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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Mar 15. 2024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고민 질량 보존의 법칙

어느 날은 고민과 걱정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 누가 대신 결정해 주었으면 하기도 하고, 나의 짐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져주겠다고 하면 냉큼 건네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사소한 고민과 걱정이 늘 내 몸집보다 부피를 키운 채 내 몸의 일부처럼 함께하던 나였기에 이 걱정 주머니를 떼어낼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이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

과연 내가 지금 치열하게 하는 고민들을 누군가가 명쾌히 해결해 주고 답을 내려준다면 나의 고민과 걱정이 줄어들게 되는 걸까?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고민들과 걱정들이 생기면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답을 찾아가곤 했다.

마음속의 불안을 꺼내 보일 때마다 엄마는 진정으로 공감을 해주며 엄마도 다 겪은 일들이라며 함께 해결책을 찾아주고,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해결이 된 듯 마음이 후련해졌다가도 뒤돌아서니 또다시 그 고민이 나의 마음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나를 시험하고 또다시 골똘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상당히 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쏟아부은 시간과 에너지에 비해 너무나도 보잘것없었고 알아서 해결되는 것들이 천지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엄마와 대화 끝에 나온 답들이 옳았기에 그 선택을 믿었다면 힘든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나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하거나, 그 고뇌를 직면하지 않으면 이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요즘에는 동생들의 고민과 걱정을 들어주곤 한다. 인간관계, 학업 문제, 진로 문제, 인생 이야기 등등 내가 부단히 고민하고 걱정하던 것들을 한차례 스스로 답을 내리고 마음속에서 훌훌 털어낸 후 동생들이 자신의 고민이라며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엄마가 이야기하던 그 나이대이기에 할 수 있는 고민들이었고, 참 별거 아닌 사소한 걱정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 공감해 주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름길을 제시해주기는 하였지만 그 이상의 이렇다 저렇다 할 첨언은 덧붙이지 않았다. 나의 조언이 그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그 고민이 해결되어도 비슷한 고민으로 또다시 고민과 걱정의 꼬리를 늘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그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가득 찬 고민과 걱정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부디 올바른 해답을 찾아가기를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고민 중량 보존의 법칙’

나는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답을 이렇게 내렸다.

내가 짊어져야 할 고민과 걱정, 고뇌, 즉 나의 몫은 늘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먼저 겪어본 누군가가 정답을 알려주고 방향을 알려주어도 직접 겪어보고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고민의 완전한 해결은 없다. 하나가 해결되어도 또다시 꼬리를 문 고민, 혹은 또 다른 가지의 고민이 생겨나 고민의 양을 유지하고야 마는 것이다.

어쩌면 고민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답을 알고 있고, 답을 정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 답이 타당하고 정당한지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가 내민 해답과 내가 찾아낸 답을 가늠하느라 고민이 길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티베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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