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와르 Jul 12. 2024

무너진 모래성

다시 처음으로


오랜 시간 갈망해 왔던 예쁜 모래성을
드디어 거의 다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파도 한 번에 모래성이 무너져 내렸다.
별거 아닌 파도였는데...
모래가 문제인가, 성을 쌓은 내가 문제인가.
파도가 문제였을까.
모래성이 무너지고 내 마음도 무너졌지만,
파도는 늘 치고,
무엇이 문제였든 언젠가는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모래성을 다시 쌓을지, 무너져 내린 것을 고칠지 잘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덜 갈망하겠지.
덜 기대하겠지.
담담해지겠지.
제대로 만들어져도, 다시 무너진다 해도.
그러니 이걸로 됐다.
한 번 배웠으니 됐다.
감사한 일이다.

24. 07. 11.


요즘 계속 쓰고 있는 감사 일기에 이런 글을 적었다.

남동생과 대판 싸우고(혼내고) 실망과 허탈함에 쓴 글이다.

10살 차이 나는 남동생과 싸웠다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나는 동생에게 누구나 생각하는 보통의 누나보다는 제2의 보호자 같은 존재로 스스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하며 살았던 것 같다.


동생이 유전질환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약 2주간 빗길을 뚫고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의 병원을 매일같이 왔다 갔다 하며 하루에 네 번씩 약을 챙겨주고, 씻겨주고, 간호하며 나름 걱정과 사랑을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을 했는데, 조금 나아지자 걱정하는 가족들보다 답답했던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수술했던 부위를 아끼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모습에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대차게 말싸움을 하고 힘자랑도 해가며 푸닥거리를 하고 결국 미안하다며 서로를 감싸 안아주기는 하였지만 속상함이 오래 남는 것은 사실이다.


터울이 많이 나는 동생들과 화합하여 종알종알 알콩달콩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게 나에게는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이자 오랜 소망이었기에,

조금씩 천천히 그 목표를 향해 예쁘게 예쁘게 모래성을 쌓다 거의 완성되었나 싶던 찰나에

그 모래성이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 드니 더 좌절감이 컸다.


그냥 이런 일이 생길 때면,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가족인데도 가족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속상한 마음이 이를 수 없이 크고, 허탈하고 허한 마음이 꼭 나 혼자 망망대해에 있는 느낌인데,

그걸 설명해야 겨우 알아들을까 말까 하는 상황이 참 힘들다.


그래도 감사 일기에 적은 것처럼 감사한 일이다.

두 번의 실수는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모래성을 쌓으며 했던 노력들이 아깝고 아쉽지는 않다. 내 진심이었으니까.

내 진심을 알아주지 못해서 야속하긴 했지만,

그 마음 또한 지워냈다. 알아달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상처 입고도 가족이기에 또다시 무언가를 하고 노력하겠지만,

조금 덜 갈망하고, 조금은 느슨한 마음으로 모래성을 쌓을 테다.

내가 모래성을 다 쌓기 전에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삶이 녹록지 않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