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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0121 07화

문장을 수집하는 시간

보물찾기

by 스와르

어느 날 류귀복 작가님의 글에 댓글을 적었는데 답 댓글로 이런 질문을 던져주셨다.

‘작가님도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셨을까요?‘

이 질문을 보고 머리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작가님의 물음에 답을 달지는 못했지만 책에 관련하여 여러 추억들이 떠올라 이번 글은 책에 관해서 글을 써야겠다 다짐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역사책, 위인전, 고전문학을 읽는 게 트렌드였다.

‘청소년이 읽어야 할 필독서 100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는 읽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던 책들도 많았던 것 같다.

나도 위인전 여러 권을 읽고, ‘한국사 편지’라는 책을 전권 소장하고,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수행평가를 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동물농장‘ 등을 읽고 열심히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때에는 그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숙제처럼 해치워 나갔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였다.

(비록 필독서는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주말마다 코엑스에 있었던 ‘반디앤루니스‘라는 서점에 가서 꼭 책 한 권씩 사서 품에 안고 집에 돌아갔었고,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끝으로 갈수록 남은 페이지가 적어지는 것이 아쉬워 고심해서 두꺼운 책을 고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가 사는 책들은 전부 전공서적만 한 두께의 책들에 시리즈가 있으면 한꺼번에 낑낑대며 사서 들고 왔던 추억도 있다.

그리고 나는 추리물을 좋아해서 한동안 추리소설을 엄청 읽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섭렵하고, 북미 추리 스릴러 소설들을 읽고, 셜록 홈즈 전집까지 구매해서 보물처럼 읽고 또 읽어 대사까지 외우게 되다 보니 내 취향이 이렇구나 하며 나를 알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여러 추억들이 많지만

내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책을 좋아하게 된 소중한 기억이 있다.

처음으로 도서관이라는 곳에 가서 책을 빌려보았던 날이었다. 서점처럼 베스트셀러가 진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추천을 받을 수도 없었다.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는 책들의 세상에서 재미있는 책 한 권, 보물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구석구석 책장을 빙글빙글 돌며 책 제목들을 스캔하던 중 내 눈에 띈 책 한 권이 있었다. 도서관 첫 방문에 너무 많은 체력을 소진한 나는 어떤 책인지 내용도 펼쳐보지 않고 제목만으로 고른 책 한 권을 빌려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책 한 권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결과는 대성공!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어 제목만으로 보물을 발견한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였고 책에 흥미가 마구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다음에도, 그 다음다음에도, 제목만 보고 끌리는 책을 골라 읽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번번이 재미있는 책을 읽게 되다 보니 장르와 상관없이 좋은 책들을 접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마음껏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일 년에 두세 권 정도 읽으면 많이 읽었을 정도로.

그렇게 20대를 맞이하고 시간은 흐르는데 매년 나의 다짐은 ‘책 많이 읽기’이고, 다짐과는 다르게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책을 잘 읽지 않는 나를 발견하였다.

독서와 멀어지다 보니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잘 읽는 건지, 몸과 머리가 다 까먹은 듯했다.


그래서 뭐든 읽기 시작하였다.

편독하며 이 책 빼고 저 책을 목록에서 빼다 보면 읽을 책이 없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책 앞을 서성이다 보면 고르다 시간이 다 갔기에

일단 읽었다.

소설도 읽고, 산문도 읽고, 시도 읽고, 에세이도 읽고, 가끔은 동화책과 만화책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책이, 글이, 문장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좋은 문장들을 보면 필사를 하였고, 내 마음을 닮은 글이 있으면 또 필사를 하였다.

그렇게 하여 필사한 노트가 여러 번 바뀌었고 모인 필사 노트가 곧 내가 문장 위를 걷고, 문장을 수집하는 시간의 증표가 되었다.


무언가를 읽으며 나는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수많은 표현과 감정을 배웠고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책을 읽는 것이 단순히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세상 속에서 글자, 단어, 문장들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좋은 것들을 나의 보물상자에 모으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숙제같이 머리로만 이해하던 그 시절에도 그 이후에도 책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지금까지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떻게 읽어나가고 마음에 담을 것인지는 다음 이야기, 일단 읽다 보면 어느 단어와 문장이 마음을 관통하는 때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니 좋은 책, 나쁜 책은 따로 없다.

그저 나에게 울림이 있으면 좋은 책이다.

좋은 책들을 쌓아가고 좋은 문장들을 수집하여 필사노트에 쌓아가는 그 시간들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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