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3 칵테일 사랑

by 옥상 소설가

“ 얘들아, 이게 뭐지? ”

“ 어? 선생님, 잘 모르겠는데요. ”

“ 나는 저거 본 적 없는데....... ”

“ 책상인가 서랍에서 저걸 본 거 같은데. 우리 언니 방에서.

우리 언니가 저걸로 뭘 하던데. ”

“ 맞다. 저거 우리 엄마가 오빠 때릴 때 쓰는 거야.

나도 한 번 맞아봤는데 그렇게 아프지는 않더라고. ”

“ 안 아팠어? ”

“ 응, 회초리보다는 덜 아파. ”

" 회초리? 그건 또 뭐야? “

“ 나나 동생이 잘못했을 때 엄마나 아빠가 그걸로 때리는 거야. ”


아이들은 자 하나를 가지고

보고, 듣고,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부모님들이 들으면 얼굴이 벌게진 이야기들도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린다.

‘ 아휴~ 저 애송이들

자를 모르다니? 언니 오빠가 쓰는 걸 못 봤구나.

나는 그림 그릴 때나 길이를 잴 때 이미 사용하고 있는데

내가 가르쳐 줘야겠다. ‘


“ 선생님, 그 물건의 이름은 자 입니다. ”

“ 그래요. 현아가 잘 알고 있네.

이것의 이름은 자 에요.

물건의 크기나 길이를 알아볼 때 사용하는 거예요.

얼마나 긴가? 짧은가? 알아볼 때 “


사랑반 선생님은 자를 가지고 여러 가지 물건들의 길이를 재보기 시작했다.

크레파스, 스케치북, 연필, 치마, 머리카락, 장난감, 책상, 의자

친구들은 선생님이 걸어 다니면서 자로 길이를 재고 숫자를 불러 주실 때마다

그 숫자들을 따라 말하기도 하고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선생님은 숫자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 우리 다음 시간에는 숫자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


선생님은 이제 숫자를 알려주시려나 보다.

우리 반에 아직도 열 까지 못 세는 아이가 있었다.


‘ 이럴 수가? 열까지도 못 센다고?

나는 주산학원을 다니면서 나눗셈까지

간단한 것들은 암산까지 하는 데

열을 못 세다니.....

아무래도 내가 우리 사랑반 친구들에게 숫자를 좀 가르쳐야겠어. ‘


아이들에게 숫자를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김동주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선생님, 자는 길이를 잴 때도 사용하지만 다르게도 쓰입니다. ”

“ 어? 다르게도 쓰인다고? ”

“ 네 ”

“ 어떻게? ”

“ 우리 아빠는 매일 자를 가지고 이렇게 사용하십니다.

선생님, 그 자 좀 빌려주세요. “

“ 그래, 나와서 보여 줘 봐. ”


김동주는 선생님이 서 계신 칠판 앞으로 당당히 걸어 나갔다.


‘ 자 를 동주 아저씨가 어떻게 매일 사용한다는 거지? ’

동주는 긴 자를 선생님으로부터 건네 받더니

갑자기 자기 등에 스윽~ 넣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 아우~ 시원하다. 시원해. ” 하면서 등을 긁기 시작했다.


“ 어! 어! 와! 하하하~ ”

사랑반 선생님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고 있다 선생님이 웃으시자 따라 웃기 시작했다.


“ 그러네, 그렇게도 사용할 수 있네.

동주 아빠가 자를 잘 사용하시네. “

“ 네, 저번에 엄마랑 아빠가 싸우실 때 효자손이 부러지면서

우리 아빠는 효자손 대신 이 자를 가지고 등을 긁을 때 사용합니다.

저도 한 번 등을 긁어 봤는데 효자손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시원했습니다. “

“ 그래, 동주 아빠는 아이디어가 참 좋으시다. ”

“ 네 ”


동주는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자리에 돌아왔다.


‘ 동주야, 그게 자랑이니? ’


한심하게 동주를 바라보자 동주는 나를 향해 씩 웃는다.

‘ 어휴~ 쟤가 언제 철이 들까? ’


소망반 선생님인 동주 엄마가 우리 반에 들어오자

우리 선생님이 갑자기 자를 등에 넣고는 벅벅~ 등을 긁으며 동주 엄마를 향해 웃으셨다.

동주 엄마가 어이없어하면서 쳐다보자

우리 선생님이 동주 엄마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하셨다.

동주 엄마가 얼굴이 벌게지면서 크게 웃으시더니

동주를 한 번 쳐다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망반으로 돌아가셨다.


동주는 친구들 앞에서 자를 등에 넣고 여전히 등을 긁고 있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철없는 동주를 보자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 동주야, 적당히 좀 하자. ’




다음 날 아침

소망 반 선생님 아니 동주 엄마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 제가 오늘 현아를 못 데리고 갈 것 같아서요.

우리 동주가 밤새 설사를 하네요. ”

“ 네? 동주도요? 우리 현아도 계속 설사를 하는데.

어제 선교원 음식이 상했었나? “

“ 오늘 출근을 해보면 알겠죠.

동주랑 현아만 설사를 하는지, 다른 아이들도 그런지.

현아, 열이 나거나 심하지는 않죠? ”

“ 네, 배가 아프다고 하고 밤새 설사만 했어요. “

“ 동주도 현아랑 비슷한데 미열이 좀 나요. ”

“ 그럼 오늘 동주 아빠가 동주를 보겠네요? ”

“ 네, 센터에 가실 일 있으면 동주 아빠한테 현아 맡기세요. ”

“ 아니에요, 괜찮아요. ”


소망 반 선생님은 동주를 아저씨한테 맡기고 선교원으로 가셨다.

믿음, 사랑, 소망 반 친구들

어느 누구도 우리처럼 설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주랑 나만 밤새 설사를 했겠지.




어제 오후

동주는 우리 집에 찾아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동이 언니는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 현아야,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

“ 뭔데? ”

“ 어젯밤에 엄마랑 아빠가 맛있는 걸 먹더라고. ”

“ 어젯밤에? 아줌마랑 아저씨랑? 둘이서? ”

“ 응, 내가 좀 달라고 하니까 안 된다고

어른들만 먹는 거라고 하면서 둘이서만 먹었어. ”

“ 뭘? ”

“ 자, 봐 바 ”


동주는 냉장고에서 사이다 환타 콜라 우유 식혜를 들고 나왔다.

“ 이걸 왜 다 가지고 나와? ”

“ 어제 아빠가 음료수 세 개를 섞어서 먹었어. ”

“ 음료수? 세 개를 섞어서? ”

“ 응, 뭐라고 하더라?...... 칵, 각, 컥 칵테.....

이름은 잘 모르겠어.

암튼 어른들 마시는 음료수 두 개랑 레몬 뭔가를 가지고 와서 막 섞더니 예쁜 잔에 따라서 마셨는데

엄마랑 아빠가 정말 맛있다고 좋다고 하셨어.

사 먹는 것보다 아빠가 만들어 준 게 더 맛있다면서

내가 만들어줄게. 우리 둘이서 먹자. “

“ 그냥 따로따로 먹는 게 낫지 않아?

나는 오렌지맛 환타가 제일 좋은데 ”

“ 아냐, 우리 아빠가 뭐든 섞어서 먹는 게 젤 맛있데.

네가 환타를 좋아하니까 환타를 좀 많이 넣어줄게. “


동주는 큰 대접을 가지고 나와

사이다, 환타, 콜라, 우유, 식혜를 붓고는 국자로 젓기 시작했다.


“ 현아야, 너 젤리 좋아하지? 레몬맛 사탕두? ”

“ 응? 왜? ”


동주가 젤리, 레몬사탕, 젤리뽀, 초콜릿을 가지고 나오더니 그 안에 넣기 시작했다.


“ 이건 왜 또 넣어? ”

“ 얘네들도 맛있으니까 섞으면 분명 더 맛있어질 거야. ”


젤리를 자르고, 사탕과 초코를 녹이고, 젤리뽀를 으깨면서 섞자 음료수는 점차 걸쭉해지기 시작했다.

색깔도 세상 처음 보는 색이며

뭔가 찐득한 것이 좀 이상했지만 냄새는 썩 나쁘지 않았다.


“ 자, 마셔봐. 현아야 ”

“ 응? 좀 이상할 것 같은데. 안 마시고 싶은데. ”

“ 아냐, 괜찮아. 맛있을 거야. ”


동주가 컵 가득 자신이 제조한 음료수를 따라주었다.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동주를 따라 마시다 잔에 있는 음료수를 다 먹었다.

세상 특이한 맛이지만 레몬 향이 있어 먹을 만했다.


“ 음~ 맛있지는 않은데 맛없다고도 할 수 없는 오묘한 그런 맛이야. 정말 다시 마시고 싶지는 않다. “

“ 정말? 나는 맛있기만 한데 ”


동주는 실망하는 빛을 조금 보이다 대접에 남아있는 음료수를 자기가 다 마셔버렸다.


“ 동주야, 안 먹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기분이 좀 이상해.

아무래도 나 집에 가야겠다. “

“ 그래, 잘 가. 내일 보자. ”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두 세 시간쯤 지났을까?

뱃속이 싸해지더니 살살 배가 아프면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갔더니 설사가 좌~ 악 나온다.

저녁을 먹으라고 엄마가 상을 차렸지만

도저히 배가 아파서 밥을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엄마, 나 오늘 일찍 잘 게. ”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안 온다.

배가 너무 아프다.

뱃속에 뱀 여러 마리가 들어가서 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 아~ 배 아파. ’ 다시 화장실로 달려가 설사를 한다.

‘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더 나올 것도 없겠다. ’


겨우 잠이 들었다.

모두들 잠든 한 밤 중

나는 설사가 나올 것 같아 잠이 깨 다시 화장실로 갔다.


‘ 오~ 이런 맙소사!!! ’


힘겹게 걸어가다 마루 한가운데 그만 설사를 참지 못하고

그것들을 쏟아내고 말았다.

‘ 이 설사는 분명 김동주가 만들어 준 괴상한 음료수 때문이야. ’


나도 모르게 갑자기 동주를 향한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야채, 과일 할머니한테 들은 욕들이다.


‘ 내가 이렇게 욕을 잘하다니? 이걸 다 외우고 있었다니?


나에게 감탄을 하다 정신을 차렸다.

욕이고 뭐고 얼른 이 흔적들을 치워야 한다.

작은 언니가 알면 또 동네방네 소리를 지르고 소문을 낼 것이 분명하다.

마룻바닥에 노란 설사를 휴지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한 참을 치우고 나니 기운이 다시 빠진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바지와 팬티를 빨아 겨우겨우 옥상에 올라가 그것들을 널었다.

그제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고 얼마되지 않아 아침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설사를 하지 않았다.

배도 많이 아프지 않고

엄마가 끓여준 흰 죽을 먹고 나니 힘이 다시 나는 것 같다.

엄마는 옥상에 널린 내 잠옷 바지와 팬티를 올려다보더니

나를 한번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흰 죽을 먹었다.


“ 현아야, 엄마 센터에 갔다 올게.

집에 은동이 할머니랑 대전 댁 아줌마 있으니까

배 아프면 얘기해. “

“ 응, 갔다 와. ”


나는 기운을 차리고 마루에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 쾅 ’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동주네다.


‘ 동주가 설사가 심한가 보네. 대접에 있는 걸 다 마셨으니. ’


대문 밖을 나가보니

동주 아저씨가 동주를 등에 업고 어딘가를 간다.


“ 아저씨, 어디 가세요? ”

“ 동주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간다. ”


아빠 등에 업혀가는 중에도 동주는 나를 향해 웃는다.

동주가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고 있다.


‘ 뭐? 뭐라고 하는 거야? ’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동주에게 귀를 기울였다.

힘 없는 목소리로 동주가 속삭인다.


“ 뭐라고? 동주야, 너 뭐라고 했어? ”

“ 현아야, 내가 병원 갔다 와서 다 낫고 나면

맛있는 빵 만들어 줄게.

어제 아빠가 빵을 만들었는데 참 맛있었어.

내가 다 적어놨으니까 만들어 줄게. 우리 같이 먹자. “

“ 그래, 알았어. 병원이나 다녀와. ”


동주는 스르륵 눈을 감더니 아빠 등에 업힌 채 잠이 들었다.

안쓰러운 맘은 들었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 동주야, 네 마음은 고맙지만

이제 그만 만들고. 맛있는 거 사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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