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우야, 4년이야. 졸업하고 나면 나 꼭 돌아올 거야.
너도 대학교 입학하고, 부모님이 시키는 데로 하고 있어.
CH 건설의 오너가 되려면 대학 졸업장은 필수야.
우리가 CH 건설을 가지게 되면 그땐 너희 부모님이 하라는 데로 하지 않아도 돼.
네가 성인이 되면 우리는 당당해질 수 있어.
너희 부모님의 보호도 필요 없게 되는 거야. 네 마음대로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어.
그 회사 사장은 네가 될 거야. 니 아버지가 아니고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내가 떠나고 만약 네 마음이 변해서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네 마음을 다른 여자가 가지게 된다면
난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너 우리가 처음 사랑을 나눈 날을 기억하지?
네가 날 떠나면 나는 너를 죽일 수도 있다고
그때 너도 내 손에 죽어도 좋다고 했지?
우리 둘은 절대 떨어질 수 없어. 만약 헤어진다면 그땐 우리 모두 세상에 없는 날이지.
내가 올 때까지 날 꼭 기다려야 해. “
“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내가 연우를 사랑하게 될 일은 없을 거야. 내 사랑은 변함이 없을 테니까
난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워. “
양평의 별장은 화란과 강우의 사랑이 시작되고 맹세를 나누었던 곳이다.
잠깐의 이별이지만 헤어짐의 장소도 양평이어야 했다.
내일이면 화란은 미국으로 떠나고 강우만 홀로 남게 될 것이다.
강우와 화란은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벽난로 안의 빨간 불꽃은 주황 불 뒤를 튀며 열렬히 춤을 추고 있었다.
화란은 불꽃보다 더 벌겋게 타올랐다.
불꽃은 모든 것을 다 까맣게 태워버릴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다 삼켜낸 뒤 까만 재만 남길 것이다.
일주일 전 최 이사와 말자는 화란의 집으로 강우를 찾아왔다.
최 이사는 화란의 집으로 들어가 강우와 화란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 화란이 너 지금 윤 총장 소식이 다 퍼지고 있는 건 알고 있지?
얼마 안 있으면 신문이며 잡지 티브이에서도 너와 윤 총장에 대한 기사로 도배가 될 거다.
AGT 건설 원중만 전무한테 들었겠지만 한국을 떠나는 게 좋겠다.
강우 너도 집에 들어오고
너희 둘 불장난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니?
화란이 너도 충분하지 않아? 강우를 좀 놔줘.
너야 이미 틀렸지만 우리 강우는 아직 어려. 대학도 졸업해야 하고
우리 강우는 CH 건설 사위가 될 거야. 그래서 그 회사를 가지게 될 거라고
강우, 너 연우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그 애랑 결혼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당장 짐 싸. “
“ 아버지, 저 집에 안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싫어요.
제가 좋아하는 여자는 화란이 입니다. 연우가 아니에요.
그 애랑 결혼할 맘은 추호도 없습니다. CH 건설도 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화란이랑 같이 여기에서 살 거예요. “
최 이사는 강우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 강우야. 집으로 들어가.
이사님, 강우 집으로 데리고 가세요.
저는 이미 미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곧 미국으로 떠납니다. 가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강우를 다시 만날 거예요.
이사님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시는 CH 건설 제가 갖게 해 드리겠습니다.
강우가 연우란 아이랑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
“ 화란아. 싫어. 너랑 헤어지는 것도 집에 들어가는 것도 ”
“ 강우, 너 오늘 나랑 집에 안 들어가면 정말 아비랑 끝나는 줄 알아.
호적에서도 파고 더 이상 넌 내 아들이 아니야.
너에 대한 아무 기대도 하지 않을 거다.
네가 화란이랑 계속 같이 있으면 우 사장이 아니 연우 아빠가 너랑 연우 결혼시키지 않을 거야.
그럼 나도 더 이상 너 아들로 여기지 않을 거야. 그런 아들은 필요 없다. “
“ 강우야, 일단 집으로 가. 가서 전처럼 생활해.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때 다시 만나.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네가 연우랑 결혼할 일도 없을 거야.
이사님, 대신 약속해주세요. “
“ 뭐야? 그 약속이란 게? ”
“ 만약 제가 돌아와서 CH 건설을 드리면 저와 강우를 내버려 두세요. ”
“ 그래,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너희 둘 만나는 것도 허락하지.
하지만 연우가 강우 아이를 낳아야 해. 그래야 모든 것이 완벽해져.
연우가 강우 아이 두 명을 낳을 때 까지는 너희 둘이 조용히 지내.
연우나 연우 아버지 우 사장한테 안 걸리기만 하면 돼.
연우가 아이를 낳고, 우 사장이 죽으면 그때 CH 건설이 내 차지가 되면
그때 연우를 처리해. 너희들 마음대로
지금은 아니야. “
“ 아니요, 강우가 연우랑 결혼할 일은 없을 거예요.
그 애랑 결혼을 하지 않고도 제가 CH 건설을 이사님께 가져다 드릴게요.
강우랑 그 아이. 제가 돌아올 때까지 결혼시키지 마세요.
만약 제가 없는 동안 강우랑 그 아이 결혼을 시키면
한국으로 돌아올 거예요. 못하게 할 겁니다. 아니 못하게 될 거예요. 그 결혼은
강우는 제 사람이에요. “
화란의 말은 거짓이나 과장됨이 없이 자신만만하게 들렸다.
눈빛은 차가우면서도 적의가 가득 차 보였다.
‘ 언제부터 이 아이의 눈빛이 이렇게 살천스러워졌을까?
말이 없고 항상 내 눈길을 피하던 아이였는데. ’
말자의 집에 처음 들어올 때
화란은 숨소리조차 조심히 내뱉고, 그림자처럼 엄마의 뒤만 조심히 따라다니던 10살 여자 아이였다.
‘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변하게 했을까? ’
최 이사는 문득 화란의 변화가 궁금했지만 그것도 잠시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며 자신을 쏘아보는 화란에게서
과거 연우의 할아버지를 노려보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란의 눈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보였다.
강석의 아버지는 민우의 할아버지 집에서 부리던 홀아비 머슴이었다.
엄마는 어린 강석과 남편을 두고 집을 나가버렸고
강석은 아버지와 둘이 민우의 집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강석과 나이가 같은 주인집 아들 민우와는 함께 학교도 다니고,
산으로 들로 냇가로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갑자기 6.25 전쟁이 터지고
어느 날 민우의 할아버지 집으로 북한군이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서는
짐을 싣고 갈 남자가 필요하다 말했다.
그때 민우의 할아버지는 강석의 아버지 석중을 데려가라고 했다.
자신의 아들이자 민우의 아버지인 재만을 광 속 깊이 숨겨놓고
이 집안의 남자는 강석의 아버지 석중 혼자라고 그를 선선히 내어주었다.
석중은 소처럼 눈만 껌뻑거리고 어린 강석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들 강석을 떼어내고
강석의 아버지 석중은 마지막 인사라며 민우의 할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리고
아들 강석을 잘 보살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하고 북한군과 함께 갔다.
강석은 언덕에 올라 아버지가 소처럼 무거운 짐을 메고
북한군과 함께 지평선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돌아왔다.
깜깜한 밤이 되어 민우의 집으로 돌아올 때 강석은 결심했었다.
민우의 할아버지, 민우의 아버지, 민우
대대로 물려오는 저 재산을 다 빼앗겠다고 민우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겠다고
그 길만이 자신의 아버지 석중을 위하는 길이라고
강석은 화란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보았던 것이다.
화란과 최 이사 강석은 흡사한 사람이었다.
얼마 전 원중만 이사를 만나 화란의 얘기를 들었을 때
원중만은 화란이 AGT 건설에서 체결한 그 많은 계약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윤 총장과의 일만 아니었으면 화란을 절대 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화란은 자신을 사장으로 만들 수 있는 여자라고 했다.
여느 지략가보다 영리하고, 장사꾼보다 계산이 빠르고 앞을 내다본다고 했다.
사람을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알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든다고도 했다.
사자처럼 무섭고, 늑대처럼 집요하게, 뱀처럼 교활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무엇이든 할 여자. 두려운 여자
내 편이 아닌 적이라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여자
위험한 여자라고 했다.
화란이란 여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