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과몰입러
얼마 전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친구는 이내 흠흠 헛기침을 하며 중대발표를 하였다.
평소 공감을 잘하고 친구의 행복을 늘 바라는 나로서는 걱정이 많이 되는 결심이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친구의 결정에 현실적인 부분들을 끄집어내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 곧 다른 화젯거리로 말을 돌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친구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닌 것 같아 배신감도 들었다.
한동안 친구와의 대화가 충격과 긴 고민으로 남은 채로 지내다가
신경정신과 선생님께 마음이 쓰이고 신경이 쓰이는 일로 이 일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내게 ‘스와르님께서 친구분 일에 과몰입하셨군요.’ 하며 ‘그냥 유야무야 넘기세요. 그분 일은 그분이 알아서 하시겠죠.’라는 말을 하셨다.
과몰입이라니... 내가 과몰입이라니...?
순간 선생님의 말이 날카롭게 느껴졌는데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해서 ‘과몰입’이라는 단어가 심장에 푸욱 꽂혔다.
프로 공감러들은 아마 공감할 텐데 공감과 더불어 동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함께 기쁘고 즐겁다가도 슬프고 아프기도 하다.
그들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이요, 행복은 나의 행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몰입이었다니...
나는 가끔 공감이 나의 일부이기도 하면서 공감이라는 끈 위에서 휘청휘청 댄다.
너무 푹 빠져 공감하다 보면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때로는 내가 그들보다 더 그들의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마음을 쓸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공감을 넘어서 과몰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또 공감과 과몰입을 분리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공감을 하고 -> 걱정이 되고 -> 계속 신경이 쓰인다 = 과몰입
이 메커니즘을 끊기 위해서 공감을 덜 해야 하나? 마음을 덜 써야 하나? 공감만 하고 직언을 하지 말아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공감을 받고 싶어서 말을 꺼낸 상대방이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이 필요할 수도,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감정적인 공감만 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 요즘에는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된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나라면 어떤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하며 말이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상대방의 결정을 그대로 지지하고,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은 쉽게 가지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크긴 하다.
공감에서 시작된 과몰입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참견하고 걱정하고 함께 고민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감과 과몰입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공감에 잡아먹히지 않을 나를 위해, 관계를 오래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나는 계속해서 공감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더 격한 시소 타기를 하다 보면 결국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오늘도 나는 공감하고 과몰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