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사랑
나는 어릴 적부터 무언가의 이름이, 누군가의 이름이, 어떤 것의 이름이 궁금하고 신기했다.
나무는 왜 나무라고 부르는지, 강아지 풀은 왜 이름이 강아지 풀인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한참을 부모님을 졸졸 쫓아다니며 여러 번을 물어봤고,
내 이름은 어떻게 지어진 건지 그 나름의 역사와 이름의 뜻을 열심히 풀이하고는 은근히 뿌듯해하며 나의 이름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에게 이름이란,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열쇠이자 사랑의 시작점인 것 같다.
어릴 때 나의 애착 인형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줄 때 나는 그 누구보다 심각하고 진중하였다. 그렇게 정해진 꼬꼬(토끼 인형이었지만), 토토(이 인형은 진짜 토끼였다), 그리고 뽀(텔레토비의 뽀)는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추억으로 남아있다. 비록 인형들이었지만 이 인형들에 정성껏 이름을 붙여주고 수백 번, 수천 번 이름을 부르면서 애틋함은 더 커져만 갔다.
나에게는 누군가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과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지만 사실 모든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의 이름을 말하고 상대방의 이름을 아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변한다. ‘전혀 접점이 없던 그대와 나’에서 ’우리‘라는 관계가 새로이 형성되고, 여러 번 이름을 부르며 관계의 깊이는 더해간다.
신기한 일이지 않은가? 이름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전혀 관심 갖지 않던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름을 알게 된 이후로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궁금해하게 되고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 말이다.
그야말로 이름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그 사람의 세상을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의, 누군가의 이름이 궁금하다.
강아지 이름이 궁금하고, 왜 그런 이름인지 궁금하다. 참고로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은 가족들이 나의 이름 끝 자를 애칭처럼 부르는 것을 조금 변형해서 지었다. 그러니 내가 우리 집 강아지를 더더욱 사랑할 수밖에!
그리고 지나가다 예쁜 꽃을 보고는 몇 번은 예쁘다 생각하며 지나친다. 그런데 몇 번의 지나침 끝에는 꽃 이름을 알아내고야 만다. 그렇게 알게 된 꽃 이름은 가끔은 보기와 다르게 슬픈 꽃말을 갖고 있기도 하고, 찾아도 찾아도 왜 그런 이름을 갖고 있는지 나오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그 꽃에 관심을 쏟고 난 이후에는 더 애착이 간다. 꽃말이 슬퍼서, 너무 흔하디 흔한 들꽃이어서, 앞의 이유들에 비해서 내 눈에는 너무 예뻐서.
나의 이름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옷을 사거나, 화장품을 사거나, 향수를 사거나, 내가 사는 것들의 브랜드 네임이 궁금할 때가 있다. 영어일까? 불어일까?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며 브랜드 사이트에 들어가 브랜드에 대한 설명들을 살펴본다. 그러며 알게 된 브랜드 네임의 의미, 추구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 더 신뢰가 생기면서 두 번, 세 번 더 눈길이 가고 관심이 가는 것이다.
향수 네이밍은 내가 특히 제일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이다. 향수는 글의 제목처럼, 시처럼, 모든 느낌과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뇌리에 박히게 이름을 지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향수들은 꼭 향수 이름의 의미와 더불어 향을 느끼며 조향사가 담은 이야기들을 느끼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름을 궁금해하는 것, 이름을 알게 되는 것, 그 이름을 부르는 것.
이것은 바꿔 말하면 이름을 넘어 그 안에 있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내가 모르는 무한한 세계를 끌어안는 일이다.
그러기에 이는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또 새로운 세상을 꼬옥 끌어안기 위해 이름을 궁금해하고 알아낼 것이다.
이름을 부를수록 내 안에서 더 커져가는 그 존재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기를,
더 따스히 그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그 사랑스러운 이름들을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