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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Jan 28. 2021

앵그리 버드가 아니라 해피 버드다

대학 졸업을 앞둔 11월 취업을 했다.

일 년을 채우기도 전에 사표를 쓰고 나왔다.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조직문화는 나와 맞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회사를 다니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들 계속 다니라며 퇴사를 말렸지만 나는 그만뒀고 후회도 하지 않았다.

주위의 권유대로 계속 다녔다면 아마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걸렸을지 모른다.


나는 내가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정확히 한다.

지금 행복한 지 불행한 지도 분명히 알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


고등학교 졸업쯤부터 친구 동생들 과외를 했고, 대학생활 내내 과외를 했다.

용돈 벌이는 충분히 됐고

돈도 벌면서  재미있고 마음도 편했다.


퇴사를 하자 대학교 친구들은 회사에 자리가 나면 전화를 해 줬다.

다시 회사 생활은 하고 싶지 않아 모두 거절했다.

간섭받지 않는 내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통화를 하다

오전에 유치원 특강 강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동학과 친구들은 졸업 후 대부분 유치원 교사로 취직을 하는 데  특강 강사가 유치원 교사보다 시간도 자유롭고 보수도 낫다는 것이다.

영어를 좀 하고,  차만 운전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  오전에 유치원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 학교나 어학원에서 수업을 하면 돈을 두 배나 벌 수 있겠네.

   해보자.  영어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


결혼 전 오전에는 유치원 영어 특강 강사, 오후에는 어학원 수업

저녁이나 주말에는 개인이나 그룹과외를 했다.

결혼 후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려 시험에 도전했다 2번이나 실패했고

합격을 장담할 수 없어 나이가 있으니 아이를 먼저 낳기로 했다.

임신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딸을 얻었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를 키우며 집에만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  나는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불행한 사람이야.  죽을 수도 있어.

   일이든 봉사든 무엇이든 해야 해.  그래야 행복할 수 있어.  '


딸이 유치원 등원을 한 첫날

아이를 교실에 들여보내고 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취업 사이트에 난 채용공고를 보고 업체에 전화를 했다.


초등학교 방과 후 영어

유치원 특강 영어 강사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로 가기엔 나이가 많았고

퇴근 시간이 늦어 딸아이의 하원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유치원 특강 수업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니

딸을 등원시키고 출근을 해 수업을 시작할 수 있고

딸 하원 시간과 특강 수업이 동시에 끝나니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할 수 있는 적절한 직업이다.  게다가 수업도 괜찮다.

타임당 수업료도 4만 원

4시간 수업을 하면 하루 일당 16만 원

하루 3,4시간 수업으로 한 달에 이백을 넘게 벌 수 있는 좋은 자리이다.

하지만 수업 시간 내내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스토리 텔링을 하는 고된 일이다.

한 반에 30여 명이 넘는 5-7살 아이들을 집중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단 시간 내 힘을 쏟아내야 한다.

그래서 유치원 특강 강사는 오래 일하는 사람이 드물다.


결혼 전 4년여를 일했기 때문에 나는 베테랑 강사였다.

원래 시강을 하고 난 뒤 회사에서  합격을 결정하는 게 관행이지만

전화 통화를 하니 회사에선 바로 지점으로 와 시강을 하라고 했다.

팀장은 시강을 본 뒤 다음 날 당장 수업을 시작하라고 했다.

그 날 저녁 인수인계를 받고 밤늦게까지 노래를 익히고 춤을 외우고

세팅된 교재와 교재를 가지고 다음 날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남편은 내가 바로 일을 시작하자 나의 추진력에 감탄하면서도 든든해했다.


"  네가 정말 답답했나 보다.

   어떻게 애가 등원한 다음 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하냐?

   너 믿고 살아도 되겠다.  "


전업주부로 5 년여를 살다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니 몸은 고돼도 숨통이 트였다.

집에서 아이를 기르는 동안 벽에 걸린 시계를 하루 종일 봤다.

부지런히 해와 달은 뜨고 지고를 반복했지만

나는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생기를 잃었다.


그나마 아이를 기르며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자는 동안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그나마 나는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아파서 등원을 하지 못하거나

유치원 방학기간이면 아이를 돌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시어머님이 아이를 가끔 돌봐주시긴 했지만 달가워하지 않으셔서 눈치가 보였고

친정과는 거리가 멀어 도움을 받기는 불가능했다.

아이가 등원하지 못하는 날과  남편이 쉬는 날이 일치하면

다행히 나는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었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남편과 아이 둘 만이 보내는 시간

나는 남편과 딸이 서로를 좋아하길 간절히 바랬다.

어린이 영화, 뮤지컬, 마술쇼  다양한 공연의 표를  예매하고

미술관,  동물원,  수족관,  놀이공원에 딸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에버랜드 서울랜드 롯데월드 코엑스 아쿠아리움

매년 연간 자유이용권을 끊어 사람이 없는 평일 놀러 다녔다.


다행히 남편은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를 아끼고 사랑했다.

신생아 때 아이가 잠을 깊이 못 자면 불안해서 못 자는 거라고

사람의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자면 깊이 잠을 잔다는 기사를 보고는

딸아이를 두 시간 동안 자기 가슴에 올리고 낮잠을 재웠다.

수시로 껴안고,  뽀뽀하고 아이를 사랑했다.

예민하고,  잔소리가 많고,  정확한 남자지만

딸에 대한 애정은 넘쳐나고 자상하면서도 섬세한 아빠였다.


나는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보통의 육아를 했지만

딸과 즐겁고 특별한 시간과 경험을 한 사람은 남편이다.

중 3인 아이는 아직도 아빠랑 둘이 보내는 시간을 어색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이가 여섯 살 무렵

남편과 딸 둘은 한참 클레이에 빠져 있었다.

클레이로 게임 캐릭터를 만들고 다양한 소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둘이 오밀조밀 클레이를 만지고

작품이 완성되면 뿌듯해하면서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자기 작품을 서로에게 자랑했다.


남편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자신들이 만든 클레이가 너무 소중해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

짐 정리를 하면서 수많은 짐을 버렸지만

딸과 만든 클레이를 버리는 걸 반대했다.

클레이가 부서지지 않도록 자동차에 옮겨 싣고

이삿짐 정리 후 거실 장식장에 딸과의 추억을 조심스레 넣었다.


남편은 종종 딸아이와 만든 클레이나둘이 함께 찍은 사진들을 기념품 등을 바라본다.  

둘만의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를 회상한다.


'  이건 5살 때 만들었지?

   이건 어린이 난타를 보고 찍었지?

   이건 오즈의 마법사야.  '


서로에게 물어보고 대답하고 속닥거린다.

대화의 마무리 쯤

딸이 아빠에게 몸을 기대거나 포옹

남편이 딸을 안을 때도 있었지만

사춘기가 한 참인 요즘은 미소로 산뜻하게 마무리 한다.


얼마 전 남편과 산책을 간 공원에서

세, 네 살쯤 되어 보이는 딸들과 젊은 아빠가 노는 모습을 보더니


' 저 때가 제일 예쁘고 귀여워.   우리 딸이 어릴 때도 예쁘고 귀여웠는데  '


남편은 부러운지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도 남편은 딸 방을 자주 들락거린다

딸아이가 밥은 먹었는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용돈이 모자란 것은 아닌지  수시로 물어본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포장을 해서 먹이고 싶어 하고

예쁘고 귀여운 옷이 있으면 입히고 싶어 한다.


딸이 결혼을 했는데 사위가 딸 속을 썩이면 어쩔 거야 물으면

눈빛이 달라지며 정색을 한다.


"  이혼시켜야지.  우리 딸 속 썩는 건 절대 못 보지.  "


보이지 않는 미래의 사위에게 벌써 적의가 팽배하다.

그런 남편이 재미있고 귀엽다


'  그래  악역은 내가 맡을 테니

   당신은 정의의 사도가 되어  

   천하무적이 돼서 우리 딸을 지켜줘.  

   힘들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나보다 당신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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