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1 잘된 거라면서 엄마는 계속 울어만 댔다.
“ 엄마, 일어나 봐. 얼른
은주 언니 방에서 울고 있어. 계속 울고 있다고 “
엄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뭐야? 이 새끼가 ”
엄마는 세수도 양치도 하지 않고
은주 언니 방문을 ‘ 쾅쾅 ’ 두들겼다.
“ 은주야, 은주야, 나와라. ”
엄마가 지르는 소리에
대전 댁 아줌마네 , 은동이네 모두 일어나 마당으로 나왔다.
“ 무슨 일이에요? 이 아침에? ”
“ 은주야, 문 열어라. 나와라. 은주야. “
은주 언니는 눈이 퉁퉁 부은채 마당으로 나왔다.
“ 너 밤새 못 잔 거야? ”
“ 네 ”
“ 이 새끼가 진짜? ”
언니는 임산부복을 입고 있었다.
“ 은주야. 너 배가? 너 그거 임부복인데?
그거 왜 입은겨? 너 임신한겨? “
“ 은주야, 너 임신했니? 나는 깜쪽같이 몰랐는데 “
“ 네, 죄송해요. ”
“ 학생, 이리 좀 나와봐. 어서 ”
은주 언니 방에서 그 남자가 뻘쭘하게 나온다.
“ 학생, 임신한 여자를 밤새 이렇게 괴롭히면 어떻게?
산달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주가 학생 애를 벴는데
애를 때리고, 밤새 잠을 자지도 못하게 하면
산모도 큰일 나고, 태아도 큰일 나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야? “
“ 뭐야? 은주를 때렸다고?
자기 애를 벤 여자를 때렸다고? “
“ 오마나~ 무서워라.
동물들도 새끼 밴 암컷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디
사람이 워찌 그런다냐? 여보, 너무 무섭네유.
은주야, 너는? 너는 괜찮은거여? “
“ 학생, 주인집 아주머니 말이 사실이야?
은주 때리고, 밤새 괴롭히고, 그랬다는 게 사실이야? “
“ 네? 아니에요. 제가 왜 은주를 괴롭혀요?
그냥 말다툼 좀 하고, 밀다가 다치고 그런 거예요.
제가 나쁜 놈도 아니고, 왜 여자를 때려요?
은주야, 네가 직접 말해봐.
내가 너를 때리고, 욕하고 그랬니? “
“ 아니, 그게 아니고......
둘이서 말싸움을 하다가 제가 넘어지고 그러면서
다친 것뿐이에요.
제가 말실수를 해서 그런거지.
우리 오빠 그런 사람 아니에요. “
은주 언니는 아직도 그 남자에게 희망이란 걸 가지고
있었나 보다.
“ 그래, 학생, 은주가 다른 사람 애를 벤 것도 아니고.
학생 애잖아?
둘 다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태어날 애 부모인데
산모를 때리고 욕하고 힘들게 하면 안 돼.
안 살 거면 깨끗이 갈라서면 그만이야.
은주 괴롭히지 마. “
“ 이 아줌마가 진짜,
아줌마. 아줌마가 도대체 뭔데 괴롭힌다 때린다 욕한다
이상한 말을 하고 그러는 거예요? 집주인이면 다예요?
너, 은주, 너 똑바로 말해.
내가 너 때리거나 괴롭힌 적 있느냐고? “
남자는 살벌하게 엄마를 보다 은주 언니를 노려보며 말한다.
“ 아니야, 아니야, 그런 적 없어.
내가 임신을 해서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야.
아줌마한테 그러지 마. 내가 조심할게.
이제 다들 들어가세요.
저희 일이니까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
“ 다시 한번 때린다. 괴롭힌다.
사람 이상하게 만들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아줌마가 은주 엄마도 이모도 아니면서
무슨 상관이에요? “
“ 어, 그래. 나는 은주 엄마도 이모도 아니지만
우리 집에서 사람 다치는 일은 못 봐.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면 세도 안 나간다고.
나도 피해보기 싫으니까 학생도 조심해. “
엄마는 그 남자와의 눈싸움에서 지지 않고 레이저를 뿜어댔다.
은주 언니랑 남자는 휑 하니 들어가고 모두들 마당에 남아 심난해했다.
“ 이게 새벽부터 뭔 일이래유?
아니, 은주 쟤는 애를 뱄으면 집에 돌아가든가 해야지
여기서 애를 낳고 어떻게 키우겠다고 그러는 거여? ”
“ 아휴~ 은주 쟤를 어떻게 해야 하지?
저 남자애가 때리고, 욕하고,
은주 잠도 안 재우고 괴롭힌다는 데
애도 자기애가 아니라고 지우라고 그러나 봐.
돈도 한 푼 없고. 생활비며
다 은주가 번 돈으로 생활했다는데 “
“ 네? 난 은주랑 남자애 사이가 좋은 줄 알았는데? ”
“ 나도 며칠 전에 알았어요.
은주한테 큰일이 생길까 봐 그게 걱정이야. “
“ 남자애 괜찮은 줄 알았는데
영 질이 안 좋은데. 애 낳아도 은주 고생하겠어. “
” 그러게, 은주가 독하게 맘이라도 먹고 헤어지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직도 저 남자애한테 미련이 있어.
저 남자애랑 헤어져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텐데 “
“ 그러게요. 은주가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그래. ”
“ 무슨 방법이 없을까유? ”
“ 은주가 결정을 해야지.
배속의 애가 너무 커서 일단 낳기는 해야겠네. ”
다음 날 아침이면 학원에 가던 그 남자는
웬일인지 하루 종일 은주 언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은주 언니, 그 남자 모두 종일 방에만 있었다.
걱정이 된 엄마는 은주 언니 방문을 두들겼다.
“ 은주야, 이리 나와봐. ”
“ 왜요? 아주머니? ”
“ 물세랑 전기세랑 공과금 나눠서 내야지.
영수증 보고 얘기하자. “
” 아주머니. 나중에요. “
“ 안 돼. 나중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나와.
다음 달에 이사 가야 하는데 계산이 이상하네 어쩌네
허튼소리 하지 말고 “
” 네 “
은주 언니가 조용히 나온다.
“ 은주야, 괜찮아? 쟤가 너 때리는 거 아니야? “
“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시 잘 지내기로 했어요. ”
“ 뭐? ”
“ 다음 달에 아기 낳고, 둘이서 잘 살아보기로 했어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이제 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 너 괜찮겠어? ”
“ 네 ”
“ 그래, 알았다. 혹시라도 남자애가 허튼 짓하면
소리 지르고 나와. 다들 걱정하고 있으니까 “
“ 네 ”
하루 종일 집 안은 조용했다.
티브이 소리, 라디오 소리, 대화하는 소리, 각종 소음으로
우리 집은 항상 소란스럽기만 했는데
어제부터 오늘까지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것만 같다.
대전 댁 아줌마네, 은동이네, 우리 집
모두 은주 언니 방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나 대전 댁 아줌마네는 은주 언니네 옆 방이라
아저씨가 퇴근 한 이후로는 더더욱 조용했다.
다시 찾아온 새벽
은주 언니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비명을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그저 언니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 웅성웅성 ‘ 모두들 깨어나 있었다.
하지만 울음소리만으로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아침이 되어
마당을 돌아다니는 모두의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근심에 쌓여있다.
모두들 침묵한 채 회사로 학교로 나갔다.
집에는 은주 언니와 그 남자 둘 밖에 남지 않았다.
선교원에 돌아오니 엄마는 해피 분식이 문을 닫는 날이라
센터에서 일을 보다 조금 늦어진다 했다.
우리 집에는 나와 은주 언니 그 아저씨 셋만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동주네 가 있으라고 전화를 했지만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잘 살펴보니 집에 은주 언니의 남자는 없는 것 같았다.
“ 현아야, 현아야 ”
은주 언니 방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현아야, 현아야. ”
“ 응? 언니? 언니가 나 부른 거야? ”
“ 응, 현아야. 나 좀 도와줘. “
“ 어? ”
뛰어가서 언니 방문을 열어본다.
그 아저씨는 밖에 나가고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언니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 언니, 괜찮아? ”
“ 현아야, 언니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겠다. ”
“ 병원에? ”
“ 응, 산부인과에 가야겠어. ”
“ 언니, 잠깐만 내가 어른들 좀 불러올게. ”
“ 아니야, 현아야
나 걸을 수 있으니까 옆에서 손만 좀 잡아줘. ”
“ 알았어. ”
언니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대문을 나서고, 골목길을 지나, 시장 밖으로 나간다.
육교 건너 이백 미터쯤 위로 올라가면
동네에서 가장 큰 청명 산부인과다.
언니는 아무도 몰래 청명 산부인과에 다니고 있었나 보다.
“ 현아야, 언니 손 좀, 손 좀 잡아줘. ”
“ 응 ”
하얗고 가느다란 언니의 다섯 손가락이
모두 엄지 손가락처럼 부어있다.
“ 언니, 또 잠 못 잤어? ”
“ 응 ”
“ 괜찮아? ”
“ 현아야, 아무래도 난 바보 인가 봐. ”
“ 아니야, 언니, 언니 바보 아니야.
언니가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진데.
우리 엄마가 언니 참 야무지다고 똑순이라고 말했어.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성공할 거라고
돈도 많이 벌고 시집도 잘 갈 거라고 했어. “
” 정말? 아줌마가 정말 그랬어? “
“ 응, 그 오빠 만나기까지는 엄마가 매일 언니 칭찬만 했어.
지금도 엄마가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 데. “
“ 그래? ”
“ 응, 언니, 나도 그 아저씨 마음에 안 드는데
그냥 헤어지면 안 돼?
아기 낳고, 우리 집에서 언니랑 애기랑 둘이서 살면 안 돼?
내가 아기 잘 돌봐 줄게. “
“ 그래? 현아가 우리 아기 태어나면
잘 돌봐줄래? 동생처럼? ”
“ 응, 내가 아기 잘 돌봐줄게.
기저귀도 갈아주고, 분유도 먹여주고 나 애기 잘 봐. “
“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언니는 애기랑 둘이서 살아야겠어. “
” 그래 “
“ 계단 올라가는 게 힘드네. 잠깐만 ”
은주 언니는 육교 끝 난간과 내 어깨를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스무 개단쯤 올라갔을까?
“ 악~~~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
언니는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 언니, 왜 그래? ”
“ 악~ 애기가 나오려는 것 같아.
현아야,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 양수가 터졌어. “
“ 양수? 그게 뭐야? ”
화장실이 급했는지 육교 계단에서 은주 언니는 오줌을 싸버렸다.
' 엉엉엉~ ' 언니는 울기 시작했다.
“ 어떻게 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
나는 언니를 얼른 부축해 계단을 올라갔다.
“ 언니, 얼른 올라가. 얼른 병원에 가자. ”
“ 악~ 어떻게 해? 아가가 나오고 있어.
아가가 나오고 있어. 우리 아가 어쩜 좋아?
엄마,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 “
육교를 올라오던 아줌마가
“ 어머, 양수가 터졌나 봐.
내려와요. 내려와. 더 올라가면 안 돼.
내가 택시 잡아줄게. 택시 타고 가.
더 걸으면, 계단을 올라가면 안 돼. “
아줌마는 택시를 잡아 나와 언니를 청명 산부인과에 데려다줬다.
“ 감사합니다. ”
“ 얼른 들어가요. 얼른 ”
“ 현아야. 전화 좀, 전화 좀 해줘. ”
언니가 불러준 번호로 열 번이 넘게 전화를 해도
그 아저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언니, 전화를 안 받아. ”
은주 언니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계속 전화를 해 달라 부탁했다.
나는 병실에 누워있는 언니와 공중전화 사이를 계속 오가고 있었다.
“ 산모분, 이제 결정하셔야 해요.
애기가 많이 나온 상태예요.
분만을 하신 다음 인큐베이터 안에 넣으실지
안 넣으실지 결정하세요. “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기 아빠랑 아직 통화를 못 했어요. ”
“ 산모분, 아기 머리가 탯줄에 다 감겨서
몸이 거의 다 나온 상태로 병원에 도착해서
출산을 한다고 해도 아기가 건강할 확률이 희박해요.
아기에게 장애가 있을 확률이 훨씬 높아요.
세균감염도 그렇고 아기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인큐베이터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갈 거고
결정하세요. 힘들겠지만
더 이상 미루시면 산모분만 힘들어요. “
“ 네, 수술해 주세요. ”
언니는 다 포기한 듯 천장을 바라보다
울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 엄마, 은주 언니랑 나랑 청명 산부인과에 있어.
언니 수술실 들어갔어. “
“ 뭐? 청명 산부인과? 엄마 지금 갈게. “
엄마는 언니가 수술실로 들어간 사이 병원에 도착했다.
데스크에서 간호사로부터 설명을 들은
엄마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아기가 불쌍하긴 하지만 차라리 잘 된 거야.
은주를 생각하면 잘 된 거야.
차라리 잘 된 거야. 다 잘 된 거야.”
잘 된 거라면서, 차라리 잘 된 거라면서
은주 언니가 수술실에서 나올 때까지
엄마는 계속 울어만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