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질투, 가장 가까웠던 두 여자의 모든 시간

관계 속에서 치유받는 법 - <드라마 은중과 상연>

by So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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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시작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10대 시절 처음 만나 마흔셋에 이르는 두 여성의 복잡다단한 일생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드라마는 제목이 지칭하는 그대로, 류은중(김고은)과 천상연(박지현)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단순한 우정극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 서사는 선망과 원망, 동경과 질투, 애정과 미움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이 평생에 걸쳐 얽히고설키는 지독한 기록이다.


살다 보면 관계란 계획하지 않았을 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은중과 상연의 만남도 그렇다. 각자의 상처와 외로움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낯설고 불편했을지도 모르는 인연이 결국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는 과정은, 많은 시청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보는 듯한 울림을 준다.


은중은 평범하지만 따뜻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인물이며, 상연은 비범한 재능을 가졌으나 고독과 트라우마에 갇힌 채 살아간다. 이 두 인물은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장 강렬하게 원하며, 그 욕망은 결국 우정을 배신과 파국으로 몰아간다. 풋풋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던 30대를 지나,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가장 가깝기에 가장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게 한다.




결핍이 만들어낸 비극적 관계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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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네 개의 시간대(10대, 20대, 30대, 40대)를 오가며 두 인물의 심연을 파고든다. 특히 상연의 서사는 깊은 결핍과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오빠를 잃은 후 스스로 고독한 방어벽을 쌓았다.


반면 은중은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은중이 가진 ‘평범한 다정함’과 ‘모두에게 사랑받는 능력’은 상연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질투와 열등감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들의 관계는 한 남성(김상학)과의 삼각관계라는 클리셰마저 비껴간다. 김상학과의 관계는 사실 두 여성의 오래된 애증을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상연은 은중에게 강한 동경심을 품었지만, 동시에 그를 파괴하고 싶어 했고, 김상학에게는 병적인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은중은 상연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끝내 상연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 이처럼 <은중과 상연>은 두 여자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명연기로 완성하였다.




염세적이라는 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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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학: 이 말, 무슨 뜻인지 알아?

류은중: '염세적'... 아니요 처음 들어 보는데

천상학: '미워할 염'에 '세상 세'. 세상을 미워하는 태도를 뜻해.

'염증을 느꼈다' 할 때 그 '염'이야

류은중: 아... 염세적...


(중략)


류은중: 난 너무 염세적인 것 같아.


(중략)


천상학: 아니 은중이 말이야. 자기가 아무래도 너무 염세적인 것 같대

윤현숙: 은중이가?

천상학: 응. 그래서 '넌 뭘 좋아해?'라고 물었더니 좋아하는 게 막 끝도 없이 나와.

세상에 좋아하는 게 그렇게나 많은데도 본인이 염세적이래.

그게 자꾸 생각나. 생각날 때 마다 웃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염세적”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접했다. 세상을 미워하는 태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레 품게 되는 무거운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은중이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조금 의아했다. 좋아하는 게 수두룩하게 많은 아이가, 어떻게 자기 입으로 “염세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상학이와 현숙이 웃었던 건 아마 그 어긋남 때문일 것이다. 아직 세상을 충분히 겪어 보지도 못한 은중이, 좋아하는 게 차고 넘치는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귀엽고도 우스워서.

그런데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웃음이 씁쓸한 여운으로 바뀐다. 상학도, 상연도 곁에 남지 않은 지금의 은중이라면… 정말로 세상이 밉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은중이의 “염세적”이란 말이, 단순한 농담처럼 흘려보낼 수만은 없는 이유다.




시간을 채집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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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학: 자, 이건 셔터 스피드를 60에 놓고 찍은 거야.

그 말은 즉슨, 이 안에 60분의 1초가 담겨 있다는 뜻이야.

이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 근데 사실은 60분의 1초만큼 움직이고 있어.

이렇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거야.


(중략)


류은중: 천상학과 함께한 10초를 잊지 못한다.

오빠는 셔터 스피드를 125에 맞추라고 했지만 나는 60에 맞췄다.

125분의 1초 보다는 60분의 1초가 더 기니까.

사진 속에서 오빠와 조금 더 오래 있고 싶어서.


나는 이 대사를 듣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 낭만적인 설명이었다.

셔터를 누르는 찰나가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을 채집하는 일”이라니. 카메라 속에는 단순히 풍경이나 인물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공기가 함께 담기는 게 아닐까.


특히 은중의 독백은 뭉클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고 싶어 일부러 긴 셔터 속도를 택했다는 말. 사진 속에서의 60분의 1초는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찰나일지 몰라도,

은중에게는 간절하고 특별한 선택이었다. 나 역시 사진을 찍을 때 가끔은 그런 마음이 된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고.

물론 사진은 사진일 뿐이고, 결국 현실의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하지만 그래서 더 사진을 남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추억으로라도 그 순간을 붙잡기 위해.




'마지막 동행'이 던지는 삶과 죽음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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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마지막은 큰 파국과 화해를 동시에 안긴다. 마흔셋이 되어 암 투병 중인 상연은 은중에게 스위스 조력사(助力死) 여행에 동행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건넨다. 이 서두와 결말의 설정은 두 사람의 얽히고설킨 모든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죽음을 앞둔 상연에게 은중은 더 이상 질투의 대상이 아니었다. 상연은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은중의 진정한 포용과 용서를 구한다. 은중이 자신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려 했던 상연의 마지막 여정을 묵묵히 동행하는 모습은, 사랑과 미움을 넘어선 가장 깊고도 궁극적인 인간적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결국 이 드라마는 평생에 걸친 지독한 애증의 기록을 통해, 삶의 모든 우여곡절 속에서 ‘너(You)’와 ‘그 외의 모든 것(Everything Else)’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긴다.


나에게도 은중과 상연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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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나면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에게도 은중 같은, 상연 같은 사람이 있을까? 혹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을까?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 생각보다 우리를 버티게 하는 건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용한 존재감일지도 모른다. <은중과 상연>은 바로 그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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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어요.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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