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우리는 죽어가고 있었다. ep - 7
“ 현아야, 같이 가자. ”
“ 그래 ”
며칠 동안 말도 안 하고, 나를 찾지 않던 동주가 술래 인양 나를 잡았다.
“ 현아야, 나 어제 경화네 집에 갔었어.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
“ 응..... 그랬어? 경화는 만났어? ”
“ 아니, 창피하다고 그냥 가라고 했어. 문도 안 열어줘서
대문 틈으로 간신히 미안하다고만 말했어. “
“ 경화는 뭐래? ”
“ 알았데. 알았으니까 그냥 가라고 해서 왔어. ”
“ 응 ”
“ 너는? 너는 경화 본 적 있어? 경화 계속 안 오고 있잖아. ”
“ 아니, 안 갔어. ”
“ 왜 안 갔어? 경화한테 미안하다고 얘기해야 하지 않아? ”
“ 아니, 내가 왜? 내가 왜 미안하다고 얘기해야 해?
“ 어?....... ” 깜짝 놀란 듯 김동주가 나를 쳐다봤다.
“ 내가 왜 경화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데? ”
내가 동주를 쳐다보며 되묻자 동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현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나중에 경화한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후회하지 않을까? “
“ 아니, 난 경화한테 안 미안해.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 없어.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경화를 찾아가지 않을 거야. “
“ 현아야, 너랑 경화는 친했잖아. 어쩌면 경화는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나도 그런 적 있는 데, 누나랑 싸우고 밉다가도 누나가 빨리 와서 사과하고
다시 놀 길 바란 적이 있었는데..... 경화도 그렇지 않을까? “
“ 너 왜 자꾸 나한테 경화 얘기하니? 나는 듣기 싫은 데. ”
“ 그래, 알았어.
현아야, 있지 나 사실은........
아니야, 현아야, 나 먼저 갈게. 내일 보자. “
동주는 뒷말을 흐리며 먼저 가버렸다.
동주의 말은 항상 냉수처럼 차고 선명했는데
오늘 그 아이의 말은 연못 물처럼 미지근하고 혼탁했다.
동주가 나보다 먼저, 나를 두고 걸어간 적은 없었다.
항상 내 옆에서 공룡 이야기며, 미래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얘기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신이 나서 자기가 더 흥분해서 말하곤 했다.
그런데 등에 맨 책가방을 보이며 성큼성큼 육교를 올라갔다.
뒤에 내가 없는 듯 그렇게 가버렸다.
“ 치~~~~ ” 상관없었다. 동주도 경화도 나랑은 상관없었다.
경화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종일 집에만 있는지 어디에도 나가지 않는 것 같았다.
오다가다 하루에 몇 번씩은 마주치곤 했는데 우연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편이 훨씬 나았다.
만나도 할 얘기도 없으니까
가끔 경화 할아버지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경화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는데....... 그러겠다고 약속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지면
서랍을 열어, 신발 상자를 꺼내 얼굴이 까만 미미를 꺼냈다.
그러면 사과하고 싶은 마음도 밥상 위에 계란말이가 없어지듯 금방 사라져 버렸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데
경화네 집에서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 엄마, 엄마 ” 하는 경화의 목소리도 들렸다.
대문 틈으로 아줌마의 치마가, 경화의 종아리가 살짝 보였다.
“ 현아야, 이제 갔다 오니? 선교원에서...... ”
나는 아줌마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재빠르게 뛰어가서 대문을 닫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경화가 선교원에서 치마에 똥을 싼 날 이후
아줌마도 할머니도 나를 혼내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할머니가 찾아와 나를 혼내고, 우리 엄마의 염장을 질렀을 텐데.
할머니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차라리 할머니한테 혼나면, 욕이라도 들으면 더 편할 텐데......
경화네 식구들이 보일 것 같으면 얼른 굴뚝 기둥이나 대문 기둥으로 숨어버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 이제 선교원에 다시 나와도 될 텐데....... 아이들은 다 잊어버렸을 텐데...... 놀리지도 않을 텐데 ’
여전히 나오지 않는 경화가 조금씩 손톱만큼씩 보고 싶어 졌다.
‘ 알아서 하겠지.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
나는 동주가 한 말을 다시 생각했다.
동주가 나에게 하려고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물어보기 싫었다.
동주가 그렇게 가버린 후
나는 동주에게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일부러 더 보지 않았다.
동주를 보면 아무리 물속으로 눌러도 다시 떠오르는 고무 튜브처럼 죄책감이 올라왔다.
그 날 이후 동주도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았다.
선교원에서 가끔 눈이 한 번 마주칠 뿐이었다.
새파란 하늘에 두꺼운 구름이 무더기로 있던 오후
엄마가 센터로 한식 요리 수업을 들으러 갔다.
내일이 자격증 시험일이라고, 오늘은 꼭 가야 한다고 우리가 먹을 햄버거를 잔뜩 만들어 포일로 싸놓은 뒤
센터로 가셨다.
언니들이랑 오빠 나는 햄버거를 먹고
티브이에서 토요명화가 재방송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 빰빰빰 빰빠빠 빰빰빰 빰빠~~~~ ”
넷이서 모두 시그널 음악을 따라 입모양을 만들고 소리를 만들다 마주 보며 웃는다.
토요명화의 오픈 시그널은 항상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든다.
‘ 저 황금빛 트로피는 진짜 황금일까?
어떤 영화가 저 트로피를 받을까?
저 상을 받는 여배우는 누굴까? ‘
빛을 반짝이며 서 있는 사람 모양 트로피는
볼 때 마다 나를 궁금하게 만든다.
' 남잔가? 여잔가?
옷을 입은거야? 벗은 거야? '
나는 새우깡
언니들은 양파깡
오빠는 버터 코코넛
각자의 취향대로 과자를 골라 안방 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다.
과자가 더는 먹기 싫어진 나는 노란 고무줄로 입구를 돌돌 묶어 얌전히 바구니 안에 넣어 둔다.
그리고 두터운 목화솜 요에 등을 댄다. 언제나 목화솜 요는 푹신하다.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두툼하고 아늑하다.
스르르 졸음이 밀려온다.
구름이 하늘을 밀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졸음이 영화를 밀고 나를 차지하려 한다.
‘ 안 되는데 영화 봐야 하는 데, 내가 좋아하는 로마의 휴일인데..... 그거 봐야 하는 데......
어 이상하다. 내 몸이 이상하다. '
눈을 비비려고 해도, 낮잠을 자지 않으려면 세수를 해야 하는 데
일어나기는커녕 손을 움직이지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발도 발가락도 목을 돌리지도 못하겠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 언니, 이상해, 내 몸이 이상해. ‘
목소리가 입안에서만 돌뿐 밖으로 나오지는 못한다.
깜깜하다. 까마득하다.
‘ 이게 뭐지? ’ 하면서 나는 그렇게 잠이 들고 말았다.
갑자기 주위가 시원하다.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다.
긴 숨이 가슴 깊은 곳에서 푹 나온다.
머리가 맑아진다.
꽁꽁 묶어놓은 매듭이 사라락 풀리듯 내 의식이 사악~ 풀리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목 고개, 손가락 몇 개, 혀
오직 그것들 뿐이다.
“ 현아야, 현아야, 이제 일어났어?
나쁜 꿈 꿨어? 아니면 무서운 꿈 꿨어?
왜 갑자기 큰 오빠를 발로 차? 그러니까 오빠한테 혼나지?
이제 괜찮아? “
“ 언니, 내가 오빠를 발로 찼어? ”
“ 그래, 네가 갑자기 오빠를 발로 세게 차대서 오빠가 화 많이 났잖아.
그래서 내가 얼른 너 업고 마당으로 나온 거야.
이제 다 깬 거지? “
“ 언니, 아직도 이상해..... 내 몸이 아직도 이상해......... ”
언니 귀에만 들릴 수 있게 작은 소리만 내뱉는다.
" 스르륵~~~~ "
세워놓은 쌀자루가 땅바닥으로 엎어지는 것 마냥, 언니가 땅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업혀있던 나를 바닥에 내려놓지도 못하고 “ 털썩 ” 둔탁한 소리만 내고
“ 악~ “ 소리도 내지 못하고 마당으로 아직 물기가 흥건한 땅바닥에 쓰러졌다.
“ 언니, 언니, 언니 일어나. 일어나 ”
큰 오빠와 작은 언니를 불러야 한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움직여야 한다. 안방으로 가야 한다.
안방으로 가려면 높은 턱을 내려가 부엌을 거쳐 가든가
마루를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둘 다 할 수 없다.
안방은 흉가처럼 음산한 기운이 돈다.
무서운 생각에 겁이 덜컥 난다.
안방에서 토요명화 소리만 나오고
큰 오빠 , 작은 언니의 기척도 말소리도 아무것도 없다.
분명 큰언니가 넘어지는 묵직한 소리를 들었을 텐데
나오지 않는다면 큰오빠도 작은 언니도 모두 정신을 잃었다는 소리다.
대문으로 가야 한다.
어떻게든 대문으로 기어가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야 모두를 살릴 수 있다.
무거운 고개를 간신히 쳐들고 땅바닥을 기어간다.
뱀이 온몸의 비늘을 일으켜 바닥을 s자로 기어가듯
온몸의 힘을 배로 모아 마당을 밀어낸다.
손바닥으로 몸을 지탱해 대문으로 기어간다.
울음이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입속에서 지렁이 같은 소리만 나올 뿐이다.
“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우리 언니 좀 도와주세요. 우리 오빠랑 작은 언니 좀 살려주세요. ”
내 귀에만 들릴 뿐 내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한다.
마침 경화네 대문은 열려있고
우리 집 대문도 열려있다.
경화가 동생들이랑 노는 소리가 들린다.
“ 경화야, 경화야, 여길 봐. 나를 봐. 우리 집을 좀 봐. ”
수돗가에서 아줌마가 배추를 다듬는지 삭삭삭 칼 소리도 다 들리는데.......
개미들의 발자국 소리도 다 들을 수 있는 데
정작 들어야 할 내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하고 있다.
원망스럽다.
경화네도 원망스럽고 , 센터로 교육을 간 엄마도 원망스럽고, 사우디로 돈 벌러 간 아빠도 원망스럽다.
토요일 외출을 나간 셋방 식구들도 원망스럽고,
골목을 지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매일 골목에서 놀다 오늘만 나오지 않은 아이들도 ,
맨날 나를 보면 사납게 짖어대던 경식이네 개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이 다 원망스럽다.
“ 도와주세요, 우리 큰 언니 좀 살려주세요. 우리 언니 좀 도와주세요. ”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목구멍 속에서 피가 나올 듯 소리를 질러대도
쇳소리만 나올 뿐.
내 절규는 목구멍 속에서만, 입가에서만 맴돌았다.
하나님도 밉다.
만약 이렇게 우리 언니가, 모두가 죽게 된다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다.
선교원도 주일 예배도 다 안 갈 거다.
우리 큰 언니가 이대로 마당에서 죽어버리면
나를 업고 나온 우리 큰 언니가 죽는다면
우리 큰 오빠랑 작은 언니가 안방에서 그대로 죽어 버린다면
하나님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파란 하늘을 보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눈물만 흘리며 하늘을 죽도록 노려보았다.
“ 현아야, 현아야 , 현아 왜 그러니?
현아야, 정신 차려. 정신 차려. 현아야.
여보, 엄마, 경화야 빨리 나와.
현아 엄마, 현아 엄마. “
토요일이라 택시 영업을 일찍 마치고 돌아오는 경화 아저씨가 대문에 반쯤 걸쳐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업고 마루로 눕혔다. 마당에 쓰러져 있는 큰 언니도 내 옆에 눕힌다.
“ 영아야, 영아야. 얘도 연탄가스 마셨네. 영아야 정신 차려.
여보, 빨리 나와, 빨리 119에 전화해. 빨리 전화해. “
아저씨가 소리소리를 질렀다.
말없던 아저씨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은 몰랐다.
“ 현아 엄마 어디 갔어? 현아 엄마, 현아 엄마 “
“ 아이고 이게 웬일이야? 현아야, 현아야. 정신 차려.
영아야, 영아야, 영아야 일어나라. 정신 차려라. “
아줌마와 할머니 모두 슬리퍼를 신고 뛰어나왔다.
경화도 동생들도 놀라 튀어나와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 경화 엄마, 빨리 119에 전화해.
엄마, 현아랑 영아 빨리 바지 벗겨.
경화야, 바가지에 물 떠 와서 얼굴에 얼른 끼얹고.
너네는 빨리 언니랑 현아 다리랑 팔 주물러 “
“ 아저씨, 아저씨
우리 오빠랑 우리 작은 언니 안방에 있어요. 다 안방에 있어요. “
내가 작게 말하자
아저씨는 귀를 내 입에 붙이고 듣더니 구두도 벗지 않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 중아야, 민아야, 중아야, 민아야 얘들아 정신 차려. 일어나 ”
아저씨는 오빠와 작은 언니를 차례차례 업고 나왔다.
“ 현아 엄마, 현아 엄마.
이 정신 나간 여편네, 현아 엄마 어디 갔어?
애 새끼들은 연탄가스 마시고 지금 죽을 둥 살 똥 하고 있는데 이 여편네 어디 갔어? “
할머니가 그 상황에서도 엄마 욕을 하며 내 바지를 벗긴다.
할머니의 욕지거리가 듣기 좋다.
아무리 욕을 해도 듣기 좋고, 기분도 좋다.
“ 경화야, 슈퍼 사서 얼른 사이다 사와. ”
경화가 할머니가 준 돈을 들고 슈퍼로 뛰어간다.
경화가 슈퍼로 달려가는 것을 본 후
큰 오빠와 작은 언니가 모두 마당으로 나온 후
내 옆에 큰 언니 작은 언니 큰 오빠 모두 누웠다.
모두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파란 하늘이 천천히 평화롭게 움직인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된다.
이제는 잠을 자도 된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