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상 소설가 Mar 08. 2023

나는 그녀와 헤어졌다

"잘 지내고 계시죠? 공원에 자주 오가다 생각나서 연락드려요

 괜찮으시면 차 한잔하고 싶습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지나간 시간들인데

 잊으시고 잘 지내세요

 도서관에 자주 가니까 오가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요"


내가 좋아했던 그녀에게서 일주일 전쯤 문자가 왔다

작년 여름과 가을 내가 참 좋아했던

나와 시간을 보냈던 그녀다


작년 초여름  만난 그녀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당근에 같이 운동할 친구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고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녀가 함께 하자는 답을 달았다

당일 저녁 만나서 공원을 걷자는 용기 있는 그녀가 맘에 들었고

달이 밝았던 깜깜한 그날 밤

함께 공원을 돌면서 오래된 친구를 몇 년 만에 만난 것처럼 낯설지만 익숙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와 나는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녀와의 대화는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가정생활, 학창 시절, 친구나 지인관계, 현재 가진 고민들과 미래의 이야기들을 나누다 가까워졌고

종종 함께 걷자며 헤어졌다


그녀는 내게 친하게 지내고 싶다 말했고

나 역시 그러자 대답했다

비밀이나 고민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어쩜 더 편안했을지 모른다

그녀는 나에게 지인들이나 친구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않았던 이야기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그녀의 대담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속상했을 그녀를 위로하고 때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가을을 맞이했다

두세 번 그녀와의 대화가 불편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솔직한 성격이고 나보다 어리기도 하니

언니인 내가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자 지나가버렸다


추석이 지나고 같이 걷자며 연락을 하면 그녀는 바쁘다 말했고

몇 번의 거절이 있고 난 후

한가해지면 연락하겠지 싶어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점차 소원해졌다


늦가을쯤 기쁜 소식이 있다며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을 한 그녀

그녀는 동네에 카페를 갑자기 열게 되었다 말했다

가게를 알아보고 계약을 하고 개업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했고

나는 그제야 연락이 뜸했던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과감한 깜짝 개업선언에 나는 내심 섭섭하면서도 놀랍고 기뻤다


'카페를 준비 중이었다고 말하면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내게 실망을 하거나 맘이 상해서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오픈 한 가게가 번창하길 바란다고

급하게 일손이 필요하거나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한 뒤 헤어졌다

가끔 그녀가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정신이 없고 귀찮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연락을 하지 않았다


파랗고 푸르름이 가득 찬 여름

알록달록 틈틈이 여물었던 가을

꽉 채웠던 공간들이 비어 가고 하늘이 점차 연회색을 띠던 초겨울쯤

그녀와 나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녀에게서는 연락이 통 없었고 그녀가 궁금한 나는 그녀에게 안부톡을 보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카페는 자리가 잡혔가는지

장사를 하면서 외아들은 누가 케어를 해주는지

아르바이트생은 속은 안썪이는지를 물었다

이것저것 대답하던 그녀가 갑자기 "너무 물어보시네요"라는 답톡이 왔다

나는 깜짝 놀라 그 뜻을 남편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놀란 내게 남편이 픽~ 웃더니

"더 이상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라는 뜻이잖아, 그만 물어"

"뭐?  이게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내가 너무 물어본다고?"

"그래, 귀찮은가 보네 "


너무 놀란 내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너무 물어본다는 말, 그거 저한테 한 말인가요?"

"네, 제가 요즘 너무 예민해져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말해버렸나 봐요 미안해요" 잠시 뒤 그녀에게서 답톡이 왔다

"아, 미안해요  내가 너무 궁금하고 걱정이 돼서 질문을 쏟아내버렸나 봐요

 신경 쓰이고 바쁠 텐데 미안해요  연락하지 않을게요 "


나는 무안하기도 하고 황당하고 속이 상했

그때부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몇 통의 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이야기해요"

"미안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네, 제가 지금 많이 놀라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요

 걱정되는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 나는 우리가 친하다고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

"통화하고 싶어요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다음에 시간이 좀 지나면 그때 이야기 하죠.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네, 그러세요. 다음에 꼭 전화 주세요"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그 후 나는 그녀를 잊었다

그녀를 내 마음속에서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녀의 가게가 자리를 잡고 그녀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정도였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일주일 전 까맣게 잊었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고 계시죠? 공원에 자주 오가다 생각나서 연락드려요

 괜찮으시면 차 한잔하고 싶습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지나간 시간들인데

 잊으시고 잘 지내세요

 도서관에 자주 가니까 오가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요"


그녀는 내게 만남을 제안했고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거절했다

이제 그녀와 내 사이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내게 '당신'  아니다

그녀는 이제 수많은 사람 중 '그녀'로 존재하고

둘 사이에는 '그녀' 와 '나'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의 편안함을 위해서 내게 불편한 시간을 고 싶지 않았다

그녀 보다 내가 더 소중하니까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나는 미소 지을 수 있

그녀 역시 내게 그래주기를

서로를 편안히 바라봐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헤어진 그녀일지라도

지난 여름 그녀와 보냈던 의 시간은 행복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