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진 아빠, 일찍도 일어났네.
자네 덕분에 온 동네가 아주 깨끗해. “
“ 네, 편히 주무셨어요? 날이 참 좋네요. ”
“ 시장 입구 쪽에 쓰레기통 좀 더 설치해달라고 구청에
얘기 좀 넣어봐. ”
“ 아~ 네, 원래 그건 동사무소에 말해야 하는 건데
제가 전화로 얘기해 볼게요. “
“ 그래, 수고해. ”
“ 은진 아빠, 저번에 우산 잘 썼어.
남자가 어쩜 이렇게 섬세해?
비 오는 날이면 미용실에 손님들 쓰라구 우산도 갖다 놓고 “
“ 그러게 말이야. 지물포 아줌마가 사위 복은 정말 많아.
겨울에 눈이 오거나 길이 얼 것 같으면 연탄재를
깨서 뿌려서 노인네들 미끄러지지 않게 해 놓고
아무래도 구청에 전화해서 모범 공무원으로 표창장 주라고 해야겠어. “
“ 별 말씀을요. 공무원이면 이런 일들은 다 해야 하는 거예요. ”
“ 그런 말 말아. 공무원이라고 다 이런 줄 알아?
안 그런 사람도 얼마나 많은 데. “
동네 사람들 모두 진주 미용실 아줌마의 남편
은진 아저씨를 좋아했다.
진주 미용실 아줌마는 외모는 별루여도 남편복은 있다고 했다.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진주 미용실 아줌마는 사춘기 무렵
자기가 지물포 아저씨 아줌마에게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줌마는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방황을 조금 했더랬다.
지물포 아저씨 아줌마
솜틀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끔찍하게 사랑했더라도
본인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은 조금 충격이었나 보다.
“ 현아야, 은주랑 은한이는 몰라.
진주 미용실 아줌마도 동네 사람들이 모른다고 알고 있어
입조심해야 한다. “
진주 아줌마는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공부를 안 해서 대학을 갈 성적은 안 되고
솜틀집 할머니의 권유대로 미용을 배웠고
큰 미용실 보조로 일하고 있었다.
진주 아줌마는 150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
예쁜 편은 아니었지만 애교 있는 눈웃음과 말투로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지물포 아줌마와 아저씨는 교양 있고 점잖은 편이라
동네에서 인심을 얻었고
진주 아줌마에게 선자리가 들어와
지금의 아저씨와 선을 보게 되었다.
아저씨는 아줌마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첫눈에 맘에 든 아저씨를 진주 아줌마는 놓칠 수가 없어
매일 아침 아저씨가 구청으로 출근할 때쯤
옆 동네에 사는 아저씨 집에 계신 아저씨 부모님
즉 미래의 시부모님 댁에 가서
살갑게 안마도 해드리고, 말벗도 되어드리면서
점수를 얻어 결혼에 성공했다.
은진 아저씨는 외아들에 효자라
부모님이 진주 아줌마랑 결혼을 하라고 하자
순순히 결혼을 했고 은진 은한 남매를 낳았다.
부모님 두 분 다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시자
아저씨는 처갓집으로 들어와
장인 장모님을 친부모님처럼 잘 모시고 살았다.
솜틀집 할머니는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한 손주 사위를
동네 자랑으로 여기셨고
건물에 있던 가게를 비워 진주 미용실을 차려주셨다.
“ 손주 사위를 아주 잘 얻으셨어요. ”
“ 은진 아빠 덕분에 온 동네가 깨끗하고 살기 좋아요. ”
동네 사람들이 아저씨 칭잔을 하면
솜틀집 할아버지랑 할머니 기분은 하루 종일 좋으셨다.
행여 누군가 은진 아저씨 흉을 보면 그 사람은
그 날은 경을 치는 날 일 정도로 할머니의 손주 사위 사랑은 대단했다.
별 다방 미스 정 언니를 처치하려면
솜틀집 할머니의 손주 사위에 대한 사랑을 이용해야 했다.
경화 할머니, 솜틀집 할머니 두 분이라면
미스 정 언니를 손볼 수 있다.
나는 미스 정 언니가 일하는 별 다방으로 전화를 했다.
코를 막고, 목소리를 변조해서 최대한 남자 목소리를 냈다.
“ 별 다방이죠? 여기 구청 사무실인데요.
1층 민원실에 커피 6잔 배달해주세요. “
“ 네? 구청 민원실로요? 커피 배달을요? ”
“ 네, 만약 구청 입구에서 배달을 막으면
민원실의 채동욱 직원이 배달시켰다고 하면 됩니다.
배달은 미스 정이 꼭 해야 합니다. “
“ 네? 채동욱 씨요? 전화하신 분은 누구세요? “
“ 제가 채동욱이라고 합니다.
미스 정이 꼭 배달을 와야 합니다. ”
이 날부터 구청 민원실로 어이없는
별 다방 미스 정 언니의 커피 배달이 시작되었다.
은진 아저씨는 자기는 커피 배달을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미스 정 언니는 이미 배달을 온 상태였고
은진 아저씨는 커피 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나는 이 삼일에 한 번 씩 별 다방으로 주문 전화를 했고
구청으로의 커피 배달에 맛이 들린 대담한 미스 정 언니는
주문 전화가 맞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구청으로 가기 시작했다.
은진 아저씨는 미스 정 언니가
커피 보따리를 들고 민원실로 들어올 때마다 식은땀을 흘렸고 주변은 웅성거렸다.
은진 아저씨는 미스 정 언니에게
순진하고 순한 새로운 먹잇감이었다.
구청으로 별 다방 미스 정 언니가 배달을 자주 오자
구청 내부가 술렁이면서
은진 아저씨와 미스 정 언니의 관계를
의심하는 말들이 돌기 시작하더니
‘ 뭉게뭉게 ’ 버섯처럼 소문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곳이나 남녀 상렬 지사는 흥미로운 주제다.
마침내 은진 아저씨와 미스 정 언니의 소문은
솜틀집 할머니 내외, 지물포 집,
진주 미용실 아줌마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 할머니, 어떻게 해? 우리 은진 아빠 ”
“ 아니야, 우리 채 서방이 그럴 리 없어 ”
“ 구청에 채 서방이랑 미스 정 소문이 다 났다고
손님이 그랬어.
구청으로 차 배달도 자주 온데. 미쳤나 봐. 은진 아빠 “
“ 진주야, 너 미쳤다고 공무원이 자기 일하는 구청으로
커피 배달을 시키겠어? 그것도 다방 레지한테?
누가 채 서방을 음해하려고 하는 거야.
구청 내에 채 서방을 질투하는 직원이 있는 것 같은데. “
“ 아니야, 채 서방 퇴근 무렵에 미스 정 고게
구청 앞에서 채 서방을 기다리고 있다가
둘이 다정히 팔짱을 끼고 가는 걸 사람들이 봤데. ”
“ 뭐? 구청 밖에서도 둘이 만난다고? ”
“ 응, 둘이서 만나기도 한다는 데 ”
“ 아니야, 말도 안돼.
채 서방이 미스 정을 먼저 만나자고 할 리는 없고
미스 정 고게, 구청 입구에서 채 서방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네.
걔가 기다리고 있는 데, 채 서방이 어쩔 방법이 있니?
아무래도 미스 정 고게 사단이네.
이게 채 서방한테 꼬리를 치고 다니는 거야. “
“ 할머니, 어떻게 해?
동네 부끄럽고, 이러다 채 서방 구청에서 잘리면
어떻게 해?
공무원은 이상한 소문나면 잘린단 말이야. “
“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 동네에서 미스 정 고걸 쫓아내야지.
넌 조용히 있어.
채 서방 와도 아는 척하지 말고 모르는 척 해. 알았지? “
“ 응 ”
“ 할머니, 경화 할머니 집에 계세요? ”
“ 어? 현아 네가 웬일이야? 나를 다 찾고? ”
“ 할머니, 아저씨 택시가 동사무소 앞에 서있어요.
아저씨 어디 아프신 거 아니에요? ”
“ 엥? 우리 경화 아범 차가? 아직 집에 안 들어왔는데 ”
“ 어? 그럼 오늘도 차만 거기 주차를 한 건가? ”
“ 그게 무슨 말이야? ”
“ 네, 해피 아저씨 도시락 배달 가면
아저씨 차가 동사무소 앞에 자주 서 있더라고요. “
” 왜 거기에 차를 대지? 차가 거기 자주 있었다고? “
“ 저번에 차에서 내리는 어떤 여자도 봤는데..... ”
“ 뭐? 어떤 여자가 우리 아범 차에서 내려? ”
“ 네, 손에 커피 보자기가 있었어요.
지물포에 자주 오던 언니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 뭐야? 손에 커피 보자기가 있어? 어떻게 생겼던? “
“ 키가 크고, 좀 통통한데 다리가 아주 길었어요.
피부가 좀 까맣고, 눈도 크고, 코가 오뚝했어요.
입술 아래 큰 점이 있던 데요. 예뻤어요. 그 언니 “
“ 야!!!! 그게 무슨 이쁜 얼굴이야? 완전 불여시지.
인상착의가 딱 별 다방 미스 정이네.
너, 그 얘기 누구한테 했어? “
“ 아니요,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
“ 절대 말하면 안 돼. 특히 경화 어멈한테는 알았지? ”
“ 네, 저, 할머니 근데요. ”
“ 또 왜? ”
“ 그 언니랑 경화 아저씨랑 마을금고 어쩌고~ 저쩌고~ 그러던데요. ”
“ 뭐? 마을금고? ”
“ 네, 돈을 찾아서 준다, 어쩐다. 그런 얘기였던 거 같아요. ”
“ 아이고, 내가 못 살아.
미스 정 고년이 이제 우리 경화 아범한테까지 손을 대는구나.
아주 온 동네 유부남들 등꼴을 빨아먹네.
경화 어멈 알면 난리 날 텐데. “
“ 왜요? 경화 아줌마 알면 안 되는 일이에요? ”
“ 넌 몰라도 된다. 어른들일이야. “
경화 할머니가 한복 소매를 걷어 부치더니 별 다방으로 향한다.
얼른 솜틀집 주위를 가보니
할머니가 솜틀집 앞에 물을 끼얹고 계신다.
“ 할머니 안녕하세요? ”
“ 어, 그래 현아구나? 어디 가냐? ”
“ 네, 해피 분식집에 엄마한테 가려고요. ”
“ 응, 그래 ”
“ 어? 경화 할머니다. ”
“ 어? 저 할망구 표정이 왜 저래? 왜 저렇게 씩씩대냐? ”
“ 어~ 어떻게 해? 아무래도 제가 고자질한 것 같아요. ”
“ 그게 무슨 소리야? ”
“ 경화 할머니 별 다방에 가시는 것 같아요. ”
“ 뭐? 거길 왜? 저 할망구가 왜 별 다방엘 가? ”
“ 미스 정 언니랑 경화 아저씨랑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
“ 뭐야? 미스 정 고년이? 아휴~ 안 되겠다. 나도 가야지.
내, 미스 정 이 년을 아주 그냥 “
솜틀집 할머니도 팔을 걷어 부치더니 경화 할머니 뒤를 따라가신다.
뒤 따라오는 솜틀집 할머니를 보고 경화 할머니가 놀라신다.
솜틀집 할머니가 경화 할머니에게 몇 마디 얘기를 하시더니
두 할머니의 눈에 불길이 일어난다.
그 순간 두 분은 동지이자 전우다.
결연한 자세와 빠른 걸음으로 별 다방으로 향한다.
결말은 빤하다.
두 할머니는 천하무적이다.
누구도 두 할머니를 당해낼 사람은 없다.
굳이 별 다방에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결말과 과정이 궁금한 나는
호기심이 강한 나는 별 다방으로 향했다.
만만치 않을 미스 정 언니의 반격을 기대하며
별 다방의 계단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