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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Nov 18. 2022

달과 6펜스 part-3 당신을 만난 것은 불행일까요?

스트릭랜드


우리가 부부였다면

우리가 친구였다면

우리가 연인이었다면


당신의 아내처럼

당신의 친구 스트로브처럼

그의 아내 불란치처럼


나 역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 했을까요?

네, 맞아요.  나 역시 그랬겠죠


'우리'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 테죠

우리는 '우리'가 아녔을 테니까요

한 번도 '우리' 였던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당신은 아내도 친구도 연인도 아닌 그저 '나'를

아무 죄책 감 없이 당신의 욕망을 위해 짓밟고 지나갔을 거예요

나는 당신에게 무의미한 사람이니까요

당신의 아내와

당신의 친구 스트로브

그의 아내 블란치처럼  

나 역시 당신에게 매달렸을 테지요

당신을 소유하지 못해

분노와 질투로 나는 짐승처럼 절규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그래도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신을 저주하면서도

당신의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

지옥같은 당신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나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역겨워하면서도

당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겠죠


한동안은 당신을 잊고 살아왔어요


스물이 갓 넘은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미친놈' 이란 욕이 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어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당신을 이해할 수도 없고

당신을 사랑한 친구와 연인들 역시 이해할 수 없었죠

그렇게 당신을 잊었다

삼 년 전쯤 다시 당신을 만났을 때

나는 많이 변해있었어요

더 이상 당신이 밉지도 않고 미친놈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당신을 조금씩 이해했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이 무서웠어요

당신이 내 주위에 없다는 것이

당신을 만나지 않은 것이 행운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갑자기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왜 나는 당신이 생각났을까요?

왜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었을까요?

왜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 느끼는 것일까요?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내 삶

관계를 위한 관계를 맺는 것

때로 만나게 되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사람들


모든 것이 다 싫증 나고 지겨웠나 봐요

그래서 본능이 가득한

욕망대로 다 해버리는 야수 같은 당신이

나도 모르게 보고 싶었나 봐요

야만적 일정도로 솔직한 당신이 생각났나 봐요

걸러내지 않고 날것으로 내뱉어내는 당신의 말에

맨살이 베어 피가 나더라도

차라리 진실해서 좋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요?


왜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요?

냉정하고 잔인할 정도로 이기적인 당신인데

왜 나는 더 당신에게 마음이 가는 것일까요?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지 않고

당신의 욕망대로 휘두르는 악마 같은 당신인데

왜 나는 밉지가 않은 걸까요?


당신이 신처럼 느껴져서 일까요?

누군가를 섬기려는

종속되길 원하는 노예 같은 내 마음 때문일까요?

당신의 천재성을 흠모하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생각지도 바라지 않고

눈앞의 그림만을 바라보는

당신의 열정이 욕망이 부러워서일까요?


문둥병에 걸려 실명했음에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림을 그려낸 맹수 같은 당신

모든 것을 다 바쳐 걸작을 완성했음에도

그것을 모조리 다 태워버리라는 당신

나는 당신이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나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만약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했을 거예요

예정된 비극이라 할 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했을 거예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나 역시 그들처럼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일까요?

불행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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