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대한 시선
벌써 겨울이다. 따뜻한 집에 있다가 나갔을 때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의 냄새가 난다. 어두울 때 출근해서, 햇빛 보려 산책하고, 다시 깜깜할 때 집에 오는 게 그리 낯설지 않다. 붕어빵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계절이다.
겨울은 따뜻한 계절
코가 시린 차가운 공기에 얼굴도 따가워진다. 손이 시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도 한 손으로 폰을 보려고 손을 꺼냈다가 이내 손이 얼기 직전에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연락을 주고받는데 손 시린 건 문제가 안 된다.
몸이 차게 얼었을 땐 전기장판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에 들어가는 맛이 있다. 이불 속에 웅크려 온기를 품으면 몸이 녹는 것 같은 기분은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옆에 귤까지 있다면 이곳이 무릉도원이지
겨울은 사색의 계절
올 초 2월쯤일까 코로나가 터졌을 땐 다시 겨울이 오면 변할 것 같았다. 코로나가 사라져서 인제 자작나무 숲도 가보고, 스키장도 가고 싶었는데 변하지 않은 겨울이 왔다.
내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다이어리가 생기면 지난 한 해를 회고하며 내년을 생각하게 되는데 올해는 좀 다르다. 어차피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다며 대충 위로하고 내년을 두 가지 버전으로 생각한다. 코로나가 사라진다면? 하나와 코로나가 지속된다면? 버전으로 계획을 세운다.
혼자 피식거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겨울마다 듣게 되는 김진표의 로맨틱 겨울, 누가 팥을 먹을지 슈크림을 먹을지 장난쳤던 신림역 7번 출구 붕어빵 등 겨울엔 추억의 매개체가 너무 많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어제 일인 듯 시간의 개념을 망각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겨울은 낭만적인 계절
그래도 세상은 연말이다. 거리는 텅 비었지만 백화점과 호텔엔 트리가 반짝인다. 유튜브엔 홈파티 브이로그가 가득하고, 애플 뮤직엔 캐롤이 있다.
무채색 겨울 사이로 반짝이는 트리를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이럴 땐 사소한 것에 크게 감동받는다. 감동은 영감, 영감은 창조로 발현된다. 그제는 출근길 버스정류장 주변의 담배꽁초를 줍는 아주머니를 봤다. ‘좋은 일 하시네’에서 그치지 않고 나도 따라 주웠다. 일렁이는 감정을 안고 출근하는 기분이 꽤 좋았다.
취향도 여행을 간다. 나한텐 그게 성시경, 터보다. 평소에 듣던 해리스타일스, 조셉살바, 캘빈해리스는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졌다. 그리고 이미 세 번이나 본 이터널션샤인을 또 본다. 분명 2020년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은 몇 년 전 겨울이다.
고마웠어요, 보고싶어요 라는 말이 간지러워도 연말엔 할 수 있게 된다. 연말이라는 핑계로 전화할 수 있어서 좋을 때도 있다. 눈 온다는 핑계로 연락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을 테지. 사실 그런 말을 하는 데는 핑계가 없어도 되지만.
겨울이 좋다. 좋은 데 이유 없다지만 곱씹어 보니 이유가 엄청 많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감정들이 많아 기대되는 계절이다. 집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성시경의 목소리, 다시 봐야하는 영화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