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상 소설가 Jan 04. 2021

용종 6개가 내 몸에서 나오다.

2020년 12월 26일 토요일 아침 


장에서 용종 6개를 제거했다.

티브이 드라마나 건강 프로그램에서 보고 듣던 용종이 

내 몸에서  내 장에서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변비가 싫어 아침마다 사과에 녹즙까지 갈아서 마시는 나

항상 쾌변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 나였는데

무의식 상태에서 들었는데도 용종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되묻기까지 했다.

이제 이년에 한 번씩은 정기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의료보험 공단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위 내시경,  자궁 경부암,  유방 초음파,  기본검사는 했었지만 

대장 내시경과  CT는 이상이 있기 전 해본 적은 없었다.

올 해부터 남편의 회사에서는 

격년에 한 번씩 직원의 배우자도 건강 검진을 제공해주기로 한 것이다.

왠지 내년으로 미루고 싶었지만 남편은 20년을 넘기지 말고 하라고 했다.  

올해 여름부터 나는 참 꾸준히 아팠다.

정형외과부터 내과,  심혈관,  호흡기 내과

병원의 각종 과를 투워하며 검사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처방받은 약을 참 길게도 먹어댔다.

큰 이상은 없어 다행이었고  이번 검사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부끄럽고 꺼려지고 수면마취를 하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았다.


위와 대장 동시에 수면 내시경으로 하기 때문에 운전을 번갈아 해야 해서 

우리는 검사 날짜를 다른 날짜로 잡았다.

남편은 12월 초에 미리 예약을 잡아 놓았고

나는 12월 26일 토요일이 한가한 터라 그날로 예약을 했다.

대장 내시경을 하기 위해서는 검사 일주일 전부터 서서히 준비를 시작하고 

3일 전부터는 타이트하게  하루 전에는 금식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이 검사일이라 

검사 전 금식을 하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려 잠을 못 잔 나는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항상 의식이 있는 상태로 위 내시경을 받다가

처음 수면 내시경을 하자니 겁이 났다.

어떤 이는 무의식 상태일 때 욕도 하고 험한 말도 바람피운 사실도 고백한다고 하던데


'  나는 과연 무의식 상태일 때 어떤 말과 행동을 할까?  

   나도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 거 아냐?  '


남편에게 보여주기 싫은 행동과 말을 할까 보여주기도 싫었다.

먼저 검사를 한 남편은 티브이에서 보던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비몽사몽 상태는 없고 그저 잠만 충분히 자고 나오니 걱정 말라했다.

의식상태에서 받다가 수면으로 검사를 받으니 정말 편하다고

앞으로 계속 수면 내시경을 하겠다고도 했다.

남편의 말대로 처음 해본 수면 내시경은 전혀 고생스럽지가 않았다.

입속으로 풍기던 불쾌한 냄새를 

코로 들이마시며 셋을 세기도 전에 나는 잠이 들었다.    


“  환자분 일어나세요.  한 시간이나 지났어요.  “

“  네?  ”

“  검사했는데 대장에서 용종이 6개나 나왔어요?  ”

“  네?  용종이 여섯 개나 나왔어요?  ”

“  네, 크기가  0.6 센티에서  2 센티 넘게도 나왔어요. 

   용종이 크고  많이 나와서 다 제거는 했는데

  조직검사를 해서 암인지 알아봐야 해요.

   환자분이 고통이 심한 지 몸부림을 쳐서 마취제를 더 넣었어요.

   배가 좀 아플 테니 계속 찜질하고 일주일 동안 잘 쉬고

   식사 조절도 하셔야 해요.  “    


'  내가 용종이 나왔다고?   내가?  내가!!!  '


나보다 무엇보다 놀란 사람은 남편이다.    

회복실에서 자고 나온 내가 용종이 여섯 개가 나왔다고 하니 남편이 깜짝 놀라며 말한다.


“  네가 용종이 여섯 개나 나왔다고?  네가?

   이 센티도 넘었다고?  이게 웬일이야?   

   이번에 검사 안 했으면 큰 일 날 뻔했네.  ”   


검사 전 남편은 자신의 대장이나 장기가 좋지 않을 거라고 걱정하고 있었으나

검사 후 이상소견은 없었으며 

고혈압을 관리하고 심폐기능 향상을 위해 운동을 하라는 결과만 나왔다.

술과 담배를 꽤 오래 했고 

어릴 때부터 육식을 즐겼으며 인스턴트를 좋아했던 남편

게다가 그는 과일이나 채소를 거의 먹지 않았다.

나도 그의 몸에서 용종 몇 개쯤은 나오겠지 짐작했다.


그런데 과일과 야채를 어려서부터  좋아하고 잘 먹었으며, 

일주일에 4-5회는 운동을 하고

술 담배는 평생 안 했던 나에게서 용종이 6개나 나왔다.    

사이즈도 어지간히 큰 편인데 

남편은 검사가 끝난 후부터 옆에서 

자꾸 2센티,  2센티 하고 손가락 마디를 보여준다.    


“  너 조심해야 해.  큰 일 날 뻔했어.

   딸아,  너도 이제 엄마 속 상하게 하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  “

“  왜?  ”

“  엄마 장에서 용종이 6개나 나왔어.  그것도 큰 것들이.

   그중에 한 개는 네가 만들었을 거다.  “    


내 생각엔 6개 중 반은 남편으로 인해 생긴 것 같은데

이 남자는 주말 내내 인터넷으로 용종을 검색하고

생긴 원인,  관리 방법,  주의 사항 등을 검색하더니 옆에서 이것저것 잔소리다.    

음식은 이렇게 먹고,  운동은 이렇게 하고, 정기검진을 받고 기록을 해야 하고 등등  


“  용종이 나왔다고 하니 좀 놀랐나 봐?  ”

“  당연하지.  그럼 걱정이 안 돼?  ”

“  솔직히 나는 오빠가 나올 줄 알았어.  

   설마 나한테서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용종은 내가 아니라 오빠한테 나왔어야 했는데

   내가 나오다니?  이게 왠일이야? “

“  그러게,  나도 나한테서 나올 줄 알았지.  

   너한테서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래도 네가 짜고 매운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  ”

“  아무래도 그렇지.  이제 싱겁게 먹어야겠어.  ”      


내 걱정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편의 식욕은 제어가 안 되나 보다.

검사 전 날,  크리스마스 당일,  죽만 먹어야 하는 내 옆에서 주말 내내

남편은 배달 음식을 심지어 베라까지 배달해서 

죽을 먹는 내 옆에서 영화나 티브이를 보며 딸과 둘이서 먹었다.


죽도 먹을 만하다고 말하는 내게 

죽은 하루 이상은 못 먹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12월 초에 자기도 검사받을 때 나도 자기 옆에서 치킨이랑 피자를 먹었다나

죽과 카스텔라만 먹던 자기도 무척이나 서러웠다고 

나는 기억에도 없는데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배달이 안 되는 음식은 딸과 외출해서 먹고 들어왔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내가 요리를 하는 것은 더 고역이라며

배달을 해서 먹고 설거지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배달된 음식을 옆에서 쩝쩝대고 딸이랑 먹으면서도 미안한지 흘끔흘끔 쳐다본다.  


'  정말 내 걱정을 하고는 있는 거야?  '


그렇게 미안하면 먹지를 말지.  먹을 건 다 먹으면서도 왜 미안해하지?  

어이가 없어 남편을 쳐다보고 있으면    


"  너 쉬라고 배달해서 먹는 거야.   좀만 참아.  

   용종 제거 후에 더 조심해서 먹어야 하니까 먹고 싶어도 참아.  

   일주일 지난 후에 먹고 싶은 거 실컷 먹어.  “

“  그래,  알았으니까  제발 식탁에 가서 먹어.  내 옆에서 먹지 말고  ”

“  알았어.  ”    


새벽에 일어나서는 내 옆에서 2 센티하면서 손가락을 보여줬다.  


“  오빠,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  어쩜 내 옆에서 그렇게 먹어?  ”

“  뭘?  ”

“  진짜 겁나 먹는다.  왜 이렇게 많이 먹어?  살찌게.  ”

“  아냐,  나 그렇게 많이 안 먹어.  

   네가 자꾸 내가 먹을 때마다 쳐다봐서 그래.

   네 눈에 자꾸 먹는 나만 보이는 거야.  “

“  그른가?  ”

“  그렇지.  너 가만있다가 내가 먹기만 하면 쳐다보더라.

   네가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거야.  “

“  그런가 보네.   먹는 것만 보이나 보다.  삼일 내내 금식했더니 너무 힘들어.  “

“  이제부터 좀 조심해서 먹어.  그러다 아프면 어떻게?  아프지 마.  “    


남편이 또 손가락 마디를 보여준다.    


새해가 밝았고

연휴 기간 내내 밥을 먹다 어제는 족발,  

오늘은 해물찜이 먹고 싶다며 배달을 시킨다.


"  순한 맛으로 시켜야지.  "

"  아빠,  매운맛으로 시켜줘.  "

"  안돼.  엄마 매운 거 먹으면 안 돼.  앞으로 우리 집은 무조건 순한 맛이야.

   라면도 순한 맛으로 사와.  너도 매운 거 자꾸 먹지 마.  

   넌 엄마랑 체질이 같아서 조심해야 해.  "


'  남편,  그래.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그렇게 걱정되면  음식 말고 스트레스를 좀 덜 받게 해 줄래?

   내 생각엔 음식 맛보다 스트레스가 몸에 더 안 좋아.

   지금 이 상황이 더 스트레스야.  

   음식 맛 말고 당신 말이나 행동을 좀 순하게 하자.  

   그게 더 내 몸에는 좋을 것 같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