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엔 사계절이 흐르고
봄이 왔다.
코끝을 시리게 만들었던 겨울바람이 햇빛 냄새를 머금은 봄빛바람이 되어 코를 간지럽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포근한 바람과 햇볕만으로도 봄은 존재감을 알리며 나의 마음을 살랑살랑하게 만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긴긴 계절들을 지나 추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맞이하는 계절이기에 더 반갑고 새로이 시작하는 기분인 건가 싶다.
그래서인지 봄이 돌아오면 쌓인 시간들을 함께 한 인연들에 고마워지고 또 새로운 인연이 기대된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사계절은 함께 보내보아야 그 사람을 안다, 그 사람과 제대로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한두 번의 만남으로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고 선을 긋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이고, 당신이 나라는 사람을 충분히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종종 나도 그렇지만 상대방 역시 서로의 첫인상이나 은연중에 갖게 된 환상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놀라 기도 하고 실망을 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워낙 공감을 잘하고(하려 하고), 웃는 모습을 주로 보여서인지 무표정을 하거나 조금 성의 없는 대꾸를 하면 화가 났는지 기분이 좋지 않은지 열이면 아홉은 물어보곤 한다.
그러면 나는 괜히 미안함과 무안함 사이에서 주절주절 묻지도 않은 나의 성격(예민함, 여림, 차가울 때도 있음, 등등)을 열심히 설명하며 상대방을 이해 시 키기 위해 또 과하게 노력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증명해 줄 거야.‘
봄기운에 설레면서도 조금은 조급해지는 마음을 가지는 나
여름이 되면 더위에 지쳐있는 나
가을바람에 기분이 좋다가도 괜히 센티해지는 나
겨울에 눈 내리는 것을 보고 좋아하고 어둠에 반짝이는 모든 것을 보면 행복해하다가도 슬퍼지는 나
첫인상은 첫인상일 뿐, 여러 시간들에 놓인 우리는 첫인상과 완전히 다를 수도 있고 어쩌면 처음 그 느낌과 점점 더 같아질 수도 있다.
사계절동안 들쑥날쑥한 나를 견디고도 나의 매력을 발견하여 다시 봄을 맞이하였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동안 서로가 안 맞을 수 있는 부분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공감대가 계속하여 형성되고 대화하는 것이 즐겁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를 꽤 아는 사이인 것이고, 좋은 관계를 맺은 사이라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우리 사이에 수많은 사계절이 흐른다고 하여도 갑자기 어느 때에, 어느 포인트로, 수많은 계절들을 등져버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 사계절이 필요한 이유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의 삐죽빼죽한 모서리를 보고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아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끌어안지 못할 사람은 한 계절, 두 계절만에 서로의 모난 부분을 넘치게 찾아내다 결국 케이오를 선언할 것이다. 하지만 인연이 될 사람과는 모난 부분들이 서로를 나아가게 만드는 톱니바퀴가 되기도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들 속에서 그런 기억과 감정은 우리의 인연에 생동을 불어넣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모두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우리의 심성, 우리의 결이다.
힘들게 맺은 인연인만큼 놓치지 않고 싶고 또 헤어짐이란 슬픈 과정을 최대한 겪지 않고 싶은 게 내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 사이에 쌓인 수많은 시간들과 추억들, 그리고 나누었던 마음들이 나와 당신 모두에게 소중히 여겨졌으면 좋겠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마음에 다시 봄기운이 들어차면 여지없이 봄은 너그러움과 따뜻하고 넉넉한 품을 선물해 준다.
그러면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나의 사람들에게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고 싶어진다.
돌아오는 봄에도 함께 해주는 당신들께 고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잘 몰라 이리로 당겼다가도 어느새 저 멀리 밀어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 사이를 흐르는 계절들이 쌓여갈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 꼬옥 끌어안게 될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