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건 갓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인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진희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진희의 세상 속에서 나는 ‘바라보는 진희’ 옆에 나란히 서서
그런 ‘진희’를 관찰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깨달았다
진희는 책 속의 ‘진희’가 아닌 바로 ‘어린 나’였다
나는 진희를 통해 어린 나의 세상으로 걸어가버린 것이다
진희의 세상은 내 세상이기도 했다
조숙하고 사려 깊으며 착한 심성을 지닌 아이
어린 나에게 붙여진 타이틀이었으며 그 이름표대로 자라나는 ‘나’
어른들은 어린 나와 대화가 통한다고 했고 성숙하다 했다
나 역시 동네 동갑내기 친구들을 유치하다 생각하고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항상 책을 읽었고 라디오와 티브이로 보는 세상과 어른들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나는 진희의 이모, 할머니, 삼촌과 동거를 시작했고 이웃들을 만났다
우리 집도 진희네처럼 세 가구에게 전세와 월세를 주었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소음이 발생한다
그 소음은 의도된 소음이 아니다
아니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숨소리이다
생물이 동물이 인간이 살아있으면 자연히 나는 소리
숨소리이다
사람들의 수에 비례해 소음은 숨소리는 그래프의 선처럼
하루하루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연결해 선을 그린다
때로 그 선은 곡선처럼 완만하기도 하고 급하게 요동치기도 한다
인정 따듯함 선함 지혜 소란스러움 경박함 치졸함 탐욕 위선
둘러싸인 많은 어른들 덕분에 나는 그 감정들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얻었다
어린 나는 그것들을 양분법으로 갈라내어 사람들을 평가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감정들을 갈라내지 않는다
그것은 떼어내지 못하는 붙어있는 것들이다
진희의 가족 그 이웃들과 헤어지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다시 나의 어린 시절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책 표지를 덮었을 때는 얕은 탄성이 나왔고
은희경이라는 작가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다음 소설도 몹시 기대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책을 주변에 재미있고 좋은 책이라 권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나는 진희에게 동질감을 느낀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와 가족들에게까지도
그건 나의 비밀
모두의 비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