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와르 May 24. 2024

나도 맞고 너도 맞다

다름의 수용

생일 때마다 선물을 챙기는 친구가 몇 명 있다.

선물 준비는 나에게 일 년의 프로젝트 같은 존재이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다 보면 그게 그거인 것 같지만

친구가 좋아하는 것, 요즘 관심이 생긴 것, 잘 어울리는 것들을 생각하고, 무언가를 할 때마다 무언가를 볼 때마가 그 친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사랑이고 행복인 것 같다.

나는 주로 서프라이즈로 선물을 준비하는데,

생일 선물을 주고 내가 왜 이 선물을 고르게 되었는지, 너를 얼마나 생각하며 고른 선물인지 풀스토리와 함께 선물을 건네곤 했다.

친구들의 관심사를 저격하거나, 내가 써본 것들 중 좋았던 것들(나름의 검증이 끝난 것들이랄까)이 친구들 마음에도 쏙 들 때, 그리고 선물한 것들을 계속 사용하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의 희열 때문에 나는 서프라이즈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선물을 서로 챙기는 친구들 중 생일이 제일 빠른 나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물어왔다.

“요즘 갖고 싶은 것 있어?”

나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이미 갖고 싶은 것들은 내가 진작에 구매하여 쓰고 있기도 하고, 또 갖고 싶은 게 있다고 하여도 “나 이거 이거 갖고 싶었어~!” 하고 말하는 것이 약간 쑥스럽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하여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때 필요한 것, 갖고 싶었던 것들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인데...

뭔가 처음에는 그런 질문을 받고 이 친구는 나에게 관심이 덜한가? 어차피 쉽게 답하지 못할 거 알면서 왜 그런 질문을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조금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작년 생일, 드디어 갖고 싶은데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이 딱! 생긴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을 물어보았던 친구는 어김없이 나에게 필요한 것을 물어보았고, 나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쑥스러움을 풀 장착하고는 “나... 이거... 필요하긴 한데...ㅎㅎ” 하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생각하던 것을 알려 주었다.

그 친구는 알려줘서 너무너무 고맙다며 나에게 그 선물과 다른 선물을 함께 건네주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서 받는 선물...

나의 선물이 될 것을 말하는 것은 뻘쭘하였지만 막상 받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고, 정말 필요했던 만큼 실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친구의 생일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조용히 선물할 리스트들을 추리다가 아차 싶어서 물어보았다.

“S야, 너는 내가 생일 선물 서프라이즈로 주는 것이 좋아, 아니면 리스트들을 알려주면 네가 고른 것을 받는 것이 좋아?”

이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골라서 받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퍼즐이 맞춰지듯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내가 원하고 필요해하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중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의 선물을 고를 때 내가 이미 웬만한 것들을 다 가지고 있을 것 같아 생각나는 것을 마음대로 선물하기엔 고민이 많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왕이면 필요한 것, 갖고 싶은 것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올해에도 어김없이 나에게 ‘제발제발제발 조금이라도 필요한 것이 생각나면 이야기해 달라’고 하는 친구에게, 나는 머리를 쥐어 짜내어 수줍게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말해줘서 너무너무너무 고맙다’며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룰루랄라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나대로 이제는 친구에게 생각했던 리스트들을 쫘악 보내주고는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물론 서프라이즈의 욕심을 전부 버리지는 못하여 리스트들을 굵직굵직하게 알려준다던지, 브랜드를 알려주지 않는다던지, 말로만 자세히 열심히 설명해 준다던지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내 진심이 크고 명확해 내 방식이 맞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이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저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이런 간단하고도 당연한 진리를 이렇게 경험해 보고서야 깨닫는 나라니...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내 사랑과 진심을 강요해 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게 되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면서도 무엇이 맞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이것은 알겠다. 내 진심이 크다고 내가 다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다른 방식의 마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다름을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지나쳐왔다. 그리고 나의 아집에 빠져 다름을 이해하기까지 수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의심하고 서운해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다 같은 마음이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맞고, 너도 맞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다름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후련하고 기쁨이 차오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