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10. 얽키고 설킨 악연을 끊다.

by 옥상 소설가

아침을 먹으면서 연우는 내내 엄마를 바라봤다.

“ 엄마 그만 보고 밥 먹어. 연우야, 엄마 어디 도망 안가. ”

“ 엄마. 나 엄마 보고 만 있을 거야. 밥 안 먹어도 배불러.

우리 엄마 강윤희 실컷 볼 거야. 마음껏 안아 볼 거야. ”


윤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연우를 보다 자신도 웃음이 나와 연우를 꼭 안아주었다.


연우는 방을 정리하고 강우의 집으로 향했다.

현재 강우와 화란, 말자의 상황을 확인해봐야 했다.

강우의 집 거실 테이블 위에는 엄마와 아기 고양이 오르골이 있었다.

강우는 보이지 않았고, 대화를 나누다 신애는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거실에는 연우와 강우의 엄마 말자 단 둘만 남았다.


“ 아줌마, 정말 우리 엄마가 홋카이도를 좋아해요? ”

“ 그럼, 너희 아버지랑 벌써 여러 번 가셨는걸.....

연우 너한테 말하면 네가 가자고 조를까 봐 안 갔다고 말하는 거야.

너희 엄마가 일본 여행을 얼마나 좋아하는 데? “

“ 제가 가자고 고집을 피울까 봐요? ”

“ 그렇지, 아줌마, 나 따듯한 물 한잔 가져다줘요. ”


화란이 아줌마 대신 유리잔에 미지근한 물을 가져다줬다.

“ 언니, 오늘은 학교에 안가? 대학교는 방학이 길다고 했지? 나는 코코아 한 잔 가져다줄래? ”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연우에게 놀란 화란은 연우를 쳐다 보았고, 연우도 화란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미 화란과 강우는 둘 만의 교제를 시작하고,

모두가 잠든 밤이면 서로의 방을 오가며 밀회를 나누는 깊은 관계였다.


연우는 돌아가는 화란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란은 연우에게 코코아를 가져다주었다.

연우는 화란이 가져다준 코코아를 화란에게 쏟아버렸다.

“ 아 앗!!! ” 화란이 소리를 질렀다.

“ 어머, 언니 미안해. 괜찮아? 너무 뜨거워서 입을 데일 뻔했네. ”


화란은 부엌으로 돌아가 옷에 묻은 코코아를 닦다 걸레를 들고 와 거실 바닥을 닦았다.

티슈로 옷에 묻은 코코아를 닦으면서 연우는 화란에게 차분히 말했다.


“ 다시 가져다 줘. 너무 뜨거웠잖아. ”


당황한 화란은 연우를 쳐다보다 주방으로 돌아가 코코아를 가져왔다.


“ 다시, 너무 달다. 우유를 좀 더 넣어줘. ”


화란은 주방으로 돌아갔다.


“ 다시, 이번엔 너무 차갑잖아. 언니는 적당히라는 말을 몰라? ”


연우는 비웃으며 화란에게 말했다.

처음 보는 연우의 모습에 말자와 화란 모두 놀랐다.

순하고 착해서 무엇을 주든 항상 괜찮다고 말하던 연우였다.

“ 그래, 나한테 코코아를 줄 때는 지금처럼 적당히 달게 적당히 따듯하게 데워서 줘.

내가 입이 데이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야. “


‘ 화란이 너, 이미 강우와 깊은 관계잖아, 너는 지금 나를 보고 비웃고 있었니? ‘


“ 어디서 이렇게 바람이 들어오지?...... 아줌마, 현관문 좀 봐. 문이 제대로 안 닫힌 모양이야. “

말자가 날카롭게 아줌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 네 사모님 ” 도우미 아줌마가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 어머나~ 사모님, 언제 오셨어요?

연우 아가씨는 먼저 와서 앉아 계세요.

사모님, 연우 아가씨 어머님 오셨어요. “


‘ 뭐? 윤희가 왔다고?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내가 연우랑 했던 말들 다 들었을까? ’


말자는 깜짝 놀라 얼굴이 굳어졌다.

“ 윤희야, 어서 와. 얼른 앉아.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던 거야? ”


연우의 엄마 윤희가 뜨악한 표정으로 거실로 들어왔다.


“ 연우야, 어차피 갈 거, 같이 가면 되지. 왜 먼저 가니? ”

“ 엄마랑 잠시 떨어져 있다가 보면 더 반갑잖아. ”

“ 말자야, 잘 지내고 있었지?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싸늘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연우 잘 돌봐줘서 고마워. “


‘ 다행이다. 윤희가 내가 연우랑 한 말을 못 들었나 보네. ’


안도감을 느낀 말자는 그제야 얼굴이 펴졌다.


“ 에이~~~ 얘는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우리가 한 두 해 아는 사이니? 친구끼리 무슨.

연우는 내 딸 같은 아이야. 니 딸이 내 딸이지 뭐.

신애랑 같은 나이라 둘이 서로 친하기도 하고 “

“ 그래, 고맙다.

연말이라 다들 모임 하느라 바쁘니까 내년에 설 지나고 밥이나 먹자. 내가 살게. “

“ 그래, 기대할게. ”

“ 엄마, 이 오르골 봐 바. 예쁘지? ”

“ 응, 그러네. 참 예쁘네. ”

“ 이거 신애가 홋카이도로 가족 여행 다녀오면서 사 온 오르골이야. 엄마, 나도 홋카이도 가고 싶어. “


“ 어? 그래, 우리 내년 여름에 가기로 했잖아. ”

“ 아니, 여름 말고 지금 가자. ”

“ 응? 지금? 이 겨울에? ”

“ 왜 안 돼? 엄마는 홋카이도로 여러 번 갔으면서,

아빠랑은 같이 가고 나랑은 왜 안가? ”

“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일본을 가?

엄마는 일본에 가본 적이 없어. ”


“ 엄마가 아빠랑 홋카이도로 여행을 자주 갔다는데.

겨울 풍경이 더 좋아서 특히나 겨울에는 더 자주 갔다는데, 아니야?

엄마, 나랑 가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방금 강우 아줌마한테 그렇게 들었는데.

아줌마, 분명 아줌마가 그랬죠?

우리 엄마가 홋카이도를 좋아한다고? “


“ 어? 아니, 내가 그렇게 들은 것 같았는데.

윤희, 네가 일본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니?

홋카이도를 여러 번 다녀왔다고 들은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


당황한 말자는 윤희와 연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 어? 그래. 말자 네가 착각을 한 거겠지?

나는 일본에 가본 적이 없어. 습하고 더운 날씨는 나한테 좋지 않거든. 춥고 건조한 날씨도 말이야.

연우야, 아줌마가 착각을 한 걸 거야. 그렇지? 말자야? “


“ 맞아, 윤희야. 내가 착각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연우야, 네가 잘못 들은 거 아니니?

내가 다른 사람 얘기를 한 걸 네가 엄마라고 생각한 거 아니야?

네가 오르골을 보고, 홋카이도에 너무 가고 싶어서 말이야.

그렇게 생각한 걸 수도 있어. 원래 사람이 그렇거든. “


“ 응,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연우가 다른 사람을 나로 착각을 했을 수도

내가 천식이 심한데, 겨울 여행을 어떻게 가니?

너랑 수십 년을 알고 지냈는데.

네가 그걸 모를 리 없지? “

“ 그래, 맞아. 연우가 착각을 한 걸 거야. 그렇지 연우야? “

말자는 자연스럽게 연우가 잘못 들었을 거란 핑계를 댔다.

예전의 연우라면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아마 자신이 착각한 거라 생각하고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 아닌데, 나는 분명히 아줌마가 엄마랑 홋카이도로 여행을 다녀오면 엄마가 좋아할 거라고 말했던 거 기억하는데, 아줌마가 착각하고 계신 거 같아요. “


윤희는 정색을 하며 연우의 손을 잡았다.


“ 연우야, 이제 그만 집에 가자. “

“ 응, 엄마. 아줌마, 신애 피아노 레슨 다 받으면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전해주세요. “

“ 어, 그래. 전해줄게. 윤희야, 조심해서 들어가. “


연우는 말자를 향해 씽긋 웃다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말자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현관문을 보고 있었다.

응큼한 속마음을 들 킨 사람처럼 무안하면서도 연우의 변한 모습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 연우, 저거 갑자기 왜 저러지? 저럴 애가 아닌데.....

내가 말하면 말하는 데로 다 믿는 아이인데. 하룻밤 새에 쟤가 왜 저러지?

정말 우연히 다 그렇게 된 건가? ‘


연우는 예전의 연우가 아니었다. 변할 이유 또한 없었다.

말자는 고개를 돌리고

‘ 그래, 우연일 거야.

사람이 어떻게 한 순간에 변해?

이제 중학생이 되는 어린 앤 데.

재수가 없으니 일이 꼬인 거지.

그나저나 윤희는 어떻게 하지?

아까부터 현관에 있었다면 내가 연우에게 한 말을

다 들었을 텐데. 뭐라고 해야 하지? ‘


말자는 연우보다 윤희가 걱정이었다.

윤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면 다행이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으면 안 될 일이었다.



************


집에 돌아온 윤희는 소파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말자가 왜 연우에게 나랑 홋카이도를 가라고 부채질했을까?

내가 한 번도 일본에 가 본 적이 없다는 것. 더군다나 추운 지방인 홋카이도를 이 한 겨울에 가라고?

얼마 전에 내가 병원에서 퇴원했던 것도 알고

연우와 함께 겨울 여행을 가면 또 병원 신세를 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왜 연우에게 홋카이도에 나랑 가라고 거짓말까지 시켜가며 보내려고 한 걸까?

내가 아프기를 바라는 건가?

왜 말자의 집 대문은 열려 있었던 걸까?

항상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집인데 ‘

연우가 강우 집에 먼저 간 후 대문은 윤희에게 어서 들어오라는 듯 활짝 열려있었고

현관문 또한 슬리퍼에 걸려 열려 있었다.


윤희가 왔다는 기척을 하려던 순간

거실에서 들려오는 말자와 연우의 대화를 듣고 윤희는 까무러칠 듯 놀랬다.


말자와 윤희가 서로 알고 지낸 것은 30년도 넘었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으니 친척처럼 모르는 것이 없었고, 말자에게 강우 아빠 강석을 소개해 준 것도 윤희였다.

윤희는 일본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부부동반 여행을 일본으로 가자고 강우 아빠 강석이 제안할 때마다

윤희의 남편 민우는 일본은 아내에게 좋은 기후가 아니라고 거절을 해왔고

여행지로 항상 제외되던 나라였다.


그런 일본을, 더군다나 가장 추운 지방인 홋카이도를

남편과 여러 번 갔고, 아빠를 속이고 엄마랑 그곳을 다녀오면 된다고 어린 연우에게 방법을

알려 주기까지 한 말자의 속내는 무엇일까?


‘ 말자는 내가 아프기를 바라는 것 일까? ’

윤희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다.

말자의 말 그대로 연우가 잘못 들었거나, 말자의 말실수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것은 대문과 현관문 두 개가 동시에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 설마 우리 연우가 말자의 말을 들으라고 일부러 문 두 개를 모두 열어 두었던 건 아닐까? ‘

연우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화란도 마찬가지였다.


‘ 전에 이 집에 드나들던 어린애가 아니야.

분명 날 뚫어지게 봤어. 아니 노려본 거야.

쟤가 분명 뭔가를 눈치챈 거야.

뭘 알아차렸을까? 이미 다 알고 있는 걸까?

강우와 나 사이를 알고 있는 걸까? ‘


화란은 그러다 웃음이 ‘ 픽 ’ 나왔다.


‘ 나도 참! 어이가 없다.

고작 중학교 들어가는 여자 아이인데.

대학교 2학년인 내가 중학생 여자한테 이렇게 쫄다니? 강화란, 정신 차리자. ‘


화란은 찻잔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설거지를 하면서 다시 웃음이 나왔다.


‘ 고작 중학교 1학년인데 지가 무슨 일을 할 수나 있겠어? ’


윤희, 말자, 화란 세 여자는 달라진 연우에게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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