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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Nov 25. 2022

새의 선물 part 1

모두의 비밀


이 책을 읽은 건 갓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인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진희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진희의 세상 속에서 나는 ‘바라보는 진희’ 옆에 나란히 서서

그런 ‘진희’를 관찰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깨달았다

진희는 책 속의 ‘진희’가 아닌 바로 ‘어린 나’였다

나는 진희를 통해 어린 나의 세상으로 걸어가버린 것이다


진희의 세상은 내 세상이기도 했다     

조숙하고 사려 깊으며 착한 심성을 지닌 아이

어린 나에게 붙여진 타이틀이었으며 그 이름표대로 자라나는 ‘나’

어른들은 어린 나와 대화가 통한다고 했고 성숙하다 했다

나 역시 동네 동갑내기 친구들을 유치하다 생각하고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항상 책을 읽었고 라디오와 티브이로 보는 세상과 어른들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나는 진희의 이모, 할머니, 삼촌과 동거를 시작했고 이웃들을 만났다

우리 집도 진희네처럼 세 가구에게 전세와 월세를 주었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소음이 발생한다

그 소음은 의도된 소음이 아니다

아니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숨소리이다

생물이 동물이 인간이 살아있으면 자연히 나는 소리

숨소리이다     

사람들의 수에 비례해 소음은 숨소리는 그래프의 선처럼

하루하루 점을 찍고

점들을 연결해 선을 그린다

때로 그 선은 곡선처럼 완만하기도 하고 급하게 요동치기도 한다


인정 따듯함 선함 지혜 소란스러움 경박함 치졸함 탐욕 위선

둘러싸인 많은 어른들 덕분에 나는 그 감정들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얻었다

어린 나는 그것들을 양분법으로 갈라내어 사람들을 평가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감정들을 갈라내지 않는다

그것은 떼어내지 못하는 붙어있는 것들이다     


진희의 가족 그 이웃들과 헤어지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다시 나의 어린 시절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책 표지를 덮었을 때는 얕은 탄성이 나왔고

은희경이라는 작가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다음 소설도 몹시 기대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책을 주변에 재미있고 좋은 책이라 권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나는 진희에게 동질감을 느낀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와 가족들에게까지도     

그건 나의 비밀

모두의 비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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