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11. 양띠 여자 연우

by 옥상 소설가

“ 이사님, 사장님 전화입니다. ”

“ 그래요. 연결해 줘요. ”

“ 여보세요, 강석아, 오늘 저녁 약속 취소해야겠다.

연우 엄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일찍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다음에 하자. “

“ 어, 제수씨가 몸이 안 좋아? 심한 건 아니고?

날이 추우니 그런 가보네.

그래, 담에 하자. 얼른 들어가. “

“ 강우 엄마한테 한번 물어봐.

연우 말로는 낮에 엄마랑 같이 너희 집 갔다 오고 난 뒤부터 아프다고 하는데

연우 엄마가 무슨 일인지 말을 안 하네.

연우도 모르겠다고만 하고. “

“ 그래 내가 한번 물어볼게. ”


강우의 아빠 강석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말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계획된 것이 틀어지면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인데 오늘 약속은 내년 인사이동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을 의논하려던 자리였다.

내년 인사이동에서 강석의 사람들을 승진시키려고 손을 써두었는데 사장 민우의 기분이 나쁘면

강석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민우

CH 건설의 사장, 강석의 친구, 윤희의 남편, 연우의 아빠


강석의 꼭두각시가 되어야 할 사람이지만 번번이 민우는 강석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 사장님, 들어오셨어요? ”

“ 이 사람은? ”

“ 네, 안방에 계세요? ”

“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왜 갑자기 민우가 저녁 약속을 취소해?

오늘 낮에 연우 엄마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연우 엄마가 집에 가서 드러누워.

민우 기분도 별로 였고. 빨리 말해. 성질 돋우지 말고. “

“ 저, 그게. 내가 말실수를 좀 해서. ”


“ 뭔데 그게? 간단히 말해. ”

“ 그게, 연우한테 홋카이도 여행을 가라고 부추기다가 윤희가 알게 됐어요. ”

“ 어떻게? ”

“ 윤희가 없는 줄 알고 연우에게 말하는 중이었는데

현관문이 열려있어서 윤희가 그걸 다 들었나 봐요.

홋카이도가 지금 엄청 추울 때라,

거길 윤희가 갔다 오면 다시 병원에 입원할 거고

그러면 당신이 시킨 게 다 될 줄 알았는데.

일이 꼬여버렸어요. 잘못했어요. “


“ 현관문이 열린 줄도 몰랐다고? 간단한 걸 시켜도 못해?

멍청해 가지고. 내가 속이 터진다. 터져.

너 혼자 연우 엄마 없애 버릴 방법을 못 찾아?

언제까지 그럴 거야?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장남인 지석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지 어미를 닮아서 그렇게 멍청하지,

마음에 드는 건 강우밖에 없어.

연우 엄마 내일 찾아가서 얘기 잘해.

만일 민우하고 일이 틀어지면 넌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알았어? 당장 내일 아침 찾아가. “


“ 네........ 알았어요.

저녁 드셔야죠. 못 드셨을 텐데..... “

“ 내가 지금 밥 먹게 생겼어? 얼마나 중요한 약속인데. 꼴도 보기 싫어. 나가. 밥맛 떨어져. “

“ 네, 얼른 쉬어요. 시장하시면 말씀하세요.

저녁 당신이 좋아하는 육회로 준비해놨어요. ”


강석은 말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고함을 쳤다.

겁이 난 말자는 뒷걸음질을 치며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갔다.

오늘 저녁 민우와의 약속에 수개월 공을 들여왔던 남편을 봐왔기에

말자는 오늘 잘못하다간 매를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강우 아빠 기분이 더 상하면 맞을 수도 있겠어.

제발 얼굴만은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화가 나면 강석은 말자의 얼굴이나 머리 등을 가리지 않고 때렸다.

올봄 신애의 학교 학부모 위원회 사람들과의 모임에도 멍이 든 눈을 가리려고

말자는 선글라스에 진한 화장을 하고 나갔다.

학교장까지 참석하는 점심 약속이라 취소할 수 없었지만

말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면 그 날은 남편에게 맞은 날이라는 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 아~ 나는 언제쯤 하루라도 속 편히 살 수 있을까?

강우가 연우랑 결혼만 하면 좀 편해질 텐데.......

연우가 이제 중 1이니, 스무 살만 넘으면 얼른 강우랑 결혼시켜버려야지.

대학도 갈 생각 못하게 강우한테 푹 빠지게 만들어야 해.

그러려면 윤희가 빨리 없어져야 할 텐데, 그래야 내 맘대로 연우를 움직일 수 있는데.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은 우연이겠지?

다 우연일 거야? 연우가 얼마나 멍청한데.

다행이야 우리 딸들은 똑똑해서. ‘


자식들을 생각하니 말자는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연우와 친구인 신애는 항상 반장에 전교 회장까지 도맡아 하면서 말자의 기를 살려주었다.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아, 말자는 주변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장남 지석은 멍청하고 둔하다고 남편은 아들이 엄마 말자를 닮았다는 타박을 하고 못마땅해했다.


‘ 머리 나쁜 여편네 ’라는 말은 셋째 강우가 태어나면서 멈췄다.


둘째 딸 지윤도 똑똑했지만 노래와 피아노에만 관심이 있어

사업가가 될 놈은 아니라고 강석은 지석과 지윤을 포기했다.

대를 이을 똑똑한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쥐 잡듯 말자를 잡아대던 강석은

셋째마저 멍청하면 밖에서 낳아 오겠다고 말자에게 수시로 엄포를 놓았다.

다행히 셋째 강우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외모가 준수해서 강석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강석이 강우를 더욱더 믿게 된 것은

전국에서 가장 용하다는 장 도사를 집에 데리고 와 자식들 사주를 본 그 날 이후였다.

장 도사는 큰 선거를 앞두거나 대기업 오너가 결단을 할 때마다 섭외해서 가서

점 꾀를 봐주는 소문난 역술인으로

강석이 삼 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서 큰돈을 들여 집으로 모셔왔다.

맏이 지석이 자꾸만 문제를 일으켜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강석은 장 도사를 한번 만나보기로 했다.

셋째 강우가 있어 든든했지만, 장남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장 도사의 말을 들어보고 누구를 후계자로 결정할지 마음을 정해야 했다.



말자는 지석, 지윤, 강우, 신애의 사주를 공손하게 내밀었다.


“ 첫째는 머리가 좀 안 좋아. 눈치도 좀 없고, 사업가가 될 놈은 아니야.

색도 밝혀서 문제도 좀 일으키겠네.

얘 문제 많이 일으키고 있지? 부모 속 좀 끓이게 생겼네.

장남이 잘 커야 동생들도 그걸 보고 잘 크는데.......

이 집 장남은 부모덕으로 먹고살겠어.

혼자서는 클 머리도 없고, 힘도 없고, 사람을 부릴 줄도 모르겠어.

큰 기대 말고 작은 일만 맡겨. 너무 속상해 말고.


둘째 계집애는 광대 팔자야.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꽹과리를 치든, 그림쟁이가 되든가

암튼 그런 쪽으로 나갈 거야.

엉뚱한 거 시켜서 애 고생시키지 말고.

애가 하겠다는 거 시키고


셋째 이 놈이 물건이야. 요 놈은 크게 되겠어.

이 놈이 장남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순서가 뒤바뀌었어.

총명하고, 베포도 크고, 자기주장이 강하니 딱 사업가가 될 놈이네.

집 안을 크게 일으킬 거야.

근데 얘가 좀 고집이 세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부모라고 해도 절대 양보할 놈 아니야.

이 놈 고집 꺾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게 둬.

어차피 자기가 손해 볼 짓은 절대 안 해.

앞, 뒤로 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놈이니까.

뒷배를 든든하게 잘 받쳐 줄 며느리만 들이면 되겠어. “

“ 우리 막둥이는요? ”

“ 몇 살이지? ”

“ 초등학교 5학년, 12살 여자애예요. ”

“ 양띠네, 얘도 고집이 세긴 하지만 머리가 좋네.

셋째랑 잘 붙여 놔. 둘이는 붙여 놓는 게 좋을 거야.

큰애랑 셋째 놈은 되도록이면 떨어뜨려 놓고,

둘 다 남자라 한번 붙으면 피를 볼 때까지 싸울 거야.

장남도 똥고집이 있으니까 얕보지 말고

대충 눈치는 봐가며 키워. 너무 셋째만 키워주지 말고.

형제간 싸움은 터지면 무서운 법이야.

셋째가 큰 애를 무시해서 형 취급을 안 하니

사이가 안 좋을 게 분명 하지만.

그래도 장남은 셋째를 절대 못 이겨.

그 머리를 당해 낼 수는 없지.

큰 애 섭섭하지만 않을 정도로만 키우고 챙겨줘.

원하는 일, 여자랑 결혼시키고, 먹고살게만 보살펴. 그래도 자식이니까.

셋째는 공들여서 키워야 해.



“ 신애야 놀자. ” 갑자기 연우가 강우의 집으로 들어왔다.


장 도사는 연우를 찬찬히 살펴봤다.

“ 아가야, 너 이리 와 앉아봐라. ”

“ 네, 누구세요? ”

“ 연우야, 이리 와서 좀 앉아봐.

아줌마가 잘 아는 분이야. ”

“ 네? 아줌마 신애 어디 있어요? ”

“ 연우야 일단 앉고 나서, 신애 지금 영어 선생님이랑

수업 중이니까 좀 기다려야 해. ”

“ 네. ”

“ 아가, 너 나이가 몇이니? ”

“ 우리 막내딸 친구예요. ”

“ 오. 그럼 양 띠에다가. 너 생일은? ”

“ 5월 12일이요. ”

“ 태어난 시간은 아니? ”

“ 우리 엄마가 새벽 1시에 태어났다고 했어요. ”


“ 그래, 알았다. 가 봐라. ”

“ 네, 아줌마 저 2층에 올라갈게요.

강우 오빠 집에 있어요? ”

“ 그래, 오빠 방에 있으니까 한번 노크해봐.

노크 안 하고 들어가면 오빠 화낸다. ”

“ 쟤, 뉘 집 딸이야? ”

“ 네, 제 친구 딸이에요. 우리 옆집에 살아요. ”

“ 큰 애든 셋째든 쟤 꼭 잡아서 며느리 삼아. 알았지?

첫눈에도 보이네. 장남이든 셋째든 쟤랑 결혼하는 놈은 크게 성공할 거야.

장남이랑 결혼시키면 그놈 모자란 부분을 쟤가 다 채워 줄 거고

셋째 놈이랑 붙이면 뛰는 말에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돼서 만사가 다 순조롭지.

생각만 해도 좋네. 여자애 사주가 너무 좋아.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을 사주인데.

좀 아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귀한 사주야.


좋은 집에서 부러울 것 없이 부를 누리고,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랄 여자애야.

부모 운도 좋고, 큰 재산도 모으고, 머리도 좋고,

인품도 좋아.

남편 성공시키고 자식도 잘 키울 상이야.

딸이라면 공부시키고, 결혼도 늦게 시켜서

성공하게 두겠지만 며느리라면 말이 달라지지.

저런 애는 커 가면서 더 튀게 돼있어.

주위에서 금방 잡아채가니까 꽉 잡아. 알았지? “


강석이 한 참을 생각하다 장 도사에게 물었다.


“ 도사님, 쟤를 우리 장남이랑 붙이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셋째 놈이랑 붙일까요? “

“ 말해 뭐해? 당연히 셋째 놈이랑 붙여야지.

맏이랑 붙이기엔 여자 애 사주가 아깝지.

저 여자애 팔자에 중간에 큰 위기가 오고, 고생을 하겠지만 다 견디고 이겨 낼 거야.

쉽게 죽을 사주가 아니야.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니까

여자애가 스무 살을 넘기면 얼른 결혼시켜서 눌러 앉히고 빨리 손주 보게 만들어.

못해도 둘은 낳게 해.

자식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 애 생각에 일을 안 할 거야. 그러니 자식을 많이 낳게 해야 해.


만약 남자로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는다면

상대를 죽일 정도로 기가 세. 절대 척을 지면 안돼.

여자로 태어난 게 다행이지.


셋째랑 부부가 돼서 자식을 낳으면 그 기가 남편에게 가고 자식들에게 갈 거야.

여자 애 기운으로 더 일어나. 온 집안이.

극과 극은 오히려 상통하는 법이니까

근데 아들놈이 여자애를 안 좋아할 거야.

여자로서 매력을 못 느껴.

그게 아쉽긴 하지만. 다행히 여자애가 셋째 놈을 많이 좋아하네. 불행 중 다행이야.

자식을 낳으면 부부는 살게 마련이야.

내 말 명심해. 내가 한 말이 틀린 적은 없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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