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간방의 신기한 아저씨 ep -18

by 옥상 소설가

“ 엄마, 여기 어디야? ”

“ 여기 골목길이야. 골목길 ”

“ 내가 왜 여기 있지? ”

“ 너 기절했었어. ”

“ 아, 맞다. 아까 뛰어오다가 뭐랑 부딪쳤는데....... 그게 뭐야? ”

“ 쌀집 아저씨 오토바이랑 부딪쳤어. “

“ 여기 병원 진짜 아니야? 나 얼마 동안 기절했어? ”

“ 한 30초..... ”

“ 뭐라고? 30분도 아니고 30초? 시간이 한 참 지난 것 같았는데........”

“ 아니야, 현아야, 얼른 일어나 봐. 병원에 가자. ”


‘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여주인공이 픽픽 잘 쓰러지고 입원실이나 응급실에서 깨어나던데.....

나는 달려오던 오토바이랑 부딪쳤는데

고작 30초도 안되게 기절했다고?

와~~~ 기절도 재능이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


짧게 기절을 했다니 왠지 허무한 느낌마저 든다.

얇고 야리야리한 여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 데......


“ 현아 엄마, 현아 바닥에 떨어질 때 머리부터 떨어지진 않았어.

그래도 얼른 병원 가서 검사랑 다 받아봐. 혹시 모르잖아. “


과일 집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쌀집 아저씨는 놀라고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신다.


“ 아이고, 어떡해? 현아야, 미안하다.

아저씨가 배달이 밀려서..... 늦는다고 재촉하는 전화에 길에서 속력을 너무 냈어.

현아 엄마, 얼른 병원 가죠. 저도 같이 가요. “

“ 아니에요. 얼른 배달 가세요. 제가 현아랑 다녀오면 될 것 같아요. ”


엄마는 나를 업고 제일 병원으로 갔다.


“ 팔 이렇게 움직여봐. 오른쪽, 이번 엔 왼쪽

다리도 들어보고....... 어머님, 괜찮은데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나 근육에는 이상 없는 것 같아요. 머리를 땅에 부딪치진 않았으니까

집에 가서 지켜보세요.

애가 쳐지면서 온 몸이 늘어지거나

잠이 쏟아지고 의식을 잃는 경우

어지럽다고 하거나 구토를 하면 바로 응급실로 오시면 돼요.

나이가 어려서 정밀 검사는 득 보다 실이 더 많아요. 증상이 보이면 그때 하죠.

내일 일어나서 아프다고 하면 물리치료만 받으면 될 것 같아요. “

별 이상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와 언니들은 마루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언니는 미안해서인지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빠와 큰 언니도 안쓰럽게 나를 보고 있었다.


“ 현아야, 미안해. ”

“ 괜찮아. 나 안 아파. ”


저녁을 먹고 오늘은 일찍 자라고 해서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오빠와 큰 언니는 자기 방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나는 작은 언니랑 이불을 펴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괜찮아? 내가 미안해....... ”

“ 나도 미안해. ”

“ 어디 아픈 건 아니야? ”

“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는데....... ”

“ 너 하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뭐든 다 해줄게. ”

진짜? 정말이야?

그럼...... 나 언니 친구들 놀러 와서 비밀 얘기할 때 나도 끼워줘.

언니들끼리 놀러 갈 때나, 구경 갈 때도, 나 떼놓고 가지 말고, 데리고 가. “

“ 알았어. 친구들이 괜찮다고 하면 데리고 갈게.

만약 너 떼놓고 가자고 하면 나도 안 갈게. “

“ 삐삐네 즉석 떡볶이 먹으러 갈 때 나도 꼭 데리고 가. ”

그래. ”


언니는 일어나더니 서랍장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 현아야. 이거 니 거야. ”

“ 이게 뭔데? ”

“ 일기장이야. 너 일기장 다시 사야지.

이거 자물쇠 달려 있는 거니까 일기 쓰고 나서 자물쇠로 잠그면 돼.

열쇠는 네가 알아서 숨겨두고. “

“ 언니가 사 온 거야?

고마워, 내일 가서 다른 걸로 바꿔도 되지? ”

“ 그럼, 왜? ”


“ 내일 선물가게 같이 가서 다른 일기장으로 바꾸자. ”

“ 왜? ”

“ 열쇠가 달린 건 귀찮아. 그리고 언니가 하나 숨겨놨을 수도 있고.

번호로 돌리는 일기장으로 살래. ”

“ 어이구....... 그래 알았다. 내일 학교 갔다 오면 같이 가자. ”

“ 내가 화 안 낼 테니까 솔직히 말해봐. 내 요약 노트 어떻게 했니? ”

“ 언니가 내 봉숭아 꽃이랑 꽃봉오리 다 땠지? ”

“ 그래...... 우리 다 잊자. 쌤쌤이다. 쌤쌤 ”


민아 언니는 내가 쌀집 아저씨 오토바이에 치인 날 이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전엔 나를 엄마의 사랑을 뺏어간 얄미운 동생으로 여기다 이젠 큰 언니처럼 나를 잘 돌봐주었다.

전설의 고향이나 납량 특집 영화가 끝나고 잠이 들 때면 우리는 서로 슬며시 손을 잡고 잤다.

손을 잡았다는 이유 하나로 무섭지 않았고, 잠이 들 수도 악몽을 꾸지도 않았다.

작은 언니네 칠공주파는 나를 공식적인 깍두기로 인정했고

이제 팔공주로 명칭을 변경했다.


왜 나만 껴주냐고 다른 동생들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지만

가뿐히 무시하고 나를 역전 선물 가게나 삐삐네 즉석 떡볶이네도 항상 데리고 갔다.

얼마 후

팔 공주에서 칠 공주로 다시 변경됐다.

중학교 근처에 롤러장이 생기면서 언니들은 나를 두고 주말마다 다니기 시작했다.

한번 따라가 본 롤러장은 남녀 중, 고등학생들로 붐비고 팝송들이 시끄러워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오빠와 큰 언니는 학원으로 가고 작은 언니는 롤러장에 간 토요일 오후

어떤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이따 큰 짐들은 들어오고, 저 먼저 와서 청소 좀 하려고요. “

“ 아 그래요. 현아야 인사해.

비어 있는 문간방으로 이사 들어오는 아저씨야.

우리 막내 현아라고 해요. “

“ 안녕하세요. ”

“ 그래, 안녕 ”


아저씨는 내게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해야 하는 손은 오른손인데 왼손이었다.

오른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이상해서 아저씨 오른손을 한 참 쳐다봤다.

아저씨가 눈치를 채고 웃으셨다.


“ 아 이거...... ”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팔을 꺼내는 데 있어야 할 오른손이 없다.

“ 어?...... 아저씨 오른손? ”

“ 아저씨 오른손 없어. ” 아무렇지 않게 말하신다.

“ 어떻게 된 거예요? 사고로 그랬어요? ” 엄마가 물었다.

“ 아니요, 태어날 때부터 없었어요. ”


아저씨는 엄마에게 빗자루와 쓰레받기 걸레를 빌려

이삿짐이 들어오기 전 깨끗이 방을 청소했다.

수돗가에서 걸레를 빠는 데 한 손으로도 능숙하게 잘 빨았다.

나는 아저씨가 신기해서 한 참을 바라봤다.


“ 와, 아저씨 한 손으로도 잘하시네요. ”

“ 그래, 왼 손으로도 잘하지? ”

“ 네, 신기해요. ”

“ 아저씨가 더 신기한 거 보여줄까? ”


물기를 턴 손으로 아저씨는 무엇인가를 가방에서 꺼냈다.

의수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보여주셨다.

이리저리 끼우더니 의수를 단 손을 보여주셨다.


“ 출근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이걸 하고, 집에 나 혼자 있을 때는 편하게 빼고 있어.

지금은 너랑 둘이 있으니까 빼고 있어야겠다.

이 손 무섭니? “

“ 아저씨 한번 만져봐도 돼요? ”


부드럽긴 했지만 왠지 이상했다.

의수를 끼우는 부분의 피부가 발갛게 부어 있었다.


“ 아저씨, 여기 아파요? ”

“ 응, 계속 맨살에 닿으니까 좀 따가워. ”

“ 아저씨, 이따 사람들 다 와도 이거 끼우지 말고 그냥 있어요.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

“ 그럴까? ”

“ 네, 괜찮을 거예요. ”


아저씨는 의수를 하지 않아도 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오른손이 없는 것보다

처음 본 의수보다

왼손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아저씨가 신기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와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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