 웬 휴학? 그런 소리는 없었잖아? ”
“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일이 생겨버렸어요. ”
하숙집 아주머니는 놀라 동빈을 쳐다봤다.
신입생 시절부터 복학생이 돼도 항상 흐트러짐이 없던 학생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고,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하던 철이든 시골 총각
항상 장학금을 받고, 과외를 해서 하숙비와 생활비를 벌어 쓰던 성실한 학생이
갑자기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니
아주머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동빈 학생 무슨 일이야?
말을 좀 해봐. 동빈 학생이 이럴 리가 없는데?
이렇게 갑자기 내려가서 휴학을 한다고 하면 어머니가 놀라시지.
큰 아들만 믿고 살아가시는 양반이 “
“ 아주머니, 죄송해요. 곧 돌아올게요. ”
동빈은 간단한 짐을 챙겨 하숙집을 나갔다.
서울역에 가 기차를 기다리며 연우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했다.
당장 가서 연우를 보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연우를 보면 죄책감이 더 커질 것만 같았다.
“ 여보세요, 연우야 ”
“ 네, 오빠 어디예요? ”
“ 나 갑자기 경주로 가. 가서 며칠만 쉬고 다시 돌아올 거야.
너, 내가 한 말 기억하지? “
“ 네 ”
“ 내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믿지 말고 기다려. 내 말만 들어.
방법을 찾아서 올게. 미안해 연우야.
“ 왜 갑자기 미안하다고 말해요? ”
“ 그렇게 돼버렸어. 미안하다.
정리가 되면 다시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
동빈은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는 멀리서 동빈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연우를 그 사람들 틈에서 구해 낼 수 있을까?
아니야 이렇게 가버리면 안 돼. 이건 도망이야. 가자 연우에게 가자.
일단 연우를 먼저 만나자. 만나서 얘기하자. ’
동빈은 서울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연우의 집으로 향했다.
어떤 말이든 동빈에게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 연우야, 나 지금 너희 집 앞이야. 잠깐 만 나와 봐. ”
“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
“ 네 얼굴 보고 내려가려고 ”
“ 잠깐만 기다려줘요. 옷 갈아입고 나갈게요. ”
“ 그래, 천천히 나와. 기다리고 있을 게. ”
십 분 후 연우가 수줍어하며 대문을 열었다.
“ 연우야 ” 동빈은 와락 연우를 껴안았다.
“ 오빠, 갑자기 왜 이러세요? ”
“ 미안하다. 연우야, 미안해 ”
“ 왜 그러시는 건데요? 뭐가 자꾸 미안해요? ”
“ 연우야, 내 말 잘 들어. 너 아버지랑 전화할 수 있지? “
“ 네, 아버지랑 통화할 수 있어요. ”
“ 카페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얘기가 좀 길어질 거야. “
“ 네, 알았어요. ”
동빈은 연우를 데리고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고,
맞은 편에서 강우와 신애가 올라오다 동빈을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 동빈 오빠
오빠, 나만 혼자 호텔방에 두고 가는 사람이 어딨어요?
일어나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
“ 너, 어젯밤에 신애랑 미라클 호텔에 있었다면서
어린 여자애를 혼자 호텔방에 두고 가는 남자가 어디 있어?
너도 여동생이 있는 오빠잖아?
그리고 지금 연우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야?
친구랑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너 이렇게 무책임하고 야비하게 굴어도 되는 거냐? “
강우는 동빈에게 달려들어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기세였다.
“ 너, 너 너희들 정말
강우 신애 너희들 정말 어떻게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어떻게 어떻게?....... ”
“ 이게 무슨 말이에요?
동빈 오빠 어제 신애랑 같이 있었어요?
오빠 사실은 신애를 좋아했던 거였어요?
그러면서 나한테는 왜 그랬던 거에요? “ 연우는 놀라 동빈을 쳐다봤다.
“ 연우야
내가 동빈 오빠를 오래전부터 짝사랑해왔던 거고
우리 어젯밤 같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우리 부모님도 동빈 오빠를 알고 계셔.
약혼을 하면 같이 유학도 보내주시기로 했고
오빠가 걱정되는 마음에 너한테 이것저것 충고를 해 준 것 같은데
너를 좋아한다는 오해는 하지는 말아.
여동생이 있어서 조심스러워 그랬을 거야.
오빠도 동빈 오빠한테 이제부터 함부로 굴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나한테 동빈 오빠는 중요한 사람이야. “
“ 동빈이 너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다시 한번 신애나 연우한테 이런 짓을 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연우, 너도 동빈이는 내 친구면서 신애랑 결혼할 사이기도 하니까
오해받을 짓은 하지 말아.
네가 전처럼 나랑 결혼할 생각이라면 말이야.
동빈이 말대로 네가 나를 믿지 못한다면
화란 누나랑 내가 깊은 관계라 생각한다면 나도 너를 잡지 않아.
나를 믿지 않는 여자랑은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다. “
“ 아니에요. 그런 거. 나도 동빈 오빠 말 믿지 않아요.
아니 오빠와 화란 언니가 그런 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조금 혼동스러워서
갑자기 오빠가 결혼을 하자고 하니까 당황해서 한 말이에요.
내가 결혼하자고 졸라댔어도 항상 오빠는 들은 척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아빠가 돌아오시면 바로 말할게요.
결혼해요. 나는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요.
아직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잘할게요.
좋은 아내가 되고 좋은 엄마가 될게요. “
“ 연우야, 안돼. 안돼. 안된다고. 이 결혼은 하면 안 돼.
강우 너 언제까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너랑 연우 인생을 망치려고 드니?
신애 너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니?
제발 그만해. 제발 제발 부탁이야. “
“ 오빠, 그만해요.
이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오빠가 뭐라고 말하든 난 강우 오빠랑 결혼할 거예요.
오빠도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다면 그래야 해요. “
“ 동빈 오빠
우리 아빠가 오빠를 만나자고 할 거예요.
같이 유학을 보내달라고 내가 말해놨어요.
오빠는 건축 설계를 배우고, 나는 건축 디자인을 배우게 될 거예요.
우리는 부부이자 좋은 동료가 될거라구요.
멋지지 않아요? 나는 너무 흥분되는 데
경주에 어머님도 만나 뵈러 가구요. “
“ 내가 만약 책임을 져야 할 행동을 했다면 그럴 거야.
하지만 내가 너랑 결혼을 할 일은 없을 것 같구나.
내가 왜 너랑 결혼을 해야 하니? 너랑 강우 화란이란 그 여자
너희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진 것뿐인데. “
“ 아니라고 해도 사실이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아요.
나는 기다릴 거예요. 오빠가 나한테 올 때까지
오빠 마음이 진정되면 오세요. “
검은색 세단이 천천히 멈추더니 창문을 내렸다.
" 무슨 일이야? 대 낮에 왜 동네 한가운데서 언쟁을 벌여? 시끄럽게 "
신애의 아빠 최 이사가 차문을 열고 네 남녀에게 천천히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