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19 나만 모르고 온 동네가 아는 비밀

by 옥상 소설가

“ 현아야, 전화 좀 받아. ”


김 동주가 우리 집 열린 대문 사이로 뛰어 들어와서는 말한다.

“ 동주, 왔어? 아침 먹었니? ”

“ 아니요, 아줌마, 이따 먹을 거예요.

현아랑 할 얘기가 있어서 급히 왔어요. “

“ 야~ 김 동주 온 김에 그냥 말해. ”

“ 안 돼, 비밀 얘기란 말이야. 아무도 들으면 안 돼. ”

“ 아~ 진짜, 나 밥 먹어야 하는데. ”

“ 누나들이랑 형 학교 가고 나서 밥 먹으면 되잖아.

얼른 내 전화 받아. “

“ 야, 김 동주, 그러지 말고 그냥 지금 말해. ”

“ 싫어, 너랑 둘이서만 얘기할 거야. ”


오빠가 동주를 보고 궁금한 지 묻는다.


“ 동주야, 뭔데?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아침부터 현아한테 할 말이 뭐야?

우리가 들으면 안 돼? “

“ 네, 아무도 들으면 안 돼요.

현아랑 둘이서 할 얘기가 있어요. ”

“ 어휴~ 너 진짜. 너, 너무 귀찮게 해.

그 전화 경화랑 하는 게 어때? 나 말고

경화는 언제든 네 전화받아줄 거야. “

“ 싫어. 나는 너랑 할 거라고. ”


큰 언니가 웃으며 말한다.


“ 현아야, 받아줘라. 동주 이러다 아침밥도 못 먹겠다.

동주가 중요하게 너랑 둘이서만 할 얘기가 있나 보네.

동주야, 얼른 가. 현아가 네 전화받을 거야. “

“ 그래, 가라. 가. 내가 꼭 받을 테니. “

“ 알았어. 나 도착하고 바로 걸 거니까 빨리 받아. “

“ 알았어. 얼른 가라고. ”


짜증을 내며 대문 밖으로 동주 등을 밀었다.


‘ 짤랑짤랑짤랑~ ’ 말 그대로 벨이 울린다.


“ 야, 이거 진짜 벨소리네. 말 그대로 벨소리야.

동주가 과학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더니

사실이네. 동주 얘 진짜 너무 기발하다.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에 응용을 하네.

이런 애가 과학자가 돼야 하는 거야. “


큰 오빠는 김 동주에게 감탄을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오빠, 걔가 얼마나 엉뚱한지 알아야 그런 소리를 안 하지?

모르면 말을 하지 마. ‘



김 동주가 만들고 자기 아빠랑 우리 집까지 찾아와

우리 집 마루 대들보에 직접 설치까지 해 준 전화기

동작 전화국에서 설치한 전화기

김 동주 아빠가 설치해 준 전화기

우리 집에는 두 대의 전화기가 있다.

동주 아저씨는 신기하고 이상하다.

' 그 아저씨는 어쩜 그렇게 김 동주가 해 달라는 데로

다 해 줄 수가 있지? '


보통 어른들은 귀찮다고 소용없다고 하지 말라고 할 텐데.

일주일 전 토요일 오후

우리 집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대문 앞에는 김 동주와 동주 아버지가 서 있었다.

동작 전화국 직원처럼

아저씨는 머리에 헬멧을 쓰고, 남색 잠바까지 입고 와서는

“ 현아 엄마, 우리 동주가 현아랑 전용 전화기를

현아네 집에 설치해 달라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

“ 네, 그러세요. 실이 대문에만 걸리지 않게 하면 돼요.

그런데 동주 아빠, 그 전화기로 정말 소리가 들릴까요? “

“ 네, 전화기 실이 팽팽하면 소리는 전달될 거예요. ”

자신감 있으면서도 진지하고 꼼꼼하게

아저씨는 동주가 만든 종이컵 전화기를 우리 집 기둥에 설치해줬다.

김 동주네 집은 우리 옆집으로

두 집 벽은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동주 네 집 마루 기둥에 달린 전화기

그 집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 집까지 연결된 전화선

전화선

정확히 말하면 명주실인 그 전화선은

동주네 집 기둥과 마루를 넘어 대문을 통과해

지붕 아래 벽을 지나

우리 집 대문을 통과하고 처마를 지나

마루에 있는 기둥에 설치해 준 종이컵 전화기다.


동주가 열흘 전쯤 과학책을 읽고 나서는

어린이도 어른들처럼 전화기가 있어야 한다고

자기 아빠를 설득했다.

동주는 집에서 가장 길고 두꺼운 명주실을 두 종이컵에 연결하고 자기 아빠랑 우리 집에 함께 와서

우리 집 마루 기둥까지 선을 연결하고

전화기 설치까지 마무리 한 후

둘은 흐믓하게 웃으며 돌아갔다.



줄 사이 사이에는 방울 몇 개를 달아서

동주가 전화를 걸었다는 신호로 실을 당기면 방울 소리가 울린다.

방울 소리가 전화벨인 셈이다.

다른 사람이 들을 수도 있으니

비밀 얘기는 선교원에서 하지 말고 집에서 둘이 몰래 하자며

종이컵 전화기를 설치하자고 동주는 내게 간청을 했다.

며칠을 졸라대는 통에 하자고는 했지만

벨은 아침이고 저녁 수시로 울려댔다.

귀찮은 것쯤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벨이 울리고 전화기를 귀에 대면

동주가 나에게 하는 말이 들리긴 한다.

하지만 그게 너무 크고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김 동주와 나 둘만이 아닌

우리 앞집, 옆집, 뒷집, 골목길을 지나가는 행인들 모두에게

들린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 사실을 몰랐다.



“ 여보세요, 들리니까 이제 말해. ”

“ 현아야, 나야 ”

“ 알아, 너인 거 아니까 빨리 말해. ”

“ 이따가 우리 선교원 같이 가자. ”

“ 알았어. ”

선교원에 갔다 오면 앞 집 경화 아줌마가

“ 현아야, 오늘 아침 동주랑 선교원 같이 갔니? ” 물어보고


“ 현아야, 나야. ”

“ 어 ”

“ 우리 집에 엄마가 카스텔라 사 왔으니까 먹으러 와. ”

“ 싫어. 나 배불러. ”

“ 너랑 같이 먹으려고 나 안 먹고 있어.

책 보면서 같이 먹자. 기다릴게. “

” 귀찮다니까 동이 언니랑 같이 먹어. “

“ 알았어 “


갑자기 동주가 짠해져서

그 집에 가서 카스텔라를 먹고 놀다 돌아오면 뒷집 아줌마가


“ 현아야, 동주가 부탁하면 좀 살갑게 해 줘.

아무래도 동주가 널 좋아하는 것 같은데. “

안타까운 눈빛과 목소리로 말한다.


“ 현아야, 나야. ”

“ 왜? ”

“ 이따 나 너희 집에 가서 놀면 안 돼? ”

“ 안 돼, 오지 마. ”

“ 왜? ”

“ 나 책도 봐야 하고. 밍키도 봐야 해.

색칠 공부도 해야 하고 ”

“ 너랑 같이 보면 안 돼? ”

“ 너는 너희 집에서 동이 언니랑 봐.

우리 집은 복잡하고 시끄러워. 너까지 오면 “

“ 알았어. ”

“ 어휴~ 알았어. 와 ”



다음 날이면 옆 집 아줌마가


“ 현아야, 동주가 너희 집이 좋은가보다.

놀러 오면 좀 잘해줘. “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이다.


‘ 아니 동네 사람들이 나랑 동주가 하는 비밀 얘기를

어떻게 알지? ’

어느 순간 나는 알고 말았다.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 듣고 있었다. 동주와 내 통화를

애초에 종이컵 전화기로 소리는 들릴 리가 없었다.

실이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소리가 전달될 텐데

명주 실은 너무 길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쳐지고 늘어져 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동주가 선을 여러 번 흔들어대면 벨은 울리지만

작게 말하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자

답답해진 동주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을 했고

나도 귀에 종이컵을 대고 큰 소리로 말을 했던 것이다.

아니 동주와 난

온 동네가 다 들리게 소리를 지르며 비밀 통화를 했던 것이다.


컵을 대지 않은 귀로 들리는 소리를

컵을 통해 들어오는 소리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둘이서 비밀 얘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통화를 하니

경화네, 뒷집, 옆집,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모든 사람들

동주와 내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모두 듣고 있었으면서도 안 들리는 척 했던 것이다.



내가 심부름을 간 사이

동주가 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울리자

우리 엄마가 나를 대신해 동주의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현아야. 나야. ”

“ 동주구나. 동주야. 현아 심부름 갔다. ”


동주와 내 통화를 웃기게 본 엄마도 한번 해보고 싶었단다.

우리 엄마도 동주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현아 심부름 갔다 구요? ”

“ 응 ”

“ 아줌마, 저 너무 속상해요. ”

“ 왜? ”

“ 현아가 제 마음을 몰라줘요 ”

“ 네 마음? 그게 뭔데? ”

“ 나는 현아랑 결혼하고 싶은데

현아는 나랑 결혼하기 싫데요.

내가 커서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엄마 말고, 현아한테 다 준다고 했는데

현아는 그래도 내가 싫데요. 나랑 결혼 안 한데요. “


어느 순간 설움에 복 받힌 김 동주는 으앙~ 소리를 내며 울다

통곡을 시작했고

우리 집, 앞집 경화네, 뒷집, 옆집, 김 동주네

다섯 집에서 동시에 웃는 소리가 터졌다.

영문을 모르던 김 동주는 계속 울어댔고

심부름을 다녀온 후에도

우리 식구들, 대전 댁 아줌마네

은동이네, 은주 언니 모두 나를 보고 웃기만 했다.



다음 날 선교원을 다녀와 동네를 지날 때마다

동네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를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 현아야. 어지간하면 동주랑 결혼해라. ”

“ 동주만큼 착한 애 없다. ”

" 동주가 돈 다 지 엄마 안주고, 너 준다고 했다며

그런 남자는 없다.

이제 그만 동주 애먹이지 말고 결혼해라. "

동네 어른들 모두 나를 보고, 동주를 보고,

내가 동주와 같이 지나가면

웃고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동네 사람들이 왜 우리를 보고 그렇게 웃어 댔는지

그 이유를 각자의 엄마를 통해 듣게 된 동주와 나는

더 이상 전화를 걸지도 받지도 않았다.


전화를 걸지도 받지도 않았지만

이후에도 한 동안

동주와 나의 전화 벨은 울려댔다.

밤에도 낮에도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에도

누구도 전화를 걸지 않았지만

‘ 딸랑 딸랑 딸랑~ ’ 벨은 울려댔다.


동주와 나의 전화기의 전화선은

참새와 제비 작은 새들이 앉아 쉬는 벤치로 남아 있있다.


밤이면 벨소리에 잠이 깨고, 귀찮기도 했지만

동주도 나도 어느 누구도 전화선을 끊지 않았다.

낡고 낡아 저절로 실이 끊어지기 전까지

벨이 울려댈 때마다

사람들은 동주네 집 대문을 쳐다보고 웃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EP - 20 스무살에 엄마가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