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 너를 위하여 ( 연우 이야기 )

by 옥상 소설가

" 동빈이가 죽었다는데

신애 말고 너를 좋아했던 동빈이가 죽었데.

어때? 후련해? 속이 아주 후련해?

아니면 아쉽나? 죄책감이 드나? 동빈이가 죽은 게 말이야. "


새벽 3시 술에 취해 들어온 강우는 혀가 꼬인 소리로 연우를 보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 네? 왜 그 오빠가 죽어요? "

" 오빠라니? 죽었지만 니 시누 남편이었어. "

" 왜 갑자기? 왜 죽어요? 그 사람이? "

" 교통사고라는데 경찰에서는 아무래도 자살 같다고 하네.

중앙선을 넘어오는 차량이었는데 차선을 틀거나 브레이크를 잡은 흔적이 없데.

졸음운전일 가능성도 없고 말이야.

죽을 일이 뭐가 있다고? 남겨진 신애는 어쩌라고? "

" 말도 안 돼. "


연우는 들고 있던 강우의 양복을 바닥에 툭 떨어뜨릴 뻔했다.


' 그럴 리 없어. 동빈 오빠가 왜 자살을 해?

나 때문인가? 아니면 신애랑 무슨 일이 있었나? '


연우의 눈동자가 바닥으로 깔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오늘 낮에 전화가 왔어. 신애한테

울지도 않더라. 신애는

그렇게 좋아했던 남편이었는데

행복하지 않았데. 항상 허깨비를 안고 사는 것 같았다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매일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술이 취해 들어오고

동빈이는 그렇게 살았데. 아이가 유산되고 나서는 더 심해지고

신애는 다 잊을 거라고 동빈이를 지워버리고 잘 살 거래.

자길 버리고 죽어버린 동빈이를 용서할 수 없데.

그게 동빈이한테 복수하는 길 이래.

너를 원망하더라. 신애가 "


" 왜 나를 원망해요? "

" 글세. 동빈이가 정말로 좋아했던 여자는 너였으니까

그걸 신애도 알고 있었지. 그렇게 억지로 한 결혼이면서

결혼하면 다 잊을 줄 알았겠지. 동빈이가 너를

아이 낳고 기르면서 말이야.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 자식


화장을 했다고 하더라. 유골함은 한국으로 보낼 거래.

신애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동빈이 장례식이며 뒤처리 모두 아버지 보고 해 달래.

아버지도 화가 너무 나셔서 나보고 처리하라고 하네.

시어머니며 시누도 보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

다 지우고 싶데. 동빈이랑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들 "


" 그래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결혼했던 남자인데 자기 남편인데

신애가 원해서 억지로 한 결혼인데

동빈 오빠 장례식이며 마무리는 신애가 해야죠. "

" 그래? 그럼 네가 하지 그래?

동빈이는 네가 모든 걸 정리해 주길 바랄 걸.

정말 사랑했던 여자는 너였으니 말이야.

너도 사실은 네가 하고 싶지? "

" 왜 그런 말을 해요?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동빈 오빠랑 내가 무슨 사이도 아니었는데

오빠도 알잖아요? 나는 오직 오빠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


" 다 싫다. 다시 나가야겠다. 집에 있으려니 답답해.

내일 바로 회사로 출근할 테니 자. 기다리지 말고 "

" 며칠 만에 들어와서는 다시 밖에서 잔다고요?

강우 오빠

우린 결혼했고 부부예요. 언제까지 이렇게 남처럼 살 거예요?

어른들은 우리가 아이를 낳길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나 혼자 아이 낳으려고 산부인과 다니고 배란일 받고 임신이 아니면 실망하고

너무 힘들어요.

맨날 이렇게 내 배란일 날짜에 맞춰서만 집에 들어오고

그리곤 그냥 나가버리면 나는 도대체 뭐예요?

내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 기계도 아니고

우리 아직 어리잖아요. 우리 둘이서 좀 살다가 아이 낳고 그럼 안돼요?

미국이나 해외 지사로 나가서 일하다 나도 공부 좀 마치고

아직 젊으니까 아이는 나중으로 미뤘으면 좋겠어요.

아이보다

오빠가 나를 좀 사랑해주고 아껴주면 좋겠어요. 너무 외로워요. "


" 머리 아프다. 그만 해. 먼저 자 " 동빈은 그대로 현관문을 나가버렸다.





연우는 현관문을 바라보다 욕실로 가 옷을 벗었다.


' 며칠이 지나야 다시 들어올까? 다음 달 배란일을 알려주면 그때 들어오겠지. '

나는 아이를 낳으러 결혼을 한 걸까?

내가 생각한 결혼 생활은 이게 아니었는데

동빈 오빠 말대로 강우 오빠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

왜 나는 동빈 오빠의 말을 믿지 않았을까? '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다 연우는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리 내어 울고 있지는 않았지만

눈이 따갑고 코가 맹맹해지고 목이 메어 왔다.


' 동빈 오빠

왜 죽었었어요? 그렇게 힘들면 신애랑 차라리 헤어지지.

왜 목숨을 끊어요? 바보 같이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말이에요? 어머님이며 여동생

모두 오빠를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바보같이 바보처럼 미련하게 왜?

나 때문은 아니죠? 그렇죠? 내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거죠?

만약 나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지금 나는 벌을 받고 있으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요.


오빠 말이 맞았어요. 강우 오빠는 날 사랑하지 않나 봐요.

내가 눈이 멀었나 봐요. 너무 힘들어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산다는 것이

그런데 무서워요. 이 사람을 떠나서 내가 살 수 있을까요?

내가 무엇을 하고 살 수 있을까요? 아버진 내가 잘 살기를 바라고 계실 텐데

엄마도 안 계신데

엄마가 돌아가신 것도 사실은 다 내 잘못인데

아빠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어요.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나까지 이혼하면 아빠가 실망이 너무 크실 거예요.

아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고 있으실 텐데.

왜 나를 사랑한 사람들은 나를 떠나가죠?

엄마도 오빠도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

오빠한텐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남편을 사랑해요.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말이에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우리 넷은 행복할 수 없을까요?

이제 다 끝나버린 걸까요? 나도 오빠처럼 그래야 할까요? '


연우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다시 되돌리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동빈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주는 강우에 대한 원망

강우만 바라봤던 무능력한 자기 자신


눈물과 온수가 섞여 내리는 것처럼

연우의 감정은 모든 것이 뒤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우는 큰 숨을 들이마시고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 아니야. 아줌마 아저씨의 말처럼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우리를 닮은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강우 오빠는 달라질 거야.

그래 분명히 그럴 거야.

강우 오빠는 달라질 거야. 나를 사랑해 줄 거야.

아이도 나도 강우 오빠도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나는 무서워. 혼자되는 건 무서워. 무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나는 할 줄 아는 게. 잘하는 게 없어. 이런 내가 어떻게 혼자 살아?

이럴 때 엄마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면 되는데

엄마, 엄마 , 엄마 보고 싶어. '


연우는 거울 속의 엄마를 닮은 자신을 보고 한 참 울다

마음을 다 잡았다.


' 그래, 이번 한 번만 다시. 다시 강우 오빠를 믿어보자. '


연우는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연우는 며칠 동안 열이 났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미음도 삼키기가 어려워 수액만 간신히 맞았다.


동빈의 유골함이 서울에 도착했지만

동빈의 어머님과 여동생은 경주에서 가족들만 모여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서울 사돈댁에서 치르는 장례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유골함을 엄마의 가슴에 안고 경주로 내려갔다.


그의 유골함은 동빈의 아버지와 나란히 놓였고

동빈의 49제에 맞춰 천도재를 올리는 날

연우는 동빈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경주로 혼자 내려왔다.

천도재를 올리러 연우가 왔다는 것을 동빈의 어머니도 동생도 알지 못했다.


' 죄송해요. 어머님. 사돈아가씨

미안해요. 동빈 오빠

부디 좋은 데 가셔서 편히 쉬세요. '


연우는 동빈과의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가자 마자 연우는 이틀 동안 깊은 잠을 잤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깨어나지도 않고

죽은 사람처럼 숨만 쉬고 잠이 들었다.

이틀 후 깨어났을 때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동빈이 자신의 인생에서 언제 있었냐는 듯

연우는 모든 것을 잊고 그 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아무도 동빈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금기어처럼

누구도 동빈을 기억하지 않았다.







****************



" 연우 아가씨, 이제 곧 도착해요.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으니

이십 분 후면 동빈 학생 집에 도착할 거예요. "

" 연우야, 일어나.

동빈 학생이 집에 있으려나?

아니면 엄마가 일하고 계신 식당에서 일하고 있을까?

무지 궁금한데

우리 연우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고 도와주고 싶어 하던 그 학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


" 무슨? 내가 뭘 그렇게 보고 싶어 했다고?

나보다 엄마가 더 궁금해했지. "

" 그래? 그럼 그냥 돌아갈까?

나는 경주에 내려 올 정도로 궁금하지는 않은데. "

" 엄마, 그 학생 보려고 경주에 내려온 게 아니고

엄마랑 여행하고 싶어서 온 거야. 오해하지 마세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할 이유가 어디 있어?

그걸 핑계 삼아 놀러 온 거지. 엄마랑 있고 싶어서. "


" 아휴! 그렇게 깊은 뜻이 있으셨어요?

우리 연우 속도 깊어라. 엄마가 몰랐네. "

" 치~~ 그래. 엄마

나 오랜만에 엄마랑 여행 와서 너무나 좋아.

같이 왕릉도 다니고 소나무 숲도 보고 바다도 가고 맛있는 데도 가서 실컷 먹고

좋은 데 다니자. 나 고등학교 가면 많이 바빠질 거야. "

" 그래. 우리 연우 아가씨 되기 전에 같이 놀러 다녀야지.

대학교 가면 남자 친구랑 다니느라 엄마랑 아빠는 본 체도 안 하겠지.

엄마랑 놀아 줄 때 부지런히 놀아야겠다. "




" 사모님, 아가씨 도착했어요. 여기에요. 동빈 학생 집이

미리 전화를 해 두긴 했는 데 있으려나? "


' 똑똑똑' 정 비서는 동빈의 집 대문을 두들겼다.


" 누구세요? "


나무 대문이 '삐걱~~~' 하고 열리더니 어린 여학생이 나왔다.


" 여기 서동빈 학생 집 아닌가요? "

" 네, 맞는데요. 아~ 서울에서 오신 손님들이시죠?

제가 동빈 오빠 여동생이에요. 오빠 지금 시내 엄마 가게에서 일 도와주고 있어요. "

" 아 그래요? "

" 네 "


" 반가워요. 학생

학생이 잡지에 사연을 보내서 우리 인연이 시작되었네.

글솜씨가 아주 좋다고 우리 딸이 그러던데. "

" 아니에요. 그냥 심심해서 써 본 글인데

이렇게 서울에서 손님들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얼른 가보세요. 오빠랑 엄마 아마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


" 안녕하세요. 전 우연 우라고 해요.

제가 잡지에서 그쪽 기사를 봤어요. "

" 아? 네. 저...... 저보다 나이가 위인 것 같으니 언니라고 부를게요.

제 이름은 서유빈이에요. "

" 그래요, 유빈이 이름도 얼굴만큼 이쁘네.

만나서 반가워요. 가게 가서 어머님이랑 만나고 곧 돌아올게요.

아니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가요. 유빈 학생도 같이 가요. "

" 그래요, 유빈 학생

집에 혼자 있지 말고 우리랑 같이 엄마 가게에 가보는 건 어때요? "

" 아, 네 그럼 그럴까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


정 비서의 옆에는 연우가

연우의 엄마 옆에는 유빈이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차창을 열고 동빈이 있는 경주 시내와 가까워질수록 연우는 떨려오기 시작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머리가 맑아지고

파란 하늘을 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 이제 동빈 오빠와 어머님 유빈이한테 진 빚을 갚을 거야.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고통받았던 사람들이니까

다시는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상처 받지 않도록

내가 지켜줄 거야. '


연우는 자신보다 어린 유빈을 보고 친 여동생처럼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다.


" 여기에요. 여기가 우리 엄마 가게예요. "


유빈은 차 문을 열고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 엄마~ 오빠, 서울서 손님 오셨어. 얼른 나와봐. "

" 아이고 이렇게 먼길까지 찾아와 주시고 너무 감사해요.

동빈아, 얼른 나와서 인사드려.

너 때문에 여기까지 일부러 와 주신 손님들이야. "



' 동빈 오빠가 순하고 착해 보이는 건 엄마를 닮아서였구나. '


연우는 동빈의 49제 천도재가 열리던 절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숨어서 기도하느라 동빈의 엄마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

말끔한 외모의 동빈은 그의 엄마를 닮은 것이 분명했다.


순박하고 선해 보이던 동빈의 첫인상


" 안녕하세요. " 동빈이 얼굴이 벌게지며 수줍게 나왔다.

" 반가워요. 동빈 학생 "

" 안녕하세요. 전 우연우라고 해요. 동빈 오빠 "


연우는 동빈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빈은 홍당무처럼 달아오르더니 연우의 손을 잡았다.


" 난 서동빈이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



연우는 동빈을 보고 맑은 날 호수처럼 파랗게 웃었다.

동빈은 자신도 연우를 보며 웃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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