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2 . 사막같은 여자

by 옥상 소설가

김 선생은 원피스에게 자기가 당한 것처럼 기분이 언짢았다.

내 일은 아니지만 기혼녀에게 불륜은 불편한 단어다.

보라색 원피스가 화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갔다.


“ 누구래요? 저 여자? 와~ 죽인다. 죽여. 오늘 왜 이러냐?


이 선생이 놀란 눈을 하고, 원피스가 출입문을 나갈 때까지 그쪽만 바라봤다.


“ 글쎄. 누구려나? 이 선생 가서 일이나 해. ”


김 선생은 고개를 들고 보라색 원피스를 한 참 쳐다보다 차트를 다시 내려 봤다.


‘ 천벌을 받은 것들,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나 나서 다 죽어버려라. ’


자신도 모르게 험한 소리가 나오자 김 선생은 깜짝 놀랐다.

우연우 환자의 남편이 원장님과 함께 복도를 지나갔다.

원장님이 출입문까지 배웅을 한다면 vvip라는 소리다.


“ 그럼, 원장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

“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야 뭐, 제가 할 일을 할 뿐이죠.

최 팀장님 걱정 안 하시도록 잘 처리하겠습니다. 사장님께도 제가 안부를 묻더라고 꼭 전해주세요. “

“ 아~ 원장님. 병원 내에 카페가 있나요? ”

“ 네,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

“ 서울에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아서요. ”

“ 잠시만요. 이 선생, 이리 와 봐요.

팀장님, 뭘 드시고 싶으세요? “

“ 라테 한잔 부탁합니다. 투 샷으로요. ”

“ 이 선생 지하 카페 가서 라테 한잔만 가져다줘. ”


라테 한잔을 들고 우연우 환자의 남편은 검은색 벤츠의 운전석을 열었다.

원장은 차가 주차장을 한 바퀴 크게 돌아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차를 배웅했다.

‘ 뭘 저렇게 오래 배웅을 해? 어차피 뒤 돌아보지도 않을 건데.

거만한 원장이 저렇게 길게 배웅을 하는 건 처음 보네. vvip 구나.

벤츠 보조석에는 보라색 원피스가 앉아 있겠어.

지 와이프는 정신이 나가서 병원에 갇혀 있는 데 여기까지 애인을 데리고 와?

년도 그렇지, 남자가 같이 가자고 여기까지 따라 오냐?

몹쓸 것들. ‘


김 선생은 자기 남편이 보라색 원피스와 바람을 피우다 걸린 듯 화가 났다.

갑자기 연우의 차트가 보고 싶어 졌다.

그 남자의 아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 우연우, 42세, 보호자 최강우

어. 뭐야? 주소랑 전화번호, 주민 등록번호가 왜 없지? ‘


연우의 차트에는 그녀의 이름과 나이, 남편의 이름이 최강우, 남편의 전화번호 그것들만 기록되어 있었다.

차트에 세부 사항이 적혀있지 않은 경우는 원장님의 특별 관리 대상 환자이다.

그 차트에는 투약되는 약과 주사만 적힐 것이다.


‘ 뭔가 이상한데? ’


김 선생은 그녀에게 묘한 동정심과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그러다


‘ 남의 가정 사에 내가 웬 참견이야? 원장님이 관리하는 대상이라면 신경 쓰지 않는 게 상책이야. ‘


하며 차트를 덮었다. 김 선생은 윤 과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 과장님 오후 회진 돌 시간입니다. ”

“ 그래요. 잠깐 기다려요. ”


회진을 돌다 윤 과장은 연우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서 멈추었다.


“ 김 선생, 이 환자는 원장님이 처방할 거예요.

다른 간호사들은 내 지시가 없으면 이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김 선생도 내 오더가 있을 때만 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지 말아요.

환자가 폭력적이고 누가 있으면 더 난폭해진데요. “

“ 과장님, 환자 분 몸에서 악취가 심해요.

저녁에 선생님들 시켜서 목욕을 시켜야 할 것 같아요.

머리에 이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다 다른 환자들에게 옮길 수도 있잖아요.

오더가 나더라도 다른 선생님들은 환자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방에 들어갈 수도 없어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구역질도 나요. “


“ 에, 그래요. 그럼. 이따 저녁에 김 선생 혼자 우연우 환자 목욕 좀 시켜요.

정신착란을 일으켜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고

공격성이 심하다니 진정제를 주사하고 나서 씻기세요.

일 터지면 김 선생이나 나 둘 다 곤란해져요.

원장님이 직접 관리하는 환자라면, 알았죠? “


과장님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 선생을 바라봤다.


“ 네, 알겠습니다. ”


여자에게 진정제를 주사하고, 그녀가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이 선생은 코를 막고 최대한 숨을 덜 쉬면서 여자를 옮겨 샤워실 바닥에 눕혀 주었다.

김 선생이 미리 온수를 틀어 여자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했다.

김 선생은 그녀에게 묘한 동정심과 동질감이 들어 잘해주고 싶었다.

목욕탕은 따듯한 증기로 가득했고, 그녀를 바닥에 눕혀도 괜찮을 정도로

타일 바닥은 데워져 있었다.

접은 수건을 바닥에 깔고 그녀의 머리를 살살 놓아 여자가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눈을 감은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김 선생은 여자의 환자복을 벗기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온몸의 근육과 살은 다 빠진 것처럼 살가죽만 그녀의 뼈에 붙어 있었다.

여자의 알몸은 메마른 사막을 떠올리게 했다.

모래 바람에 굴러다니는 말라비틀어진 동물의 사체처럼 여자의 몸에는 수분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 무엇이 이 여자의 물기를 말렸을까?

여자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수액과 영양 주사만으로 목숨을 부지했을 것이다. ‘

김 선생은 한참 동안 바닥에 뉜 여자를 바라보았다.


“ 환자분, 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잘 먹고, 잘 쉬고, 잘 주무셔야 해요. 그래야 얼른 나갈 수 있어요.

42살이면 내 동생이랑 동갑인데.

아휴 ~ 얼마나 속이 상하고, 힘들었으면 이렇게 까지 됐을까? “



머리를 감기자 여자의 두피에서 뿌리를 상실한 머리카락들이

갈색 지렁이들처럼 타일 바닥을 꿈틀대며 하수구로 내려갔다.

김 선생의 손바닥은 빠진 머리카락으로 가득했고, 물로 헹구어 낼수록 그것들은 우수수 더 빠져나갔다.

머리는 듬성듬성 휑한 두피를 드러내고 있었다. 대머리나 마찬가지였다.

‘ 빠진 머리카락처럼 저 여자의 속도 다 빠져버렸겠지. ’


“ 앗, 차가워. ”


온수였던 물이 냉수로 갑자기 식어 버리자 찬기에 놀란 김 선생이 소리를 질렀다.

애를 먹이던 심야 전기가 또 말썽이다.

전기가 나가자 보일러가 멈추고 냉수만 나오기 시작했다

여자의 몸에는 이미 비누칠 범벅이라 찬물이라도 얼른 머리와 몸을 헹구어 내야 했다.

냉수에 놀랐는지 여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 미안해요. 환자분 많이 놀랬죠? ”


여자는 눈만 뜬 채 천장을 노려보며 미동조차 안 했다.


“ 선아야, 선우야. ”


여자의 입에서 ‘ 선아 선우 ’ 란 이름이 나왔다.

입안과 목구멍의 침이 다 말라붙어서 목소리는 다 쉬어있었다.


“ 누구예요? 선아 선우가? ”

“ 선아.........., 선우.............. ”

“ 환자 분 아이들인가 봐요...... 나도 딸이 둘이에요. 많이 보고 싶죠? ”

“ 선아......., 선우.......... ”

“ 자, 얼른 비누칠하고 나가요. 오래 있으면 감기 걸릴 거예요. ”

“ 선아....... 선우........ ”

“ 조금만 참아요. 빨리 헹구고 나갈게요. ”

“ 우민우 ”

“ 네? 뭐라고요? ”

“ 아....... 빠....... ”

“ 우민우? ”



‘ 우민우 라면, 고인이 된 CH 건설의 우민우 회장을 말하는 건가? ‘


‘ 우민우........ 우연우........ ’


“ 환자분, 아버님이 혹시 우민우 회장님이세요? ”


‘ 우민우 ’ 라면 연우 장학재단을 만든 고인이 된 CH 건설의 창업주이다.

6년 전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 환자의 아버지 나이쯤 되었을 것이다.

김 선생은 대학교 시절 내내 연우 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간호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지금 김 선생이 근무하고 있는 윤희 요양원의 이름도

죽은 우민우 회장의 아내 강윤희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신입사원 교육에서 들은 적이 있다.

아내와 딸의 이름을 병원과 재단에 붙일 정도로 다정한 아빠이자 남편

‘ 우민우란 남자는 아내와 딸을 몹시 사랑했구나. ’


김 선생은 자신도 그런 아버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몹시 부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 이 여자가 CH 건설의 우민우 회장 딸 우연우

딸이 미쳐서 아버지가 세운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다.

사위는 바람피워, 딸을 미치게 만들어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고

내연녀랑 신나게 즐기고 있는 데.

이게 웬 요지경이야?


그 새끼가 일부러 재단이 운영하는 요양원에 와이프를 입원시킨 거구나.

회사에 알려지면 좋을 게 없으니까.

완전 개새끼네.

~ 이 여자, 어떻게 불쌍해서

돌아가신 회장님이나 사모님이 알면 얼마나 애통해하실까?


아니야, 안 돼.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마.

원장님이 특별 관리하는 환자라면 내가 알아서 좋을 건 없어.

모르는 게 약이야.

내 코가 석자고, 먹고 살아야 해. 잊어야 해. 잊자.

그냥 모르는 척 하자.

괜히 귀찮은 일 생기기 전에. ‘


김 선생은 여자의 몸을 타올로 닦아 환자복을 갈아 입혔다.

이제 여자의 몸에서 악취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여자를 휠체어에 앉히고 밀며 복도로 나갔다.

아직 전기는 복구되지 않았는지 형광등은 켜지지 않았고,

비상구 표시등의 초록 불빛만 간신히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 할머니...... 고 할머니....... ”


여자는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문을 열었는지 갑자기 찬 바람이 쌩하니 불어왔다.

저녁 10시가 되면 병원 출입문은 모두 잠겨 외부인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키를 가지고 있는 병원 관계자만 출입이 가능했다.


‘ 아무도 들어 올 리가 없는데


여자를 밀고 복도로 나가다

김 선생은 까무라 칠 듯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깜깜한 복도 가운데 파란 불빛 두 개가 공중에 떠 있었다.

김 선생의 동공이 점차 확대되고 어둠에 적응하자

빛은 점점 커져 형체를 드러내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김 선생이 알 수 있게 했다.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남자였다.


아니다. 그것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 형체는 검은 한복을 입은 백발의 할머니였고, 김선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할머니의 안광은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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