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 남편을 죽인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
" 대 낮에 왜 들 이러고 있어? 어디라도 들어가서 얘기하지.
내가 동네에서 조용히 다니라고 했지? 뉘 집 자식인지 다 알고 사는 동네인데
이러면 평판이 안 좋아진다고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
" 아저씨, 아무 일도 아니에요. "
" 연우야, 아버지랑은 통화해봤다.
너희들이 결혼을 원한다고
나이가 어리지만 허락해 달라고 한다고 말해놨다.
너희 아버지도 흔쾌히 허락하셨어.
강우 엄마가 결혼 준비는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걱정 말고 있어.
어린 네가 결혼 준비를 어떻게 하겠니.
네가 강우 엄마 친구 딸이기도 하니 다 신경 써서
해 줄 거야.
강우, 너도 이제 곧 결혼할 남자이니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아직 학생이긴 하지만 결혼하면 가장이 되는 거야.
연우야, 강우가 졸업할 때 까진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
강우가 졸업을 하고 우리 회사에 들어가면
그때 분가를 해서 살고
살림이니 애를 낳고 키우는 거며 배울 게 아주 많을 거다.
너희들이 원하면 일, 이년 후에 분가를 해도 되고
일 년정도 강우 엄마 밑에서 좀 배우고 나가도록 해라. "
" 아저씨, 저 학교는 어떻게? 졸업은 하고 싶은데요. "
" 글세, 내가 학교를 졸업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강우랑 결혼을 하면 집에서 내조할 사람도 필요해.
나는 너희들이 아이도 일찍 나았으면 좋겠는데
가능하면 여럿을 낳았으면 좋겠구나.
너도 혼자 자라 얼마나 외로웠니?
아이들은 엄마가 키워야 해.
특별히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모를까.
아이 낳아서 잘 기르고 남편 내조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일이 하고 싶으면 우리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해도 되고
사장님 딸인데 네가 회사에 일 할 자리 하나 없겠냐?
다 네 아버지 회사고, 그게 너 회사인데
별 걱정을 다 한다. "
최 이사는 사람 좋게 껄껄껄 웃으며 연우의 어깨를 잡았다.
" 네, 저는 아무래도 괜찮아요.
저도 결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얼른 결혼식을 올리자고 아버지한테 말해 놓을게요. "
" 강우, 너는? "
" 네, 저도 좋아요. 연우는 동생이나 마찬가지인데
제가 잘 돌봐줄 수 있어요.
연우 말고 다른 여자랑 하는 결혼은 생각도 안 해봤어요. "
" 오빠, 연우야 축하해.
정말 잘됐다. 아니 이제 새언니라고 불러야겠구나.
잘 부탁해요. 새 언니 "
신애는 부러운 듯이 연우를 보다 동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다들 다들 다들, 미쳤어요.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야 " 동빈이 소리를 질렀다.
" 모두들 다 끔찍해. 당신도 당신 자식들도 모두 미쳤어. 미친 사람들이야. "
연우야, 너는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니? 제발 정신 차려. 연우야 "
" 오빠, 이제 그만 가세요. 더 이상 오빠를 보고 싶지 않아요.
오빠가 책임져야 할 사람은 신애지. 내가 아니에요.
이제 그만. 모두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아요. "
" 연우야, 잘 생각해.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아버지랑 의논해봐.
분명 원치 않으실 거야. 이 결혼
나랑 우리 고향에 다녀오자.
잠시라도 이 사람들 곁에서 떨어져서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봐.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너를 생각하고 가족으로 대한
적이 있었는지
분명 석연치 않은 면이 있어.
몸이 떨어져 있으면 차분히 생각할 수 있어.
우리 어머니한테 말해 놓을게.
좋은 분이야. 우리 어머니
너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생활해봐.
가족이란 게 무엇인지 생각을 해. 연우야
나랑 결혼하지 않더라도 괜찮아. 이제 상관없어.
네 삶을 생각해야 해.
더 이상 이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면 안 된다.
부탁이야. 연우야. "
" 동빈군, 이제 그만 하게.
지금 자네는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여러 번 넘었어.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아.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고 싶지 않으면 그만해.
나 아주 많이 참고 있으니까
우리 강우 친구니 내가 봐주는 거야.
젊은 혈기에는 그럴 수 있지만 할 말 안 할 말 가려야지.
연우 말은 무슨 말이야?
동빈군이 왜 우리 신애를 책임져? "
" 아빠, 집에 들어가서 말할게요.
연우야,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엄마랑 이것저것 의논해야지.
준비할게 아주 많을 거야. "
" 그래, 알았어. "
강우 오빠, 들어가요. 우리 일인데 오빠도 같이 알아야죠. "
" 들어가자.
동빈이 너 나랑 나중에 얘기하자. 학교에서 만나서 얘기해. "
동빈은 길 한가운데 혼자 남겨져 바닥만 내려다봤다.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흘렀지만 얼른 닦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마지막으로 연우 아버지 민우를 만나야 한다.
이 결혼을 말릴 사람은 연우의 아버지밖에 없다.
' 분명 그 분은 이 결혼을 말리실 거야. '
" 나가라니까. 여긴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는 거 아니야.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소동을 피워? 저리 안가 "
" 저는 만나야 해요. 사장님을 만나야 해요.
중요한 일이에요.
아저씨, 전화 한 번만 해주세요. 따님 일이라고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만 전해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
" 자네가 자꾸 이러면 우리 회사 짤린다고.
소동좀 그만 부려 아무나 어떻게 들여보내?
사장님한테 전화하는 게 동네 가게 전화를 하는 거랑 같나?
선약을 잡던가? 비서실에 문의를 했어야지.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막무가내야. "
" 무슨 일이야? "
" 네, 이사님
이 학생이 자꾸만 사장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난리를 피워서요. "
최 이사는 동빈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 또 자네야?
그렇게 만나고 싶다면 만나야지.
김 비서 이 학생 사장실로 안내해줘. "
" 사장님, 최 이사님 오셨습니다. "
" 그래, 들여보내. 차도 좀 들여오고 "
" 네, 알겠습니다. 이사님 들어가십시오. "
" 민우야
이 학생이 내가 말한 그 학생이야.
할 말이 아주 많은가 본데. 얘기들 나눠.
동빈군 자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그래야 미련이 안 남지. "
최 이사는 동빈을 남겨두고 자리를 떠났다.
" 그래 음..... 자네가 동빈 군이지?
어제 강우 아빠한테 얘기는 들었네.
자네 의도가 뭔가? 신애랑 이미 깊은 사이면서
왜 연우의 결혼을 말리는 거지?
최 이사 말로는 신애가 자네를 아주 좋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만약 신애랑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아주 곤란하지 않은가?
이제 그만하지 그래? "
" 신애와 저의 관계는 절대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그 아이랑 결혼 생각도 없습니다.
저 연우랑 결혼할 생각도 없습니다.
연우랑 저는 이제 모두 다 끝나버린 거 저도 잘 압니다.
저는 그렇지만 아직 연우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아버님이 말려주세요. 이 결혼
강우와 강우 집안 사람들 모두 연우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연우와 사장님 댁의 재산만
오직 돈을 차지할 목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연우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한 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연우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사장님밖에 없습니다.
저는 서울을 떠날 생각입니다. 고향으로 내려가 살 거예요.
이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제가 떠난다고 해서 연우를 연우의 인생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분명 지옥과도 같을 겁니다.
어쩌면 지옥보다 더 할 수도 있지요.
모두들 사람이 아닌데. 거길 연우를 보낼 순 없어요.
한 번만 더 연우를 말려주세요. "
" 최 이사는 나랑 어려서 같이 자란 사람이야.
부하직원이지만 형제와도 같은 사람이야.
최 이사의 아내도 그렇고
엄마를 잃은 연우를 어릴 때부터 딸처럼 잘 돌봐줬어.
회사일로 매일 출장을 다니면서도 연우를 잘 키운 건
그 집 사람들 도움이 컸지.
연우도 강우를 어릴 때부터 몹시 좋아하고
그 집 사람들을 잘 따랐어.
우리 연우를 잘 알고, 아끼고 사랑해 줄 사람들이야.
연우와 강우는 곧 식을 올릴 거야.
강우도 친오빠처럼 연우를 잘 보살펴줄 거야.
사랑도 중요하지만 정이란 게 있어.
그건 더 끈끈한 법이니까.
자네도 우리 연우 생각은 그만하고 자네 갈 길 가게.
젊은 사람이 자기 인생도 생각해야지
나는 믿네. 그러니 이만 돌아가게. "
" 사장님, 많이 힘들 겁니다. 연우
옆에서 잘 돌봐주세요. 저는 이제 가겠습니다. "
동빈은 사장실을 나와 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나야. 동빈이 "
" 네, 듣고 있어요. "
" 연우야, 네 말대로 강우가 너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말했던 것들이 내가 예상하고 있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 내가 틀린 거라면 좋겠어.
연우야
식을 올리기 전에 시간이 되면 혹시라도
내 생각이 나면 경주로 와.
나는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너를 "
"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기다리지 마세요. "
연우는 동빈의 전화를 끊었다.
강우는 휴학계를 내고 경주 집으로 돌아갔다.
잠도 자지도 밥을 먹지도 못했다.
폐인처럼 생활을 하다 한 달여쯤 지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 동빈아. 강우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식이야.
둘이 제일 친했는데 와야지. 얼굴 못 본 지 한 참 지났잖아. "
" 벌써 그렇게 됐구나. 나는 못 갈 것 같아.
곧 있으면 한국을 떠날 거야. 여행을 좀 다녀오려고 "
" 미리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 가서 언제 오려고? "
"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 계획 없어.
아무 생각도 없고 그냥 떠날 거야.
한국에 있고 싶지 않다. "
" 돌아오면 전화해. 다들 궁금해해. 네 소식 말이야. "
" 그래 고맙다. "
해가 질 무렵 동빈은 동네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 동빈아. 이제 오니? 서울에서 아가씨가 널 찾아왔어. "
" 누구? "
" 방에 있다. 들어가 봐. "
" 네 "
' 혹시 연우인가?
마지막으로 나를 보러 왔나? 이제야 알게 된 건가?
그래 그럴 거야. '
강우는 심장이 두근거려 잠시 숨을 고르다 방문을 열었다.
" 동빈 오빠, 저예요. "
" 네가 여긴 왜? 어떻게 알았니? 경주 우리 집을? "
" 알려줬어요. 오빠 집 하숙생 아주머니 가요. "
" 무슨 일이야? 나를 왜 찾아왔어? "
" 나 아이를 가졌데요. 지금이 5주째고, 곧 있으면 아기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데요.
오빠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아이를 낳을 작정이에요.
그래도 알아야죠. 아이 아빠인데.
우리 오빠랑 연우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하는 거 알죠? 오세요. 식장에 "
동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문 밖만 내다봤다.
" 네가 원하는 게 뭐니? "
" 나는 아이를 낳을 거고,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아빠가 있어주면 좋겠어요.
오빠는 좋은 사람이니까 나랑 아기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 "
" 그래, 책임질게. 너랑 그 아이
너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아이는 책임을 져야지
좋은 남편. 너를 사랑하는 남편은 기대하지 마라.
아이의 아빠로서 역할은 다 할 거야.
다만 너에 대한 내 사랑은 기대하지 마.
불행할 거야. 너랑 나
이건 우리가 감당할 몫이라 생각하자.
누군가를 불행에 빠뜨린 죄로
대신 떠나자.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해 놔.
난 네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갈 테니
다 준비되면 그때 연락해라.
난 결혼식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혼인신고만 하자. 그리고 바로 떠나. "
" 알았어요. 준비되면 연락할게요.
강우 오빠 결혼식은요? 올 거죠? "
" 아니, 가지 않을 거야. 이제 그만 가라. "
" 네 "
강우와 연우의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둘을
연우가 타고 있을 차를 보며 동빈은 씁쓸한 미소를 보냈다.
연우의 행복은 결혼식 날 까지였다.
' 연우야, 미안하다. 네가 제발 행복해야 할 텐데. '
동빈과 신애는 혼인 신고만 한 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아홉 달이 지나도 신애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그날 밤 동빈과 신애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 아이는 생길 수 없었다.
자연유산이 되었다는 신애의 말을 동빈은 믿지 않았다.
동빈은 잠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 여보세요?
서동빈 씨 아내분이신가요? "
" 네, 누구신지? "
" 한국 대사관입니다. 서동빈 씨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서 바로 사망하셨어요.
남편 분 신원 확인이 필요합니다.
시신이 병원 안치실에 있으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병원 주소와 연락처는 문자로 남겨드리겠습니다. "
신애는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 이게 다 연우 때문이야.
동빈 오빠를 내 남편을 죽인 건 다 너. 우연우 너 때문이야.
용서하지 않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