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3. 검은 상복의 할머니

by 옥상 소설가

검은 한복을 입은 할머니는 김 선생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놀란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땀구멍 하나 하나에서 물기가 솟았다.

할머니는 바닥을 ' 스르르 ' 미끄러져 김 선생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괴이한 모습에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우리 애기씨 괴롭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여 부켜이,

불에 타그넹 온몸이 타 들어가졍까지 숨이 붙어그넹 고통스럽게 죽어불고,

물에 빠저 그넹 뱃속 늬 창자가 베염처럼 꼬여 죽여블고,

벼랑 끝에 매달아져그넹 온몸의 뻐들이 뿌러져 심장을 찌르멍 살갗을 뚫어내멍 죽을꺼여게.

우리 애기씨 괴롭히는 사람은 자식들까지 모두 고통스럽게 죽일꺼여게. “


검은 한복을 입은 할머니는 어느 새 김 선생의 코 앞까지 다가와

파란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주변에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김 선생에게 다가올수록 바다 비린내가 진하게 풍겼다.

“ 우리 애기씨 도우라이.

우리 아기 도와주믄 도우면 이녁 고통스런 죽음에서 솔아남아진다게.

겐디 그 작산 놈이영 연이영 똑고치 우리 애기 씨를 아프게 허민

이녁 똘들은 1년 새에 나가 고른것치룩 죽을거여게 .

이녁도 뒈싸지고, 이녁 서방도 죽고게, 아라시냐 나가 다 죽일거난. “


김 선생은 너무 무서워 몸이 부들부들 떨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녀는 검은 상복의 할머니가 퍼붓는 저주의 말들을 모두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입을 벌려 ‘ 악 ’ 소리 하나 내지르지 못했다.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할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 뭐야? 내가 헛것을 봤나? 그래, 내가 귀신을 본 거야. 그런 걸 거야. ’


김 선생은 환상을 본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생생해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연우의 휠체어 앞에는 물 자국이 흥건했다.


‘ 혹시.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어? 이게 뭐야? 웬 물이 고여 있지? 바닥에 물기가 있으면 안 되는데.

분명 아줌마가 퇴근하면서 바닥 청소를 했을 텐데 ’


김 선생은 휠체어 앞의 물이 이상하고 무엇인지 확인을 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쭈그리고 앉아 그 물을 만져보았다.

손가락에 닿은 물의 느낌은 미끄덩했고, 그녀의 혀에 살짝 갖다 대자 짠맛이 나며 비린내가 낫다.

바닷물이 분명했다.

‘ 환영이 아니었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 여자는 왜 여기에 있는 거고?

그 할머니는 또 누구야?

이 물은, 아니 이 바닷물은 뭐지?

이 여자를 돕지 않으면 우리 남편이랑 딸들을 1년 안에 다 죽인다고?


왜?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죽일 사람들은 내가 아니고

그 남편이랑 그 여잔데.

어쩌다 내가 엮여버린 거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여자를 도와야 하는 거지?


김 선생은 공포와 두려움에 몸이 벌벌 떨렸다.

자신과 남편은 죽더라도 딸들은 살려야 했다.

휠체어에 앉은 연우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연우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 연우 씨, 당신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내가 연우 씨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


“ 선아야, 선우야 ”


“ 아! 내가 제정신도 아닌 사람한테. 무슨

약에 취해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사람한테 말을 걸어서 뭐해.

만약 약에서 깨어나면 그렇다면 내가 도울 방법을 말해 주겠지.

그래, 일단 정신이 돌아와야 해.

연우 씨, 나를 봐요.

이제부터 내가 연우 씨를 도울 거예요.

연우 씨한테 무슨 사연이 있는 줄 모르지만 정신 차려야 해요. “


“ 내 새끼들....... ”


연우는 선아와 선우만 되풀이했다.

그날 밤부터 김 선생은 연우에게 들어가는 진정제와 수면제의 양을 줄여나갔다.

주사해야 할 약들도 영양제와 비타민으로 바꿔 연우의 몸에 들어가게 했다.

죽어가는 짐승처럼 멍하고, 퀭한 연우의 눈빛에 점차 맑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의식이 돌아오는 듯 눈에 초점이 맞아갔다.


“ 연우 씨

빨리 여길 나가고 싶죠?

연우 씨는 선아 선우를 만나러 가야 해요. 그 아이들은 아무래도 연우 씨 아이들일 것 같은데

잘 먹고, 잘 자고, 햇빛을 쐬고 건강해져야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이 미음부터 삼켜요. 먹기 싫어도 먹고, 자기 싫어도 자야 해요.

아이들 생각해서 선아 선우 모두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


갑자기 연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연우의 귀에 메아리처럼 ‘ 웅웅~~~ ’ 거리던 김 선생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뱅글뱅글 돌던 김 선생의 얼굴도 정지되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우는 입을 벌리고 김 선생이 먹이는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

미음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타는 듯 아프고 따가웠지만 기운을 차리려면 먹어야만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연우에게 살이 붙기 시작했다.

쏙 들어간 연우의 볼에 살집이 붙으며 핏빛이 돌았다.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점차 앉기 시작했으며

일어나더니 벽을 잡거나 안내봉을 잡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 이제 살아나나 보네. 시체처럼 누워있더니.

근데 어떻게 남편이란 사람이 한 달이 넘도록 오질 않아요. 전화도 없었죠? “

“ 그러게요. 부모도 형제도 모두 없나 봐요. 너무 안됐어요. ”

“ 김 샘이 잘 케어해서 그런지 우연우 씨 점점 좋아지네요. ”


김 선생은 연우를 볼 때마다 검은 상복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 검은 할머니는 일부러 연우 씨를 나에게 보낸 건 아닐까?

연우 씨의 아버지에게 큰 빚을 진 내게 그녀를 도와 갚으라고

이 병원으로 보낸 것은 아닐까?





윤 과장은 회진을 보다

침대에 앉아있는 연우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항상 처방만 하고 연우를 보러 오지는 않았다.

여자는 시체처럼 누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달만에 연우의 병실에 들어와 보니 여자는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 우연우 환자, 내가 처방한 안정제랑 약물 계속 들어가고 있는 거야? ”

“ 네, 과장님 오더대로 주사하고, 투약하고 있어요.

과장님, 우연우 환자 자해를 하지도 않고, 폭력성도 보이지 않는데 약물을 점차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보통 환자들 투약량의 세배인데 ”

“ 우연우 환자는 내가 컨트롤할 수가 없어요. 원장님 특별히 관리하는 환자라. 이상하네.

안식월이라 한 달은 쉬실 텐데.

이것 때문에 전화를 할 수 도 없고.

김 선생, 처방한 그대로 주사하고 투약해요. ”

“ 네, 알겠습니다. ”


윤 과장이 김 선생을 의심스러운 듯 쳐다봤다.

이상했다. 윤 과장과 원장은 연우가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둘은 연우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만 같았다.

연우의 남편은 아내를 면회하러 오지도 않고, 상태가 어떤 지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가족도 부부도 아니었다.


‘ 그렇다면 무슨 관계일까? ‘


그날 밤 갑자기 연우의 담당 간호사가 이 선생으로 바뀌었다.

윤 과장이 김 선생을 의심한 것이다.

김 선생은 연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웠지만

일단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딸들과 남편을 지켜봤다.


다음 날

이 선생은 사색이 되어 윤 과장을 찾아가 연우의 담당을 할 수가 없다고

만약 계속 연우를 맡게 된다면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

연우의 담당이 이 선생에서 다른 선생으로 바뀌어도 다들 우연우 환자의 담당은 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병원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백발의 할머니가 우연우 환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우연우 환자를 해치면 가족들까지 모두 죽이겠다는 할머니 귀신이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 했다.

겁이 난 간호사들은 병원을 그만두기도 했고

그나마 담이 센 간호사들과 치료사들만 남아 있었다.

그 간호사와 치료사들도 되도록 연우의 병실이 있는 3층은 일이 있지 않으면 올라가지 않으려 했고

연우의 병실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윤 과장도 처방만 할 뿐 연우의 병실은 회진하지 않았다.

소문은 한 달이 지나 안식월을 보내고 돌아온 원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 그래서 다들 한심하게 그 귀신을 믿고 있는 거야? “

직원들을 비웃으면서도 원장은 우연 우의 병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원장은 김 선생을 원장실로 호출했다.

문을 열고 김 선생이 들어가자 원장과 윤 과장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김 선생, 우연우 환자를 담당하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김 선생이 첫 담당이었고 잘 보살폈다고 하니 김 선생이 우연우 환자를 케어하는 게 어때요?

모두들 우연우 환자를 무서워하고 있어. “

“ 네, 제가 우연우 환자를 담당하겠습니다. ”

“ 그래요. 그럼 나가봐요. ”



김 선생이 나간 걸 확인하자 윤 과장은 원장에게 조용히 말을 꺼냈다.


“ 원장님, 정말 이상합니다. 저도 그 할머니를 봤어요. “

“ 에이, 윤 과장도 그 말을 믿는 거야? 겁이 그렇게 많아서 일을 어떻게 하나? ”

“ 원장님은 못 보셔서 그런 거예요.

그 할머니를 한 번이라도 보면 절대 잊혀지지 않을꺼에요. “


윤 과장의 눈빛이 겁에 질려 흔들리고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할머니를 본 날

그날 밤을 윤 과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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