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괜찮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세희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 세희야, 엄마가 화장실에서 쓰러지셨어.
준호가 학교 마치고 집에 와서 엄마를 발견했어. 119에 전화해서 엄마 병원으로 갔어.

애가 많이 놀랐어. 지금 엄마는 수술실 들어가 있고 내가 여기 있어.

이따 퇴근하고 시간 되면 들러. 큰 언니도 올 거야.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수술 잘 될 거야. “

“ 언니, 어떡해? 우리 엄마 어떡해? ”

“ 울지 마, 괜찮을 거니까 이따 보자. ”


일을 하면서도 내 정신이 아니다.

토끼눈처럼 빨갛고 눈물이 차올랐다가 주르륵 흘러버린다.

대리님은 외근 갔다고 말할 테니 얼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지만

이미 많이 써버린 휴가로 더 이상은 무리다.

엄마가 수술 중인 병원은 회사 근처였다.

엄마는 수술실에서 나와 회복실에 있었다.

나를 보고 웃는다.


‘ 뭐가 좋다고? 내가 뭐가 좋다고?

아프다고 쓰러졌다고 했는데도 퇴근하고 이제야 오는 딸이 뭐가 좋다고 웃는 거야? ’


엄마의 웃는 모습이 보기 싫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다시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보고 웃고 있다.


‘ 엄마, 바보 같은 엄마 ’


지후는 12시가 넘어서야 올 수 있었다.

쓰러지고 바로 수술을 했으면 심하지 않았을 텐데

일단 막힌 뇌혈관을 뚫어주는 수술을 하고, 디스크 수술도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운이 좋으면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지만 몸의 한쪽이나 다른 부분이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원래 디스크가 있었는데 바닥에 넘어지면서 충격으로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엄마에 대한 신경은 쓰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끄고 살았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오래간만에 느껴본 해방감에 나는 친정 일에 무신경해지려 노력했으나

마음 한 구석에는 쌀 한 가마니가 놓여있는 듯했다.

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것의 존재감은 묵직했고, 내 시계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었지만

언니들과 형부들은 엄마를 힘겹게 업고 걸어가고 있었다.

‘ 엄마는 왜 갑자기 쓰러진 것일까?

내가 시집을 간 후 왜 쓰러진 것일까? ‘


결혼식 전에 혼수 문제로 엄마와 다퉜던 일도 생각나고,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톡톡 쏘고 따지기 좋아하는 내 성격은 엄마의 속을 여러 번 뒤집어 놨을 것이다.

언니와 형부들 모두 모여 의논이 시작됐다.

뇌혈관과 디스크 수술비와 입원비, 앞으로 수개월간 병원비가 나갈 것을 의논했다.

건강 보험이 있지만

엄마가 전에 가입한 개인 보험은 큰돈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비용은 간병비였다.

모두 출근을 해야 하므로 낮에는 필히 간병인이 있어야 하고

저녁 시간 간병은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 너희는 얼른 집 장만이나 해. 집을 사야 돈이 모인다.

아끼고 절약해서 얼른 돈부터 모아. “


갓 결혼한 우리 부부는 수술비와 입원비를 부담하지 말라고 했다.

어서 집 장만이나 하라고, 여력이 있는 언니들끼리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나는 미안해서 출, 퇴근을 여기서 하겠다고 했다.

비용이 비싼 저녁 간병비만이라도 줄이자고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았다.


당분간은 내가 저녁에 있기로 했다.

회사도 가까우니 병원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이면 출근을 해도 괜찮았다.

지후에게는 사정을 말하고 밥은 알아서 챙겨 먹거나 사 먹으라고 했다.

가끔 대방동 집에 들러서 집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밑반찬도 만들고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지후가 불편하지 않게 손을 써 놓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침대 옆 간이 침상에서 잠을 자면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마음이 편하자고 한 결혼인데

결혼 후에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언니들에게 커다랗고 무거운 짐을 맡겨놓고 나는 훌훌 가볍게 산보를 간 느낌이다.

그들은 땀을 흘리면서 무거운 짐을 이고 가고 있는 데

나는 산뜻한 모자에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혼자 명랑한 발걸음으로 총총대고 걸어가고 있다.

그 발걸음은 언젠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겠지.

무릎에 피가 나고 상처가 생기고 딱지가 남겠지.

뽀얀 피부의 얼룩진 흔적을 보면서 후회할 내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 그래 어쩌면 지금이 기회인 거야.

엄마랑 나랑 둘이서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거야. ‘


결혼하고 잘 만나지 못했다가

병원에 엄마랑 둘이 있으니 이것저것 못다 한 얘기가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을 한 지금까지

모든 것들이 이야깃거리이다.


엄마랑 이렇게 편안히 수다를 떨어본 적이 있는가?

엄마는 내 결혼 생활의 얘기를 몹시 궁금해했다.

특히나 시부모님들이 잘해주시는지 많이 신경 쓰여했다.

집에 나만 모르는 일들이 참 많았구나.

친정 식구들 모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예 말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몰랐었던 일들을 들으면서 ‘ 내가 결혼을 하긴 했구나. ‘ 실감이 다시 났다.

친정 식구들은 그저 우리 둘이서 잘 살기만 바랄 뿐이었나 보다.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간간히 지후에게 전화를 해서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안부를 묻곤 했다.

지후도 장모님이 잘 계시는 지 전화를 하곤 했다.


“ 장모님 괜찮으세요? ”

“ 응, 강서방. 나는 괜찮아.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걱정 말고 일 봐.

세희가 여기 와 있으니 외롭지? 내가 얼른 보낼게. “

“ 아니에요 저도 혼자 있으니 잔소리 듣지 않아서 좋고

친구들이랑 총각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재미나요. “

“ 그래,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 잠은 집에 가서 자야 해. ”

“ 네, 잘 드시고 주무세요. ”


엄마는 막내 사위의 전화를 좋아하셨다.

나도 간간히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지후가 고마웠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시어머니였다.

당장 집으로 들어오라는 전화.

이제 친정엄마의 간병은 그만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갑자기 내가 가버리면 언니나 형부도 오기 힘든데

엄마가 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몸을 닦아주는 것,

소변 줄이며 휴대용 변기 청소를 하게 하는 것도 불편해할 것이 뻔했다.

나는 적으로 사방이 포위된 체 나갈 구멍을 찾아 헤매는 패잔병처럼 당황해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다.

“ 어머니, 간병인 구할 때까지만 며칠만 더 있을게요. ”

“ 아니, 당장 오너라. ”

“ 어머니. 당장 오늘 밤부터 엄마 옆에 있어 줄 누군가를 구해야 해요.

지금 일어서지도 못하세요.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

“ 오늘 저녁에 퇴근하면서 오너라.

시집간 딸이 일주일 째 집을 비우고 친정 엄마 간병했으면 충분히 다 한 거야. 아니 과하다.

지후 얼굴 좀 봐라. 얼굴이 아주 퀭하고 차림새가 꼬질 하니 나는 더 이상 못 보겠다. “

“ 네, 알겠습니다. ”

일방적인 최후통첩이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났다.

이 서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엄마를 돌 볼 힘도 여력도 없는 무능한 막내딸


‘ 엄마, 엄마, 불쌍한 나의 엄마. ’


“ 언니, 시어머니가 당장 오라고 하시네.

오빠가 피곤해하고 밥을 잘 못 먹었나 봐. 속상하신지 얼른 오라고 전화가 왔어.

어떡하지? “

“ 됐어. 얼른 가. 그 정도 했으면 잘한 거야.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화가 나 실수도 있어.

얼른 가서 일해.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

“ 언니, 미안해. 정말 미안해. ”


‘ 나는 맨날 하는 것도 없어. 항상 미안하단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해.

수치심 이란 게 나한테는 없나 봐.

왜 이렇게 나는 미안하단 말만 되풀이하며 살아야 할까?

언제쯤 미안하단 말을 나는 하지 않고 살아갈까? ‘

“ 뭘 미안해, 그럴 필요 없어.

둘이서 재밌게 잘 살면 되는 거야.

엄마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알아서 다 마무리할 테니까

넌 회사일이나 하고 얼른 집 장만하고 잘 살 궁리나 해. “

언니는 퇴근하면서 병원으로 바로 갈 테니 걱정 말라고 곧 간병인을 구할 테니 어서 가라고만 했다.

그렇게 나를 항상 안심시켰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가버리는 내가 밉지도 않은 지

원망스럽지도 않은 지 항상 괜찮다고만 말한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힘든 일을 피해 가는 얄미운 나

그런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한심했다.



“ 엄마. 나 가야 할 것 같아. ”

“ 왜? 갑자기? ”

“ 시어머니가 빨리 오라고 하시네. 오빠가 좀 힘든가 봐. ”

“ 그래, 얼른 가봐. 네가 고생했다.

언니랑 형부들이 알아서 할 거야. 내가 챙겨놓은 돈도 있고 하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여기서 출퇴근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엄마가 마음이 아프네.

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

곱게 잘 키워서 시집보내고 싶었고, 시집가서도 든든한 친정이 돼 주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내 욕심만 차렸나 보다.

이혼하지 말고 내가 더 참고 살았어야 했어.

이혼하고 고생한 것은 후회가 안 되는 데 너 유학 갔다 다 포기하고 돌아온 거

공부하면서 일하느라 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거

시집갈 때 제대로 해주지 못한 거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하다.

오빠며 언니들은 모두 결혼식까지 다 보내줬는데.

내가 참았어야 했어.

네가 유학 가고 아빠랑 둘이서 살 때 너무 힘이 들었어.

더 그렇게 살다가는 미칠 것 같아 내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는 데

너를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너 시집보낼 때까지만 하더라도 참았어야 했어.

내 걱정이나 친정 일은 걱정하지 말고 너희만 생각하고 살아.

너랑 강서방 그리고 시댁만 생각하고 살아.

나는 괜찮으니까. "


모두들 다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 괜찮다 '라는 말이 싫다.


' 괜찮다 ' 힘이 없는 약자가 자주 하는 말

나를 신경 쓰지 말라는 말,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일 때

표현해도 수용되지 못하는 것을 미리 알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다.

괜찮지 않을 때 강자는 불편하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과감하다. 숨김이 없다.

나는 어느새부턴가가 ' 괜찮다. ' 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고

말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나 때문에 , 나로 인해

엄마와 친정식구들이 ' 괜찮다 ' 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어느새부턴가 ' 괜찮다 ' 라는 말은 내게 ' 괜찮지 않아요 ' 로 내게 들린다.

엄마는 푸념인지 미안함인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울고 계셨다.


한 때는 원망도 했었다.

원하는 공부도 끝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엄마를 계속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남편이라면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나의 인생만큼 엄마의 인생도 소중한 법이니까


남은 인생을 그렇게 살라고

내가 학업을 마치고 결혼을 할 때까지 한 사람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다만 고진 삶을 살아온 엄마가 너무나 불쌍했다.

한 여자로서의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고 쓸쓸했다.


네 명의 자식을 낳아 기른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엄마로서 만의 삶을 살아간 것을 감사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은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쓸쓸함이 허무함이 엄마를 좀 먹어 버릴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지금은 힘이 없어. 어리기도 하고 능력도 부족해.

내가 능력이 생기면 정말 잘해줄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


나는 언니들이 올 때까지 엄마 옆에 기다려 주지도 못하고 바로 시댁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좌석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며 한 없이 눈물이 흘렀다.

창밖이 뿌옇다. 이럴 때는 비가 와야 하는 데

서러움 한스러움이 빗물처럼 흐른다.

아픈 엄마를 돌보지 못하는 서러움이다.

' 나의 서러운 뒷모습은 엄마를 얼마나 슬프게 할까? '

지후가 원망스러워진다.


' 자기 아내를 그렇게 보호해주지도 못하는 가?

어머니에게 그 정도의 얘기를 해주지도 못 할까?

사위도 엄연히 자식인데 그 정도도 못해줄까?

자기 엄마가 우리 엄마처럼 아프면 지금처럼 나 몰라라 행동할 까? '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우리 부부의 모든 것이 시어머니께 간섭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부부의 일이다.

아들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독립된 하나의 가정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간섭하실지.

친정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가 합의를 했다면 상관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아들이 밥을 못 먹는다고 그렇게 노여워해야 할 일인가?

놀러 간 것도 아니고 친정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에 간병을 간 것인데..

본인도 여자이면서

친정 엄마가 돌아가실 때 슬퍼했을 것이 분명했을 텐데

며느리이면서 딸인 내 입장을 이해해 주는 것이 힘들 까?


' 아니다, 나를 한 사람이 아닌 강 씨 집안으로 들어온 며느리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


나의 슬픔과 아픔을 고려하지 않고 본인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맞게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치마 속에 숨어있는 지후가 보이는 것 같다.

순식간에 감정은 슬픔에서 분노로 변한다.



‘ 그래 그렇다면 나도 내 욕구를 말하고 살아갈 거야.

이제 더 이상은 괜찮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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