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언니가 이겼어. ep- 17

by 옥상 소설가

작은 언니는 내 주위를 늑대처럼 어슬렁 거리며 나를 공격할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내가 골목길에서 놀고 있거나 심부름을 가서 집에 없으면

선교원 가방이나 책상 서랍 수첩 등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고 있으면 소머즈 마냥 초집중을 해서 내 얘기를 엿듣고

굴뚝 뒤 기둥이나 남의 집 대문에 숨어서 계속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 중학교 일 학년이 왜 저러나? ’ 싶으면서도 나도 언니를 경계하느라 온 정신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괴롭힐지?

무엇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길지?


하루 종일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다.

낮에는 매가 되어 서로를 날카롭게 노려보고, 밤이면 땅굴에 속에 숨은 생쥐처럼 숨죽이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상대의 약점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알아내야 한다.

언제 자신이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언니와 나는 밤마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실눈을 뜨고 감시하고 있었다.

선교원에서 목사님, 전도사님은


“ 원수를 사랑하라. ”


말씀하셨지만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겠는가?

죽을 만큼 미운 사람이 원수이다.

원수는 원수일뿐이다.

원수는 절대 사랑할 수 없고 만약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당했으면 갚아주어야 한다.

분명 언니는 청바지 사건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를 망신주기 위해서 어떻게든 벼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약점과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염탐하고 있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가 밤새 내 봉숭아가 무사한지 확인해야 한다.



‘ 어?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봉숭아 잎은 여전히 진초록에 무성한데.

꽃잎이며 연두색의 작고 귀여운 꽃봉오리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봄부터 씨앗을 심고 매일 아침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정성 들여 키운 내 봉숭아

올해는 엄마, 큰언니, 경화, 안나, 안나 아줌마, 롯데슈퍼 혜원 언니까지 봉숭아 물을 들여달라고

나에게 예약을 해 놓은 상태라 넉넉히 열 그루나 심어놓았는데.....

이파리만 남기고 활짝 핀 꽃이며 곧 피어나려고 빨간 꽃잎을 살짝 보이는 통통한 봉오리,

연하고 좁쌀같이 작은 아기 꽃봉오리까지 싹 다 없애 버렸다.

잎과 같이 사라졌다면 누가 봉숭아 물을 들이려고 했다지만

작은 꽃봉오리까지 사라졌다는 건 일부러 내 염장을 지르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얼마나 치밀하게 따갔는지 줄기에는 손톱으로 살살 긁어낸 자국까지 있었다.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은 작은 언니밖에 없다.

내가 가장 아끼는 꽃을 언니가 그냥 둘리는 없다.

나는 설마 언니가 식물에게는 그러지 않을 거라 방심했고, 허탈함과 어이없음에 할 말도 잃어버렸다.

겨울까지 봉숭아로 물들인 손톱을 보며 행복해할 나를 보기 싫어 언니는 봉숭아꽃을 모두 제거해버렸다.

계단을 내려오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큰 오빠를 보자 울음이 터져버렸다.

비누칠을 하다가 하얀 귀신같은 얼굴을 한 오빠가 내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다.

“ 왜, 왜, 왜 울어? 왜 그래? ”

“ 오빠, 작은 언니가 내 봉숭아 꽃이랑 꽃봉오리까지 다 따버렸어.

내가 봄부터 정성 들이고 아껴서 키운 건데....... ”

“ 언니가 왜 그래? 잘 봐. ”

“ 아니야, 오빠 올라와서 봐봐. ”


오빠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봉숭아 사이사이를 뒤적거리며 한참 동안 살펴보다 한숨을 쉬며

계단을 내려왔다.


“ 야, 민아, 너 진짜 나이가 몇이냐?

중 1이 일곱 살짜리 막내 동생하고 싸우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진짜 어이가 없다. “

“ 오빠는 몰라서 그래. 쟤가 얼마나 사악한 앤 데......

다들 속고 있는 거야. 쟤 속에는 여우가 도대체 몇 마리가 들어있는지, 아마 구미호가 들어 있을 거야.

아주 능구렁이야. 능구렁이, 쟤 응큼한 건 나밖에 몰라. 아후~~ 속 터져. “

“ 어이구...... 내가 진짜 말이 안 나온다.

너 언제 철들래? 언제 동생이랑 그만 싸울래? ”


오빠가 언니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 빨리 밥 먹어. 학교 가야지. 현아도 얼른 앉아 먹어라. ”

“ 엄마, 나 밥 먹기 싫어. 안 먹을 거야. ”

“ 아니. 아침부터 또 왜 그래? ”

“ 엄마, 언니가 내 봉숭아 꽃 다 따버렸어. 꽃봉오리까지 몽땅 다 따버려서 이제 봉숭아 물도 못 들여.

올해는 끝난 거야.

안나 하고 안나 아줌마 은주 언니 다 내가 봉숭아 물들여주려고 했는 데.

약속도 못 지키고, 난 이제 거짓말 장이야.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야. “


“ 아니 왜 이렇게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들이야? 내가 아주 너네 때문에 속병이 낫질 않는다. ”

“ 민아. 너 진짜야? 네가 그랬어? ”

“ 무슨? 내가 왜 그래?

앞 집 경화가 그랬을 수도 있고, 옥상들이 다 연결되어 있어서

봉숭아 물들이고 싶은 사람이 따갔을 수 도 있지? 그럼 화분을 마당에 내려놓고 키우면 되잖아.

아무나 따가기 쉽게 왜 옥상에서 키우니? 니 잘못이지. “


“ 그래, 현아야. 작은 언니 말이 맞다. 마당에 내려놓고 키워라.

옥상은 아무래도 남의 손을 탈 수 있으니까

이따가 엄마랑 화분들 다 내려놓자. “

“ 안 돼, 옥상에서 키워야 햇빛도 많이 받고, 바람도 통해서 잘 자란단 말이야.

마당은 좁아서 다 내려놓을 수도 없어.

사람들이 지나가다 화분을 엎을 수도 있고, 그냥 옥상에 두고 키울 거야. 다시 심을 거야.

내 봉숭아에 손댄 사람은 벌 받을 거야. 아마 그럴 거야. “


더 말해야 소용없다. 다시 힘을 내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 엄마, 나 밥 먹을래. 나 밥 많이 줘. 아무래도 밥 먹어야 될 것 같아. ”


작은 언니가 나를 보다 씩 웃더니 의기양양해져 학교에 갔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나도 질 수 없다.




“ 악~~ 어~~ 뭐야? 이거? 이거 어디 갔어? 내 요약노트 어디 갔어? “

“ 왜 아침마다 이렇게 소리를 질러? ”

“ 언니, 언니가 치웠어? 내 요약 노트? ”

“ 어? 무슨 노트? ”

“ 내가 기말고사 대비하려고 전과목 요약한 노트인데, 없어져 버렸어. 내가 분명히 책꽂이에 꽂아 놨는데.

검은색 바탕에 긴 생머리 여자가 자전거 타는 뒷모습 표지로 있는 노트 말이야.

그거 분명히 책꽂이 오른쪽에 꼽아 놨는데. “

“ 학교에 두고 온 거 아니야?

아니면 친구 누구 빌려줬던가? “

“ 내가 그걸 왜 빌려줘? 그거 얼마나 힘들게 정리한 건데.

애들은 그거 있는 줄도 몰라. 절대 안 보여주지.

그게 있어야 공부하는 데, 내일이 사회랑 과학시험인데........ “


“ 그거 학교에서 누가 훔쳐 간 거 아니야? ”

“ 학교에 가져 간 적 없다니까, 내가 몇 번 말해? 그거 보면 다 복사해 달라고 할게 뻔한데

그렇다고 안 빌려 줄 수도 없고. 그래서 집에만 두는 건데......

너, 너, 너 너 너 너........ 너지? 네가 가져갔지?

빨리 내놔. 내 노트 내놔. 낼 시험이라고, 낼 시험 본다고

빨리 내놔. “

“ 언니 노트를 왜 나한테서 찾아?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면 잘 간수해야지.

내가 왜 언니 걸 가져가? 나한테 쓸모도 없는 걸. “

“ 야, 빨리 줘, 내일 시험이야.

엄마, 얘한테 빨리 내 노트 주라고 해. 낼 시험이라고, 그거 없으면 나 시험 못 봐.

그러다 나 점수 떨어지면 등수 떨어진다고. “

“ 현아야, 얼른 언니 줘라. 네가 가져갔으면 후딱 줘. 언니 낼 시험이다. “

“ 엄마, 나 진짜 아니야. 내가 왜 언니 걸 가져가?

언니 참 이상하네....... 자기가 잃어버린 노트를 왜 나한테서 찾아?

칠칠치 못하게 자기 물건 간수도 못해? “


나는 계란물이 묻힌 소시지에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따라 계란이 왜 이리 고소한 지,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언니는 밥은커녕, 펑펑 울며 안방, 오빠 방, 다락방 여기저기 노트를 찾으러 다니다가

다시 한번 대성통곡을 하고, 눈이 퉁퉁 부어서 학교로 갔다.

아마 오늘도 지각일 것이다.


‘ 밤새 찾아봐라. 나오나? 그게 나올 리가 없지?

내가 교회 큰 쓰레기장에 가서 박박 찢어서 버렸는데 절대 나올 리 없지. ‘


언니는 반에서 3등이나 떨어졌다.

항상 반에서 1,2등을 다투고 있었는데

정말 그 노트 때문이었는지 반에서 3등을 했고

꼬리표가 나온 날 집에 오자마자 내 등짝을 퍽퍽~~ 세대나 때렸다.

눈에서 레이저를 뿜으며


“ 너, 너 때문에 내가 반에서 3등 했어. 분명 내가 일등도 할 수 있었는데.

너 두고 봐. 내가 너 가만 안 둘 거야. ”

“ 저번에 언니가 내 봉숭아 꽃 다 따버렸지?

아니라고 해도 알아. 언니가 그런 거. “


이번은 언니의 공격 차례다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언니는 이번 기말고사에서 라이벌을 제치고 1등을 하려고 한 달전 주말마다 도서관에 갔다.

그런데 2등이나 떨어진 3등을 해버렸다.

고소했지만 한 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했다,

‘ 내가 너무 심했나? ’ 후회도 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주변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언니가 노리고 있을 만한 것들을

아주 작고 사소하더라도 찾아내고 숨겨야 했다.

언니는 절대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나의 비밀을



“ 현아야. 제과점 가서 햄버거빵 두 봉지랑 식빵 두 봉지

슈퍼 가서 콜라랑 환타, 사이다 제일 큰 거로 사와.

남은 돈으로 너 먹고 싶은 거 사고. “


엄마가 방학식이라고 큰오빠와 언니 친구들 모두를 집으로 초대했다.

엄마는 시험이 끝나거나 방학식이면 매 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이번 학기는 센터에서 양식 과정을 배우고 있어

샌드위치, 햄버거, 감자튀김까지 배운 것을 복습 삼아 요리해주셨다.

골목을 지나 대문을 열려고 하는데 웃음소리가 온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웃느라 우리 집 창문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언니들이 웃는 소리에


‘ 뭐가 그리 재밌나? ‘ 궁금한 듯 우리 집 창문과 대문을 바라보며 지나갔다.

대문을 열고 마루 아래 댓돌을 보니


언니 오빠들의 신발들이 가득했다.

현식 오빠, 향미 언니, 큰언니 친구들 친구 미래, 현숙, 은희

그리고 작은 언니 친구들 7인방까지 신발들로 온 마당이 가득 찬 것 같았다.

“ 와~~~~ 진짜? ”

“ 큭큭큭 야, 네 동생 진짜 웃긴다. ”

“ 그러게 이 계집애, 이거 앙큼하네...... 이게 아주 웃긴다니까!....”

“ 동생 남편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

“ 너는 중학생이 그것도 모르냐? 제부라고 하는 거야. ” 큰 오빠의 목소리다.

작은언니가 방바닥을 두드리고, 옆 친구를 때리며 웃는지


“ 야, 아파. 그만 때려. ” 정아언니 소리까지 들렸다.

“ 현식아, 그럼 내가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냐?

네가 내 막내 동생 남편이면......

암튼, 너 나한테 잘 보여라. 현아랑 결혼하려면. “


“ 아휴~~~ 야, 그만해. 현아 알면 속상해하겠다. 너 빨리 그거 제자리에 갖다 놔.

현아 알면 난리 나.

왜 남의 일기장을 가지고 와서 읽어.

민아야. 얼른 제 자리에 넣고 와. “

“ 뭐 어때? 걔가 내 정리노트 훔쳐가서 내가 반등수가 얼마나 떨어졌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오빠, 아니 제부, 앞으로 우리 동생 잘 부탁해.




자, 계속 읽는다. 잘 들어.

앞으로 13년 남았다.

스무 살은 돼야 고백을 할 수 있다.

그때까지 현식 오빠한테 애인이 안 생겨야 하는데......

너무 잘생기고 멋있어서 주변에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인물이 좋으면 인물값 한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진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오빠 주변에 자꾸 동네 언니들이 백여시 같이 알짱거린다.

작은 언니가 제일 여우 짓을 한다. 민아 언니가 제일 밉다.

절대 작은언니한텐 뺏길 수 없다.


“ 컥컥컥, 킥킥킥 아우~~~ 난 웃겨서 죽을 것 같아.

너도 현식 오빠 좋아하니?

나 말고 누가 또 자꾸 백여시 짓을 해서 현아 심기를 괴롭히는 거니? “


자기들끼리 웃고 얘기하느라

내가 대문을 닫는 것도, 마루 문을 연 것도 아무도 몰랐다.


“ 왜 남의 일기장을 봐? 허락도 없이.

엄마 오빠 언니들 다 미워.

나 집 나갈 거야.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가서 죽어버릴 거야. “


나는 소리를 지르며 대문을 쾅 닫고 달려 나갔다.

골목길에서 나와 코너를 돌 때였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어서

달려오는 무언가에 “ 쾅 “ 하니 부딪쳤다.

순간 몸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명소리만 들렸다.

“ 현아야 ”

“ 현아 엄마 좀 불러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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