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소요유 : 목적 없이 하는 여행
여행의 종류
출발했고 목적지가 있다 => 오직 목적지를 향해가는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을 긍정하지 못한다 => 걸을 때마다 곤욕스럽다
=> 목적지에 집착하면 과정에 있는 하루하루를 허비할 뿐
출발은 했으나 목적지가 없다=> 집에서 나온 뒤 어디로 갈지 결정
목적지가 없으니 최단거리로 갈 필요가 없다 =>더 재미있고 여유 있다
길에 핀 꽃도 볼 수 있고, 새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우연히 달콤한 향이 나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 걸음걸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머무는 곳에서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자리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고민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참'되지 않다
동산 스님이 설법하려고 할 때 운문 스님이 물었다
"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나 왔는가? " 동산은 " 사도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운문 스님이 " 여름에는 어디에 있었는가? "라고 묻자
동산은 " 호남의 보자사에 있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바로 운문 스님이 " 언제 그곳을 떠났는가? "라고 묻자
동산은 " 8월 25일에 떠났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운문 스님이 말했다
" 세 차례 후려쳐야겠지만 너를 용서 하마 "
동산은 다음 날 다시 운문 스님의 처소로 올라와 물었다
" 어저께 스님께서는 세 차례의 몽둥이 질을 용서하셨지만
저는 제 잘못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러자 운문 스님이 말했다
" 이 밥통아, 강서로 그리고 호남으로 그런 식으로 돌아다녔던 것이냐! "
이 대목에서 동산은 크게 깨달았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머무는 곳에서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자리이다
"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어서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소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탈한다는 것 그래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일체의 외적인 권위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당당한 주인공이 된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부모나 친척이 과거
부처나 조사는 미래
수행자는 부처나 조사가 되려는 사람이자 동시에 출가 전 과거에는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조카
결국 미래를 끊고 과거를 끊어야 해탈할 수 있는 것
미래와 과거를 끊었을 때 우리는 현재에 있게 됨
나는 여행을 가기 전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가는 편이다
목적지 중간중간의 맛집과 속소를 철저히 알아보고 예약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곡선의 국도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이동 거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직선 도로인 고속도로를 달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배는 교통수단에서 항상 제외했다
아니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여행지는 리스트에서 생략했다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비행기를 선호한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 그곳에서 최대한 머무르고 싶다
지름길이 있는데 멀리 돌아가는 것은
여정에서 풍경과 경치를 보고 즐기기 위해 멈추는 것은
미련하고 손해보는 것만 같았다
장소와 시간을 정해놓고 흐트러짐 없이 타이트하게 이동한다
타인들이나 지인들이 미리 여행하거나 먼저 가 본 사람들이 추천하는 장소
혹은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장소들로 반복해서 떠난다
익숙한 장소와 풍경 음식 길 사람들
' 왜 나는 새로운 여행지를 가지 않으려 했을까?
목적지를 항상 설정해 놓고 떠났을까? '
과거의 나는 혼자서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곳을 과감하게 용감하게 걸어갔는데
나는 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 겁이 많아졌다
힘들고 고생하는 것이 싫다
남들에게 자랑하거나 말할 수 없는 곳을 가는 것이 싫다
내가 가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싫다고 하면
그곳을 포기하고 모두가 원하는 곳을 갔다 '
다시는 그런 여행은 가지 말아야지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산과 들 꽃과 나무를 보고 만질 수 있는
허름하고 작더라도 오래된 휴게소가 있는 국도를 달려야지
그곳에서 천천히 내가 쉴 수 있는 만큼 쉬고
보고 만질 수 있는 만큼 머물다 가야지
꿀렁이고 바다 비린내를 맡고 갈매기도 볼 수 있는 배도 타봐야지
자전거 바퀴를 굴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지팡이를 짚고 터덜터덜 둘레길도 걸어야지
모르는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이 통하면 같이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함께 길도 걷고 마음을 나눠야지
지금을 즐겨야지
그렇게 여행을 떠나야지
다시 설레인다
내가 다음에 갈 여행은 어떤 곳일지?
어떤 여행이 될지?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너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