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일들이 내게만 벌어졌다. ep-15

by 옥상 소설가

“ 엄마 나 배가 아픈데...... ”

“ 뭐? 어디가 아파? ”

“ 속이 메슥거리고, 배도 살살 아프고. ”

“ 얼마나 아픈데...... 오늘 서울 올라가야 하는 데 ”

“ 나 지금 버스 타면 토할 것 같아. 머리도 아파서 버스 못 탈 것 같아.

엄마 나 병원 좀 데려가 줘. “

“ 언니, 일요일인데 오늘 문 여는 소아과 있어요? ”

“ 일요일 아침에 문을 연 병원이 어디 있어? 그리고 뭣하러 병원을 가.

집에 의사가 있는 데, 그냥 민욱이 부르면 되지. ”

“ 아줌마, 아저씨 좀 불러주세요. 나 너무 아파요. ”

“ 오야, 기다려봐라. ”

“ 오빠한테 미안한데, 어제도 쉬었어야 하는데...... 오늘도 못 쉬고. ”


아저씨가 가방을 들고 또 뛰어 오셨다.


“ 현아야, 어디 아프니? ”

“ 아저씨, 저 배가 아파요. ”

“ 어디? 어느 쪽 배? ”


아저씨가 티셔츠를 가슴까지 걷어 올린다. 이상하게 하나도 안 창피하다.


“ 아침에 변은 눴어? ”

“ 어, 약간 설사같이 묽게 눴어요. 머리도 좀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요. ”

“ 아무래도 장염 같은데. 여기가 아파? ”

“ 아..... 네 거기 같아요. ”

“ 여기는 맹장인데....... ”

“ 맹장이요? 아저씨, 맹장이 아프면 어떻게 되는데요? ”

“ 맹장이 터지기 전에 수술해야지. ”
“ 어..... 아니에요. 거기 아닌 것 같아요. ”

“ 그럼, 여기? ”

“ 거긴 어딘데요? ”

엄마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본다.

“ 너 아무래도....... ”

“ 아~~ 아~~ 배 아래쪽이 아파요. ”

“ 장에 가스가 찬 것 같아. 아니면 장염일 수도 있고,

금희야, 현아 평상시에 어땠어? 변은 매일 잘 봤어? 가스 냄새는 어땠어? “

“ 변은 매일 잘 누고, 방귀도 자주 잘 뀌었는데...... ”

“ 아저씨 나 지금 버스 타면 토할 것 같아요. ”

“ 아무래도 오늘 서울 내려가는 건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상태로 버스 타는 건 애한테 무리야. 설사에다 토하기까지 하면 탈수가 올 수도 있고

현아 몸이 좀 나아지면 서울이든 부산이든 어디든 가. 지금은 좀 쉬어야겠다. “

엄마가 나를 보며 한숨을 “ 휴~~ ” 쉬었다.

내가 엄마 눈치를 보다


“ 아저씨, 원래 오늘 엄마랑 저랑 부산 가기로 했는데, 아저씨 자가용 있죠? ”

“ 응, 있는 데, 왜? ”

“ 나는 못 가니까 우리 엄마 부산에 좀 데려다주세요.

원래 부산에 가려고 대구에 내려온 거예요.

엄마, 아저씨 차 타고 부산 갔다 와. 내년에 나 학교 들어가면 이제 대구 잘 못 내려간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오늘 아저씨랑 꼭 갔다 와.

나는 졸려서 잠을 좀 자야겠어. 아줌마 그래도 되죠? “

“ 그래, 내가 니 딸은 잘 볼 테니까, 민욱이 네가 약 좀 지어다 주고

금희 부산에 좀 데려다주고 와. 너 오늘 바쁘니? “


“ 아니, 난 괜찮아. 금희만 괜찮으면.......

금희야, 다녀오자. 내가 데려다 주께. “

“ 아니에요, 애가 아픈데 무슨 부산을...... 그냥 있을래요. ”

“ 엄마, 아저씨랑 갔다 와. 나는 계속 잠 잘 텐데..... 아줌마랑 집에서 만화도 보고

괜찮아지면 시장 구경도 갔다 오고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

아저씨 우리 엄마 부산에 데려다주시고 꼭 나한테 데려다주세요.

엄마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까 잘 봐주세요. “

“ 그래, 금희야, 내려온 김에 부산 가서 바다도 보고, 회도 먹고, 기분 전환 좀 하고 와라.

기장엔 갈 생각하지 말고. 내가 현아는 잘 돌보고 있을게. “

“ 금희야, 한 시간 후에 준비하고 나와라.

나도 병원 가서 약 챙겨 오고 준비해서 올게. “

아저씨는 아줌마에게 내가 먹을 가루약을 주고

검은색 로열 살롱에 엄마를 태우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엄마와 아저씨가 둘이 탄 차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자꾸 아빠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가로저었고 거실에 나가 티브이를 봤다.

독수리 오 형제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 현아야, 약 먹자. ”

“ 네~~~ ”

“ 약 먹고 한 숨 자자. ”

“ 아줌마, 저 지금 안 졸린데...... 이것만 보고 잘게요. ”

“ 그럴래? 그럼 아줌마 설거지할 동안 이것만 보고 한숨 자야 한다. 그래야 얼른 나. “


나는 아줌마가 주방으로 간 사이 화장실로 가서 약을 변기에 버렸다. 어차피 먹을 필요 없는 약이다.

독수리 오 형제를 보다 정말 졸리기 시작했다.

방에 들어가서 이불 위에 누웠다.

‘ 지금쯤 엄마랑 아저씨는 어디쯤 가고 있을 가? ’

부산에 내려가서 뭘 할까?

내가 엄마를 아저씨랑 부산에 보낸 걸 아빠가 알면 화를 많이 낼까? ‘

“ 아줌마 우리 시장 갔다 와요. ”

“ 시장엘 가고 싶어? 그래, 장거리도 볼 겸 가자. ”



서문시장

시장 입구에는 서문시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줌마도 아저씨랑 똑같았다.

옷가게에 들어가서 소꿉놀이할 때 입는 엄마 드레스, 잠옷, 치마와 바지 등 옷을 사주셨다.


우리 저녁으로 죽 먹으러 갈까? 쇠고기 죽, 전복죽, 야채 죽 뭐 먹을까? ”

“ 아줌마, 저...... 저....... 매운 거 먹고 싶어요. ”

“ 어?...... 매운 거? 안 돼, 너 지금 장염이라 밀가루에 매운 건 절대 안 돼.

쇠고기 죽 먹자. “


나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 어~~~ 저기? 저긴 또 언제 봤어? ”


먹자골목이었다.

떡볶이 가게들이 연달아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떡볶이

시장에 갈 때면 엄마나 큰언니는 항상 떡볶이를 사줬고

아무리 바쁠 때라도 컵볶이라도 사서 내 손에 쥐어줘야 나는 엄마나 언니를 따라다녔다.

시장에 와서 떡볶이를 안 먹거나 사주지 않는 것은 나를 기만하는 행위와도 같았다.

철저히 장염에 걸린 나로 위장해 모두를 속였지만

떡볶이의 향내는 환자로 가장한 나의 가면을 바람에 비닐봉지 날리듯 쉽게 벗겨 버렸다.

네모나고 커다란 쇠 후라이팬에는 시뻘겋고 진득한 양념에 버무려진 쌀 떡볶이가

그것들의 위에는 송송 썰어진 초록색의 파가 선명한 색채의 대조를 이루며 살포시 올려져 있었고

빨갛고 초록의 그 요리는 쫀득하면서도 알싸하니 매콤한 맛이 날게 분명했다.

긴 꼬지에 꽂힌 어묵은 구수하면서도 진한 육수 맛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새우, 야채 모둠, 고구마, 오징어, 김말이, 통고추 치자로 노란 빛깔을 내며 바삭하게 튀겨진 튀김들은

세 광주리에 먹기 좋게 진열되어 내 식욕 세포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투명한 비닐에 덮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와 간은 내 입안의 침을 가득 고이게 했다.

“ 아줌마, 저 괜찮으니까 진짜 떡볶이랑 튀김 어묵이랑 먹어요. ”


아줌마는 절대 안 된다며 나를 죽집으로 이끌었지만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며 실토하고 말았다.


“ 아줌마. 저 안 아파요. 부산 가기 싫어서 거짓말한 거예요. 엉엉엉 ”

“ 어? 뭐라고? ” 아줌마의 눈이 왕사탕만 하게 커지며 나를 봤다.

“ 왜? 왜 가기 싫었어? ”

“ 그냥요, 그냥 가기 싫었어요. 여기 아줌마네 집에서 더 있고 싶었어요. ”


아줌마는 잠시 나를 보다 큰소리로 웃더니 가장 맛있어 보이는 떡볶이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 엄마랑 입맛이 똑같네. 금희도 여기 떡볶이를 엄청 좋아했는 데........

금희 딸이랑 내가 앉아서 떡볶이를 먹을 줄은....... 이렇게 인연이 깊을 줄은........

그래, 먹자. 먹어. 대신 천천히 먹어야 한다.

아줌마랑 떡볶이랑 튀김 순대 먹은 건 절대 비밀이다. 알았지?

너랑 나는 둘 다 공범이야. 그럼 비밀 지켜야지? “

“ 네 ” 나는 아줌마를 향해 고개를 아래 위로 강하게 끄덕였다.


떡볶이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식감이 좋아서

떡이 퍼지지 않아서

간이 적당해서

모든 맛이 좋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네 잘못이 아니다.


완벽한 식사를 마치고 아줌마와 나는 손을 잡고 옷 봉지를 들고 ‘ 룰루랄라 ’ 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왔다.


“ 현아야. 아줌마랑 같이 살자. 너는 어때? 아줌마 좋아? ”

“ 아줌마가 좋은 데요. 그래도 엄마 옆에 살아야 하니까 대구로 자주 놀러 올게요.

언니들이랑 오빠랑 같이 와도 돼요? “

“ 그럼, 아무 때나 너 오고 싶을 때 와. ”

“ 아줌마, 나는 대구가 마음에 들어요.

아줌마도 좋고, 아저씨도 점점 좋아져요. “


‘ 아저씨 ’라는 말에 아줌마가 나를 멀거니 바라보신다.


“ 나도 네가 민욱이 딸이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예뻐할까? 조카도 그렇게 이뻐하는 아이인데 자기 딸이라면 금이야 옥이야 키우겠지. “

“ 아줌마, 우리 엄마 여기 살 때는 어땠어요? 우리 엄마 어렸을 때요. ”

“ 엄마? 엄마, 엄마는 너무 착했지. 이쁘고, 영리하고 어찌 보면 그게 네 엄마 팔자였나 봐.

고성에 있는 할머니는 엄마 새엄마인 거 엄마가 말해주셨니? “

“ 아니요, 이번에 처음 들었어요. ”

“ 엄마가 고성에서 살 때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

위로 오빠 둘에 아래로 배다른 동생 여섯이 주욱 있었지.

없는 집에 맏딸은, 게다가 전처소생 맏딸은 눈엣가시면서도 막 부릴 수 있는 식모랑 같았지.

오빠들은 어렸을 적 구박을 견디다 못해 다 집을 나가고

엄마 혼자 힘들게 그 모진 새엄마 밑에서 열네 살까지 견디고 살았다.

친엄마는 기장 어디에서 살고 있다고 어디서 소식은 들었는지.......

그걸 왜 찾아가? 자기 버리고 간 엄마를

고성 그 독해 빠진 여자도 엄마라고

그래도 열네 살까지 키워 준 고마운 엄마라고

고성 새엄마네 그렇게 잘하는 걸 보면 내가 속이 터진다.

자기가 낳은 새끼들은 여섯 다 고등학교까지 다 가르치고

금희만 초등학교까지 공부시켰어.

더 있다가는 학교도 안 보내주고 남의 집에 식모살이로 보냈다가 일찍 시집보낼까 봐 대구로 도망 온 거지.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우리 집에서 식모 살고, 열여덟 어린 나이에 시집가고.......

정말 귀신이 곡하게 들어맞았지 뭐니?

아휴...... 금희가 민욱이랑 결혼만 했으면 딱 좋았는데.

정말 여자 인물이 좋으면 팔자가 드센 건지.......

아휴 내가 진짜 주책이다. 어린 너한테 별 말을 다하네.

현아야, 이건 비밀이다. 비밀 “


“ 네, 알았어요.

아줌마, 저 목욕하고 이제 잘래요. 졸려요. “

“ 그래, 얼른 씻고 자자. ”


나는 목욕을 하다 눈에 비눗물이 들어갔다고 눈을 비볐지만

실은 엄마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 엄마는 얼마나 학교에 가고 싶었을까? ‘ 엄마가 보고 싶었다.


기분 좋게 목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아줌마 옆에 누웠어도 마음 한편은 불안했다


‘ 엄마가 와야 할 텐데....... 엄마가 아저씨랑 살려고 도망가버리면 안 되는 데...... ’

엄마가 들어온 것은 새벽녘이 다 되서였다.

엄마가 옷을 벗고 내 옆에 누워 내 가슴을 도닥였다.


‘ 엄마가 왔다. 엄마가 돌아왔다. ’


나는 이제 마음 놓고, 깊이 잠들 수 있었다.



“ 현아야, 얼른 네가 입었던 속옷이랑 옷만 가방에 넣고,

아저씨랑 아줌마가 사주신 옷이랑 가방 물건들은 아줌마가 서울로 보내 주실 거야.

언니, 잘 쉬다가요. 고마워요. “

“ 그래, 자주 놀러 와. 오랜만에 보니까 나도 좋다.

현아야, 엄마랑 자주 와. 언니들이랑 와도 되고. “

“ 네, 아줌마 감사합니다. ”


아줌마는 내 주머니에 꼬깃꼬깃 만원을 접어서 넣어주셨다.


“ 가다가 휴게소에서 너 먹고 싶은 거 사 먹어. ”

“ 언니, 옷도 많이 사주고, 잘해줬는데....... 애한테 또 무슨 돈을 줘요.

서울 올 때 연락해요. 우리 집에서 나랑 자자. ”

“ 그래, 가서 잘 먹고, 잘 쉬고 그러고 살아. ”

“ 알았어요. 언니 걱정하지 말아요. ”

“ 아줌마 안녕히 계세요. ”

“ 그래, 꼭 놀러 와. 다음에 올 때는 아줌마랑 부산 바다에 놀러 가자. ”



우리는 서울행 표를 끊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엄마는 말없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저씨가 왔다.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어야 할 아저씨가 터미널로 왔다.

“ 금희야. ”

“ 어, 오빠 ”

“ 금희야, 몇 시에 출발해? ”

“ 아직 삼십 분 남았어요. ”

“ 그럼 나 현아랑 잠깐만 요 앞 슈퍼에 가서 버스에서 먹을 것 좀 사 올게. ”

“ 알았어요. 늦지 않게 와요. ”

“ 현아야 ” 아저씨는 내 이름을 부르다 가만히 나를 보았다.

“ 아저씨 ”

“ 현아야, 고마워.

아저씨가 너한테 많이 고마워.

대구로 아저씨 보러 자주와. 알았지? 아저씨도 현아 보러 서울로 한 번 갈게. 너는 항상 환영이야.

네가 오면 아저씨가 좋은 데 데리고 가 줄게.

아저씨가 적어 준 번호 잘 가지고 있어. 그리고 일이 생기면

작은 일이라도 아저씨한테 전화하는 거야. 알았지? “


밍키 손가방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우리 집 번호를 적었다.


“ 아저씨, 이거 우리 집 전화번호예요.

오빠랑 언니들은 아침 7시면 모두 학교에 가고 5시가 넘어서나 밤늦게 와요.

엄마는 오전에 센터로 수업을 갔다가 3시 넘어서 나를 데리러 와요.

나랑 전화하고 싶으면 이 번호로 전화하면 돼요.

엄마는 거의 집에 있으니까 엄마가 받으면 나 바꿔달라고 하면 돼요.

내가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돼요. 알았죠? “

“ 어?..... 그래 알았어. ”

“ 아저씨는 똑똑하니까 외울 수 있죠? ”

“ 그래, 알았어. 아저씨가 현아 보고 싶을 때 전화할게. ”

현아야,

한 번만, 한 번만 안아보자.

아저씨가 한 번만 현아 안아보자. “


아저씨는 나를 안더니 한참을 놓아주지 않았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아저씨가 안쓰러워 나도 아저씨를 꼭 안아줬다.

“ 현아야, 네가 내 딸이라면 참 좋겠다. ”

“ 아저씨, 나도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


그렇게 한 참 동안 아저씨는 나를 안고 있었다.


“ 가자. ”

“ 네 ”


아저씨는 버스가 터미널 내부를 돌아 출구로 나갈 때까지 버스를 바라보고 계셨다.

엄마도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엄마는 졸리다고 자기만 했다.

서울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릴 때쯤 엄마의 옷 가슴팍은 흠뻑 젖어있었다.

서울에 와서는 아저씨에게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아빠에게 미안해 전화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저씨 전화도 오지 않았다.



그 후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아침에 선교원에 경화 손을 잡고 가거나

오후에 엄마랑 돌아올 때

아이들이랑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나 다방구를 할 때

엄마 심부름으로 약국이나 시장에 갈 때

아저씨를 닮은 사람이 자주 눈에 띄었다.

선교원으로 가는 대로변 육교 뒤에서도

골목 안, 굴뚝 기둥 뒤에서도

“ 현아야 ” 조용히 내 이름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속삭임 같던 내 이름이 들렸던 마지막 날은

하늘이 온 통 붉고, 보라색으로 물 들었던 초저녁이었다.

나지막이 내 이름이 들려 뒤돌아봤을 때

멀리서 절뚝거리는 검은 그림자만 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봄

더 이상 내 이름이 들리지도

아저씨를 닮은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들은 그 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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