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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Jan 22. 2024

공황과 공존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의 공황_에필로그

3년쯤 지났을까? 내가 공황장애로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기 시작한 것이.

사실 공황장애의 증상은 훨씬 더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공황장애라고 생각하지도 못하다가 점점 증상이 많아지고 심해져 뒤늦게 병원에 가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편이었다. 갓 성인이 되어서부터 공황 증상들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넘쳐흐른 것인지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아무 예고도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며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어쩔 때에는 잠시 기절도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공황장애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빈혈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었다.


그런데 3년 전 심하게 위염 증상이 나타났다. 위경련이 오면서 심장도 두근두근 터질 것 같고, 밤에도 위가 아프고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하였다. 내과에도 겨우 기다시피 가서 약을 처방받아먹어도 한 달 넘게 위염은 낫지를 않았다. 위가 아프고, 두근거리고, 가만히 앉아있거나 무엇을 하는 것이 힘들고, 그러다 보니 한 달 만에 5kg가량이 빠져버렸다.

위가 아파서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치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아니라 반대의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증상들이 계속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 눈앞이 흐려지며 쓰러질 것 같아서 중간에 내린 적도 있었고, 대화를 하던 중 과호흡이 오기도 하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신경정신의학과로 향하게 되었다. 신경정신의학과에 예약을 하고 가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하고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약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단약 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고, 약에 의존하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일단 일상생활이 불가하여 결국에는 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가서 엄청난 양의 설문지에 답을 하고 첫 상담을 하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것조차도 두근두근 떨렸지만 차가워진 손을 애써 감추며 선생님과의 대면이 시작되었다.

결론은 공황장애.

나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지만, 심하진 않은 공황장애 증상이라고 하였다.

병원에 가서 증상에 대한 답을 듣고, 알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였다. 선생님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별거 아니라고 하니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약을 먹으며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3년이 지났다. 잔잔한 파도를 겪기도 하고, 나라는 존재 자체를 집어삼킬듯한 파도를 겪기도 하며 공황과 동고동락하다 보니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거의 단약 하는 단계까지 도달했었는데, 작년 9월쯤부터 다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많이 좋아졌을 때에는 힘든 때를 잊고 다 나은 듯 자만하였다. 그런데 다시 몸이 힘들어지니 제발 두근거림만 없기를, 컨디션이 조금만 좋기를, 편하게 숨 쉴 수 있기를 바라며 잔뜩 움츠리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공황과 공존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조건 이겨내려고 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숨기던 공황을 친구들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알렸다. 힘든 상황이 왔을 때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힘든 나를 도와달라고 sos를 청하였다. 처음에는 말하는 것이 또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는데, 막상 말하고 나니 별거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고 배려해 주는 마음에 고맙고 감동받아 공황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솟구쳤다.


과연 언제까지 공황이라는 시한폭탄과 공존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함께 잘 지내보겠다는 이 마음가짐과 나를 걱정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 덕분에 조금은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제발 평온하고 적당히 두근대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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