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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그대 마음에 혐오 대신 사랑이 깃들기를

by 스와르

2025년의 해가 밝아왔다.

해가 바뀌기 바로 전 혹은 직후, 뭐라도 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가을부터 계속하여 바쁜 상황에 주변을 돌아보고 여유 있게 생각하며 글을 쓸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여 조용히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였다.

12월 내내 벌어지는 사회의 문제들, 끊이지 않는 사고들 역시 내가 글을 선뜻 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혐오’하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싫어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호불호가 있을 것이고 불호를 넘어 혐오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혐오하는 것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선언하는 것은,

혼자 마음속으로 혐오하며 싫어하고 피하고 무시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혐오를 선언하는 순간, 혐오는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점령하고 곧이어 혐오의 기운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킨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 만큼 여기저기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네 편 내 편하며 편 가르기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하나의 뜻을 가지고도 연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를 혐오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내며 서로 대치하기도 한다.


얼마 전, 지인이 인스타그램에 쓴 글을 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평소에는 젠틀하기 그지없는 좋은 사람 그 자체였다.

나이스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인스타그램에 격양된 글을 게시하였다.

영화 포스터 사진과 함께 일부러 눈물을 자아내는 영화, 어느 특정 포인트에서 웃음을 강요하는 영화들을 ‘혐오’한다며 글을 시작하였다.

그 밑으로 쓰인 글의 요는

요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다른 뜻을 내비치면 반대편으로 낙인찍히고,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를 ‘무안항공 사고’라고 말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마음대로 말을 하고 생각을 할 자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엔 ‘파시즘’적으로 의견을 강요하는 현 사회를 ‘혐오’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수십만 명의 사람이 추운 날씨에 매일같이 모여 뜻을 모으고 연대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난 사고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이런 것들은 교과서로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면서 알 수 있는 것이지 않나.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살아가면서 어떤 일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이해하고 공감하며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그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혐오는 이곳저곳에 만연하지만 그 혐오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늘 따로 있다.

어린이에 대한 혐오, 여성에 대한 혐오, 장애인에 대한 혐오, 노인에 대한 혐오, 가난에 대한 혐오, 등등.

누군가는 오늘의 기분을 이야기하듯 너무나도 쉽게 혐오가 섞인 말을 하고 행동하지만

그것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심장을 난도질하고, 그들 혹은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되곤 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일보다 싫어하고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은 훨씬 쉽다.

더군다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혐오가 만연한 시대이다.

툭하니 내뱉은 말은 쉽게 멀리 퍼지며, 그 말에 살이 붙어 조그마한 말이 거대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혐오를 멈춰야 한다.

혐오하고 혐오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 혐오는 내 안에서 싹이 터 끝을 모르고 나를 파괴하며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뱉은 혐오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너도나도 무언가를 싫어하고 혐오할 빌미를 주게 된다.

그렇게 혐오하고, 또 혐오하다 보면 결국 그 화살은 나를 향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어떤 상황이 싫어서, 어떤 존재가 싫어서, 그 강렬하게 싫은 마음을 내뱉었던 것인데,

언젠가고 반드시 내가 그 혐오의 화살에 맞는 비련의 주인공이 될 테니 말이다.


뜻이 맞지 않고, 무언가가 싫고, 어떠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입 밖으로 싫다고 외치기보다는 적어도 한번쯤은 그 상황을 이해해 보려 노력해 보았으면 좋겠다.

노력했는데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속으로 욕을 하며 무시하였으면 좋겠다.

무언가가 싫다고 일침을 가하고 혐오를 외치는 것보다

무언가가 좋다고 이야기하고 사랑을 마음에 담은 사람이 훨씬 고상하고 기품 있어 보이니 말이다.


자신이 혐오하는 것을 가감 없이 자유롭게 글로 쓰고 말할 수 있는 현재를 우리는 혐오의 시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혐오의 시대에서도

꿋꿋하게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을 지키고 사랑을 외치고 사랑을 행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에,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하고 따뜻한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과 혐오가 뒤덮인 그대들 마음에 부디 사랑이 깃들기를.

그대들 입장에서 불편하고 조금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처럼 보일지라도

사랑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자비로워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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