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왜 자꾸 아줌마랑 아저씨들이 나한테 밥 먹었냐고 물어봐?
엄마도 큰 언니도 있는데? ”
“ 네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으면 배 고플까 봐 걱정해서 물어보는 거지. ”
“ 그걸 왜 걱정해? 내가 그 집 딸도 아닌 데? ”
“ 널 좋아하니까 당연히 걱정해주는 거지.
엄마도 동주나 경화 호달이 동네 애들 볼 때마다 밥 먹었는지 물어보는데. ”
“ 그렇구나, 근데 왜 밥이야? 다른 것도 물어볼 게 많잖아? ”
“ 어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밥을 굶고 다니는 걸 제일 안쓰러워해.
배가 불러서 다니면 좋겠어서 하는 말이야. “
“ 음, 그렇군 ”
그 이후로 나에게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는 어른들에게 나는 더욱더 인사를 잘했다.
“ 현아야, 이리 와봐. ”
“ 네~ ”
돼지 문방구 아저씨는 나를 볼 때마다 내 이름을 부르시고 오라고 하신다.
내가 달려가면 언제나 나를 무릎에 앉히신다.
그리고 연신 내 볼에 뽀뽀를 하신다.
아저씨의 입술 옆에는 항상 침 거품이 하얗게 묻혀 있다.
다행히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냄새는 나지 않지만 환영 의식인 뽀뽀 후
나는 볼에서 아저씨 침을 닦아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를 무릎에 앉히고 뽀뽀를 하는
나를 볼 때마다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아저씨가 좋았다.
아빠도 돼지 문방구 아저씨처럼 나를 거침없이 안아주고 뽀뽀해 줄 거라 생각했다.
“ 현아, 밥 먹었어? ”
“ 네 ”
“ 엄마는? ”
“ 센터 가셨어요. ”
“ 아저씨가 과자 줄까? ”
“ 아니요, 배 안 고파요. ”
“ 그럼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먹어라. ”
“ 괜찮은데요. ”
“ 여보, 애한테 그렇게 뽀뽀를 하면 어떻게 해?
이 볼에 침 봐. 볼에다 그렇게 침을 묻히면 애가 싫어한다니까 “
“ 아니지? 현아는 아저씨가 뽀뽀해도 괜찮지? 아저씨 안 싫어하지? 우리 딸 할 거지? ”
“ 네 ”
“ 아니, 남의 집 귀한 딸을 왜 우리 딸로 만들어? 아들이 셋이나 있으면서? “
“ 그놈의 새끼들 무슨 소용이 있어? 무뚝뚝해서 말도 없고
우리 현아 봐. 볼도 통통하고 이렇게 귀여운 데 인사까지 잘 하구 얼마나 이뻐?
내, 그놈 셋이랑 우리 현아랑 바꿀 수만 있으면 바꾼다. “
“ 저 이가 애들 들으면 어쩌려 구 저런 말을 해? ”
아줌마가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다 아저씨를 흘겨본다.
나는 아줌마를 향해 빙긋 웃는다.
“ 아줌마, 수철이 삼촌은요? ”
“ 응, 지금 물건 받으러 공장에 갔어. ”
“ 그럼 삼촌 언제 와요? ”
“ 한 세 시간은 걸릴 걸. 왜? ”
“ 삼촌이 연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
“ 연? 우리 수철이가? ”
“ 네 ”
“ 현아야, 처남이 너한테 연 만들어 주기로 했어? ”
“ 네 ”
“ 아저씨가 만들어 줄게. 내가 더 잘 만들어. ”
“ 아니에요. 삼촌이 더 잘 만들어요.
저번에 삼촌이 준 연이 얼마나 잘 날았는데요.
놀이터에서 날리다가 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찢어졌는데
삼촌이 다시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어요 “
“ 그러니까 아저씨가 만들어 줄게. 내가 좋은 놈으로다가 예쁘게 잘 만들어 줄게. ”
“ 아니에요. 아저씨가 만들어주신 연은 모양만 예쁘지 잘 못 날아요.
삼촌이랑 만들 거예요. ”
“ 왜? 왜 내가 만든 연을 못 날아? ”
“ 아저씨는 저기 걸려있는 방패연 세트로 만들어 주실 거잖아요?
방패연은 무거워서 잘 못 날아요.
삼촌이 날쌔고 가벼운 가오리연 만들어 주기로 했어요. “
“ 가오리연? 가오리연은 문방구에서 안 파는데? ”
“ 네, 삼촌이랑 저랑 둘이서 가오리연 다시 만들기로 했어요. ”
“ 뭐? 다시 만든다고? 그럼 처음이 아니고 이 번이 두 번째야?
아니 세 번째야? 도대체 몇 번째야?
그리고 둘이서 만든다고? 단 둘이서? ”
“ 저번에 삼촌이 한지에 그림 그려서 오리고, 대나무 살 구해 와서 얇게 쪼개 가오리연을 만들었어요.
제가 그때 삼촌 옆에서 밀가루 풀을 같이 쐈어요.
삼촌이 본드로 붙이면 무거워진다고 밀가루 풀을 쒀야 한다고 했어요.
칼이랑 가위는 못 만지게 하셨어요. 위험하다고
오리고 붙이고 말리고 둘이서 연 만드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게다가 이틀이나 걸렸다고요. “
“ 뭐? 이틀이나? 너 수철이랑 아니 우리 처남이랑 어디서 만들었어? ”
“ 우리 집 마당에서 만들었잖아요. 현아랑 수철이랑 ”
“ 뭐야? 그럼 나만 몰랐던 거네?
현아야, 우리 집에서 만들었으면 우리 집에 왔단 소리잖아?
그럼 아저씨한테 먼저 와서 인사하고, 나한테 와서 만들어 달라고 했어야지?
너 어쩜 우리 집 마당에서 수철이랑 둘이서 만들었니?
아저씨 배신감 느끼게.
너 내 딸 하기로 했잖아? 그리고 내가 너랑 먼저 친해졌잖아?
내가 너랑 아니 우리가 더 오래되지 않았니? “
“ 그렇죠. ”
“ 그럼 나한테 와서 만들어 달라고 했어야지.
아저씨가 몹시 섭섭하다. 배신감 느껴지네. “
“ 아니, 여보, 여섯 살 애한테 별 말을 다해?
무슨 현아한테 배신감을 느껴? 얘가 무슨 당신 애인이야? 마누라가 옆에 있는데
우리 딸도 아니고 남의 집 딸한테.
당신 일 하느라 바빠서 그랬겠지. 그렇지? 현아야
아저씨가 바빠서 그런 거지? “
“ 네 ”
아저씨는 정말 배신감을 느끼셨는지 얼굴이 벌게 지셨다.
숨도 꼴딱꼴딱 넘기면서
새총에서 쏘아진 돌멩이처럼 빠르게 말씀을 하시는데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무릎에서 슬며시 내려왔다.
하긴 내가 아저씨에게서 얻어먹은 깐돌이, 돌 사탕, 아폴로, 부라보 콘이 몇 개인데......
아저씨에게 인사도 안 하고, 마당으로 달려가 수철이 삼촌이랑 연만 만들고 돌아갔으니
나 같았어도 서운했을 거다.
아저씨가 배신감을 느낄 만도 하다.
아저씨는 서운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셨고
그 말은 콩알탄처럼 내 마음에서 ‘ 콩콩콩 ‘ 터져버렸다.
“ 아저씨, 그럼 방패연 만들어 주세요. 가오리연은 삼촌이랑 나중에 만들게요. ”
“ 그래? 나랑도 만들 거지? 저기서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가져와. ”
“ 네 ”
무거운 걸음으로 걸어가 아무거나 하나 집어온다.
‘ 아이 씨~ 이거 분명히 못날 텐데....... 삼촌이 빨리 오면 되는데.
오늘 낮에 오라고 해 놓고 공장에 가면 어떻게 해? 빨리 오지. ’
우리 약속을 잊고 공장에 가버린 수철이 삼촌이 야속하다.
아저씨랑 방패연을 만드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아줌마가 문방구를 지키고 아저씨랑 골목길에 나가서 연을 날려보았지만
숨이 차게 빨리 뛰어도, 심장이 터지게 오래 뛰어도 방패연은 날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는지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저씨는 실타래를 나에게 맡기고 연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지만
연은 머리 위로 조금 날다 금세 길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얼굴이 다시 벌게진 아저씨는 방패연이 날지 않는 것은 바람이 없는 탓이라 했다.
자기가 연을 못 만드는 것이 아니며
수철이 삼촌이 연을 잘 만드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삼촌과 내가 만들었던 연이 잘 날았던 이유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언덕 위 놀이터에서 날렸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아저씨가 짠해졌다.
‘ 아저씨나 동주나 철이 없는 건 마찬가지구나.
이래서 남자들한테는 여자가 필요해.
아줌마가 아저씨한테는 꼭 필요하겠다. ‘
그렇게 아저씨랑 나는 한 참을 골목길에서 달리기만 하다 옷이 다 젖은 채
문방구로 돌아왔고 아저씨가 다시 연을 손보고 있을 때 수철이 삼촌이 돌아왔다.
삼촌은 얼굴이 벌게진 아저씨와 나를 보며 의아해하다가
바닥에 놓인 연을 보더니 사연을 알아차렸는지 웃기 시작했고
나는 약속을 어긴 삼촌이 야속해 한 참을 째려보다 ‘ 으앙 ’ 하고 눈물이 터졌다.
돼지 문방구
우리 동네 아이들 쉼터이자 오아시스
해피 분식집과 샤넬 미용실은 아줌마들의 사랑방
철물점은 아저씨들의 사랑방
우리들의 사랑방은 돼지 문방구이다.
원래 돼지 문방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셨었다.
두 분이 힘에 붙여 문방구를 운영하지 못하자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다.
공사를 해서 깨끗이 청소도 정리도 하고
아이스크림 통 두 개, 음료수를 보관하는 냉장고도 설치했다.
새로 온 아줌마랑 아저씨는 음료수 냉장고에 시원한 보리차를 보관해놨다가
우리가 언덕 위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언덕을 내려올 때
“ 얘들아 ” 하고 부른 뒤 플라스틱의 색색의 컵에 보리차를 따라 주셨다.
낯선 돼지 문방구에서 처음 보는 아줌마 아저씨에게
보리차를 받아먹는 것이 어색한 우리는 멈칫멈칫했지만
금세 익숙하게 되어
이제는 목이 마르면 돼지 문방구에 가서 보리차를 달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들은 돼지 문방구에 가는 것이 조금은 꺼려졌다.
‘ 혹시나 문방구에 김일성이 있으면 어쩌나? ‘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김일성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악랄한 괴수
똘이장군에서 봤던 돼지 괴수 김일성
얼굴은 돼지, 몸은 뚱뚱하고, 턱에는 혹부리 영감처럼 혹이 두 개나 있다.
우리 동네
돼지 문방구에는 돼지 괴수가 산다.
사실 괴수는 아니다. 김일성도 아니다.
우리가 김일성이라고 별명을 부친 사람은
돼지 문방구 아줌마의 남동생이다.
아줌마랑 아저씨가 외출을 하거나 공장에 물건을 떼러 가시면
김일성이 가끔 문방구를 지키곤 했다.
그 아저씨는 왼쪽 볼에 혹이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볼에 있던 혹이 점점 커지면서 빨간 속살들을 위로 밀어 올려
빨간 속살은 왼쪽 눈을 뒤덮어 버렸다.
왼쪽 볼은 터질 듯이 부풀어져 있고, 왼쪽 눈에는 눈알이 아닌 뻘건 속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우리들은 그 아저씨를 무서워했다.
그 아저씨가 문방구에 있으면 아무리 목이 타도 보리차를 얻어먹으러 들어가지 않았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우리가 그 아저씨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저씨도 우리가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우리가 문방구 근처로 오면
매형이나 누나를 부르고는 얼른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아저씨와 우리는 그렇게 암묵적인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저씨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것을 웃으며 바라보고
언덕을 신나게 달려 내려오는 것을 걱정스레 보고 있다는 것을
유리창 너머에는 그 아저씨가 항상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그 아저씨가 제일 걱정했던 그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과 언덕을 내려오며 달리기를 하다
나는 다리가 꼬이며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재수 없게도 흙바닥에는 깨진 병조각이 있었고
무릎의 살들이 쭈욱 찢어지고 말았다.
“ 악~~~ 악~~~ ”
솟아 나오는 빨간 피에 겁이 나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고
내 주위 아이들도 덩달아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내 옆에서 같이 우는 호달이
우리 엄마를 부르러 뛰어간 동주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간 경화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울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나가던 아줌마 아저씨들은
“ 어쩜 좋아? 빨리 집으로 가. 엄마 불러와 ”
등등 걸음을 멈추고 내 근처에 서 있었다.
“ 현아야 ”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문방구 김일성이다.
아니 아줌마 동생이다.
“ 네? ”
“ 현아야, 얼른 업혀. 병원 가자. ”
“ 아니에요, 괜찮아요. 애들이 우리 엄마 부르러 갔어요. ”
“ 그래? ”
“ 현아야, 너희 집에 아무도 없어. 우리 아빠도 없는데 어떡하지? “
숨을 헐떡거리며 동주가 뛰어온다.
“ 현아야, 문방구에 매형도 누나도 없어. 얼른 내 등에 업혀서 병원 가자.
깊게 찢어지고 병 조각도 박힌 것 같으니까 얼른 병원에 가서 뽑아내야 해.
안 그러면 피도 안 멈추고 흉도 남을 거야. 빨리 가자. “
“ 네 ”
나는 아저씨 등에 업혀 초등학교 옆 현대병원으로 갔다.
점점 몸이 더 풀리고 잠이 쏟아진다.
병원 접수처 간호사 언니가 내 이름을 묻고 주소랑 전화번호를 묻는다.
“ 보호 자세요? ”
“ 네? ”
“ 민현아 아빠 냐구요? ”
“ 아니에요, 우리 아빠 아니에요. ”
당황한 아저씨가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아저씨랑 나는 땅만 내려다보고 간호사 언니는 우리를 답답한 듯 올려다본다.
“ 그럼? 누구에요?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요.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요? “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암 말도 하지 않을 것 같다.
“ 우리 삼촌이에요. ”
“ 삼촌? 너희 삼촌이니? ”
“ 네 ”
“ 민현아, 삼촌 맞아요? ”
“ 네 ”
“ 얼른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마침 정형외과 선생님이 퇴근 안 하고 계셔서 다행이에요. ”
“ 아이구, 저런 피가 많이 났네. 쓰라리고 아프지?
따님이 크게 다쳐서 아빠가 많이 놀랐겠어요? “
“ 네? 그게..... 저...... 제가...... 얘 아빠가........ ”
“ 아빠가 여기까지 널 업고 달려오셨구나.
얼마나 예뻐하는 딸인지 알만하다. 아빠가 아직도 호흡이 거칠다. "
그러게. 우리 집에서 현대 병원까지는 걸어서도 십오 분이나 걸리는데
아저씨는 나를 업고 금방 병원에 도착했다.
“ 귀한 따님 인가 봐요.
옷에 이렇게 피가 뭍은지도 모르고 아빠가 달린 걸 보면
딸은 시집가면 그만인데. 외동딸이에요? 아니면 막내딸이에요? “
“ 네? 저...... 그게..... 사실은....... 제가, 현아 아빠가 아니....... ”
“ 무남독녀 외동딸이에요. ”
“ 어? 무담독녀? 너 그런 말도 알아? ”
“ 네 ”
“ 자, 무릎을 좀 구부려 봐. 다시 펴고
아프지 않아? 불편하거나 저리거나 뭐 그런 거 없어? “
“ 좀 쓰라리고 아파요. ”
의사 아저씨는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다 아저씨를 보다 웃었다.
“ 뼈에 이상은 없는 것 같고
힘줄이나 근육도 괜찮은 것 같아요.
찢어진 피부만 좀 꿰맬게요. 따가워도 좀 참아.
아저씨가 흉 안 지게 얇은 실로 꼬매 줄게. 넌 천운이다. 내가 퇴근 안 하고 있었던 게
안 그러면 무릎에 흉 남았을 텐데. 나한테 고마워해라. 알았지? “
“ 네, 감사합니다. ”
“ 당분간은 목발을 짚고 걷자. 잘못해서 터질 수도 있으니까 ”
서른 바늘이 넘게 꼬매고 우리는 병원 문을 닫고 나왔다.
“ 현아야, 괜찮아? 안 아파? ”
“ 아파요 ”
“ 걸어갈 수 있겠어? ”
“ 아니요, 못 걸어요. ”
“ 어떻게 하지? ”
“ 아저씨가, 아니 삼촌이 업어주세요. ”
“ 삼촌? 너 나를 삼촌이라고 부른 거야? ”
“ 네, 삼촌이 업어 왔으니까 갈 때도 삼촌이 업어주세요. ”
“ 그래, 가자. ”
삼촌은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쩐지 삼촌이 일부러 늦게 걸어가는 것 같다.
빨리 가는 길도 있는데 일부러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먼 길을 돌아가는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지 않아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잠이 스멀스멀 덮쳐와 정말로 눈이 감긴다.
해는 어느새 지고 하늘색은 금빛으로 물들어 간다.
“ 현아야, 다 왔어. 우리 동네야. 이제부터 걸어가. ”
“ 네? 의사 아저씨가 걸어가지 말라고 했는데요, ”
“ 내 등에 업혀 가면 김일성 딸이라고 애들이 놀릴 거야.
내려서 힘들어도 걸어 가. 살살 조심해서 걸어가면 돼. 나는 조금 있다 갈게. “
“ 삼촌, 책임감이 없으시네요? 아까는 외동딸이라고 해놓고? “
“ 내가 언제 그랬어? 네가 외동딸이라고 그랬잖아? ”
“ 삼촌이 딸이 아니라고 정정하지도 않았잖아요.
내가 거짓말할 때 가만히 있었으면서. 그건 내 거짓말에 동조한 거예요.
아빠라고 하는 건 안돼요.
우리 아빠는 사우디에 계시니까
대신 앞으로 삼촌이라고 부를 게요. “
“ 정말? 정말 나를 삼촌이라고 부를 거야? ”
“ 네, 그러니까 나를 조카로 무남독녀 조카로 대해 주세요. ”
“ 어 그래, 알았어. ”
“ 다리 아파요. 우리 집에까지만 업어주세요.
우리 오빠랑 언니들 이제 집에 있을 거예요. “
내가 등에 업혀서 동네로 들어가자
친구들이 언니 오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현아야, 너 괜찮아? ”
“ 많이 안 다쳤어? ”
“ 그런데 저 이는 누구야? ”
“ 그러게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
“ 우리 삼촌, 아~~~ 그게 아니고 돼지 문방구 아줌마 동생이에요.
이름은 김수철이에요. 나이는 아직 저도 모르고 미혼이에요. “
“ 어머? 현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
“ 우리 친해요. 삼촌 나랑 친하죠? ”
“ 응?...... 어..... 그래..... 친하지, 우리 친하지. ”
“ 뭐? 삼촌? 현아, 저거 벌써 삼촌이라고 부르네. 큭큭큭~ ”
“ 집으로 얼른 가. 엄마가 너 다쳤다고 전화받고 너 찾으러 여기저기 병원으로 다닌 거 같던데 ”
“ 네, 삼촌이 현대 병원까지 업고 뛰셨어요. ”
“ 뭐? 현대 병원, 그 먼데를? ”
“ 네, 거기에 정형외과가 있다고 거기로 가셨어요. ”
“ 수철이 총각, 고생했어.
저 바지랑 남방에 피 좀 봐. 현아 피가 다 묻은 모양이네.
현아 엄마가 신세 졌네. “
“ 그러게 결혼도 안 한 총각이 잘 모르는 동네 꼬맹이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갔데.
사람이 인정이 있네. 인정이 있어. “
“ 수철이 총각, 반가워. 앞으로 우리 인사하고 지내자고. ”
집에 들어가니 엄마 오빠 언니들 은동이 할머니 대전댁 아줌마네 모두 난리다.
“ 현아야~~~ ”
“ 너 어느 병원에 갔던 거야? 우리가 너 찾으러 여기저기 다녔는데. “
“ 저...... 그게...... 제일 큰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현대 병원에 다녀왔어요. ”
“ 여기서 거기를? 그 현대 병원을? ”
“ 네 ”
“ 아이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
“ 돼지 문방구집 아줌마 동생이라고 했죠? ”
“ 네 ”
“ 엄마, 동네 아줌마들이 엄마가 이 삼촌한테 큰 신세 진 거래. ”
“ 뭐? 삼촌? 벌써 삼촌이야? 너 아주~~~
내가 그렇게 내리막길에서 뛰지 말라고 했는데도 뛰어?
그래서 이 사단을 만들어? 내가 아주 속이 터진다.
수철이 총각, 암튼 너무 고마워요. ”
“ 엄마, 삼촌 바지랑 티에 묻은 이 피 내 피야.
엄마가 그때 피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지.
삼촌 집에 들어가서 아줌마한테 혼나겠다. 어쩌지? “
“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현아야, 이제 그만해. ”
“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
“ 그래요. 내 정식으로 인사하러 갈 게요. ”
다음 날
엄마는 시장에서 남자 바지와 티셔츠를 사서 나와 함께 돼지 문방구로 갔다.
아줌마는 별거 아니라며 새로 담근 겉절이가 맛있다고 접시에 담아주셨다.
나는 그 접시에 사라다를 담아 돼지 문방구로 다시 가져갔고
그렇게 돼지 문방구 아줌마와 우리 엄마는 이웃이 되었다.
“ 와~~~ 김일성이다. 도망가자. ”
아이들은 여전히 수철이 삼촌을 김일성이라고 불렀다.
“ 너희들 자꾸 수철이 삼촌한테 김일성이라고 부르면 같이 안 놀 거야. ”
“ 왜? ”
“ 수철이 삼촌이 나 다쳤을 때 저기 먼 병원까지 업고 뛰어가 줬는데
삼촌은 좋은 사람인데, 너희들이 자꾸 김일성이라고 놀리면 삼촌이 슬프잖아.
나는 만약 너희들이랑 수철이 삼촌 둘 중 선택하라고 하면
삼촌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나는 의리 있는 사람이니까 “
“ 그래, 이제 우리 그만 김일성이라고 부르자.
저 아저씨 좋은 사람 같아. “
“ 맞아. 우리 엄마도 저 아저씨 좋은 사람이라고 인사하고 다니라고 했어. ”
“ 그래 ”
친구들은 나처럼 수철이 삼촌을 삼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돼지 문방구에 삼촌만 있어도 우리는 문방구로 들어가 시원한 보리차를 달라고 했다.
삼촌은 이제 유리창 너머로 숨어서 우리들이 노는 것을 보지 않았다.
유리창을 나와 돼지 문방구 앞에서 우리들이 노는 것을 재미있게 바라봤다.
우리가 언덕을 여전히 뛰어 내려오면
“ 얘들아, 그만 뛰어. 다쳐. 위험해 ”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 수철이 삼촌, 이리 와. 이리 와서 우리랑 같이 뛰어.
언덕을 뛰어 내려오면 정말 재미있어. “
우리는 삼촌에게 손을 흔들어 불러댔다.
“ 빨리 와. 삼촌, 한 번만, 한 번만 우리랑 같이 뛰어봐. 정말 재미있다니까 ”
어느 순간부터 삼촌은 우리랑 언덕을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삼촌은 깔깔깔 웃으며 우리보다 먼저 뛰어 내려갔다.
수철이 삼촌은 바람 같았다.
“ 삼촌, 좀 천천히 뛰어. 맨날 삼촌이 일등이잖아.
어른이 왜 맨날 우리를 이기려 들어? 자꾸 그러면 삼촌이랑 안 놀 거야. ”
아이들의 볼멘소리도 들려왔다.
오늘도 돼지 문방구 아저씨가 나를 무릎에 앉히고 뽀뽀를 하며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고 계셨다.
내가 없는 틈에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언덕을 올라가서 또 달리기를 하고 있다.
이번에도 아이들 틈에 수철이 삼촌이 있다.
또 수철이 삼촌이 일등이다.
수철이 삼촌이 넘어질까 걱정스럽다.
“ 삼촌, 수철이 삼촌, 그만 뛰어.
그러다 다쳐. 그러다 넘어진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