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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Feb 05. 2024

아날로그의 낭만

지나고 나니 낭만이었다

요즘 Y2K며 올드머니룩이며 레트로며 과거로의 여행이 여전히 유행이다.

분명히 유행 전에는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고 촌스럽다 생각했는데 유행이라고 눈에 많이 보여서 그런지, 요즘 트렌드에 맞게 예쁘게 나와서인지 나름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옷 입는 스타일은 내가 초등학교 때 입었던 스타일이라 그때 그 옷 버리지 말걸 하며 약간의 후회도 되고, 한물갔다고 생각했던 브랜드들이 다시 유행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점점 더 과학과 문화는 발전하지만 스타일은 과거로 회귀하는 요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하는 과도기를 겪어 본 나는 가끔 아날로그 시대가 그립다.

나도 사실은 아날로그 시대를 온전히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어설프게 마지막 시대를 겪었던 그 기억이 남아있기에 아쉬움이 짙게 남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에는 뚱뚱한 컴퓨터를 사용하였는데 그마저도 모든 집에 있지 않았고, 핸드폰은 어쩌다 한 명 있는 그런 귀한 전자기기였다. 그래서 집에는 꼭  유선 전화기가 있었는데 집 전화를 통해서만 친구에게 용건을 전할 수 있어서 매번 늦지 않은 저녁 시간즈음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인데요, 혹시 집에 누구누구 있나요?’를 공식처럼 읊으며 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때는 편지를 더욱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친구들과 아예 공책 한 권에 교환 일기를 쓰기도 하고, 예쁜 편지지를 골라 편지를 쓰고 답이 오면 또 답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빨리 편지를 건네주지 못하면 친구 집에 가서 우편함에 쓰윽 넣어놓고 오기도 했었지.

중고등학교 때에는 밤 시간에 공부를 하며 늘 라디오를 들었다. 늦은 새벽까지 귓가에 계속 말을 걸어주고 노래를 틀어주는 친구는 라디오가 전부였던 시절이다. 밤 10시부터 ‘텐텐클럽’ 혹은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고 12시부터 ‘스위트 뮤직박스’를 듣고 2시 이후에는 잔잔한 목소리로 진행을 하며 클래식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던 것 같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라디오를 들으며 수학문제를 풀다가 사연도 한두 개씩 보내고, 어쩌다 내 사연을 읽어주기라도 하면 다음날 학교에 가서 줄줄이 일화를 풀며 운수 좋은 날이라고 꺄르르 웃곤 하였다.

그런데 점점 디지털화되며 매년 일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혁신적인 디지털 기기들이 계속해서 마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뚱뚱한 핸드폰이 나와서 조금 얇아지기가 무섭게 스마트폰이 나왔고, 스마트폰이 나오자 애플 mp3인 아이팟부터 시작하여 아이폰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디지털 가속화의 상승 곡선이 거의 절벽처럼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그러면서 점점 잊히고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아날로그의 종적들.

나도 언제부턴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다 하게 되었고, 라디오도 택시에 타서 틀어진 것을 듣는 것 말고는 굳이 듣지 않게 되었다.

바빠진 일상에 전에 즐기던 여유들이 없어진 것일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하고 여유를 즐기기에는 디지털의 유혹이 더 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요즘 더더욱 아날로그의 낭만이 그립다. 연신 울리는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 쌓여있는 톡과 메일에서 벗어나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고정 인사말로 친구 집에 전화하여 목소리를 듣는 낭만. 수많은 쇼츠와 릴스에서 벗어나 책을 펴고 활자를 꼼꼼히 눈에 담고 입으로 되뇌어보는 여유.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추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연을 듣고, 내 사연을 보내고 기다리는 설렘, 그리고 모르는 음악에도 여유롭게 흥얼거리며 DJ가 알려줄 제목을 기다리는 낭만.

자꾸만 빠르게 변화하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삶은 편해지지만 낭만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변화하고 새로운 것들이 틈을 비집고 들어올수록 현재에 만족하며 여유를 부리고 낭만을 즐기는 것은 도태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가끔 생각이 난다. 세련되지 않고 투박하지만 그런 것에서 느껴지던 정들이, 낭만이.

지나고 나면 지금 일상적인 이 모든 것들이 다시 아날로그가 되어 낭만적이었다고 느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어 놓쳐버린 것들이 아쉽지 않게, 새로운 방식으로 또다시 나만의 낭만을 찾아 마음에 여유 가득히 그 낭만을 향유하고 싶다.


5년 전, 이때도 낭만이 있었네 (인터넷에서 보고 감동받아 저장.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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