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함축한 그 한마디
나는 무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깊은 진심을 전하고 싶어 표현을 고르고 고르다 ‘기도할게’라는 말을 쓰곤 한다.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고, 위로를 전할 때,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때 ‘소망한다’, ‘응원한다’를 넘어 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결국 기도하겠다는 말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신을 믿지 않는 내가 기도하겠다고 하는 말이 가벼이 들릴까 걱정되었고, 종교를 믿지 않는 이에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 말을 쓰는 것이 꺼려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를 생각해 주고 걱정하는 마음에 기도해 주겠다는데 종교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내가 필요할 때에는 하느님 아버지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공자님 다 찾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 진심을 전할 그 한마디를 고르고 골라 예쁘게 포장하여 선물할 때 이제는 고민하지 않고 ‘너를 위해 기도할게.’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윤주 작가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 공감 가는 구절이 있어 필사하였다.
삶의 어떤 순간에는 슬프기 때문에 두서가 없고 슬프기 때문에 정교한 단어를 고를 수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기도한다는 말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자체가 최선일 때도 있다고, 나는 나를 설득한다. 아무 꾸밈도 받을 수 없는 ‘기도할게’라는 한마디가, 무얼 기도할 건지 얼마나 기도할 건지 어떻게 기도할 건지가 촘촘히 담긴 구구절절보다 강하기를 바라면서. 글이든 말이든 그것이 삶을 넘을 수는 없다고 믿으면서.
얼마 전 친구와 짧은 만남 후 함께 지하철역 쪽으로 걷는 동안 큰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그날 역시 마음을 따라잡지 못하는 말과, 마음을 윤색할까 두려운 글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신호가 바뀌는 줄도 몰랐던 나에게 친구는 먼저 파란불을 보고 "가자!"라고 말했다. 그가 살짝 붙든 손에 이끌려 횡단보도를 건너며 생각했다. 응, 가보자.
나의 기도를 얼마나 잘 전달할지 고민하는 삶보다, 그저 기도를 멈추지 않는 삶 쪽으로.
이 글처럼, 어쩔 때는 구구절절한 말보다도 그저 내가 온 마음으로 너를 생각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진심을 담은 ‘기도할게’라는 한마디가 더 빠르고 강하게 상대방의 진심에 가닿는 것 같다.
신을 믿지 않는 내가 크나큰 마음을 한마디로 꾹꾹 눌러 담아 고스란히 전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당신의 안녕을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