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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Dec 14. 2020

내가 같이 가 줄게

바람이 쌩쌩 불던 지난주 토요일 아침

딸아이와 남편이 먹을 밥을 차리고  집 안에 냄새가 남지 않도록 환기를 한 뒤

병원에 갈 채비를 주섬주섬했다.


"  이 약 먹고 나아지지 않으면 3차 병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으셔야 해요.  "


이 주일 전

일반적인 증상일 때의 복용량보다 세 배 정도의 약물을 처방받았다.

코로나 시기인 만큼 빨리 잡는 것이 좋을 거라

의사 선생님이 세게 처방한 것 같다는 친절한 약사님의 설명과 복용이 시작됐다.


'  그래,  얼른 먹고 나으면 되지.  좀 편안히 깊이 오래 자고 싶다.  '


원래 천식과 식도염이 있어 약을 먹긴 했지만

새로운 약을 먹어도 흉통과 부정맥 불면증 증상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  다른 병이 있나? 아무래도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나 보다.  '


남편이야 어른이니까 어떻게든 잘 살아갈 테지만

아직은 어린 딸    

내 손이 필요한 딸 걱정에 이 주 내내 신경이 쓰였던 나는 남편에게 자주 짜증을 내고 눈을 흘겼다.



토요일 아침

샤워를 하고 겨울이라 입을 옷은 많아 외투에 목도리 마스크까지

복잡하고 두꺼운 마음처럼 꽁꽁 몸을 둘러맸다.


'  날은 갑자기 왜 이리 추워져서 오늘 도대체 병원을 몇 군데 가야 하는 거야?  

   주차는 어떻게 하고,  어느 병원에 전화를 하고, 예약을 해야 하지?  '


머리가 복잡해지고, 왜 이리 세상 억울한지.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남편이  ' 쓱~ '  오더니  눈이 동그래져서 묻는다.


"  어?  너 어디가?  토요일에? "

"  병원에  "

"  왜 어디가 아파?  "

"  어,  아파.  아프니까 병원에 가지.   

   안 아픈데 병원을 왜 가?  시간이 남는 것도 아니고  "


내 말은 퉁명스럽기도 하고 남편을 타박하기도 했다. 


"  어디?  "

"  내과 갔다가 의사가 가라고 하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할 수도 있어.  

   정형외과 가서 물리치료도 받아야 하는 데 아무래도 오늘 정형외과는 못 가겠고.

   이 약 먹고 부정맥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정밀 검사받으라고 했는데   

   오늘 가서 시간이 안 되면 소견서 받고 다음 주에 대학병원 가야지.  "

"  토요일 당일에 대학병원 진료를 어떻게 봐?  못 보지.  

   예약해도 몇 개월은 걸릴 텐데.   같이 갈까?  "


나들이는 좋아하지만 병원 나들이는 싫어하는 나

그래도 남편이 동행해준다니 왠지 반갑고,  안심이 되고,  관심을 받는 듯하다.


"  응,  같이  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



동네 내과에 가서 소견서를 받는 사이 남편은 전화를 다 돌려

가장 빠른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놓고, 그 사이 2차 병원을 알아보고 난 뒤

거기에 가잔다.   

대학 병원은 적어도 한 달은 기다려야 하는 데

불안하니까 일단 심장 전문의한테 진료라도 받아 보자고

다시 차를 타고 2차 병원으로 이동


병원 입구의 코로나 선별 진료소와 병원 직원들의 철저한 출입 관리에 

코로나 시국이 위중하긴 하구나 실감했다.

병원 안과 밖은 모두 사람들로 복잡했지만

그나마  심장 내과 쪽은 사람이 적어 기다리는 시간은 덜했다.


피검사와 기초 검사 후

다시 심장에 관한 검사와 내 가슴에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홀더가 붙여졌다.

장비를 붙이면서 주의사항 등을 알려주는데 정신이 없다.


"  저,  잠시만요.  남편하고 같이 들어도 되죠?  

   오빠,  좀 들어와.  같이 듣자.

   나 헷갈릴 것 같아.  오빠가 옆에서 좀 들어.  "

 

상의를 올리고,  브라를 올리고 내 가슴은 그대로 노출된 채

남편이랑 담당자가 여기저기 붙이며 세부사항을 알려주고 설명해준다.


'  부끄러운 내 가슴

   이렇게 자연스럽게 장 시간 내 가슴을 내놓다니

   중년 이후나 할머니가 되면 이럴 줄 알았는데  

   어머~ 이상하네.  하나도 안 부끄러워.  

   저 꼼꼼한 남자. 그 정도면 분명 알아 들었을 텐데.  

   반납하는 시간이랑 장소는 옷 다 입고 나서 나가면서 물어보지. '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돌아다니는 정신이 없는 내 옆에

내 가방을 들고  외투를 들고  남편이 함께 돌아다닌다.


진료실로 나와 함께 들어가서는

내 옆에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기록하고 다시 한번 질문하고 확인하고

혹시나 내가 기억하지 못할까 봐 자기가 기억하려고 애쓴다.


진료를 마친 뒤  장을 보고  점심을 먹으면서


"  병원에 같이 오니까 좋네.

   그냥 혼자 오려고 했는데 기분이 좀 그렇더라.

   무섭고 서운하고 나 혼자 인 것 같고 말이야.

   옆에서 오빠가 나랑 같이 있어주니까 안심도 되고,  든든하고 그랬어.  "


남편이 옆에서 웃다


"  다음에도 같이 가.  병원에 혼자 가지 말고.  말을 하면 되잖아.  "

"  그래,  다음에 오빠가 갈 때  나도 같이 가 줄게.  "




나는 이상했다.

아픈 사람은 혼자인데.  단 한 사람뿐인데

왜 옆에 보호자나 누군가가 함께 가주는지  

같이 가서 딱히 할 일도 없을 텐데

같이 가는 것은 시간 낭비고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게 훨씬 더 나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에

남편이 아플 때 병원에 가야 할 때

나는 할 일을 제쳐두고라도

남편과 함께 갈 것이다.   

멀고 지루한 시간일지라도


내가 지난 토요일

남편에게 느꼈던 이 마음들을  

그대로 그에게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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