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17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 우리 엄마한테 욕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가 왜 쌍년이에요?
우리 엄마 때리면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
남자아이가 어느새 달려와 바닥에 쓰러진 미스 정 언니를
가로막고, 두 할머니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소리를 지른다.
‘ 뭐? 엄마라고? 미스 정 언니가 네 엄마라고?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미스 정 언니가 처녀가 아니었어? 애가 있다고? ‘
나만 놀란 게 아니었다.
경화 할머니와 솜틀집 할머니 모두 놀라
남자아이와 미스 정 언니를 번갈아 쳐다본다,
“ 얘가, 이 남자애가 니 아들이냐? 너 아들도 있어?
그럼 남편도 있겠네? 그러면서 처녀 노릇을 하고 다니고
우리 아들 돈을 사기 쳐먹으러 들어?
이 미친년, 애 엄마가 니 아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남편도 있는 년이 동네 남자들한테 가랑이를 벌리고 돈을 받아 처먹어?
이 천하에 몹쓸 것, 더러운 것 ”
경화 할머니가 미스 정 언니 뒤통수를 강타하더니
분이 안 풀렸는지 머리를 다시 쥐어뜯기 시작했다.
미스 정 언니는 이제 모든 걸 포기한 듯 경화 할머니 손에 몸을 맡겼다.
언니 몸이 여기저기로 흔들린다.
“ 경화 할머니, 제발 그만하세요.
우리 아들, 우리 훈이가 보고 있어요.
애만 보내고 올게요.
우리 훈이 보내고 다시 올 테니 그때 때리던지 욕하던지
마음대로 하세요. 잠깐만요. 제발 그만하세요. “
미스 정 언니의 하소연에도
경화 할머니는 언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다.
솜틀집 할머니는 너무 놀라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 이제야 아들 보기 부끄럽냐?
이 천하에 몹쓸 것, 천벌을 받을 것
너 이러면서도 이 동네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
남자애는 경화 할머니한테 달려들어 손을 물어뜯는다.
“ 할머니, 할머니가 뭔데 우리 엄마를 때려요?
왜 자꾸 우리 엄마한테 욕해요? ”
남자애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할머니를 향해 악을 쓰고 달려든다.
어디선가 많이 본모습이다.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온 몸으로 엄마를 막고
엄마를 때리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이 광경
언니들이랑 나는 할머니랑 고모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만 있고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우리 큰 오빠가 친할머니 고모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이다.
‘ 저 애는 미스 정 언니를 아니 자기 엄마를
온몸으로 보호하고 있는 거야. 보호해야 하는 거야.
우리 큰 오빠, 언니들, 나처럼 자기 엄마를 사랑하고 있는 거야.
이게 아닌데. 내가 바라던 건 이게 아닌 데.
다 내 잘못이야. 다 내 탓이야. 내가 이렇게 만든 거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다 내 잘못이야.
저 남자애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
나는 해피 분식으로 달려갔다.
이 싸움을 만든 것이 나다. 말려야 한다.
어른이 필요하다. 이 싸움을 말릴 어른이
“ 훈아, 얼른 집으로 가. 제발 집으로 가.
엄마랑 아는 할머니들이야.
할머니들이 엄마를 오해해서 그러는 거야.
이제 엄마한테 욕 안 할 거야. 때리지도 않을 거구. “
“ 아니야. 내가 저기서 다 봤어.
이 할머니들이 엄마한테 남자 등골 빼먹는 여우라고
썅년에 갈보년이라고 욕하는 거 다 들었어.
왜 이 할머니들이 엄마를 때리고, 엄마한테 욕 하는 거야?
엄마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래도 때리면 안 돼.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무리 화가 나도 때리면 안 된다고
욕하면 안 된다고 했어.
할머니들, 우리 엄마 때리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엄마, 이제 집으로 가자. 얼른 가자.
민정이도 엄마 기다리고 있어. “
“ 훈아, 이거 갖고 얼른 집으로 가. 엄마 금방 갈게. ”
“ 싫어, 엄마랑 같이 갈 거야.
나 절대 안가. 내가 가면 이 할머니들이 엄마 다시 괴롭힐 거야.
엄마랑 같이 있을 거야. 엄마랑 같이 집에 갈 거야. “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어딨어? ”
“ 왜? 현아야, 왜 이렇게 달려와? ”
“ 아줌마, 우리 엄마 어디 있어요? ”
“ 엄마? 너희 엄마 지금 교육센터로 가셨어.
자격증 등록해야 하는데 서류가 빠진 게 있다고
그거 내러 가야 한다고 이제 막 나가셨는데.
왜? 무슨 일 있어? “
“ 아줌마, 큰 일 났어요. ”
“ 무슨 일인데? ”
“ 아줌마, 어떡해요? 내가, 내가 다 망쳐놨어요.
지금 별 다방으로 경화 할머니랑 솜틀집 할머니가 가셔서
미스 정 언니를 때리고 욕하고 그러고 있었는데
그 언니 아들이 나타났어요. “
“ 뭐? 미스 정 처녀 아니야? ”
“ 아니래요. 아니었데요.
그 언니 아니 그 아줌마 아들도 있고 딸도 있나 봐요.
그 언니 아들이 할머니들 뜯어말리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에요. “
“ 누구 말리는 사람 없어? ”
“ 다들 구경만 하고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
“ 현아야, 그건 어른들 일이야.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야.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애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
“ 아줌마. 아줌마라도 같이 가요.
이건 다 제 잘못이에요. 제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에요. “
“ 그게 무슨 말이야? ”
“ 아줌마, 다 내 탓이에요. 다 내가 꾸민 짓이에요.
내가 그 언니가 미워서 우리 동네에서 쫓아내려고
거짓말도 하고, 할머니들한테 일러바쳐서 이렇게 돼버렸어요.
아줌마, 같이 가서 좀 말려주세요.
나 너무 무서워요. 할머니들 좀 말려주세요.
그 애가 너무 불쌍해요.
눈앞에서 자기 엄마 맞고, 욕하는 거 듣고, 너무 슬플 거예요.
우리 친할머니랑 고모들도 그렇게 와서
우리 엄마 때리고, 욕하고 그랬는데
그때 우리가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우리 큰 오빠가 커서 이제 아무도 엄마를 때리지 못하지만
그 남자애는 너무 어려요.
할머니들이 계속 그 언니 때리고 욕할 거예요. 그 애 앞에서
아줌마, 같이 가요. 나랑 같이 가서 좀 말려주세요.
미스 정 언니 불쌍해서 그 남자애 불쌍해서 못 보겠어요. “
해피 아줌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 가자 ” 해피 분식집 문을 잠그고 별 다방으로 향했다.
별 다방에 도착해서 보니
이미 두 할머니들은 돌아가 있었고
미스 정 언니는 얼이 빠진 체 울고 있고
남자아이도 엄마를 따라 ‘ 엉엉 ’ 울며 언니를 안고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예요? ”
해피 아줌마는 별 다방 사장 아줌마에게 물었다.
“ 으휴~ 물장사하는 년 팔자가 다 그렇지.
미스 정이 스무 살에 낳은 남자애야.
쟤 밑으로 여섯 살짜리 여자애가 하나 더 있어. “
“ 애 아빠는요? 애 아빠는 없어요? ”
“ 남편이 있으면 뭐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폐암으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
병원비가 말도 못 하게 나와. 돈 백이 뭐야?
한 달에 병원비가 삼백이 넘게 나올 때도 있어.
빨리 죽는 게 도와주는 건데. 목숨 줄이 얼마나 질긴 지.
월급이며 사채까지 빌려서 지 남편 살리겠다고
병원비로 다 들이밀고 있어. “
“ 부모나 형제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
“ 어디 돈 나올 구석이 있어야 말이지?
둘 다 고아원 출신이야. 어릴 때부터 같이 고아원에서 자랐데.
부부 정은 좋은가 봐. 그러니 그렇게 살리려고 들지.
돈이 너무 급하니까 제 발로 이 바닥에 들어왔더라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
“ 아가, 가자. 우리 집에 가자.
미스 정, 일어나요. 가요. 우리 집에 가요. “
해피 아줌마가 미스 정 언니와 남자 애를 일으켜 세운다.
“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다 귀찮아. 나 좀 그냥 둬. ”
“ 일어나요. 여기에 애를 둘 수는 없잖아요?
정신 차려요. 정신 차리고 아이 데리고 가야죠 “
아이 얘기가 나오니 그제야 미스 정 언니의 눈빛이 또렷해진다.
“ 훈아, 민정이는? 민정이 지금 어디 있어? ”
“ 민정이 집에 있어. 내가 문 잠그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절대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어. “
“ 뭐? 민정이를 혼자 두고 왔다고?
동생을 혼자 두고 오면 어떻게 해? “
미스 정 언니는 훈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 기다리세요. 지금 택시 잡기 힘들어요. 제 차로 가요.”
해피 아줌마 차에 모두들 올라탔다.
“ 봉천동으로 가주세요. ”
봉천동 고개를 넘어 산 꼭대기위에 있는 작은 집에 도착했다.
우리 동네 언덕이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언덕이 가파르고 높다.
“ 민정아, 민정아, 엄마 왔어. 문 열어. ”
“ 엄마 ”
대문을 여는 여자아이
한참을 울었는지 때 꼬장 물이 얼굴에 줄줄 흐른다.
키가 나보다 작고 말라서 나랑 같은 여섯 살이라는 데 동생같이 보인다.
“ 오빠, 이제 오면 어떻게 해?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
“ 민정아, 배 안 고파? ”
“ 오빠가 빵이랑 우유 놓고 가서 배 안 고파. ”
“ 훈아, 너 엄마한테 갑자기 왜 온 거야?
엄마가 엄마 일하는데 오지 말라고 했잖아. “
“ 맞다. 엄마
병원에서 엄마 빨리 오라고 했어.
얼른 전화해봐. 아빠가 아프다고 얼른 오라고 했는데 “
“ 뭐? 그 말을 이제야 하면 어떻게 해? ”
“ 엄마, 얼른 얼른 아빠한테 가자. ”
“ 그래, 민정아. 얼른 옷 입어. ”
“ 가요. 내 차로 내가 데려다 드릴 게. ”
우리는 다시 해피 아줌마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 훈이 아빠, 훈이 아빠
우리 훈이 아빠 아니 한민철 환자 어딨어요? “
“ 아까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빨리 오셨어야 했는데 의식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오늘을 넘기기 힘드실 거예요. 얼른 중환자실로 가보세요. “
“ 민철아, 민철아, 훈이 아빠, 훈이 아빠 ”
“ 아빠, 아빠~ ”
미스 정 언니도 아이들도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한 층 아래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 한민철 환자, 어딨어요? 이제 괜찮아요?
의식은 있는 거죠? “
“ 한민철 환자, 조금 전에 사망했어요. 죄송합니다. “
“ 네? 죽었다고요?
우리 민철이가 우리 훈이 아빠가 죽었다고요. ”
‘ 털썩 ’ 미스 정 언니가 주저앉았다.
‘ 엄마~ ‘ 하며 훈이와 민정이가 울더니
‘ 아빠, 아빠, 아빠 ’ 하면서 아빠를 찾기 시작했다.
훈이, 민정이 아빠가 죽었다.
나 때문에 내가 만든 일 때문에
미스 정 언니는 남편이랑
훈이랑 민정이는 아빠랑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다.
‘ 나쁜 년은 미스 정 언니가 아니고 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