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 고리
글자 위쪽에 반복되는 머리카락과 유려한 곡선, 둥근 고리 형태... 앞에 연재한 글을 지금까지 잘 따라왔다면 익숙한 이 단서들을 보아하니 영락없이 크메르 문자를 닮았다. 크메르 문자인가?
아니다. 이 문자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을 중심으로 8-16세기까지 쓰인 고대 카위 문자(Aksara Kawi, old Kawi)로, 자바 문자(Javanese)와 발리 문자(Balinese)의 초기 형태이다.
캄보디아와 자바 섬 사이엔 너무나 넓은 바다가 놓여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지역의 글자가 비슷한 이유가 무엇일까? 왠지 이 두 문자 사이가 보이지 않는 어떤 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촉'이 왔다.
그럼 그렇지. 카위 문자와 크메르 문자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아래 사진은 자바 섬 중부 구눙 유끼르(Gunung Wukir) 사원에 세워진 짱갈(Canggal) 비문(732년)이다. 팔라바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8세기 무렵 혹은 그 이전부터 인도 팔라바 왕조와 자바 섬 지역이 활발한 문화 교류를 이루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팔라바 왕조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크메르 민족과 자바 섬사람들은 서로 형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을까? 역사는 평화롭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들은 한때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맺었다.
가장 먼저 역사에 등장하는 크메르 민족 국가는 부남(Punan, AD86-550)이다.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계가 아닌 느슨한 연합국 형태였다. 부남에 속했던 진랍(Chenla, 550-802)이 세력을 키워 부남을 멸망시키고 캄보디아 지역의 패권을 쥔다. 자야바르만 1세(Jayavarman I, 657-681 재위) 당시 가장 전성기를 보낸 진랍은 그의 사후 내부 분열과 외세의 침략을 겪으면서 급격히 쇠락한다. 진랍은 끝내 706년경 메콩강 중앙 유역의 '내륙 진랍'과 메콩강 삼각주 지대의 '수진랍'으로 나뉜다.
8세기 중반부터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는 샤일렌드라 왕국(Shailendra dynasty)이 등장해 말레이 반도에서 필리핀 지역까지 두루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메콩(Mekong) 강 삼각주의 풍요로운 지역을 차지한 수진랍은 해상무역으로 이익을 보는 동시에 외세의 침입을 자주 겪었다. 샤일렌드라의 배가 수진랍의 영토를 자주 침범해오자 수진랍의 왕 라젠드라바르만 1세(Rajendravarman I)는 샤일렌드라를 자극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샤일렌드라의 대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수진랍은 도리어 속국 신세가 되었다. 왕은 참수당하고 수진랍의 많은 왕족과 귀족이 샤일렌드라 왕국에 볼모로 잡혀갔다.
볼모로 잡혀간 수진랍의 왕족 중에는 자야바르만 이비스(Jayavarman Ibis)가 있었다. 그는 샤일렌드라 궁중에서 자라고 공부하면서 신임을 얻어 공주와 결혼했다. 790년에는 오랜 볼모 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고향 수진랍으로 돌아와 샤일렌드라 왕국의 대리인으로서 속국을 다스렸다. 분열된 작은 공국들을 통합하고 세력을 키운 자야바르만 이비스는 802년 마헨드라 파르바타(Mahendraparvata, 위대한 인드라 신의 산, 지금의 프놈 쿨렌)에서 데바라자 의식(Devaraja, 神王)을 통해 "군주들을 지배하는 유일한 절대자"인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II)가 되었다. 샤일렌드라 왕국에 독립을 선언하고 종속 관계를 끊은 것이다. '앙코르(Angkor)'라는 새로운 나라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팔라바 문자와 자야바르만 2세의 이력이 이어준 연결 고리 덕분에 망망대해를 사이에 두고 카위 문자와 크메르 문자가 닮았던 미스터리는 이제 풀렸다.
그렇다면 크메르 문자는 카위 문자의 후손이라고 봐야 할까?
씨엠립 앙코르 유적군 중에서도 초기 유적에 속하는 롤레이(Lolei, 893년 완공)에 새겨진 고대 크메르 문자와 카위 문자를 자세히 비교해보면 상당한 유사점 이면에 전혀 다른 점도 찾을 수 있다.
크메르 문자가 카위 문자의 후손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두 문자 모두에서 발견되는 '머리카락'을 내세울지 모른다. 다른 지역 문자에서 잘 발견되지 않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일렌드라에서 독립해 크메르인의 나라를 세운 자야바르만 2세의 이력을 통해서든, 초기 크메르 문자의 형태를 보든,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볼 때 크메르 문자가 카위 문자와의 후손이라는 주장에는 힘이 실리기 어렵다.
오히려 자야바르만 2세(802년 즉위)가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진랍에서는 초기 크메르 문자가 쓰였다[앙코르 보레이 비문(611년) 참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형태의 유사성 측면에서 크메르 문자가 카위 문자보다 팔라바 문자의 원형에 더 가깝다.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먼 지역에서 각자의 언어와 문화에 맞게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발전한 두 문자를 살펴보았다. 먼 바다를 건너 자야바르만 2세를 통해 앙코르 왕국의 시작 지점, 씨엠립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앙코르 유적을 거닐던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음 편에 계속)