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part-3 당신을 만난 것은 불행일까요?
스트릭랜드
우리가 부부였다면
우리가 친구였다면
우리가 연인이었다면
당신의 아내처럼
당신의 친구 스트로브처럼
그의 아내 불란치처럼
나 역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 했을까요?
네, 맞아요. 나 역시 그랬겠죠
'우리'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 테죠
우리는 '우리'가 아녔을 테니까요
한 번도 '우리' 였던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당신은 아내도 친구도 연인도 아닌 그저 '나'를
아무 죄책 감 없이 당신의 욕망을 위해 짓밟고 지나갔을 거예요
나는 당신에게 무의미한 사람이니까요
당신의 아내와
당신의 친구 스트로브
그의 아내 블란치처럼
나 역시 당신에게 매달렸을 테지요
당신을 소유하지 못해
분노와 질투로 나는 짐승처럼 절규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그래도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신을 저주하면서도
당신의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
지옥같은 당신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나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역겨워하면서도
당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겠죠
한동안은 당신을 잊고 살아왔어요
스물이 갓 넘은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미친놈' 이란 욕이 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어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당신을 이해할 수도 없고
당신을 사랑한 친구와 연인들 역시 이해할 수 없었죠
그렇게 당신을 잊었다
삼 년 전쯤 다시 당신을 만났을 때
나는 많이 변해있었어요
더 이상 당신이 밉지도 않고 미친놈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당신을 조금씩 이해했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이 무서웠어요
당신이 내 주위에 없다는 것이
당신을 만나지 않은 것이 행운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갑자기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왜 나는 당신이 생각났을까요?
왜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었을까요?
왜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 느끼는 것일까요?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내 삶
관계를 위한 관계를 맺는 것
때로 만나게 되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사람들
모든 것이 다 싫증 나고 지겨웠나 봐요
그래서 본능이 가득한
욕망대로 다 해버리는 야수 같은 당신이
나도 모르게 보고 싶었나 봐요
야만적 일정도로 솔직한 당신이 생각났나 봐요
걸러내지 않고 날것으로 내뱉어내는 당신의 말에
맨살이 베어 피가 나더라도
차라리 진실해서 좋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요?
왜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요?
냉정하고 잔인할 정도로 이기적인 당신인데
왜 나는 더 당신에게 마음이 가는 것일까요?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지 않고
당신의 욕망대로 휘두르는 악마 같은 당신인데
왜 나는 밉지가 않은 걸까요?
당신이 신처럼 느껴져서 일까요?
누군가를 섬기려는
종속되길 원하는 노예 같은 내 마음 때문일까요?
당신의 천재성을 흠모하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생각지도 바라지 않고
눈앞의 그림만을 바라보는
당신의 열정이 욕망이 부러워서일까요?
문둥병에 걸려 실명했음에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림을 그려낸 맹수 같은 당신
모든 것을 다 바쳐 걸작을 완성했음에도
그것을 모조리 다 태워버리라는 당신
나는 당신이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나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만약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했을 거예요
예정된 비극이라 할 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했을 거예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나 역시 그들처럼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일까요?
불행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