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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Oct 03. 2020

명절인데 일 안 하고 자는 엄마

코로나 덕분에

우리 엄마는 책임감이 굉장히 강하다. 본인 인생도 훌륭하지만 할머니의 딸, 아빠의 아내, 우리의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고 무엇하나 소홀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어느새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엄마는 항상 열심히 했다. 서울에 살면서도 명절 전날부터 시댁인 경상도로 내려가 온종일 부엌에서 음식 하느라 바빴다. 나와 사촌들은 가끔 심부름을 하거나 방에서 우리끼리 놀았다. 그리고 명절 당일이 되면 요리하던 며느리들은 자연스레 부엌에서 밥을 먹고, 큰아버지를 비롯해 남자들은 거실에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고된 명절을 보낸 다음 날 엄마는 출근했다.


15년 전 친조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명절엔 서울인 외갓집만 가게 됐는데 그때부턴 비교적 소박한 명절을 지내게 됐다. 다 같이 모여 앉아서 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자식을 가진다고 정성을 다하던 모습도 이젠 과거가 된 거다.


명절 음식도 분업화가 잘 된 편이라 우리 가족은 여러 전을 부치고, 이모네는 갈비, 삼촌네는 동그랑땡 등 각자 집에서 음식을 해온 후 모여서 같이 먹었다. 명절 준비가 간소화됐지만 그래도 여러 명이 먹을 음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은 일같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서 일가친척 모두가 서울에 사는데도 모이지 않았다. 이동이 많은 연휴 기간을 피해서 날이 겹치지 않게 가족별로 따로 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다고 한다.


어르신에게 명절은 기다림이다. 자주 못 보는 자식들부터 귀여운 손주들까지 모두 모여 북적북적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귀한 날이니까 말이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다 같이 모이진 못하지만, 따로라도 인사를 드리면 마음이 덜 허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이번 추석엔 옥상에서 바비큐를 하기로 하고 그릴, 숯, 토치 등을 미리 준비해놨다. 그리고 추석 당일 오후 4시 엄마, 아빠를 만나러 집에 갔다.


“엄마~” 집의 불이 다 꺼져있었다.

“아무도 없어?” 한 번 더 불러봐도 조용해서 혹시 부모님 두 분만 할머니 댁에 가셨나 싶었는데 엄마가 천천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자고 있었어. 아빠도 지금 자고 있어.. 고기는 나중에 먹자”

“어? 알았어 엄마. 어여 다시 자”


엄마는 명절 당일에 낮잠을 잤다. 낮잠 자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까 오늘이 추석이 아니라 평소의 주말처럼 느껴졌다. 낯설었다. 한 번도 명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엄마를 처음 봐서 그런 것 같다. 마치 엄마에게 삼십 년간의 명절 피로가 다 몰려온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참 찡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온 가족이 모이진 못했지만, 코로나 덕분에 엄마는 쉴 수 있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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