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행복하지 않음의 시소 타기
행복의 반대말은 뭘까.
불행일까?
나는 행복의 반대편에 그저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행복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언젠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상태. 그래서 행복은 정확한 반대말이 없는 것 같다.
어느 날은 행복이라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간다. 이 행복의 끝이 어디일지 한 치 앞도 모른 채 두둥실 위로, 또 위로 향한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는 오로지 행복만을 느낀다.
그런데 열기구가 팡 터지고 고통과 힘듦이 찾아오면 바로 전에 느낀 행복은 온데간데없이 마음속에서 사라져 자취를 감춰버린다. 나의 고통이 제일 크고 힘들고 견디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더 괴로워진다.
행복이라는 것이 그렇고,
고통과 고난, 괴로움이 그렇다.
행복할 때에는 힘든 상황을 까마득히 잊고, 힘들 때에는 나의 아픔만이 전부인 듯 행복했던 순간을 잊는다.
그럴 때 보면 행복의 반대말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힘든 순간에도 실낱같은 희망이나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우리는 웃는다. 우리는 그 괴로움 속에서 조그마한 행복에도 더 크게 행복함을 느낀다.
그런 것을 보면 행복은 늘 그림자처럼 우리 옆에 붙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웃음처럼 따뜻한 온기처럼 언제든 우리를 위로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그냥저냥 일들이 많았다.
분명 며칠 전에는 기분도 좋고 행복만 가득한 것 같았는데 나에게 스멀스멀 어둡고 진득한 기운이 몰려왔다. 하루하루를 보내며 힘들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지배하였고, 삶이 참 녹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라는 사탕을 줬다가 뺏었다가 다시 줬다가 뺏는 것처럼 그냥 마구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며칠 지나서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건지 아니면 힘든 마음에 면역이 생겼는지, 조금은 웃을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녹록지 않은 시간들 사이에서 행복을 찾아내어 기어코 행복한 순간들을 마음에 저장하고 있다.
분명 이런 녹록지 않은 하루하루도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니게 될 것이다. 삶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니까.
쇼펜하우어의 책을 보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덜 불행하게 사는 것이라고.
인생은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고 끝내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그럭저럭 살아가며, 삶을 견뎌낸다.’
이 말이 큰 위로로 다가왔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면서 나에게 찾아오는 행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게 내가 찾은 답이다.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불행을 겪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나는 분명 웃었고, 잠시라도 기뻤고, 위로받는 시간들이 가득했기에.
삶이 녹록지 않을지라도 그럭저럭 살아가며 삶을 견뎌내보려 한다.
어느 작가님의 말씀처럼 내가 주춤하는 이 순간에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또 다른 작가님의 말씀처럼 이런저런 삶 속에서도 감사함을 떠올리며 말이다.
나의 행복이 저 편에서 손짓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또 웃을 시간이 왔다고, 행복해질 시간이 왔다고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