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공주 밍키 마법을 걸다. ep-8

by 옥상 소설가

오빠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는 입덧을 시작했고

동네에 살면서 같은 반 향미 언니를 좋아했던 오빠는 엄마의 임신 사실이 학교에 퍼지면 창피해서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나를 낳지 말라고 격렬히 반대했다고 했다.

사춘기가 어렴풋이 오고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내아이들에게

엄마의 임신은 신비한 생명의 탄생이라기보다는 성욕에 미친 남녀의 동물적 성관계의 결과물로 인식되었다.


현재 우리 집안의 유일한 남자이자 희망인 오빠가 엄마의 출산을 반대하자

엄마가 잠깐 고민을 하긴 했다고 했다.

아빠가 사우디에 간 것도 오빠를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함이 큰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에 고심이 되긴 했으리라.

하지만 나의 탄생이 불만이었던 오빠는

동생이 갓난쟁이라는 이유로 여학생들의 관심을 받을 줄을 꿈에도 몰랐고

특히나 짝사랑했던 향미 언니가 갓난아기인 나를 보러 집으로 자주 놀러 오자

나를 동생으로 인정하고 애정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간난장이 동생은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큰 무기인 것을 몸소 깨달은 오빠는

자상한 오빠 코스프레로 향미 언니 이외에도 다른 언니들에게 급관심과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내 손을 잡고 동네를 다니면 그날의 주인공은 바로 오빠였다.

언니들이 오빠 주위를 에워싸고 나를 안게 해달라고 오빠에게 졸랐으며

오빠를 다정한 남자로 연호했다.

나는 동생 중 유일하게 오빠의 총애를 받으며 자라났다.


오빠는 학교에서 공부도 곧 잘했고, 무던해서 부모님의 자랑거리였으며, 선생님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전교에서 50등까지 우등생들만 모아 만든 우반에도 들어가고

남자에게 무예는 필수라며 엄마는 합기도 학원에 오빠를 보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수련해서 아무도 오빠를 건드리지 못했다.

오빠는 절대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건 무도인의 정신에도 어긋난다며

아이들 싸움을 중재하거나 약한 아이들의 보호자로 나섰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오빠를 좋아했고 그런 오빠는 엄마의 긍지였다.


매년 봄과 가을 학부모 상담 기간 동안 엄마는 항상 담임선생님에게 오빠 칭찬을 들었고

대학 진학과 진로를 상담한 후 기분 좋게 집에 들어와서

그 날 저녁 우리가 좋아하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주셨다.

그만큼 오빠는 우리 집안의 절대적인 존재였고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언니들에게는 역으로 작용했다.

엄마는 여자들은 대학을 나올 필요 없이 상고를 졸업해 은행이나 증권, 보험회사에 들어가 직장을 잘 다니다

시집을 가면 그게 장땡이라고 했다,

큰 언니는 대학을 진학하고 싶어 바닥에 드러누웠고 단식투쟁을 했다.

그러나 큰언니의 바람은 엄마에게 통하지 않았고

상고를 진학해 언니의 꿈이 물거품이 되자

큰 언니와 엄마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

작은 언니는 큰언니를 보고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은 진즉 포기하고 상고에 진학했다.

눈치가 빠르고 외모를 중시하는 작은 언니는

내가 태어나 나의 외모 평가를 마친 뒤

본인의 우위를 확신하자 나를 동생으로 받아들였다.

나를 동생으로 인정하는 데는


" 오빠, 언니들의 인물은 좋은 데 왜 막내가 이렇게 인물이 빠지냐고

외탁인지, 친탁인지 친척 중에 나를 닮은 사람이 혹시 누가 있냐고? "


물어보는 동네 아줌마들의 질문이 큰 영향을 주었다.

하긴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들만 봐도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시원하게 잘 생긴 얼굴들이다.

그 피를 이어받아 오빠와 언니들의 생김새가 좋았다.

개성 있는 외모란 아줌마들의 나의 외모 감정은 나에게 그 다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나는 내 얼굴에 매우 만족했다.

오직 큰 언니만 막내인 나를 동생이란 이유로 귀애했다.

엄마의 부재 시 큰 언니는 내게 엄마나 마찬가지 었다.


경화네 식구가 우리 식구 모두를 살린 날

큰 오빠, 큰 언니, 작은 언니, 나

우리 모두 제일병원으로 실려갔다.


제일병원은 큰 종합병원으로 1층 복도 맨 끝에는

5주쯤 된 태아부터 산달에 정상 분만한 아기까지, 또 다양한 기형을 가진 아가들이

알코올이 담긴 커다란 유리병에 담겨 진열되어 있었다.

가끔 동네 아이들은 경비 아저씨가 자리를 비우면 복도에 가서

그 아기들을 구경하곤 했는데

대낮이어도 간담이 서늘하고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무섭기보다는 알코올에 담긴 아기들을 보면서


' 아기 엄마가 병에 담긴 자기 아기를 보면 얼마나 슬퍼할까?

아기는 얼마나 춥고 엄마가 보고 싶을까? '


아기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바로 그 제일병원으로 우리는 실려갔다.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내 옆에는 큰언니, 작은언니가 누워 있었다.

가장 먼저 가스를 맡은 내가 의식을 잃고 몸부림을 쳤으며

그런 나를 큰 언니가 마당으로 업고 나와 일산화탄소 중독이 덜했다고

그래서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몇 시간이 더 흘러 큰 언니가 깨어나고 그 후 작은 언니가 깨어났다.


엄마가 센터에서 전화를 받고 제일병원으로 달려왔다.

엄마는 우리들을 보고 울기만 했다.

우리가 깨어났는데도


“ 다행이다. 하느님이 도왔다. 이제 됐다. ”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 내 탓이야. 내가 죽어야 했어. "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상했다. 큰 오빠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옆에 누워 있어야 할 오빠가 보이지 않았다.


“ 엄마, 오빠 어디 갔어? 오빠는 어디 있어? “


내가 물어보자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오빠는 연탄가스 중독이 심해서

고압 산소실에 들어가 있다고 간호사 언니가 말해줬다.

의식이 어느 정도 돌아올 때까지 그 통 안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아마도 오빠 옆에 있을 것이다.

엄마는 오빠까지 다 깨어나야

비로소 ‘ 다행이라고, 이제 됐다고 ’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깨어난 것도 다행이지만 오빠까지 일어나야 천행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야 엄마는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돌아가도 된다는 의사의 허락으로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큰 언니가 밥이며 선교원 등원 준비 엄마 역을 해주었다.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선교원에 가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소리 내어 웃을 수 없었다.

티브이에서 개그 프로를 봐도 마음껏 소리 내어 웃을 수 없었다.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다. 티브이를 보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밤을 기다리는 방법 중 하나에 불과했다.


엄마는 오빠가 있는 병원에 계속 머물렀다.

엄마는 오빠가 잠들어 있는 새벽

집으로 와 우리가 먹을 밥과 반찬을 하고, 빨래와 청소, 집안 정리까지 마친 후

오빠가 있는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내일 오빠와 집으로 온다는 엄마의 전화가 왔다.

나는 신이 나서

‘ 드디어 엄마가 오는구나.

이제 엄마 옆에서 잠을 잘 수 있겠구나. ‘ 좋아하고 있는 데

어쩐 일인지 언니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느낌이 이상했지만 그래도 엄마를 볼 수 있어 가슴이 들먹거렸다.

선교원에서 돌아오자 오빠의 신발이 보였다.

다행이다. 이제 우리 식구 모두가 다 모였다.

전처럼 엄마의 웃음을 볼 수 있고, 소리 내어 웃을 수도 있다.


“ 오빠~~~ ” 나는 오빠를 부르며 신발을 벗고 가방을 던지고 마루로 올라갔다.

“ 현아야~ ” 하고 오빠는 나를 안아주었다.

“ 현아야, 우리 현아 잘 지냈어? 오빠는 현아 보고 싶었어. “


오빠는 그대로인데 뭔가 이상했다.

오빠는 오빠지만 오빠가 아닌 것 같았다.

오빠는 우리 큰 오빠가 아닌 것 같았다.

엄마에게 눈길을 보내자 눈물이 고인 엄마 눈이 땅으로 떨어졌다.


“ 현아야, 오빠 이제 낮잠을 좀 자야 해.

엄마가 오빠를 좀 재울 동안 혼자서 책 좀 보고 있어. 그럴 수 있지? ”

“ 엄마, 오빠 혼자 잘 수 있잖아. 왜 엄마가 오빠를 재워줘?

오빠가 애도 아닌 데? “

“ 오빠가 아직 다 낫질 않아서 엄마가 좀 재워줘야 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


엄마는 오빠를 데리고 오빠 방으로 갔다.


“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 “


엄마의 자장가 노래가 들린다.

오빠 등을 도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삼십 여분이 지나자 엄마가 마루로 나왔다. 오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왜 오빠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는지? 왜 오빠 가슴을 도닥여주는지?

왜 그렇게 해야만 오빠가 잠이 드는지? 영문을 몰라 오빠 방을 쳐다보는 내 옆에 엄마가 앉았다.



“ 현아야, 오빠가 많이 아파.

몸이 아픈 게 아니고, 머리가 많이 아파.

그 날 연탄가스를 마신 날

오빠가 연탄가스를 가장 많이 마셨데.

작은 언니는 안방에서 기어 나와 부엌으로 떨어져서 가스를 덜 마셨는데

오빠는 깊이 잠든 상태에서 가스를 마셔서

죽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살아난 거야.

엄마는 그래도 기뻐.

하나님이 오빠를 데려가 주지 않아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하면 오빠는 좋아질 거야.

현아야,

사람 머릿속에는 뇌가 있는 데

오빠가 가스를 마시면서 뇌에 있는 세포가 많이 죽었데.

그래서 오빠가 다시 어린이로 돌아갔어.

너랑 비슷한 나이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면 돼.

선교원에 다니는 남자아이라고 생각해야 해.

그래도 오빠는 여전히 우리 집 장남이고 남자야.

그러니까 오빠가 나을 때까지 우리가 잘 돌봐줘야 해.

병원 다니면서 꾸준히 치료받으면 더 좋아질 수도 있데.

그러니까 우리 포기하지 말자.

현아야,

그럴 수 있지? 오빠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지? “


“ 응, 엄마. 알았어.

괜찮아. 오빠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랑 같은 나이여도 괜찮아. 오빠는 여전히 오빠니까.

걱정하지 마, 오빠는 분명히 좋아질 거야. “


“ 그래, 현아야. 우리 오빠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면 안 돼. ”

“ 엄마, 오빠 학교는? 학교는 안가? ”

“ 응, 학교는 좀 쉬어야 해. 지금은 학교를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게 더 많아.

좀 나아지면 학교는 다시 갈 거야. “


엄마는 자꾸 나에게 “ 포기하지 말자. ”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 포기하지 말자. ”라는 말은 엄마가 스스로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엄마가 오빠를 포기한다고 해도

오빠는 여전히 오빠다.


다음 날부터 오빠와 엄마, 오빠와 나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달리기가 빠른 오빠는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대문을 열고 동네나 길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첫 번째 코스는 버스 정류장이다.

오빠의 기억력은 엄청나다.

오빠는 정확히 6시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7시 좀 전에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에는 학교별로 교복을 입은 남, 여학생들이 가득했다.

각 학교별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다

자기 학교로 가는 버스가 오면 그 버스로 달려가는 데

오빠는 버스가 오면 버스 번호와 학교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36번 버스 영훈 남고

27번 버스 진명 남고

42번 버스 일훈 여고


버스와 고등학교를 매치시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오빠도 교복을 입고 매일 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으므로

버스 정류장의 학생들은 오빠를 알고 있었다.

오빠는 인근 여고에서 꽤 유명하고 인기 있는 남학생이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버스 정류장에서 오빠에게 초콜릿과 고백카드를 준 여학생도 있었으니

오빠의 버스 정류장 출현과 기이한 행동은 학생들에게 충격이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엄마였다.

오빠가 매일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학생들에게 버스를 안내하자 처음에 엄마는 오빠를 뜯어말리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하지만 엄마는 오빠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엄마가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도 오빠는 버스 정류장에 가서

학생들이 모두 등교를 마친 후에야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두 번째 코스는 샬롬 교회였다.

사고 이후 엄마는 교회를 가지 않았다.

오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도, 집에 돌아온 후에도

엄마는 교회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다시 소년으로 돌아간 아들의 모습을 교회 사람들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오빠는 매주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다.

시간도 철저히 지켰다.

엄마가 가지 말라고, 제발 가지 말자고 부탁해도 소용없었다.

엄마가 동행하지 않아도 오빠는 혼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오빠를 절대 혼자 내보내지 않았다.

엄마는 오빠를 다시 잃어버릴까 봐 몹시도 전전긍긍했다.

오빠는 가끔 내가 있는 선교원에도 놀러 왔다.

선교원 복도 사랑반 창문으로 나를 지켜보곤 했다.

내가 찬송가를 부르거나 설교를 듣거나 기도를 하고 있으면

오빠가 찾아와


“ 현아야~ 현아야~ ” 내 이름을 조용히 부르곤 했다.


그리고 내가 살그머니 복도로 나가면

내가 좋아하는 스카치 캔디를 내 입에 넣어주곤 했다.


“ 현아야,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오빠가 현아 끝날 때 다시 올게.

오빠랑 집에 가자. “ 말하곤 했다.

“ 오빠, 엄마한테 말했어? 엄마랑 같이 온 거야? ”

“ 응, 엄마 저기 바깥에 있어. ”

“ 오빠, 집에 갔다가 나 끝날 때 그때 와. 계속 돌아다니면 엄마 힘들어. “

“ 알았어, 집에 갔다가 다시 올게. ”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무척 꺼렸다.

교회 사람들이 엄마와 오빠를 보면


“ 집사님, 어떡해요? 우리 중아 짠해서 어떡해요? ”

“ 집사님, 속상해서...... 아이고 어쩜 좋아요? ”

“ 하나님이 우리 중아를 낳게 해 줄 거예요. ”

이런 말들을 하곤 했는데 그 말들이 엄마에겐 정작 위로가 되지 못했다.

특히나 사람들이 “ 중아야 “ 하면서 오빠를 딱하게 보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사람들이 오빠를 동정하면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때

엄마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이로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절대로 엄마는 사람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 좋아질 거예요. 우리 중아는 나을 거예요.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좋아진다고 했어요. ”

누구도 믿지 않는 엄마의 바람을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어느 누구도 엄마에게 위안이 되지 못했다.

권사님의 말도, 전도사님의 말도, 목사님의 말이나 기도도

엄마에게서 슬픔을 덜어내지 못했다.

오빠를 혼자 보내지 못해 견딜 수 없어도

엄마는 교회에 동행해야 했다. 그리고 매번 오빠와 엄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연민과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내야만 했다.



선교원에 온 오빠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은 엄마는 우리에게 붕어빵을 사주셨고

오빠와 나는 맛있게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손을 씻고 마루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고

오빠는 좋아하는 만화가 나오자 티브이를 보며 만화 주제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초인종이 “ 딩동 ” 하고 울렸다.


" 누구세요? "

" 집사님 , 저에요. "


엄마가 대문을 열었다.

은영이 아줌마였다.


“ 은영이 엄마, 웬일이에요?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

“ 집사님, 이거 중아가 좋아하는 깻잎 장아찌랑 메추리 조림이에요. 중아 주세요.

중아가 수련회에서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중아가 좋아할 거 같아서 집에서 하는 김에 같이 했어요.

별거 아니지만 드세요. ” 은영이 아줌마는 반찬통을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 은영이 엄마, 은영이 엄마. ”

엄마는 은영이 아줌마 손을 잡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눈물을 누군가에게 보인 것은,

엄마의 눈물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을 허락한 것은 은영이 아줌마가 처음이었다.

깊은 절망감을 토해내듯 아줌마를 보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은영이 아줌마가 엄마 등을 토닥인다.

그리고 아줌마도 엄마와 같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아줌마와 엄마는 울기만 했다.


“ 집사님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질 거예요. ”


“ 현아야~ ” 아줌마 치마를 잡고 있던 은영이가 마루로 올라와 내 옆에 앉아 있다가

우리 오빠를 보자 “ 중아 오빠 ” 하면서 오빠에게 갔다.


“ 은영이 왔어. 은영아 오빠가 좋아하는 요술공주 밍키야. ”

“ 오빠, 나도 밍키 좋아해. 나는 밍키 춤도 출 줄 알아. ”

“ 그래? 그럼 오빠랑 춤 줄까? ”

“ 응 ”

“ 요술 공주 밍키 밍키 밍키 ~~~~ ”


오빠와 은영이는 일어서서 밍키 노래를 부르며 요술봉을 휘둘러 서로에게 마술을 걸어주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아줌마에게도 마법을 걸어주었다.

마법에 걸린 엄마와 은영이 아줌마는 울음을 멈추고 은영이와 오빠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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