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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Nov 23. 2020

잘 가.  나의 옥상

고민이나 문제가 생겨 괴롭거나 힘들 때

눈을 감고 해결 방안이 보일 때까지 방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왜 이런 문제들이 생겼는지

엉켜버리고 꼬여있는 상황을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일 때까지

질문하고 대답한다.    


혼자 움직인다.

주위에 사람이 여럿이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외로움은 덜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한다.

고독할지라도 참고 깊이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어느 순간 고민이 잡념이란 생각이 들 때

차라리 몸을 고되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면

등산 가방에 생수 스마트폰 이어폰을 챙겨서 출발한다.


집 근처에는 정상까지 다녀오면 2시간이 넘는 거리의 산이 있다.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아니면 항상 산에 올랐고

나무들 돌들 하늘은 다정하고 상냥하게 나에게 말을 건넸다.


“  조심히 천천히 걸어가세요.  이끼가 낀 돌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여요.  당신이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슬프고 괴롭더라도 걸음을 멈추지 마세요.  

   이 시간들은 지나갈 거고 웃으면서 돌아볼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살아가는 건 그런 거니까  “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을 달리기도 했지만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만질 수 있는 나무와 숲, 돌과 이끼가 있는 산이 더 좋았다.



그런데 그 날은 왠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느끼며 달리고 싶었다.

좀처럼 보지 않았던 한강

안양천을 달리다 합수부에 이르고 한강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항상 저려왔다.

어린 시절 나의 집과 가까웠던 한강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자주 혼자 걸었고 특히나 사춘기 때는 한강대교를 자주 건너 다녔다.


'  그래,  이사를 가기 전에 한강을 가보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끝없는 길을 달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  '


중력을 덜 느껴 피로감이 덜하고, 속도를 높여가며  달리면 심장은 터질 것 같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자전거를 타는 내내 날이 좋을 수만은 없었다.

일기예보에 없던 소나기나 여우비가 올 때는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나 다리 아래에서 비를 피하기도 한다.

쉬이 그치지 않을 비라면 비 맞는 것을 즐기며 계속 나아간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아무도 없는 도로를 달리면

내가 세상의 주인이 된 것 마냥 자유롭고 부자처럼 느껴졌다.


한강변을 달리다 문득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나의 집을 가보기로 했다.

한번 가볼까 생각은 했었지만

그 시절을 다시 마주하기가 겁이 나서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눈을 돌렸다.

무서운 괴물도 아닌데  

내 눈으로 그곳을 보는 것이 싫어

꼭 지나쳐야 한다면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보조석에서 눈을 감았다.


‘  끝이 안 좋았던 곳이라.......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해서일까?  ‘    


‘  혹시나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지는 않을까?      

  더 시간이 지나면 조금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을 수 있어.

  서울은 한참 재개발이라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몰라.  

  한 번만 보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말자.  '


한 때는 행복했었던 어린 시절을 본다는 기대감   

힘들고 괴로웠던 과거를 직면해야 했던 괴로움

이사를 가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만감이 교차하며 여러 감정이 뒤섞여 한참을 강만 바라본다.

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저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겁이 났을까?


'  그래 가보자.  어차피 한 번은 맞닥뜨려야 하니까

   죄지은 것도 아니고,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지 몰라.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었고 그곳을 떠나왔으니까.  '


방향을 틀어 한강대교를 지나 계단을 올라와 사육신묘를 지나 노량진으로 향한다.

사이클 복을 입은 나를 신기하게 보는 고시생들과 재수생들    


‘  아직 변하지 않은 것도 많구나.  ’        



22살

천천히 이별을 준비할 여유도, 작별의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도망치듯 이른 새벽 떠나야만 했던 곳

태어나 이십여 년을 살았던 동네

아기부터 갓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내 시간들을 보냈던 곳

  

페달을 밟으며 도로와 인도, 새로운 건물과 예전 건물들을 바라본다.

오랜 이웃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 웃음이 나온다.    

8차선 도로처럼 느껴졌던 도로는 좁은 4차선 도로였고

여러 아이들이 횡대로 걸어가도 남았던 인도는 성인 넷이 지나가려면

어깨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만큼 좁았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페인트칠과 간단한 외관 공사만 한 상태

부레옥잠과 연꽃 개구리밥 물레방아가 있던 연못과 스탠드 수돗가와 건물

그네 정글짐 미끄럼틀 철봉

학교를 둘러싼 담장만 사라지고 모두 있는 그대로였다.    


‘  이렇게 작은 곳이 었다니?..... 아직도 내 기억에는 크기만 한데.   ’


다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 크기의 왜곡을 바로 잡는다.    

들어갈까 하지만 왠지 들어가기엔 겁이 난다.  

어디선가 친구들이 담임 선생님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  왜 이렇게 겁이 나지?  나는 겁이 없는 편인데.  이상하다.  '



큰 도로를 지나 내가 살던 동네 입구로 들어가 본다.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샅샅이 길과 가게를 살펴본다.  

호기심과 기대 두려움이 뭉쳐있다.


'  혹시나 예전 가게나 흔적,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을까?  '


새로 지어진 집들과 대문, 올라간 건물 등은 많지만 많이 낯설지는 않다.

곳곳에 옛 자국들과 기억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한참을 더 들어가 본다.

우리 집은 시장과 인접해 있었는데

재래시장은 화재와 붕괴 여러 사고의 위험으로

주택들은 노후화로

재개발이 시작되어 이주가 한창이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비어있는 집이 가득이다.

집도 가게도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어 한산함을 넘어 너무나 고요하고 인적이 드물어 무섭기까지 하다.


'  그래도 우리 집은 보고 가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윗동네에서 좁은 계단을 지나 큰 계단을 거쳐 내려오는 길

깜깜하고 동굴 같은 시장을 통과하는 길

과일가게 솜틀집 쌀가게 야채 할머니가 계시는 골목길을 지나는 길


모든 길을 용도에 따라 걸어 다녔지만

하굣길 나는 자주 고래 속 같이 깜깜한 시장 안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시장 안에는 여러 가게들이 있었고

항상 사람들로 복작복작해 온갖 구경거리와 다양한 냄새가 가득해 생기가 있었다.

집에 와도 부모님은 일을 나가셨고 형제들과는 나이 터울이 많이 져서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일이 많았다.

시장 안을 지나가면 소란스럽고 냄새도 났지만 집에 가면 느낄 외로움에 대비해

번잡스러운 시장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빛들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환해지면 시장이 끝나가고 있단 사인이고

완전히 시장을 벗어나려면

입구이자 출구 옆 작은 실비집을 지나가야만 한다.


'  어~ 아직도 이 식당이 있었다고?  '


 

“  할아버지가 시작해서 저희 어머니와 저까지 60여 년 운영했던 식당은

   재개발로 인해 장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옮긴 장소는 *** 건물이며  시장 재개발 공사가 마치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식당의 외벽에 걸린 큰 플래카드에 적힌 친절한 마지막 인사   

 

‘  그 아주머니의 잘생긴 아들은 여기에 남아 그대로 장사를 계속했구나.  

   키가 크고 잘생겼지만 수줍음이 많았던 그 오빠가 이 식당을 지켜냈어.  ‘    


갑자기 고등학생 그 오빠 얼굴이 떠오른다.

나보다 3,4 살은 더 많았을 ‘ 그 ’

부끄러움이 많았지만 마주치면 항상 웃음을 지었던 그가

기특하게도 어른이 되어서도 여기에 남아 엄마의 식당을 운영했던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배도 나오고 머리도 벗어지고 동네 아저씨처럼 변했을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식당을 지켜내 줘서 고맙다고,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시장 앞 작은 공터에서

다방구, 숨바꼭질, 고무줄,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는 나와 아이들이 보인다.

소란스럽게 웃으며 놀아대는 우리들을 내 쫒으려

욕을 퍼붓고 물을 끼얹어대는 할머니도 보인다.  


쌀 집 아저씨는 자전거 뒤에 쌀을 싣고 있고

골목길에 앉아 야채를 팔던 할머니 두 분은 아직도 아웅다웅 말다툼을 하고 계시고

기름집을 지나니 방금 참기름을 짰는지 동네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가득이다.

학교를 오갈 때 내 이름을 부르고 제철 과일을 주시던 과일 가게 아줌마는 나에게 귤을 하나 건네신다.

머리에는 항상 민방위 모자. 헐렁한 남방에 몸빼바지

이가 다 빠져 턱이 합죽했던 솜틀집 할아버지는

' 탈탈탈 ' 요란하고 규칙적인 소리를 내는 솜 트는 기계 옆에 서서

솜이 푹신하게 잘 나오는지 솜을 누르며 확인하고 계신다.

  


그들 모두가 그리워진다.  

눈물이 터져서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다.


20여 년간 머물렀던 집으로 가본다.  심장이 덜컹덜컹 해진다.

아직 페인트 칠이 남아있는 벽면에 적혀있는 번지수 658-7

녹슨 대문과 대문 위쪽으로 옥상이 보인다.

옥상에는 여전히 빨랫줄이 걸려 있다.

     

빨랫줄에는 빨랫감이 없지만

바람에 하얀 빨랫감들의 축축한 냄새가 훅~~~ 풍겨져 나온다.    

눈을 감자 어린 내가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4월이면 씨앗을 심고, 연두색 떡잎이 흙을 뚫고 나오면

고생스러움을 이겨낸 작은 그것에 감사하고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점차 줄기가 길어지고 연한 잎들이 나와 점차 녹색으로 짙어지면


'  올해는 얼마나 진한 주황빛을 낼까?  '  궁금해했던 나의 봉숭아


비가 세차게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한 밤중이라도 우산을 들고뛰어 올라갔던 곳

한 여름 나와 언니들 동네 아줌마 친구들의 천연 매니큐어 봉숭아를 기르던 곳

콘센트를 줄줄이 연결해 기와를 넘어 옥상까지 전선을 끌어 가요와 팝 라디오를 듣던 나의 아지트

밤이면 스탠드와 램프를 켜

책을 보고, 숙제를 하고, 학예회 장기자랑에 친구들이랑 나갈 코미디 극본을 쓰던

매일 밤 돗자리를 펴고 혼자 누워도 지겹지가 않고 외롭지 않았던 나만의 옥상    


눈을 뜨자 다시 어른인 나로 돌아와 그곳을 말없이 올려다본다.

초인종을 눌러 공간을 공유했던 인연을 핑계 삼아 마당도 둘러보고 옥상도 올라가고 싶다.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  그리움일까?  서러움일까?  '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쳐다본다.

참지 않으면 주저앉아 엉엉 울 것 같아 이를 깨물고 옥상만 올려다본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이상하다 여기고 나를 살펴본다.

미련이 남지 않도록 원 없이 바라보다 몸을 돌려 자전거에 올라탄다


'  이제 됐다.  그만 가자.  '


페달을 밟지 않았어도

잠시 눈을 감았음에도 그곳이 다시 그립다.   

  

‘  나는 죽을 때까지 이곳을 잊지 못하겠구나.  ’    


서러움과 그리움에 다시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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