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4. 피로 분사된 가습기

by 옥상 소설가

윤 과장이 상복을 입은 할머니를 본 그날 밤


아무도 연우의 병실에 들어가지 않자

윤 과장이 직접 연우의 병실에 진정제와 수면제를 들고 들어갔다.

담당 간호사와 보호사들은 밤에는 더더욱 연우의 병실 근처에는 얼씬도 안 했다.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에는 ' 01 : 00 ' 숫자가 쓰여있었다.


모두들 겁쟁이에 엄살을 피운다고 윤 과장은 그들을 비웃으며 연우를 내려다봤다.

여자는 침대에 사체처럼 누워 있었고

윤 과장은 링거의 튜브 안에 주사 바늘을 꽂으려 했다.

아...... ’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운 여자가 고개를 돌려 윤 과장을 노려봤다.

섬찟 놀랐지만 윤 과장이 바늘을 꽂으려는 순간

윤 과장의 팔과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형광등의 불 빛이 깜빡이더니 불이 나가버렸다.

다리와 몸 고개는 움직일 수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두 팔과 손은 몸통에 붙어 떼어지지 않았다.

여자가 누워있는 침대 아래에서 검은 형체가 서서히 일어났다.

윤 과장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다.

시퍼런 불 빛 두 개가 윤 과장을 향해 다가왔다.

여자에게서 멀어지자 윤 과장의 팔과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윤 과장은 얼른 자신의 진료실이 있는 5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 벌벌 벌 ' 떨리는 손으로 진료실의 불을 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퍼런 불빛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자 윤 과장은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 요새 너무 무리해서 기가 허한 거야. 그래서 헛것을 본 거야.

사람들이 매일 귀신 얘기만 하니까 내가 겁을 먹어서 그런 거지.

아무것도 아니었어. ‘


윤 과장은 피곤한 일이 생기면 클래식 음악을 틀고, 가열식 가습기를 틀어 진정을 시키곤 했다.

따듯하고 촉촉한 공기를 흡입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져 금세 긴장이 풀어졌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들으며

의자에 몸을 점차 기대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갑자기 비릿한 냄새에 눈을 떴다.

분명 불을 켜 놓았는데 주변은 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습기에서 나온 물기로 진료실 공기는 눅눅해져 비릿함은 더욱 심해졌다.


‘ 뭐지? 이 냄새는.


무향 무취의 물이 아닌 비릿한 냄새

그 냄새는 수술실에서 풍기는 피 냄새였다.

오싹한 기운에 몸을 세워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니 얼굴에도 물기가 축축했다.

일어나 불을 켜려고 스위치를 찾던 찰나. 누군가 윤 과장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손은 잡은 무언가를 보자 윤 과장은 사지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시퍼런 불 빛 두 개가 윤 과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복을 입은 할머니가 쏘아대는 안광이었다.

할머니는 윤 과장의 목을 잡고 비틀기 시작했다.

손아귀의 힘은 점점 강해져 목뼈가 부러질 것 만 같았다.


“ 사... 사..... 살...... 려.....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절대로 앞으로 다시 우연우 환자한테 해코지 안 할게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


할머니가 윤 과장의 목을 천천히 놓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윤 과장은 벽을 더듬으며 바닥을 기어 간신히 스위치를 찾았다.

불을 켜고 거울을 보던 윤 과장은 그대로 기절했다.

다음 날 아침

이 간호사는 윤 과장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5층 진료실에 올라가 남편이 있는지 확인을 해달라는

윤 과장 아내의 전화를 받고 진료실로 올라왔다.

이 간호사는 윤 과장의 방을 열기도 전에 지난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했다.

진료실 문 앞은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진료실 내부는 온통 핏빛이었다.

가습기는 통에는 물이 아인 피가 채워져 있었고, 그 피로 분사되었는지 천장부터 바닥

책상, 옷걸이에 걸린 가운, 책꽂이에 꼽힌 책들까지 모두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바닥에 기절한 윤 과장도 피범벅이었다.

윤 과장의 목에는 심하게 목을 심하게 졸린 시뻘건 멍이 들어있었다.



“ 거짓말이 아니고, 저만 그 할머니 말을 들은 게 아니에요.

담당했던 간호사, 남자 간호사, 보호사 다들 보고 들은 게 일치해요.

꺼림칙하고 오싹한 게 영 기분이 나빠요.

그나저나 계획했던 일은 어떻게 해요? ”

원장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 우리가 해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남편이며 시부모들 모두 버린 여잔데.

찾아오지도 연락도 하지 않고 있잖아.

죽든 살든 그 여자가 이 병원에서 나가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이미 잊어버렸을 걸. 관심조차 없는 거야. 우린 시킨 데로만 하면 되는 거야. “


“ 찜찜하고 무서워서. 빨리 처리해버리고 싶은 데. ”

“ 그럼, 윤 과장 자네가 처리할 텐가? ”

“ 네? 아니 제가 왜요? 책임자는 제가 아닌데 원장님이 직접 하셔야죠. 저는 못합니다. ”

“ 나도 그래, 우연우 환자 보는 것도 무슨 시체를 보는 거 마냥 소름 끼치고 영 께름칙 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냅 두자고.

만약 남편이나 사장이 찾아오겠다고 하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을 거야. “

“ 네


김 선생은 원장실 문 앞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 뭘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거야? 아휴~ 저것들도 의사라고

남편이 찾아오기 전에 얼른 손을 써야겠다. ’


윤 과장이 쓰러진 그 날 이후로

과장은 연우에게 더 이상 신경 안정제나 수면제는 처방하지 않았다.

원장과 윤 과장은 뭐가 무서운지 연우만 보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연우는 해가 있는 날이면 정원으로 나가 걸었으며 가벼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밥도 일상식으로 먹었으며 샤워도 혼자서 할 정도로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김 선생과 대화도 나누었다.


“ 연우 씨. 선아 선우가 누구예요? ”

“ 우리...... 아니, 내 딸 아들이에요. ”

“ 그렇군요. 부모님은 안 계세요? ”

“ 모두 돌아가셨어요. ”


남편을 물어보려다 김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 김 선생님 고마워요.

미안하지만 나 좀 도와주세요.

나, 나가야 해요. 우리 선아랑 선우를 만나러 가야 해요.

난 꼭 나가야 해요.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 해야 할 일이 뭐예요? ”

“ 그것들에게 갚아 주어야 할 것들이 있어요. 반드시 되돌려 주어야 해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

“ 그게 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


“ 우리 선아는 8살 딸이고, 선우는 5살 아들이에요. 예쁘고 귀한 내 새끼들

그것들이 내 새끼들을 다 죽였어요.

그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내 새끼들을 고통스럽게 죽였어요.

선아 선우는 하늘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선아는 우리 집 2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선우는 그것들하고 간 캠핑에서 불에 타서 죽었어요.


나는 바보같이 그것들을 어려서부터 믿고 살았어요. 내 새끼들을 죽인 원수들이고 악마 같은 것들인데

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나 때문에 내 새끼들이 모두 죽었어요.

나만 아니었으면, 내가 조금만 의심했더라면 우리 선아 선우 모두 다 죽지 않고 살았을 텐데.

나는 의심하지 않았어요. 아니 의심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놈이랑 결혼할 생각만 하고, 결혼해서도 분명 이상했는데. 믿고 싶지가 않았어요.

남편 믿고, 애들 키우면서 편안하고, 풍족하게 그렇게 계속 살고 싶었어요.

고 할머니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멀리 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말렸을 때 할머니 말을 들었어야 했어요.


우리 선아는 25층에서 떨어지다 나무에 몇 번 걸렸데요.

그래서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까지 간신히 숨이 붙어 있었어요.

선아가 숨을 쉴 때마다 ‘ 휘휘~ ’ 휘파람 소리가 났어요.

그때마다 갈비뼈 사이 찢어진 살 틈으로 점심에 먹은 밥풀이 튀어나왔어요.

내가 무슨 엄마라고...... 내가 오기만 기다리다 내 품에 안겨서 죽었어요.

‘ 엄마 ’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바람 소리만 내며 한참 동안 나를 쳐다봤어요.

나는 선아의 눈을 잊지 못해요.


아들 선우는 캠핑장에서 화재로 죽었어요.

그 어린것이 불에 타서 쪼그라들고 오르라 들어 더 작아졌데요.

모두들 끔찍하다고 보지 못하게 했어요.

연기에 질식해서 타기 전에 죽었다면 그나마 덜 힘들었을 텐데....... 폐 속에는 그을음이 가득했데요.

불에 타면서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고통스럽게 죽었을 거래요.

그 어린것이 얼마나 뜨겁고 무서웠을까요? “

연우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가는 물줄기만 연우의 볼을 타고 목으로 흘러내렸다.

목소리는 떨리면서 잠시 멈추다가 말을 이어갔다.

연우는 통곡하거나 절규하지 않고 그 힘을 모아 저장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 그대로 갚아주어야 해요.

아니 그 이상 돌려줘야 해요. 그래야 모든 게 끝나요.

그것들도 그것들의 자식들도

내가 받은, 내 새끼가 느꼈을 그 고통 그대로 돌려줄 거예요.

산 채로 생살을 갈라내고, 뼈를 부러뜨리고, 심장을 도려내. 고통스럽게 소리 지르도록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도록 만들 거예요. 절대로 쉽게 죽이지 않을 거예요. “


연우의 눈에서 살기가 돌았다.

김 선생은 섬뜩했지만 질문을 계속했다.


“ 고 할머니는 누구예요? ”

“ 돌아가신 할머니인데 친할머니는 아니지만 저를 굉장히 아끼셨어요.

제주도에 사셨던 무당 할머니인데 아주 영험해서 모두들 할머니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했지만

어릴 때 물에 빠진 저를 구해주시기도 했고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전이면 현몽해서 저에게 위험을 알려주셨어요.

할머니가 결혼 전에 결혼을 하면 안 된다고, 그것들하고도 인연을 끊으라고 경고를 하셨는데

아버지도 나도 믿지 않았어요. “


“ 할머니는 항상 검은 한복을 입으셨나요? 흰머리에 쪽을 지시고요? ”

“ 김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할머니를?

할머니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어요. 밤에 얼핏 보면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항상 흰 한복을 입으셨지만 굿을 하기 전이나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검은 한복을 입으셨어요.

그래야 부정한 것이 다가오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할머니는 눈빛이 강해서 밤에 보면 하얗다 못해 파란빛이 나와 나도 가끔 무서웠어요. ”

김 선생과 병원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할머니는 연우를 보호하는 할머니가 분명했다.

신기했다. 죽은 할머니가 귀신으로 나타나 연우를 지켜준다는 것이


“ 연우 씨, 다행이에요.

할머니가 연우 씨를 도와주고 계셔서. “




“ 김 선생, 우연우 환자 어딨어? ”

“ 네? 아마 정원에 나가 있을 거예요. ”

“ 뭐? 빨리 병실로 데리고 들어와. 남편 곧 도착한데. ”

“ 그런데 왜 병실로 데리고 와야 해요?

아내 상태가 좋아지면 기뻐할 일 아닌가요? 퇴원을 해서 통원치료를 해도 좋고. “

“ 지금 김 선생이랑 말씨름할 시간 없어.

생각을 해봐. 입원해있던 5개월 동안 면회도 연락도 없었다면, 그걸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남편이랑 가족들은 그 여자가 없어지길 바라는 거야. 그걸 꼭 내 입으로 듣고 확인을 해야겠어? “


윤 과장은 김 선생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 선생은 연우를 찾아 병실에 눕혔다.

“ 연우 씨, 남편분이 곧 도착한데요.

남편 분은 연우 씨 정신이 돌아오길 원치 않으시나 봐요.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침대에 잠깐만 누워있죠. ”

“ 네, 그럴게요. ”


연우는 병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강우는 연우의 병실에 들리지 않고 원장과 함께 원장실로 들어갔다.


“ 아내 상태는 어떤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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