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약국 할아버지와 칠면조 할머니

part 1

by 옥상 소설가

경화 약국

우리 동네 유일한 약국

경화 할아버지는 우리 동네에서 약국을 이십 년이 넘게 하셨다고 했다.

" 경화 할아버지는 매일 흰 와이셔츠에 검정 바지만 입고 다니시는데

경화 할머니는 지치지도 않고 아침마다 저렇게 패션쇼를 하시네 "


" 그러게, 옛날 기생질 하던 버릇을 못 고치고 저렇게 다니는데도

경화 할아버지는 웃기만 하시고 정말 양반이야. 상양반 "

" 경화 할머니는 참 남편복도 많다. "


매일 아침 꽃단장 후 양산을 쓰고 나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은 비단 고무신처럼 가볍고 화려했다.

할아버지는 오전 9시쯤 약국 문을 열었고 약국 정리가 얼추 되면 할머니가 약국으로 나가

할아버지와 정다움을 뽐내는 약국 쇼도 열어주셨다.

화장이 잘 먹거나 머리 염색이 잘 돼서 기분이 좋을 때 할머니의 미모에 찬사를 보내는

손님들의 방문이 있었거나 전 날보다 매출이 높았으면

약국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할머니로부터 박카스나 쌍화탕 등을 무료로 제공받는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 약사님, 감사합니다. "

" 나중에 집안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약값을 줘도 됩니다.

미안해하지 말고 고기를 많이 먹여요.

잘 먹어야 낫는 병이에요. "

" 네, 약사님이 지어 주신이 약 먹고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


경화 할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을 외상으로 주거나 무료로 지어 주시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것이 못 마땅해 인상을 썼지만 할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지는 못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시고 허락해주셨지만

할머니가 약국 경영해 참견하는 것은 일절 금하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이웃들에게 괴팍하게 굴거나 야박하게 구는 것을 보기라도 하시면

저승사자처럼 매서운 얼굴을 하고 망자를 데리러 온 듯 할머니를 쳐다보셨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시퍼런 기운에 놀라 얼른 자리를 피했다.


요사이 세상 무서울 게 없던 경화 할머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할머니의 안색과 표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한 나는 슬슬 할머니를 피해 다녔다.

경화 할아버지 약국 맞은편에 새 약국이 오픈을 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약국을 정리하고, 약국 앞을 비질하시는 동안

할머니는 맞은편에 새로 오픈한 경쟁 약국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새 약국에 누가 들어가고 나오는지

그 사람이 우리 동네 사람인지 아닌지

머무는 시간은 얼마인지

약을 사가는 지, 빈손으로 나오는지 유심히 지켜보셨다.


" 경화 약국 건너편에 생긴 새 약국 가봤어?"

" 아~ 한일 약국 말하는 거지? "

" 넓은 데다가 의자도 여러 개고 티브이도 있어 좋더라고"

" 약사가 세 명이라 약도 빨리 나와요.

설명도 친절하게 잘해주고, 갈 때마다 쌍화탕에 박카스에 비타민까지 주고

서비스도 그만이야. "

" 그래도 경화 약국 할아버지가 약은 잘 지어주시지. "

" 약이 좋은 거지. 사람이 좋은 건가? "

"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이제 곧 장마철인데 비가 오면

약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고 불편해서 이제 한일 약국으로 다니려고 "



경화 할아버지는

손바닥만 한 정사각형 모양 종이 한가운데 약을 놓고

손으로 일일이 접고 접어, 작은 집처럼 만든 뒤

포개고 포개서 뱀처럼 길게 연결해 약들을 봉투에 넣어주셨다.

기차와 같이 포개져 있는 약 봉투를 만질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의 투박하고 짧은 손마디를 만지는 것 같아 정감 있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봉투를 만질 때마다 왠지 할아버지가 ' 현아야 ' 하고 내 이름을 부르고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다.

한일 약국은 투명 비닐에 약이 담겨 있었고 열 기계로 마감한 듯 깔끔하고 선명했다.


건너편 커다란 한일 약국이 잘 되 갈수록

할아버지의 표정은 점점 초저녁처럼 어두워졌고, 낯빛은 밤이 깊어지듯 까매졌다.

말없이 웃으시던 모습도 보기 힘들어졌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곧았던 할아버지 등은 점점 굽어져 갔다.


" 경화 할아버지 요새 낯 빛이 요새 너무 안 좋지? "

" 어디 아프신 거 아니야? 많이 안 좋아 보이지? "
" 새로 생긴 약국으로 손님이 많이 가는 것 같아. 그러니 속이 상하지.

경화 할머니는 남편이 아픈데도 저렇게 꾸미고 어딜 다니는 거야? "


아줌마들은 할아버지를 걱정했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금박이 화려하게 박힌 새 한복을 맞추어 입고는 혼자만 기분 좋아 동네 이곳저곳을 마실 다녔다.



봄날 활짝 핀 개나리 꽃처럼 엄마 얼굴이 노랗게 떴다.


" 현아야, 얼른 경화 약국 가서 약 좀 받아와. "

" 알았어." 나는 할아버지의 약국으로 달려갔다.

" 엄마, 할아버지 약국 문이 닫혀있어. "

" 그래? 어디 가셨지? "

" 몰라, 자물쇠까지 달려 있는 걸 보면 어디 멀리 가신 것 같은데 어떡하지? "

" 아~ 너무 아픈데. 조금 있다가 다시 갔다 와. "

" 응 "

" 엄마, 아직도 문을 안 여셨어. "

" 현아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건너편에 새 약국으로 일단 갔다 와.

엄마가 너무 아파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약사님한테 이렇게 먹었다고 보여드리고 받아와. "


한일 약국 약사들은 건너편 약국을 자주 오가는 나를 아는 듯

이제부터 자주 오라며 약 봉투와 인심 좋게도 박카스를 식구들 수만큼 다섯 병이나 주었다.

비닐봉지에 약 봉투와 박카스 다섯 병을 담아 들고 나오는 데

무거운 비닐봉지만큼 내 마음도 무거웠다.

경화 약국은 하얀 약 봉투를 검은색 비닐봉지에 넣어 주셨는데

새로 오픈한 한일 약국은 노랑 비닐에 약국 이름도 커다랗게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었다.


' 할아버지가 노랑 봉지를 보시면 속상하실 텐데. '


걱정을 하며 신호등을 건너, 경화 약국 앞을 지나갈 때 약봉지를 허리 뒤로 얼른 숨겼다.


' 맙소사! 문 앞에 있어야 할 자물쇠가 없어. 할아버지가 돌아오신 거야.

한일 약국에서 나오는 나를 보셨을 거야. '


걸음을 멈추고 할아버지 약국 미닫이 문을 조심히 열었다.

할아버지는 문 앞에 서 계셨다.

검은 구름이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 할아버지, 약국 문이 잠겨져 있어서 집에 갔다가 다시 왔어요.

그래도 자물쇠가 계속 채워져 있어서 할 수 없이 건너편 약국으로 갔어요.

엄마가 속이 많이 아프셔서 빨리 가야 해요.

다음에는 저 약국으로 안 갈 거예요. “


할아버지가 묻지도 않으셨지만 나는 먼저 말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속상해할 것이 분명했고 왠지 의리를 배신한 친구처럼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처럼

나 자신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마음 아파할 것이 너무나 싫었다.


‘ 나는 의리 있으니까 동네 사람들처럼 저 한일약국으로는 안 갈 거야.

절대로, 절대로 한일약국집에는 안 갈 거야. ’


그동안 다짐했던 나의 약속을 어긴 것도 내 죄책감을 자극했다.

검은 구름이 걷히고 할아버지는 무지개처럼 빙그레 웃으셨다.

“ 현아야, 할아버지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어.

이제부터 할아버지는 병원에 자주 다니게 될 거야.

우리 약국 문이 자주 잠겨져 있을 테니까 약국 문이 잠겨 있으면 저 건너 한일 약국으로 가야 한다.

학교 앞에 약국은 네가 다니기에 너무 멀어. 그러니까 한일 약국으로 다녀라.

네가 저 약국으로 가도 나는 속상하지 않아.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한일 약국으로 다녀. 알았지?

어쩌면 이 약국을 이제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

“ 할아버지, 어디 아프세요? ”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 현아야, 우리 현아는 착하니까 지금처럼 엄마 약국 심부름은 네가 다녀야 해.

엄마가 속상하면 속이 더 아플 테니까 속 썩이지 말고, 하긴 네가 엄마 속을 왜 썩이겠니?

네 엄마는 좋겠다. 이렇게 착한 현아도 있고 자식들이 다 착하니

얼른 니 아버지만 사우디에서 돌아오시면 되는 데.

경화가 욕심부리고 너한테 고약하게 구는 것도 알고 있어.

내가 아무리 타일러도 경화가 말을 듣지 않는구나.

처음 본 손녀라 너무 오냐오냐 길러서,

할머니가 예뻐만 해서 경화가 그렇게 돼버렸어. 할아버지가 미안하다. “


“ 괜찮아요. 할아버지, 저는 아무래도 괜찮아요. ”

“ 아니야, 괜찮지 않지. 네가 속이 상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

너는 속이 깊어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야.

가끔 그런 너를 보면 나는 마음이 아팠단다.

현아야, 나는 네가 특별한 아이라는 걸 알고 있어.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말이야. “

“ 할아버지, 저는 착하지 않은데요.

우리 작은 언니도 그렇고, 경화도, 경화 할머니도 제가 착하지 않다고 하던데요? ”

“ 허허허~, 그건 네가 영리해서 사람들한테 잘 속지 않기 때문이야.

그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걸 너는 이미 갖고 싶어서 샘이 나서 하는 소리야.

현아야,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그 사람들은 네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자기 욕심이 아닌 너를 위한 말만 한단다. 그 소리가 진짜야.

살아오면서 너 같이 영특한 아이는 처음 봤어.

너는 네가 원하는 걸 잘 알고 있어. 그것을 남에게 쉽게 뺏기거나 설득 당하지도 않지.

그건 현아 네가 내 마음의 소리를 잘 듣기 때문이야.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거야. 그래야 행복할 수 있어.

남들이 하는 소리 말고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해. “


“ 마음의 소리요? 그게 어떤 거죠? ”

“ 네 마음에서 네 머리에 하는 소리 말이야. 네 귀에 조용히 스멀스멀 들리는 소리

아무도 없는데, 누구도 말하지도 않았는데 들리는 소리

그게 마음의 소리야.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

“ 어른들이나 선생님이 하는 소리보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해요? ”

“ 나이가 많은 어른이나 선생님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할 필요는 없어.

어른들이 항상 옳은 소리만, 맞는 소리만 하는 건 아니니까

어른들도 무엇이 맞는지? 옳은 지? 잘 모르는 때가 많거든

때로 자기가 무얼 말하고 있는지도 몰라. 습관적으로 말을 하니까

마음이 아닌 입으로만 얘기하기 때문이야.

마음으로 말하고 , 마음으로 들어야 해.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너는 이미 그걸 하고 있어. “


“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

“ 그래, 몰라도 괜찮아. 넌 지금처럼 그렇게 살면 되는 거야.

네가 원하는 데로 생각한 데로 그렇게 살아.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

“ 네 ”


그날 나는 할아버지가 왜 자꾸 내 머리를 쓰다듬는지

이제 마음 놓고 건너편 약국을 다녀도 된다고 말하시는지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그 말들을 알지 못했다.

얼마 후 약국 문이 닫혀서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볼 수 없을 때

영영 할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날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던 것들을 조금 알 듯했다.



모퉁이를 돌아 약봉지를 들고 상준이네 슈퍼 앞을 지나고 있었다.

한 낮이라 덥기도 하고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고 약봉지에서 박카스를 꺼내 마시고 있을 무렵이었다.

박카스를 처음 먹어 본 나는 달콤하고 알싸한 맛에 흠뻑 반해버려

‘ 한일 약국으로 가면 매번 이렇게 박카스를 마실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한일 약국으로 할아버지 몰래 다녀볼까? ‘ 고민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내 손에서 박카스 병이 튕겨져 나갔다. 눈 앞이 캄캄하고 뒤통수가 얼얼하다.

' 쨍그랑 ' 박카스 병이 땅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난다.


“ 악~~~ ” 외마디 비명이 내 입에서 터졌다.

“ 이 년, 네 이년 내 이럴 줄 알았다. 네 엄마가 시키든, 앞에 새 약국에서 약 받아오라고.

동네에서 오래 산 사람들끼리 의리가 있지. 마주 보고 산지가 오 년도 넘어가는 데

고새를 못 참고, 그 약국으로 가? 그 새를 못 참고 쪼르르 생쥐처럼 가서 약을 받아와. “


할머니는 온 동네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대문이 빼꼼히 열리고 가게에서 한 두 명씩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여름, 한낮의 소동. 재미있는 볼거리가 분명했다.


“ 할아버지 약국 문이 닫혀 있어서 한 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건너편 약국으로 간 거예요.

그럼 어떡해요? 거기라도 가야지. “

“ 뭐야? 아니 더 기다렸다가 할아버지 오시면 그때 지어오면 되지?

그것도 못 참니? 그것도 못 기다려?

참을성이 그렇게 없어서 너도 아주 잘 크겠다. “ 할머니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 아니, 그게 애를 때릴 일이에요? 그럼 약국 문을 닫질 말던가?

현아가 집에 돌아왔다 다시 돌아갔는데도 문이 닫혀서 새 약국으로 갔다는 데

그게 애를 때릴 일이냐고요? 경화 할머니, 그만 하시고 얼른 사과하세요. “

“ 그래요, 얼른 현아한테 미안하다고 해요. 남의 집 애를 때리긴 왜 때려요?

현아 아빠가 돌아오시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

“ 이 사람들이 다 경화네 약국으로 가야 해요? 그건 우리 자유지.

왜 그걸 가지고 할머니가 가라 마라 해요. 정말 이상한 할머니야. “

상준이네 아줌마도 지물포 아줌마, 안나 아줌마

모두 한 마디씩 거들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동네 아줌마들의 예상치 못한 참견에 할머니의 얼굴에 순간 무안함이 보인다.


“ 아니, 당연히 경화 할머니가 속이 상하지. 안 그래요?

이 동네에서 경화 할아버지가 약국을 하신 지가 이십 년도 넘어가는 데

돈이 없는 사람은 외상도 해주고, 어떤 사람은 약 값도 받지 않고 얼마나 잘해주셨어요?

건너편에 새 약국이 생겼다고 동네 사람들이 쪼르르 거기로만 가니

할아버지 속이 얼마나 상하셨겠어요? 경화 할머니도 그렇구요?

사람들이 은혜도 모르고 말이야. 은혜를 원수로 갚지. “


경화 할머니 단골 가게 진주 한복집 아줌마가 할머니 편을 들어주며 나오자

다시 할머니의 어깨가 칠면조가 날개를 펼치듯 쫙 펴졌다.

헐레벌떡 우리 엄마가 왔다.

상준이가 우리 집에 쏜 살같이 달려가 내가 경화 할머니한테 맞은 것을 말한 것이 분명했다.


‘ 아휴 저게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엄마가 속 상할 텐데 ’


상준이를 흘겨보다 갑자기 엄마를 보니 설움이 복받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 엄마, 엄마 약 어떡해? 박카스가 다 깨져버려서 약이 다 젖었을 것 같은데 “

“ 아니, 경화 할머니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현아가 몇 번이나 할아버지 약국에 가서 확인을 하고 그래도 잠겨있어서

제가 건너편 약국으로 가서 약을 받아오라고 했어요.

속이 너무 아파서 그러라고 했어요. 그렇다고 애를 이렇게 때리시면 어떻게 해요?

경화가 이렇게 맞으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

“ 아니, 우리 경화가 왜 맞아? 어디서 우리 경화를, 우리 귀한 손녀를 때려?

어디 내 손녀한테 손 만 댔다 봐.

내가 아주 그 손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테니, 아주 물어뜯어버릴 테니 “


“ 경화 할머니 너무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동네에서 그렇게 유세 떠시고 경화만 감싸고 도시는 거 아니에요.

볼썽사납기도 하고, 어른이 그게 무슨 짓이에요? 얼른 현아랑 현아 엄마한테 사과하세요. “

쌀집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다녀오다 보셨는지 얼굴이 벌게지면서 말씀하셨다.

“ 아니, 김 씨는 쌀 배달이나 제대로 해!

자기 마누라랑 애 새끼들 고생만 시키면서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 니 집구석이나 잘 챙겨! “

“ 뭐라고요? 아니 이 노친네가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내가 오늘은 참지 않을 거야. “


점점 싸움이 커져 나만 참으면 되었을 일이 동네 사람들 싸움으로 커져가고 있었다.

경화 엄마도 밥을 하다 튀어나와서 우리 엄마에게 사과를 하고 얼른 동네 창피하다고 집으로 가자고 해도

할머니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셨다.

칠면조, 할머니의 별명대로

할머니의 얼굴은 붉었다 파래졌다,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해가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무도 할머니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할머니에게 비난과 냉소, 비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점차 동네 사람들에게 주책 맞고, 경우 없는 늙은 노인네로,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었다.

얼어붙어 있던 할머니를 움직이게 한 것은 경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약국에서 전화를 받고, 할머니를 말리러 상준네 슈퍼로 오셨다.


“ 그만하소. ”


할아버지는 할머니 혹은 동네 사람들에게 딱 한 마디만 하셨다.

찬물을 맞은 듯 사람들은 모두 조용했고, 할머니도 이제야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현아 엄마, 현아야, 할아버지가 정말 미안하다.

다 내 불찰이다. 다 내 잘못이다. 정말로 미안하다. “


그제야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이내 사람들은 집으로 가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다섯 발자국이나 걸음을 떼었을까?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경화 할머니가 운다고? '

동네 사람 어느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 그러게 왜 그렇게 가게 문을 열어 서는? 아프면 가게 문 닫고 쉬면 될 일이지.

의사가 그만 쉬라고 하면 쉴 일이지.

돈 없는 동네 사람들 걱정에 왜 문을 열어서는 이 꼴을 봐요?

이렇게 다들 당신을 배신하고 건너편 약국으로만 가는 데

왜 쓸데없이 고집을 피워서 병을 키워요? 이제 어떡해요? 이제 어떡할 거예요?

당신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당신이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나는 어떻게 살아요? “


할머니의 원망은 이제 할아버지로 향한 것 같았다.

아니 새 약국으로 옮겨간 동네 사람들로 향한 것 같았다.

애초에 경화 할머니의 분노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얼굴이 벌게져서 서둘러 집으로 갔다.

할머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한 듯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할머니를 쳐다보다 옆에 앉아 할머니의 울음이 그치기만을 기다리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울음이 멈추자 어깨를 토닥이다 할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가셨다.

그렇게 모두들 머쓱해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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