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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문-앵무새 죽이기

무문관

by 옥상 소설가

author 작가, 저자

authority 지휘권, 권한, 권위


'경험하지 않았으면 침묵하라 '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 ' by 비트겐슈타인

남의 상처, 고통에 대해서 모르면 경험하지 않았으면 말하지 마라


타인을 집중시킬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authority 가 있다

남이 시키는 데로 살지 않았다

지나가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갔다

자기가 경험했고 살았던 힘이 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때 말해야 하는지 침묵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꼰대

authority 가 없는 데 있다고 부리려는 사람

다 아는 척하는 사람


삼법인


불교의 세 가지 근본 교의(敎義).

인(印)이란 인신(印信)·표장(標章)의 뜻으로 일정 불변하는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이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온갖 물(物)·심(心)의 현상은 모두 생멸 변화(生滅變化)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불변·상존하는 것처럼 생각하므로

이 그릇된 견해를 없애 주기 위하여 모든 것의 무상을 강조하는 것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만유의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어서

실로 자아인 실체가 없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아(我)에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가지므로

이를 없애 주기 위하여 무아라고 말하는 것


③ 열반 적정인(涅槃寂靜印):생사가 윤회(輪廻)하는 고통에서 벗어난 이상의 경지인

열반적정의 진상을 강조하는 것


공 空

불교의 근본 교리 중 하나로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상


무아 無我

'나(自我)'라는 것은 없다 연속적이며 불변의 실체로서의 자아를 부정한다


'자아'와 '영원'을 의식하면 나의 변해가는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무상하다

'나', '나의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고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영원'을 꿈꾸면 고통스럽다


불립문자 不立文字

문자(경전의 문구이나 스승의 말씀)는 깨달음의 방편 수단일 뿐

진리의 깨달음은 문자를 떠나 곧바로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서 본성을 보아야 한다고 한다

경전의 문구 등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선종의 자유로운 태도를 표방하는 말

진리는 언어문자를 초월해 있다는 것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화두를 통과했으면 '자비'가 나타나야 한다

'내 것'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어야 한다


'사랑'과 '자비'는 강요가 아니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타인의 마음에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기는 어렵다

사랑은 스스로 자신이 끓어오르듯 자발적으로 올라와야 한다






교종 스님인 덕산 스님이 선종 스님인 용담 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하러 절로 찾아왔다

마침 어두운 밤이 되자 용담은 덕산에게 잠을 청하라 권했다

덕산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이 너무 어둡자 되돌아온 덕산은 " 바깥이 깜깜합니다 "라고 말했다

용담은 덕산에게 종이 등불에 불을 붙여 건네주었다

덕산이 받으려 할 때 용담은 등불을 꺼버렸다

덕산은 그때 깨우침을 얻고 용담에게 절을 했다


다음날 용담 스님은 법당에 올라 말했다.


"만일 이가 검이 세워진 수풀과도 같고 입이 피가 담긴 쟁반과도 같아서

방망이로 때려도 뒤도 돌아보지 않을 남자가 있다면

언젠가 홀로 우뚝 솦은 봉우리 정상에 나의 도를 세울 것이다. "


마침내 덕산은 주석서를 법당 앞에 들고 나와 횃불을 들고 나와 말했다


"불교의 모든 심오한 변론들을 남김없이 밝힌다고 해도 허공에 터럭 하나를 날리는 것과 같고

세상의 모든 질리를 모조리 갈파한다고 해도 물 한 방울을 거대한 계곡에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


이어 주석서를 바로 불태우고 용담 스님을 떠났다


자신의 삶을 당당히 주인공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말이나 글에 얽매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일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말이나 글

즉 문자란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속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선사들은 영원한 침묵을 선택했던 것일까요?

선사들이 부정하려고 했던 문자는 자신의 문자가 아닌 타인의 문자일 뿐입니다.


등불이 켜지면 등불로 환한 부분과 등불이 미치지 않아 어두운 부분이 구별되어 나타납니다

반면 등불이 꺼지는 순간 그런 구분은 씻은 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어떤 지식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감각과 느낌에 의해 알지 못하는 영역에 몸을 던져야 한다


덕산은 말도 하고 글도 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은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타인의 말이나 글이 아니라

자신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나 글 일 것입니다.

불립문자라는 슬로건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의 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말을 하는 것

그러니까 잃어버린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것 말입니다.








다시는 남의 글을, 보이기 위한 글을 쓰지 말아야지

멋있는 있어 보이는 남의 말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지 말아야지

내가 경험한 글만 쓰고 말해야지


남의 고통이나 상처에 대해

함부로 안다고 이해한다고 충고하지 말아야지

위선 떨지 말아야지

말을 줄여야지

침묵할 것에 익숙해져야지


모든 것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지


내 모습대로 살아야지

너로 너답게 살고 있는 너를 아껴야지


나의 등불을 켜야지

내가 아끼는 너의 등불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려야지


깊은 밤 짙은 어둠 속 빛나는

너와 나의 등불을 바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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