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딱선 '
현재 내가 탑승한 배 이름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느새 나는 ' 삐딱선 '을 타고 있었다
커다란 유람선을 선택해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을 즐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 나는
' 내 배는 유람선이 아닌 삐딱선이구나 '
결심하고 유람선에서 내려 삐딱선에 올라탔다
때로 나는 삐딱선을 타고 여행하다
초호화 대형 유람선을 타고
나에게 여유 있고 유유하게 손을 흔들어 대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유람선에 다시 올라타고 싶은 강한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힘겹게 노를 저어야 하는 아픈 팔
강한 햇빛에 노출되어 까맣게 타버린 얼굴
낮과 밤을 혼자 보내는 외로움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다
항상 노를 젓는 것은 아니다
때로 바람이 내 삐딱선을 밀어주기도 한다
유람선에 타고 있으면 환한 빛으로 인해
밝게 빛을 내는 별을 보지 못한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자유로움이다
내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고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자유로움과 책임의 딜레마에서 나는 자유로움을 선택했다
' 까짓 거 책임지면 되는 거지
나답게 살다가 죽고 싶어 '
때로 자신의 삐딱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내 배와 다른 삐딱선을 구경하는 것은
삐딱선을 선택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재미있고 유쾌하며 통쾌하다
함께지만 각자이기도 한 '우리'
삐딱선에 타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내게 '타인' 이 아니다
그들은 내게 '우리'이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배를 밧줄로 묶어 잠시 항해를 같이 하기도 하지만
다시 자신만의 바다로 떠난다
그리고 배와 그가 혹은 그녀가 안녕해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나는 '삐딱선'을 타고 여행 중이다
분명 삐딱선과 유람선에서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 갈등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삐딱선' 이 위험하지만은 않다고
어쩌면 초대형 유람선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후회할지 모른다고
이제 나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내가 이 '삐딱선'에 올라탄 이유와 그간의 항로들
배 선택을 미루고 참고해도 좋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
그게 나이 든 사람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니까
chapter 1 나의 배 선택
사람들은 저마다의 배가 있다
그리고 항해해야 할 바다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바다를 여행해야 한다
그러기에 자신만의 배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배를 결정해 승선과 하선을 반복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승선 하선
또 다시 배를 선택해 승선 하선
각자의 취향대로 배를 선택해 바다를 여행한다
사람들은 바다를 5대양으로 나누었지만
사실 바다는 하나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위대하고 절대적인 바다를 다섯개의 이름으로 쪼개 놓았다
자애롭지만 잔인하기도 한 바다는
그런 인간들이 가소롭고 더 이상 오만방자하지 못하도록
태풍을 일으켜 배를 좌초시킨다
하지만 바다는 이내
멋진 풍경과 먹거리들을 인정스럽게 내어준다
우리가 여행기간 내내 겸손하고 착하게 살아간다면
분명 우리의 여행은 평화로울 것이다
비딱선은 대형 유람선에 비해
크기가 작고 속도가 현저히 느리며 불편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단점은 불안함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도 모를 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망망대해
그 바다 위 나 혼자 탑승해야 하는 삐딱선
작고 불안해 보이는 삐딱선을 선택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모험 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형 유람선을 선호한다
초호화 대형 유람선은 안전하며 편의시설이 훌륭하다
선장, 일등 항해사부터 선원들까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삐딱선은 주방과 화장실 안방 거실 나뉘지 않은
원룸의 열린 구조이다
편의 시설 없다
서비스 없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장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어
바다가 그 구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다가 곧 안방이며 거실 주방 화장실이다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배가 곧 바다인 셈이다
불안전이라는 지적에 대해
때로 폭풍우가 쳐서 삐딱선이 뒤집힐 뻔한 적도
비가 한동안 오지 않아 갈증으로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아사 직전까지 내몰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죽지 않았다
나 말고 다른 삐딱선에 탑승한 '우리' 도 여전히 잘 살아있다
죽지 않는다
겁내지 말자
출생으로 자동 승선된 가족이라는 바다
국민학교~ 대학교까지 강제적 비강제적 학교의 바다
친구들과 지인들의 바다
직장이라는 바다
결혼으로 승선한 시댁의 바다
내일은 내가 출생 후 강제적으로 여행한
가족이라는 바다를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