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 불안
요즘 불안 증상이 심해졌다. 내 몸에 증상이 나타나서 불안하고, 증상이 나올까 봐 불안한, 불안의 꼬리 잡기가 계속되었다.
불안의 먹이가 불안 그 자체인 것처럼, 불안해하지 말자고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더 부피를 마구 키웠다.
이미 불안함이 내 마음에 똬리를 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스케줄이나 계획을 앞두고는 며칠 전부터 심장이 쿵쾅쿵쾅 터질 것 같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더 강박적으로 나타나서 내가 왜 그러지 싶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어 힘든 하루하루였다.
내원하여 담당 선생님께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받는다고 우는 소리를 하였다. 불안할 것들이 아닌데 자꾸 불안에 떠는 내가 싫다고.
선생님은 내가 ‘예기 불안’이라고 하였다.
예기 불안은 미래의 어떤 일이 생길까 봐 미리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인데,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포커스가 맞춰져 현재의 불안함이 더 극대화되어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고 결국 공황으로 이어지는 증상이라고 한다.
평소에도 늘 사서 걱정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갖고 있던 나지만 예기불안이라니.
상담을 해보니 이미 불안 지수도 높은 상태였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불안해하지 말자, 불안해할 일이 아니다’라고 되뇌던 것이 독이었던 것 같다.
우리 뇌는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에 더 집착적이다. ’무엇을 하지 말자, 하면 안 돼‘라고 부정적인 뉘앙스의 생각을 입력하는 순간 그때부터 그 생각들에 더 사로잡히게 되어버린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불안해하지 말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시작부터 지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에서 회피하려 생각을 전환하려 해도 희미한 흔적으로나마 계속 꼬리를 물고 쫓아오는 불안에 완전히 녹다운 상태였다.
선생님은 그럴 때에는 아예 다른 일을 하거나, 생각을 자르고 다른 것에 몰두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내가 미숙한 것인지 생각의 전환이 확확 잘 되지 않는다. 자꾸 비집고 고개를 내미는 크고 작은 생각들이 나를 불안으로 이끄는걸...
불안하여 불안하고, 불안할까 봐 불안한 이 아이러니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아직 답을 찾지 못하였다. 불안의 꼬리 잡기에서 나는 이제 그만 빠지고 싶은데, ‘걱정, 고민, 불안’ 이 삼종 세트와 평생 함께 해오던 내가 이것들과 안녕히 작별할 수 있을까?
이것 또한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불안과 작별하기 위해서는 불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안은 마음과 머릿속에서 완전히 없애려 하면 할수록 더욱 크고 진하게 남아 나를 괴롭힌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럴 수도 있지’, ‘불안할 수 있지’, ‘내가 힘들구나’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무던히 불안을 대해야 나에게 작고 별거 아닌 존재가 되어 더이상의 나를 괴롭히는 트리거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불안에게 늘 지는 내가, 불안을 인정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불안을 다루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고, 불안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무던해지기를 또 한 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