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주야, 너 이리 와봐라. ”
“ 네? 아줌마, 저 지금 나가야 하는데요. ”
“ 이리 와. 나랑 얘기 좀 하고 가. ”
“ 네~ ”
울상인 은주 언니
또 다시 우리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겠지.
“ 은주야, 너 집에 들락거리는 그 남자애. 뭐하는 애야? “
“ 네? 아~ 우리 오빠요? 지금 삼수하고 있어요.
공부는 잘하는데 대입에서 계속 떨어져서
올해는 꼭 대학에 붙을 거예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
“ 뭐? 공부를 잘한다고? 올해는 붙을 거라고?
삼수를 하는 놈이 공부를 해야지.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들락거리면서 대학에 붙겠니? “
“ 아니에요, 아줌마, 시간 절약하느라 그런 거예요.
제가 버스 타고 학원 다니지 말고
대학교 붙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어요.
공부하느라 학원에 다니는데
우리 집이 학원이랑 가깝잖아요?
왔다 갔다 버스에서 버리는 시간도 아깝고
같이 살면 생활비도 절약되고 “
“ 누가 지금 그걸 몰라?
너 지금 동거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만약 애라도 생기면 어쩔 거야?
그러다 헤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냐고?
그럼 생활비는?
그 남자가 생활비는 보태주고 있는 거야? “
“ 공부하는 학생이 생활비를 어떻게 내요?
제가 일하고 있으니까 생활비는 제가 내야죠. “
“ 너, 그놈 학원비도 내주고 있지? ”
“ 네, 시골에서 돈이 좀 늦어지면 제가 우선 내주고 있어요. ”
“ 이게, 이게, 이게 미쳤어. 미쳤어. ”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은주 언니의 얇디 얇은 등에 꽂힌다.
“ 악~ 아줌마, 아파요. ”
“ 야~ , 네가 지금 누굴 도와주고 할 상황이야?
니 코가 석자인데. 그리고 그놈 인상이 별로야.
은주야, 내 아무리 봐도 그 남자애는 아닌 것 같아.
나랑 마주쳐도 인사는커녕 살살 피하기만 하고
눈빛도 영 께름칙하다.
기생오라비 같이 뺀지르하니 잘 생겼다마는
남자 얼굴 파먹고 살 것도 아니고
네가 형편이 어려우니 결혼을 빨리 하고 싶으면
나이도 좀 있고, 책임감도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게 어떠니?
난 결혼보다 니가 기술을 좀 배워서
나이가 좀 들고 한 다음에
시집을 갔으면 좋겠는데.
너 이제 스무 살이야. 아직 어리다고
은주야, 섭섭해 말고 들어.
네가 만약 내 딸이라면 나는 그 남자애랑 헤어지라고
할 거야. 그놈은 아니야. 은주야 “
“ 아줌마~ ”
이번엔 은주가 소리를 ‘ 빽~ ‘ 지른다.
“ 아줌마가 뭔데 우리 오빠에 대해 안 좋게 말하세요?
뭘 얼마나 잘 아신다고요?
제가 방세를 좀 밀리긴 했지만
이번 월급날 드린다고 했었잖아요? “
“ 오냐, 그래. 너 말 잘했다.
너, 그놈이랑 계속 살 거면 이번 달에 밀린 방세 다 내.
이사 나가더라도 방세는 다 정리하고 나가야지.
너 내 말 명심해야 해. 그놈 눈빛이 영 별로야.
나중에 후회 말고. “
“ 아줌마, 진짜 그만해요. 알았어요.
이번 월급날에 밀린 월세랑 다 같이 갚고 나갈게요. ”
은주 언니는 화가 나서 씩씩 거리며 대문을 발로 차고 나갔다.
“ 엄마, 은주 언니 화났나 본데. 그 오빠가 나쁜 사람이야? “
“ 아휴~ 내 눈은 못 속이는데. 영 별로야. 그 남자애
백화점에서 밤늦게까지 다리가 퉁퉁 붓게 일하면서
그 제비 같은 놈 생활비에 학원비까지 보태주고 살아?
주말도 없이 일하면서? “
“ 엄마, 얼굴만 그렇지 그 오빠가 착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
“ 인물 좋다고 사람 속까지 좋니? 내 눈은 속이지 못해.
사람 눈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야.
은주, 저거 어쩌면 좋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 데. “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해피 분식으로 일하러 갔다.
은주 언니는 퇴근을 하고 아홉 시가 다 돼서야 왔다.
두 손에는 복숭아와 포도가 들려져 있었다.
언니들이랑 오빠는 모두 학원에 가고
집에는 나랑 엄마 둘이서만 있었다.
“ 아줌마, 죄송해요.
아까는 걱정해주셔서 하신 말씀인데. “
“ 아니야, 은주야. 내가 너무 걱정이 되는 바람에
네가 내 딸도 아닌데 너무 간섭을 했나 보다.
다음 달에 이사 나가는데
안 좋게 나가면 너나 나나 섭섭하니까
아까 내 말은 잊어라. 내가 미안하다. “
“ 아줌마, 저 사실은
백화점에 오늘 그만둔다고 말하고 왔어요. “
“ 뭐? 백화점을 그만둔다고? ”
“ 네, 더는 다닐 수가 없어요. ”
“ 왜? 그럼 너 어떻게 살아? 모아둔 돈은 좀 있어? “
“ 아니요. 사실은 모아둔 돈도 없어요.
있었으면 방세를 밀렸겠어요? 나가긴 해야 하는데. “
“ 근데? ”
“ 너무 무서워요. 무서워서 나가기 싫어요.
아줌마, 저 아줌마 집에서 이 년만 더 살면 안 돼요? “
“ 어? 갑자기? 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 아줌마, 저 사실은 지금 임신했어요.
이제 칠 개월 들어가요. “
“ 뭐? 칠 개월이 넘어간다고? 너 왜 말을 안 했어?
배도 안 나왔는데 어떻게 칠 개월까지 숨기고 살았어? “
“ 배도 거의 안 나오고, 붕대로 감고,
큰 옷을 입고 다녀서 임산부 테가 안 났어요.
다리가 너무 아프고 붓고 배도 뭉쳐서
아무래도 더 일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러다 애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
“ 어머, 얘를 어쩌면 좋아? 너네 그 오빠는?
그 삼수생은 뭐래? “
“ 사실은 오빠가 별로 애를 좋아하지 않아요.
자꾸만 유산을 하자고 했는데 저는 아기를 낳고 싶어요.
죽이고 싶지 않아요. 이 애기를 “
“ 아이고~ 어쩜 좋아? 속상해서 어째?
내가 그놈의 새끼 아니라고 했지? ”
엄마가 화가 났는지 얼굴이 붉으락 붉으락 한다.
“ 아줌마, 저 일주일째 잠을 못 잤어요.
오빠가 잠을 안 재워요. ”
“ 그게 무슨 말이야? ”
“ 밤새 이 아이가 자기 아기가 맞냐고 물어보고
당장 병원으로 가서 애를 지우자고 하고 “
“ 뭐? 잠을 안 재워?
너 솔직하게 말해. 그놈 너한테 손찌검도 하지? “
“ 네, 몇 번, 제가 오빠 기분을 상하게 해서
오빠가 너무 화가 나서 몇 번 때리긴 했어요. “
“ 아휴~ 내 이럴 줄 알았어.
니 잘못이 아니고, 손버릇이 나쁜 놈이지.
지 새끼 밴 여자를 때리는 놈이 어딨니?
게다가 애를 유산하자고 하고
잠도 안재우며 달달 볶는다는 건 제정신이 아니란 소리다.
내 눈을 자꾸만 피하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어.
은주야. 내 말 야속하다 생각지 말고 수술하자.
애 엄마가 되기엔 네 나이가 너무 어리다.
스물에 애를 낳으면 어떻게 해?
더군다가 아빠도 변변치 않은데.
가만 칠 개월이 넘었다고 했지?
아~ 애가 커서 유산도 안 되겠네. “
“ 네, 아줌마, 이제 애기를 지울 순 없데요.
안 그래도 병원에 가서 수술하려고 알아봤는데
유산할 시기는 지나서 이젠 출산을 해야 한데요.
아줌마, 저 너무 무서워요.
아기 낳고, 이 년만 아니 일 년만이라도
아줌마 집에서 살게 해 주시면 안 돼요?
집에 말하면 저 맞아 죽어요.
혼자 애를 키울 생각을 하니 너무 겁이 나구요. “
“ 그래, 알았다. 산달에 이사를 어떻게 하니?
한 동네 사람인데 사정을 하면 이해를 할 거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 무사히 애부터 낳고 생각하자.
은주야. 너 일단 방에 가서 좀 쉬어. “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도 엄마는 그날 밤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 그 놈하고 은주를 떼놔야 할 텐데.
은주가 돈 줄이니 쉽게 놔주지 않을 것 같은데
애를 낳을 때까지 어디를 좀 보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래도 우리 집에 있으면 계속 찾아오고 은주를
괴롭힐 것 같은데
믿고 보낼만한 집이 없나?
그래, 대구, 대구 언니네 집에 보내야겠다. ‘
엄마는 다음 날 아침
우리 밥을 대충 차려놓고는 마당으로 나온 은주 언니를 마루에 앉혔다.
“ 은주야,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애를 낳고는
그 남자랑 계속 살 거야? 아님 정리를 할 거야? “
“ 잘 모르겠어요. ”
“ 은주야, 잘 생각해.
겉모습만 반지르하고, 능력도 없고,
지 새끼 벤 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분명 좋은 남자는 아니다.
임산부를 밤마다 잠도 못 자게 달달 볶는 남자라면
사이코다. 사이코
살아도 희망은 없을 것 같다.
아기를 낳고 살면 어떻게든 살겠지.
근데 사는 내내 힘들 거야. 너도 애도 말이야.
내 생각엔
네가 지방 어디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은주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너를 내 보내는 게 아니고
네가 여기 있으면 그 남자가 계속 너를 찾아올 거야.
너랑 같이 살면 편한테 쉽게 너를 놔주겠니?
안 놔줄 거야.
여기를 떠나 있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어디 가 있을만한 곳 없어? “
“ 순창 시골집에 갔다가는 아빠한테 맞아 죽어요.
믿고 가 있을만한 친척들도 없고
친구들도 다 순창 쪽에 있고
서울에 부탁할 지인이나 친구도 없어요.
어떻게 해요? 아줌마? “
“ 은주야, 그럼 아줌마 아는 언니가 대구에 사는데
대구에 당분간 좀 내려가 있을래?
아기 낳고, 그 남자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면
그때 다시 서울로 오는 게 어때? “
“ 대구요? ”
“ 응, 예전에 내가 신세 진 언니인데
나이도 있고, 맘도 착해. 자식들 모두 혼인해서 나가서
나한테 맨날 대구 내려와서 같이 살자고 했거든.
네가 내려가서 집안일도 좀 살피고 둘이서 살면
언니도 적적하지 않아 좋을 거야.
네가 좋다고 하면 내가 전화해서 한 번 물어볼게. “
“ 네, 생각해 볼게요. ”
“ 아직도 미련이 있는 거야? 그 남자애한테. ”
“ 네, 그래도 애 아빤데 쉽게 정리가 안 돼요.
마음을 고쳐먹고 애기랑 같이 살면 좋은데
돈이야 내가 벌어도 되고 “
“ 아이고~ 은주야, 너 아직 멀었지 싶다.
그래 잘 생각해봐. 아직 산달까지 시간이 있으니 “
언니는 뒷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선교원에 갈 무렵 은주 언니네 오빠가 들어와서는
우리 엄마 눈치를 살살 살피며 은주 언니 방으로 들어갔다.
“ 저 새끼, 저거 누가 안 잡아가나? ”
선교원에 다녀와서도
내 신경은 엄마 신경은 온통 은주 언니 방으로 향해 있다.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는 온통 뒷채로 가 있었다.
뒷채는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 대전댁아, 은주 방에서 무슨 소리 안 들리나? ”
“ 무슨 소리유? 암 것도 안 들리는 대유. ”
“ 그래? 니 잘 듣고 있다가
은주 방에서 무슨 소리 나면 당장 나한테 알려줘야 한다. “
“ 네, 알겠시유. ”
한 밤중에도 집은 고요했다.
엄마랑 나는 쉽게 잠이 들지 못하고 있었다.
새벽쯤 되어서 나는 흐느끼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분명 여자가 우는 소리 은주언니가 우는 소리다.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낮은 울음소리
나는 살금살금 은주 언니 방으로 걸어갔다.
“ 말해, 네 배안에 있는 그 애기
내 새끼 아니지?
백화점에 그 늙은 놈, 그 놈 애를 벤 거지?
내가 너를 쉽게 놔줄 것 같아.
날 배신한 너, 네 배 안에 있는 애기, 그 새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다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이고 나서 나도 죽을 거야.
넌 절대 나한테서 도망 못 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